고성희는 늘 선택했다

길게 고민하는 대신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고성희는 그랬다.

레드 드레스 미스지콜렉션. 턱시도 바지 리스. 이어링 에이치알.

우연이긴 하지만 <당신이 잠든 사이에>와 <마더> <슈츠>까지, 맡는 역할마다 어떤 식으로든 연이어 법원에 가게 됐다.

법원 스타일인가?(웃음) 이전에는 세 작품에서 납치당하는 역할을 맡아 왜 이렇게 납치만 당하나 싶었는데 요새는 계속 법원에 간다.

최근작인 <마더>는 보기 드물게 여성 캐릭터가 많이 등장한 작품이었다.

이런 작품은 처음이었다. 포스터에도 여자만 넷이 나왔고, 제작 발표회에도 여자 셋만 참석했고.

단순히 여배우가 많이 출연한 수준이 아니라 여자라는 존재에 대한 세심한 이해와 해석에서 비롯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여배우로서는 깊은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여배우에게 주어지는 역할 자체가 많지 않고 남성 캐릭터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많다 보니 <마더>는 정말 고마운 작품일 수밖에 없었다. 각기 다른 수많은 엄마들의 이면을 배운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래서 막중한 책임감도 느꼈다. 막내로서 선배님들께 누를 끼치고 싶지도, 연기로 밀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다.

메이킹 필름을 보면 촬영 현장 분위기가 상당히 좋았다는 게 느껴진다. 배우들끼리도 서로 깊은 애정을 주고받는 현장이었던 거 같다.

리딩 때부터 합이 좋다는 게 느껴졌다. 다들 작품에 대한 애정이나 의지가 대단했고 책임감도 크게 느꼈다. 한번은 혜영 선배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쩌면 포장되지 않은 진짜 엄마의 모습은 자영일 거라고. 자신이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감정이 모두 자영이에게 담겨 있는 거 같다고. 다만 그걸 표현하지 않고 사는 법을 배운 것뿐이라고. 그런 말이 자영이를 입체적으로 그리는 데 도움이 됐다. 실제로 어머니들이 느끼는 감정이 그렇다면 그걸 단순히 악한 모습으로 여겨지도록 허투루 연기하고 싶지 않았다. <마더>에서 엄마를 연기한 배우 중에서 유일하게 나만 실제 엄마가 아니었는데 어쩌면 엄마라는 존재로부터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자영의 입장에 더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던 거 같다.

블랙 재킷 에이벨. 탱크톱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바지 래비티. 롱 네크리스, 브레이슬릿, 링 모두 에이치알. 펜던트 네크리스 젬앤페블스.

<마더>에서 연기한 자영은 안아줄 수도, 내칠 수도 없는 여자처럼 느껴졌다. 연민은 생기지만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였고.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의 입장이 궁금했다.

너무 욕심이 나는 캐릭터이고 작품이었지만 처음에는 그 감정에 이입하기가 어려워서 상황에 집중하려 했다. 보편적인 악역처럼 연기하고 싶진 않았다. 대본을 읽을 때 자영에게서 묘한 백치미를 느껴서 시청자들도 그런 재미가 느껴지도록 연기하려 했다. 그리고 자영 역시 모성애를 갖고 있지만 동물적 본능으로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보니 학대인지도 모르고 행하는 부분이 있는 거라 이해했다.

애인의 아동 학대를 방조하는 공범자라는 점은 혐오스럽지만 미혼모로서 홀로 감내해야 했던 부침을 이해하면 한편으로는 자영에 대한 연민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면 다양한 삶의 이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될 수밖에 없을 거 같다.

사실 아동 학대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런데 이 작품을 하면서 아동 학대나 미혼모의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 게 사실이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갖게 되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절박한 인물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자영이에게 연민을 느낀 것 같다.

