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롬톤만의 것

브롬톤만이 도달한 아름다움과 기능성의 합일점.

브롬톤, 접이식 자전거 - 에스콰이어

가장 콤팩트한 자전거, 가장 클래식한 디자인의 자전거, 영국 내 최고의 자전거, 최고의 출퇴근용 자전거, 최고의 성능과 가치를 지닌 자전거…. 이 많은 수식과 찬사를 한 몸에 받는 건 1976년 탄생한 영국의 자전거 제조 브랜드 브롬톤이다. 친환경 디자인 이슈를 다루는 영국의 온라인 매거진 <트리허거(Treehugger)>가 20개 이상의 접이식 자전거 브랜드를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 브롬톤이 여러 경쟁사를 제치고 최고 점수를 받았다.

파리 퐁피두 센터를 설계한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도 가장 훌륭한 영국의 디자인 제품으로 브롬톤 자전거를 꼽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브롬톤은 아름다움과 기능성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다. 특히 접히는 방식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상당히 안정적이되 융통성이 있으며, 견고한 동시에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으로 심플하다. 그리고 제 기능에 충실하다. 브롬톤을 매일같이 타고 다니는 이유다.” 그렇다. 브롬톤의 진가는 ‘매일같이 타고 다닐 수 있는’ 일상성에서 나온다. MTB가 도심을 벗어남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하는 반면 미니벨로(바퀴가 작은 소형 자전거)에 속하는 브롬톤은 도심 안에서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는다.

대부분의 기념비적인 이동 수단처럼 접이식 자전거 역시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처음 등장했다. 접이식 자전거는 특유의 기동성 덕분에 정탐과 낙하산 부대원용으로 활용됐다. 영국의 몰튼(Molton)과 비커튼(Bickerton)이 접이식 자전거를 가장 처음 일상으로 끌어들였다. 브롬톤의 창립자 앤드루 리치는 롤스로이스 엔지니어 출신이 개발한 비커튼의 자전거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 런던 사우스켄싱턴 지역의 브롬톤 성당이 내다보이는 아파트의 비좁은 침실. 그곳에서 그는 도시와 자전거의 관계에 몰두했고, 브롬톤은 포화된 도시를 비집고 접이식 자전거의 새로운 전기를 열게 되었다.

브롬톤, 접이식 자전거 - 에스콰이어

시트만 빼서 바퀴로 밀고 다닐 수도 있다. 작은 아이디어가 팬을 만든다.

브롬톤은 접히는 자전거 중에서도 가장 작게 접히기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접이식 자전거가 접히는 것에 만족할 때 브롬튼은 한발 더 나아갔다. 자전거를 접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납과 이동에 있다. 접힌 자전거가 사람 손에 쉽게 잡혀야 한다. 도시에서 만나는 수많은 장애물을 큰 어려움 없이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 접히기만 하는 자전거에 그친다면 아이디어 상품 이상의 구실을 하지 못한다. 수많은 접이식 자전거 브랜드 사이에서 브롬톤이 높이 평가받는 것은 특유의 포개진 형상에서 비롯된다. 바퀴의 크기는 16인치, 접었을 때 높이는 약 58cm, 폭은 27cm에 불과하다.

여기서 브롬톤의 ‘작게 접힘’에 대한 의미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브롬톤이 추구하는 작음은 ‘콤팩트함’이다. 콤팩트하다는 수식어를 얻으려면 작음과 치밀함을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작기 때문에 기능을 포기하거나 결핍되는 부분이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앤드루 리치 역시 브롬톤의 프로토타입을 설계하면서 콤팩트함을 염두에 두었다. 그가 구상한 접이식 자전거는 한 손으로도 쉽게 들 수 있는 것이었다. 자전거가 일상생활에서 어떤 쓰임새가 될지에 대해 고민한 결과이기도 했다.

브롬톤의 콤팩트함은 독자적인 폴딩 방식에서 나온다. 경쟁 브랜드들이 가로 접이를 고수하는 것과 달리 브롬톤은 튀어나온 핸들바와 시트, 뒷바퀴 부분을 자전거 몸체의 중앙으로 수렴하도록 했다. 왼쪽 페달을 몸체와 수평이 되게 접는 폴딩의 마지막 단계를 마치면 그 부피가 정면과 측면, 위와 아래 모두에서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브롬톤 전문 블로그의 어느 사용자는 이러한 폴딩 방식을 ‘마치 예술과 같다’고 표현했다.

브롬톤, 접이식 자전거 - 에스콰이어

페달 뒤를 축 삼아 뒷바퀴가 프레임 안쪽으로 돌아 들어간다. 브롬톤식 효율의 정점.

브롬톤, 접이식 자전거 - 에스콰이어

브롬톤의 앞쪽은 나사를 푸는 방식으로 접고 편다. 볼트와 브라켓을 함께 써서 간편한 동시에 견고하다.

브롬톤처럼 예쁘게 접히는 자전거는 오직 브롬톤밖에 없다. 접히는 자전거가 이처럼 예술의 경지로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은 접혔을 때의 모습이 움직이거나 멈추었을 때의 모습과 동일하게 일관된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접혔을 때의 브롬톤은 마치 균형 잡힌 몸의 무용수가 완벽하게 팔다리를 접어 웅크린 모습을 연상케 한다. 궁극의 실용이 곧 아름다움이 될 때 우리는 그것을 훌륭한 디자인이라 말한다.

