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의 재발견

국밥은 지난 수세기 동안 가장 히트한 외식 상품이었다. 오래되다못해 식상한 국밥이 최근 젊은 감각을 수혈받고 인스타그램을 장식하고 있다.

국밥 - 에스콰이어

한반도의 외식 문화는 국밥과 함께 발달했다. 조선 시대 시장이 성행하면서 장돌뱅이와 상인들은 물건을 내다 팔기 위해 전국을 떠돌았다. 그들이 숙식을 길에서 해결하는 날이 늘면서 덩달아 주막집이 성황을 이뤘다. 이때 주막집에서 내놓은 음식이 바로 국밥이었다. 당시는 냉장 기술을 기대할 수 없는 때였다. 소 한 마리를 잡으면 그 자리에서 통째로 소비해야 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날에 맞춰 소를 도축했다. 특히 당시는 유교 사회여서 집집마다 제사가 많았다. 시장을 찾은 사람들이 제사용 고기를 사 가고 나면 남은 부속 고기는 주막집에 떨어졌다. 주모는 큰 솥에 머리부터 꼬리까지 온갖 잡뼈와 내장을 넣고 푹 끓였다. 그리고 손님이 오면 사발에 찬밥을 깔고 펄펄 끓는 고깃국을 끼얹어 내줬다. 끓인 국에 밥을 말아 한 그릇에 내준 이유는 전기밥솥처럼 밥의 온기를 유지할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식은 밥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가 따르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여 밥과 국의 온도를 맞추는 동시에 밥의 전분기가 국에 배도록 농도를 맞췄다. 이를 토렴이라고 한다. 이렇듯 시간과 정성을 들여 토렴한 이유는 국밥을 찾는 사람 대부분이 급하게 끼니를 때워야 하는 조선의 ‘혼밥족’이었기 때문이다. 토렴 과정을 거쳐 밥의 온도가 오르는 만큼 국의 온도가 떨어지므로 빨리 후루룩 먹고 일어날 수 있었던 것. 물론 지금의 혼밥 메뉴처럼 값이 싸고 양도 푸지다.

거의 우리나라 최초의 외식 상품이자 혼밥 메뉴인 국밥은 설렁탕, 곰탕, 순댓국, 해장국, 돼지국밥 등의 이름과 자태로 꾸준히 우리 식탁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쇠고기를 식재료로 하는 설렁탕과 곰탕은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이 책정됐고 서민 음식의 경계에서 탈피했다. 전기밥솥이 보편화되면서 더 이상 찬밥을 말아줄 이유가 없어져서 밥과 국을 따로 주는 게 당연시됐다. 물론 나주곰탕 등에는 그 원형이 여전히 남아 있긴 하다. 국밥은 오랜 역사만큼 이를 먹고 자란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이 그 맛을 좌우한다고 인식된다. 덕분에 이를 내놓는 가게들도 노포들이 득세해왔다. 이렇듯 철옹성 같던 국밥 시장에 최근 젊은 감각의 셰프들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미슐랭 별에 빛나는 ‘정식당’ 임정식 셰프가 올해 초 세 번에 걸쳐 ‘곰탕 팝업’을 진행했으며, 이탈리아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박찬일 셰프와 호텔 출신의 옥동식 셰프가 각각 돼지국밥 전문점을 차렸다. 굳이 국밥의 경계를 떠나 소위 ‘셰프’라고 분류되는, 정규 교육을 받은 요리사들이 밥집을 여는 행위 자체가 몹시도 생경하다.

무국적 술집 ‘몽로’ 광화문점 지척에 ‘광화문국밥’을 연 박찬일 셰프는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 고도로 훈련된 셰프들의 과학적인 접근이 있다고 귀띔한다. “이전까지 국밥과 냉면은 전통의 영역으로 여겨져왔습니다. 할머니의 손맛이 그 맛을 좌우한다고요. 물론 옳은 얘기지만, 그렇다고 과학적인 접근이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서양식에도 수육을 삶아 육수를 내는 기술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요리를 배우다 보니 원리를 깨닫고 그 원리를 토대로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비슷한 맛을 유추해내는 겁니다. 국밥과 냉면은 제가 가장 애착을 갖는 음식으로, 최근 맛은 없으면서 전통만 내세우는 가게들을 보며 도전하게 됐습니다.” 박찬일 셰프가 운영하는 광화문국밥은 돼지국밥과 함께 평양냉면을 취급한다.

광화문국밥은 공터나 다름없는 주차장 안쪽 후미진 곳에 위치한 데다, 특별히 홍보 활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연일 만석이다. 열 석이 전부인 ‘옥동식’ 역시 마찬가지다. 이 두 집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비단 이름값 때문만은 아닐 터. 그들이 선택한 국밥은 주된 가구 유형이 1인 가구이며, 그로 인해 혼밥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현 세태에 더없이 잘 부합되는 메뉴다. 국밥은 부속 고기를 한데 넣고 끓여 여럿이 나눠 먹는 음식이지만, 외식 메뉴로 따지자면 태생 자체가 혼밥족을 위한 음식이다. 이러한 음식에 대한 정의 혹은 분류가 수백 년을 거쳐 DNA에 남은 탓일까. 혼밥이라는 신조어가 한반도에 상륙하기 전, 우리는 혼자 밥 먹는 일을 청승맞다고 여기면서도 국밥만큼은 혼자 먹는 것을 용인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외식 상품이자 혼밥 메뉴인 국밥은 설렁탕,곰탕, 순댓국, 해장국, 돼지국밥 등의 이름과 자태로 꾸준히우리 식탁에 오르고 있다.