인물의 불안정한 내면을 연기하는 과정에서 감당해야 할 고단함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컷만 찍어도 체력이 바닥을 쳤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울거나, 워낙 감정 폭이 큰 캐릭터라 그런 기복을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를 계속 유지해야 했으니까. 항상 높은 호흡으로 연기해야 했다. 아이 같은 여자라고 생각해서 입으로 손을 무는 제스처를 자주 사용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나도 사람이다 보니 너무 악하게 굴 때는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감정에 집중하고자 했다.

자영은 자신의 딸을 데려간 여자로부터 다시 딸을 납치한 뒤 딸을 되돌려받고 싶다면 몸값을 내놓으라 말하는 엄마다. 이런 인물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각오가 필요했을 것 같다.

감독님께서 그 부분 때문에 내게 미안해하셨다. 조금 희생해달라고 하실 정도였으니까.(웃음) 문제는 내가 그런 감정에 이입하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자영이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지, 스스로를 설득하는 게 첫 번째 숙제였다. 결국 혜나(허율)가 엄마를 먼저 버렸다는 점에서 해답을 찾았다. 혜나는 엄마가 죽었다고 했으니까, 자영은 사실상 딸에게 버림받은 엄마다. 그렇게 버림받은 입장에 되고 나서 아무렇지 않게 딸의 장례식을 치르고, 술에 취하면 딸을 다시 데려올 거라 말하다가도 아무렇지 않은 듯이 지내다가 결국 설악의 전화를 받고 그렇게 행동한다. 사실 그 신을 찍을 때 제일 많이 울었다. 대본으로 봤을 때는 울 만한 장면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연기를 하면서 쌓아온 인물의 삶이 그렇게 표현하지 않으면 잘못 해석될 거 같았다. 결과적으로는 반전이 없는 인물이기도 하니, 그렇게 일관된 감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이를 품지 못하면서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를 갈구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자영은 가여운 사람이기도 하다. 대중과의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의 사랑을 얻어야만 하는 배우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나는 자영을 자신이 만든 연극 속에서 사는 인물이라 생각했다. 현실을 보고 느끼는 게 아니라 본인이 느끼고 싶은 감정대로 느끼는 사람인 거다. 그래서 표현 방식도 남들과 조금 다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설악(손석구)이 혜나를 학대한다는 걸 알면서도 아니라고 하는 건 단순한 거짓말이 아닐 거라고 봤다. 아무래도 배우로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배우는 사랑이나 관심이 절실한 직업이니까. 그래서 안쓰러웠다, 자영이가.

화이트 셔츠 김서룡. 뱅글, 네크리스 모두 젬앤페블스.

캐릭터의 결이 다르지만 <마더>와 <슈츠>로 결핍이 있는 인물을 연이어 맡은 셈인데.

늘 맡는 역할마다 결핍이 있는 것 같다.(웃음) 특히 <당신이 잠든 사이에> 전까지는 정말 심각했다. 도망다니고, 납치당하고, 항상 사연 있는 인물. 그래도 <슈츠>에서는 위트 있는 역할을 맡아서 연기하는 재미가 크다. 계속 개그 욕심이 생긴다. 감독님이 그만하라고 하실 정도로.(웃음)

인생의 갈피를 잡지 못해 괴로웠던 <마더>의 자영과 달리 <슈츠>의 김지나는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인물처럼 보인다. 상반된 캐릭터를 연기하는 재미가 있을 거 같다.

영화 촬영을 포함해 1년 반 가까이 쉬지 않고 작품을 해와서 체력적인 소모가 걱정됐지만 30대를 앞둔 배우로서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슈츠>를 선택하기를 잘한 거 같다. <마더>가 내게 일종의 도전이었기 때문에 겁도 많이 났고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는데 <슈츠>의 지나는 지금껏 해온 역할 중에서 나와 가장 닮아 보여서 연기하기가 즐겁다. 주변 사람들도 지금의 내가 어느 때보다 밝아 보인다고 하더라. 그래서 좋다.