브롬톤의 훌륭한 디자인은 천지가 개벽하듯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브롬톤의 초기 모델 마크 1은 현재 생산하는 브롬톤 모델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 각 부품의 기능적 요소는 진화했지만 결합 방식이나 형태에는 큰 변함이 없다. 브롬톤은 이와 같이 최적화한 원형의 힘을 여러 모델로 파생해 분산시키기보다 계속적으로 반복해 집중하는 방식을 택한다. 즉 브롬톤은 점진적인 개선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물에 가깝다. 매해 새로운 모델을 내놓지만 지난 모델의 개량 버전이지 아주 새로운 외형을 입은 것이 아니다. 브랜드 창립 이후 40여 년간 하나의 제품 라인으로 명맥을 이어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여느 자전거나 자동차 브랜드가 갖고 있는 플래그십 모델이 브롬톤에는 없다. 브롬톤이 내놓는 모든 제품이 브롬톤의 대표 모델이다. 현재 기술 고문 역할을 하는 앤드루 리치를 도와 브롬톤의 경영을 책임지는 CEO 윌 버틀러 애덤스는 “우리는 유행을 만드는 데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유행은 사업을 키우는 데에서 위험한 방식이기 때문이죠”라며 브랜드의 전략을 명쾌히 정리했다.

브롬톤, 접이식 자전거 - 에스콰이어

브롬톤을 다 펼쳤을 때의 모습. 시내에서 달리기 적당한 사이즈다.

브롬톤에게 라인업 확장은 규모의 확장이 아닌 취향의 확장이다. 하나의 원형 아래 사용자의 필요와 취향에 맞게 취사 선택이 가능하도록 구축한 브롬톤의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이 그렇다. 브롬톤을 구입하려는 사람은 네 가지 타입 핸들바, 1단부터 6단까지의 기어, 짐받이와 머드가드의 유무, 그리고 12가지 프레임 컬러를 자신의 입맛대로 조합해 개인화한 모델을 만들 수 있다. 브롬톤의 모델명도 이들의 규칙을 반영한다. 예를 들면 M6R은 M 타입의 핸들바와 6단 기어, 그리고 머드가드에 짐받이를 추가한 모델을 가리키는 식이다. 이와 같은 조합으로 만들 수 있는 모델의 수는 130억 개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프레임 컬러를 투톤으로 매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하며 그 경우의 수가 무한대에 가까워졌다.

브롬톤만을 위해 설계한 부품도 있다. 안장과 손잡이, 짐을 수납하는 가방 같은 액세서리는 대부분 브롬톤과 파트너십을 맺은 독자 브랜드에서 생산한다. 브롬톤만큼 인지도를 갖춘 안장 브랜드 브룩스(Brooks)부터, 소규모의 신생 제조업체까지 그 스펙트럼이 폭넓다. 브롬톤 사용자들은 브롬톤을 타고 펴고 접는 것에 더해 컬러를 고르고 액세서리를 붙이는 행위를 통해 하나의 놀이로 브롬톤을 즐긴다. 이때부터 브롬톤 자전거는 수명을 가늠하는 소모품이기보다는 개인의 기록을 새기는, 애착의 대상으로 자리한다.

자전거는 사람을 닮은 이동 수단이다. 원하는 때에 쉽게 멈추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 잠시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하고 다시 길을 나설 수도 있다. 자동차를 타기에는 좁고, 걷기에는 힘든 거리를 자전거가 메운다. 누군가는 자전거의 속도가 새로운 것을 보게 만든다고도 말한다. 브롬톤은 이러한 자전거의 속성을 극대화시킨 브랜드다. 한 예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브롬톤 마니아들을 대상으로 여는 브롬튼 레이스는 스타팅 라인이 그어진 아스팔트 도로가 아닌, 도심의 작은 기차역에서 출발한다.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서면 대회에 참석하는 이들이 하나둘씩 내리는데, 모두의 손에 곱게 접힌 브롬톤이 한 대씩 들려 있다. 복장 또한 기능성 전용 슈트가 아닌 셔츠에 재킷, 반바지 차림이다.

이처럼 브롬톤과 연계된 문화는 속도나 퍼포먼스가 아니라 근접성에 맞추어져 있다. 펭귄북스가 양장판 시대에 손에 가볍게 쥐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문고판을 기획한 것처럼, 브롬톤 역시 자전거로 닿을 수 있는 영역을 확장시켰다. 어느 지점까지 브롬톤을 타고 갈 수 있다. 타고 가지 못하는 곳이라면 접어서 들고 들어간다. 실내 한구석에 세워둔 브롬톤을 들고 버스나 기차, 혹은 식당, 카페를 출입하는 데 어떤 제약도 없다.

많은 브롬톤 사용자들이 브롬톤과 함께 하는 세계 여행을 꿈꾼다. 어떤 이들은 서울에서 구매한 브롬톤으로 런던의 도심 혹은 발리의 오솔길을 달리는 것을 브롬톤으로 마일리지를 쌓는 것에 비유한다. CEO 윌 버틀러 애덤스 역시 자신들이 더 가볍고 더 좋은 성능의 자전거를 만드는 데 투자한 만큼 고객들의 삶이 더욱 행복해질 거라 말한다. 브롬톤은 자전거를 타고 느긋하게 달리는 이들을 재촉할 마음이 없다. 그들의 속도를 그저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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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 은성(매거진 B 편집장)
사진 정 우영
출처
17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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