사실 우리 음식 중 혼밥에 어울릴 만한 게 국밥만 있는 건 아니다. 한국 음식 하면 서양 사람들이 가장 많이 떠올릴 비빔밥도 혼밥 형태로 발달했다. 그런데 비빔밥은 손이 굉장히 많이 가는 음식이다. 밥 위에 올리는 각종 나물을 다듬고 무쳐야 한다. 비빔밥 한 그릇에 이미 많은 인력이 들어가며, 올라가는 나물의 종류가 다채로운 만큼 식재료에서 손실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게다가 목이 막히지 않도록 국도 준비해야 한다. 또 사람들은 비빔밥을 먹으면서도 반찬 서너 가지는 나오길 기대한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부터 국을 반찬의 범주에 넣었으며, 반찬 중 국이 으뜸이라고 여겼다. 그리하여 ‘국이 없으면 얼굴에 눈이 없는 것 같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국밥집에 가서 거창한 반찬을 요구하지 않는다. 먹는 사람이 특정 음식을 현대의 생활 방식에 부합하는 식단이라고 받아들이더라도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 리스크가 크다면 그 음식은 대중 음식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그중 혼밥의 충족 조건은 부담 없는 가격과 푸짐한 양 아니겠는가.

박찬일 셰프는 우리나라 외식 문화에서 비빔밥 이전에 국밥이 있었다고 한다. 비빔밥은 오랜 시간 집에서 먹는 음식으로 인식되어 밖에서 사 먹은 역사가 채 100년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지난 두 정권은 ‘한식의 세계화’를 주창하며 비빔밥에 힘을 실어왔다. 하지만 그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메뉴가 틀리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임정식 셰프가 미국에 곰탕집을 차릴 것을 목표로 ‘곰탕 팝업’을 선보인 이유도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로 이뤄진 뉴욕 매장의 주방에서 스태프 밀로 쇠고기뭇국을 냈을 때 가장 반응이 좋았기 때문이다. 박찬일 셰프 또한 고기 국물에 탄수화물을 말아 먹는 것은 서양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한 행위이기 때문에 국밥이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을 수도 있다고 힘을 실어줬다.

그렇다면 왜 돼지국밥일까. 쇠고기 위주의 탕 문화가 발달한 서울에 돼지국밥, 그것도 부산의 그것처럼 돼지의 살코기로 맑은 육수를 낸 돼지국밥을 선보여 화제를 모으는 배경에는 일보 전진한 돼지고기 시장이 있다. 옥동식과 광화문국밥은 둘 다 ‘버크셔K’라는 흑돼지의 다리 살을 삶아 육수를 낸다. 버크셔는 영국 남부 버크셔에서 발견된 품종이며, 영국 이민자들에 의해 미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도입된 후 남원을 중심으로 육종에 육종을 거친 결과 버크셔K라는 새로운 품종으로 인정받았다. 우리나라 환경에 적응하며 토착화된 버크셔K는 살코기의 근섬유가 유독 가늘고 많아 육질이 쫄깃하고, 조리한 후에도 수분을 머금고 있어 육즙이 풍부하다.

버크셔K를 전국에 알리기 위해 수년간 노력해온 ‘여행자의 식탁’ 김진영 대표는 옥동식 셰프와 박찬일 셰프에게 처음 버크셔K의 우수한 품질을 전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명망 높은 식품 MD인 김 대표는 양봉업자를 만나러 남원을 찾았다가 그곳에서 우연히 버크셔K를 맛봤다. “그 자리에서 바로 그 맛에 빠져들었습니다. 구워 먹는 순간, 삶으면 정말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보통 돼지고기를 삶을 때 잡내를 제거하기 위해 된장, 소주, 월계수잎 등을 넣는데, 버크셔K는 그럴 필요 없이 마늘 두어 쪽이면 됩니다. 수육 삶은 물을 보니 ‘국밥이 되겠다’ 싶었고요.” 김 대표는 실제로 전 회사에 근무할 때 버크셔K로 조리한 돼지국밥을 간편식으로 개발하기 위해 기획까지 했다고 한다.

“버크셔K는 불포화 지방,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이 다른 돼지보다 훨씬 많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쇠고기로 육수를 낼 경우 기름을 제거하지 않으면 맛이 무겁지만, 버크셔K는 기름을 제거하지 않아도 맛이 가벼워요. 다른 요리의 기본 육수로 사용해도 좋고, 국밥처럼 단독으로 사용해도 좋습니다.” 김 대표의 설명을 들은 후 옥동식과 광화문국밥을 차례로 들러 국밥을 맛봤다. 맑으면서도 감치고, 구수하면서도 달짝지근한 국물 맛은 기존에 알던 쇠고기나 돼지고기 맛이 아니었다. 익숙하면서도 전혀 새로운 맛이었다. 사람들이 왜 ‘돼지국밥’ 간판을 빤히 보면서 닭 육수를 떠올리는지도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우리가 여태껏 잘 안다고 자부해온 식재료와 음식의 새로운 장을 동시에 여는 경험이었다. 음식은 스스로 발전하지 않는다. 식재료를 세분화하려는 농민과 상인, 그 식재료를 접목하여 조리법을 개발하려는 요리사가 있어 일보 전진한다. 세상에 전혀 새로운 요리는 없다. 국밥처럼 그 안에 미래를 여는 정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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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 주연(미식 칼럼니스트)
사진송 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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