김지나가 자신과 닮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작가님은 김지나라는 인물이 ‘주체할 수 없는, 하지만 주저하는 인물’이라고 정리해주셨다. 김지나에게는 결핍이 있다. ‘특정 공포증’이라는 병적인 증세가 있는데, 시험만 보면 공황장애 같은 증상에 시달려서 변호사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대단한 로펌의 대표이고. 결국 그런 외부 조건을 죄다 차단한 채 혼자 힘으로 극복하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열등감이 있다. 특히 고연우(박형식) 같은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변호사를 보면 더욱 열등감을 느끼게 되고. 그리고 ‘츤데레’라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고 은근히 허당이기도 하다. 그런 면이 나와 닮았다고, 공감되는 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김지나는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다. 내가 맡은 역할 중에서 제일 멋있다. 고연우와 갈등하면서도 그 친구의 선함에 매료돼 그가 옳은 길을 갈 수 있도록 돕는다.

아버지가 교수라고 들었다. <슈츠>의 김지나처럼 진로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아버지의 영향을 받진 않았을까?

누굴 닮아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웃음) 아버지는 학자 스타일이다. 공부를 많이 하셨고 책도 쓰셨고, 완전 워커홀릭이다. 친가나 외가 어디에도 예·체능 계열 종사자가 없어서 다들 특이한 애가 태어났다고 했다. 초반에는 아버지 몰래 엄마 돈으로 모델 아카데미에 다니기도 했는데,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에 수시 합격하고 나니까 아버지가 조금 인정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데뷔까지 하고 나니 주변에서 물어보는 사람도 생겼는지 은근히 자랑도 하셨던 거 같더라.(웃음) 이제는 너무 좋아하신다. 든든한 조력자지.

아버지가 강하게 반대하는 편은 아니었나 보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맞벌이라 너무 바빴다. 그래서 독립적으로 자란 편이다. 어릴 때는 늘 혼자 있었다. 그렇게 톰보이처럼 자라고 부모님도 내가 당신 뜻대로만 살지 않을 걸 잘 아니까 오히려 내 선택을 믿어주는 거 같다. 아직까지는 내 선택이 잘 맞기도 했고.

<슈츠>의 주연 캐릭터는 두 남자이지만 여성 캐릭터들의 역할도 중요해 보인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여성 캐릭터가 셋이다. 진희경 선배님이 로펌 대표 역할이고, 채정안 선배님이 최강석(장동건) 변호사를, 내가 고연우 변호사를 도와주며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인데, 모든 여자 캐릭터가 하나같이 멋있다. 어떻게 보면 남자 캐릭터보다 우월해 보이기도 하고. 실질적으로 그들을 이끌어주는 역할이니까. 덕분에 연기하는 재미가 상당하다.

<마더>에서 이혜영 씨를 만났는데 <슈츠>에서는 진희경 씨를 만난다. 여배우로서 긴 경력을 이어온 대선배와 마주하는 것 자체가 특별한 경험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나한테 그런 복이 있는 거 같다. <미스코리아>는 이미숙 선배님과 했고, <스파이>도 배종옥 선배님과 했고. 그런 선배님들과 현장에 있으면 왠지 든든하다. 좋은 긴장감을 갖고 선배님들이 이끌어주는 방향으로 보고 배우면서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연기에 도움이 된다.

선배들이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나 보다.

다들 무섭기로 유명하신 선배님들인데 나는 그냥 너무 좋더라. 이미숙 선배님한테는 몇 번 혼난 적도 있다. 울어야 하는 신을 앞두고 스태프들과 웃고 떠들지 말라고, 긴장하라고. 나는 그게 좋았다. 알고 보면 뒤로 잘 챙겨주시는 츤데레이시다.(웃음) 나는 그런 호랑이 선배님들과 잘 맞는 거 같다.

나중에 무서운 선배가 되는 거 아닐까?

선배님들한테 그런 말 많이 들었다. 무서운 선배 될 것 같다고.(웃음)

정형화되지 않은 것이 자신의 매력이라고 말한 적 있다. 스스로 예쁜 배우가 아님을 인정한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솔직히 그렇게 생각한다. 데뷔 때부터 그런 얘기를 많이 듣기도 했고. 한창 오디션을 보러 다니던 스물두세 살 무렵에는 특이한 매력이 있다고 하시는 감독님들도 있었지만 TV 드라마에 어울리는 얼굴은 아닌 거 같아 고민스러웠다. 지금은 오히려 이런 모습이 장점이 되는 거 같다. 예쁘게 보이면 좋겠지만 자영이처럼 인물 자체로 주목받을 때 더 큰 성취감이 느껴진다.

괜한 열등감에 사로잡힐 수도 있었을 텐데.

처음에는 그랬다. 아닌 척하지만 안으로 느끼는 답답함이 있었겠지. 내 것이 아닌 걸 알면서도 갖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고. 그래봤자 돌아오는 게 없다. 어두운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이 생길 뿐이지. 그러니 ‘근자감’을 갖고 스스로 행복하다 느낄 때 좋은 일도 많이 생기는 거 같다. 다행히도 난 자신감이 없는 편은 아닌 거 같다.

영화 <롤러코스터>와 미니시리즈 <미스코리아>를 통해 데뷔 초부터 주목받았다. 그런데 두 작품에서의 모습이 판이하다 보니 같은 배우라고 생각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 신인이다 보니 낯익은 얼굴도 아니었고.

<롤러코스터> 덕분에 <미스코리아>에 출연했다. <미스코리아> 조감독님이 <롤러코스터>를 보고 나를 재희 역으로 추천했다는데, 감독님은 신인이 맡기 어려운 역할이라 생각해서 불안해했다. 다행히 작품이 끝날 무렵에는 박수를 받았지만. 정말 고마운 경험이었다. 드라마에 어울리는 얼굴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때였으니까. 나이가 어리고 앳되게 생겨서 고등학생 역할에도 어울리지만 교복을 입기에는 키가 너무 크다는 말을 듣고 다리를 자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미스코리아>는 오히려 키가 커서 할 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그런 비관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 덕분에 지금까지 계속 연기할 수 있었고.

재킷 라펠라. 그레이 바지 푸시버튼. 이어링, 네크리스 모두 젬앤페블스. 브레이슬릿, 링 모두 에이치알.

학창 시절에는 국제경영학 전공을 꿈꿨다던데.

경영이 뭔지는 몰랐지만 관심이 많았다. 직접 발로 뛰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성취감이 있는 것 같아 그런 직업을 갖고 싶었다. 도전적인 직업을 선망해서 사업이나 경영 쪽을 생각한 거 같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걸까?

원래 연기를 가르치는 교수가 되고 싶었다. 연기학과에 들어간 것도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워서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어서였다. 어쩌면 아빠의 길을 따라가려 했던 거 같기도 한데, 결국 누군가에게 내가 배운 걸 보여주고 싶어지더라.

연예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까?

솔직히 연예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직업을 원한 것도 아니었고, 내 길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20대 초반까지는 선입견도 강했다. 여자로서 좋은 직업이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연기를 배우다 보니까 스스로를 테스트해보고 싶어져서 오디션을 보게 됐다.

배우로 활동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

욕심이 커지더라. 오디션만 보고 싶었는데 하다 보니 거기서 끝낼 수가 없었다. 뜨거움에 중독되는 느낌이랄까. <롤러코스터>를 할 때 하정우 선배님이 해준 말이 있다. 누구보다 진심을 다해서 순수하게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그러니까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고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실제로 순수하게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충분히 용기를 갖고 도전할 만하다고 느꼈고, 덤비게 됐지.

배우로 활동하기 전에 아이돌 걸 그룹 데뷔도 준비했다고 하던데.

두 번 정도 있었다. 첫 소속사에 배우 파트로 들어갔는데 당시 그 회사가 걸 그룹을 준비하던 중이었고, 자연스럽게 나를 포함시켰다. 그런데 결국 무산됐고, 다른 소속사로 옮기게 됐는데 거기서도 나를 중심으로 한 걸 그룹을 준비하더라. 결국 정말 미안하지만 내 길이 아닌 거 같다며 회사를 나왔다. 함께 준비하던 멤버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펑펑 울었다.

누군가는 정말 간절하게 바라는 길이니까.

그게 내가 그래야만 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이 친구들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린 나이부터 치열하게 사는 친구들이다. 그만큼 절실하게 원하는 거고. 그런데 나는 내 밥그릇이 아니라고 느끼니 남의 자리를 뺏는 느낌이었다. 나는 정작 행복하지 않은데, 떳떳해질 수도 없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용감했던 거 같다. 배우가 될 수 없었다면 어쩌려고.(웃음)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만약 배우로 데뷔하지 못했다면 그 선택을 후회했을까?

아니. 나는 빨리 선택하지 못하는 편이다. 남들보다 시간이 걸린다. 데뷔도 그랬고. 그렇게 엄청 고민하다가 결정하면 절대 돌아보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내 결정을 특별히 후회해본 적은 없다.

모델 활동을 하다가 배우가 되고 싶어서 결국 소속사에 위약금을 물고 나온 적도 있다고 들었다. 아이돌로 데뷔할 뻔한 경우도 그렇고, 세상이 배우가 되는 길을 번번이 가로막는 것처럼 느껴졌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 같다.

그게 승부 근성을 더 자극한 것 같다.(웃음) 본래 청개구리 끼가 강해서 오히려 꼭 증명하고 싶었다. 다들 안 될 거라고 하는 것만 같아서 해내고 싶었다고 할까.

승부 근성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만으로도 지고 싶어 하지 않는 성격이 느껴진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어릴 때부터 만만치 않은 상황을 이겨내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아직도 그런 욕구가 있는 거 같은데 어쩌면 그게 나라는 배우의 감성을 만들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배우로서 자신을 증명할수록 대중의 관심도 커질 텐데, 그러다 보면 본인이 원치 않았던 부분까지 노출되거나 언급된다고 느껴질 때도 있을 거다.

배우가 천직이라 생각하다가도 직업을 잘못 선택한 건 아닐까 싶을 때도 있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삶을 즐기며 살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조금씩 체감하고 있다. 인지도 문제가 아니라 철이 들어가면서 느끼는 변화일지도 모르겠다. 20대였을 때는 무조건 맞서 싸우려 했다. ‘내가 왜 조심해야 돼? 내가 왜 의식해야 돼?’ 그랬는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게 그저 내 문제만은 아니라는 걸 느낀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내가 하는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 따르는 문제더라. 그래서 조금 어려워지기는 했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내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노력하고 있다.

배우로서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인간 고성희로서 나이 먹는 건 아쉽지만 배우로서는 좋다. 20대 초반에는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없었다. 그런데 20대 후반쯤 되니 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졌다. 나이가 드는 건 배우로서 설레는 일 같다.

아직 4월인데 올해 벌써 드라마 두 작품에 연이어 출연하고 있다. <슈츠>를 끝내고 나면 당분간 쉬고 싶어지지 않을까?

신기한 게 요즘은 에너지가 넘친다. 쉬지 않고 작품을 연이어 하고 있는데도 소모된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오히려 에너지가 차오르는 것 같다. 이대로라면 쉬고 싶진 않을 거 같다. 

  • Kakao Talk
  • Kakao Story

Credit

에디터
어시스턴트이 정훈
사진곽기곤
헤어윤 성호
메이크업박 이화
스타일링주 가은
출처
33183
본 기사를 블로그, 커뮤니티 홈페이지 등에 기사를 재편집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웹사이트 내 모든 컨텐츠의 소유는 허스트중앙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