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밤 종현이었습니다

'푸른 밤 종현입니다'의 마지막 진행을 앞둔 샤이니 김종현에게 질문을 던졌다.

샤이니 종현 - 에스콰이어

신기주(이하 신) 저한텐 천년만년 <푸른 밤>을 진행하겠다더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김종현(이하 김) 죄책감에 휩싸여서 살고 있어요.

많이들 아쉬워해요. 4월 1일 토요일, 어제가 우리 ‘미드나잇 스포일러’ 코너 막방이었잖아요. 이 인터뷰가 끝나면 곧바로 상암동으로 넘어가서 <푸른 밤 종현입니다> 마지막 생방송을 진행해야 하고. 자정까지 이제 겨우 서너 시간 남았네요.

정우성(이하 정) 청취자들도 팬들도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이네요. ‘쫑디’를 떠나보낼 준비를.

제가 방송에서 먼저 말씀드렸으니까요. 그게 청취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어요. 매일 밤 자정에 방송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까 갑작스럽게 제가 사라지는 게 당황스러울 수 있잖아요. <푸른 밤 종현입니다>를 들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던 청취자분도 많았으니까요. 마음을 정한 지는 꽤 오래됐어요. 작년 말쯤부터였나, 주변 분들과 상의하고 적당한 때를 정하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죠.

마무리하는 기간이 정서적으로 힘들어 보였어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으로 들었어요. 종현 씨 본인의 노래를 작심한 것처럼 많이 들려주기 시작했죠. 하루하루가 이별 방송이 아니었나 싶어요. 오늘이 정말 이별하는 날이지만.

방송과 이별을 결심하고 나서부턴 하루하루가 정말 소중했어요. 그래서 자정 시간대에 어울리는 가장 로맨틱한 노래를 선곡하곤 했죠. 소중한 순간에 소중한 상대에게 음악을 선물하듯이. 그게 저 나름대로의 이별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부드럽고 젠틀한 방송이었어요.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기자님은 제 성향을 잘 아실 테지만….

이분이요? 영화, 경제, 경영, 건축, 정치, 인터뷰 전문 기자님! 아니 어떻게 본인을 그렇게 소개할 수 있습니까. 기자 생태계를 그렇게 흐려도 되는 겁니까? 무려 종현의 입을 빌려서! 신기주 기자가 이렇게 소개해달라고 졸랐던 거죠? 솔직히 말해봐요, 저한테만.

하하, 기자님은 <푸른 밤 종현입니다>에서 ‘미드나잇 스포일러’라는 토요일 코너를 맡고 계세요. 영화 소개 코너죠. 처음부터 그렇게 인사를 나누기 시작해서 그게 시그너처처럼 굳어진 거죠.

그러니까 강요에 의한 게 아니냐고요.

솔직히 나중엔 그렇게 소개를 안 해주면 조금 섭섭하더라.

강요가 맞았어. 내 생각이 맞았어.

그렇게 캐릭터가 잡힌 걸 어떡하나요.

잡힌 게 아니라 잡은 거잖아요! 그나저나 두 분은 3년 넘게 토요일마다 만나셨잖아요. 정말 아쉬울 것 같아요.

제가 <푸른 밤 종현입니다>를 시작한 게 2014년 2월이거든요. 그때부터 자리를 지킨 코너가 바로 ‘미드나잇 스포일러’예요.

아니, 도대체 왜요?

‘왜요’라니요? PD님들도 바뀌고 작가분들도 바뀌었는데, 저는 매주 토요일마다 생방을 하면서 DJ 종현의 옆을 지켜왔다고요.

솔직히 생방은 아니었잖아요. 3년 동안 생방은 세 번인가 했나?

이렇다니까. 하여간 취재해보면 다, 제가 이런 사람을 편집장으로 두고 일합니다.

많이 피곤하시겠네요.

샤이니 종현 - 에스콰이어

우리 <푸른 밤 종현입니다>의 마지막 생방송을 앞두고 인터뷰하고 있잖아요. 뭉클한 분위기였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됐죠? 어제 생방송 끝나고는 심지어 우리끼리 서로 안아줬잖아요.

분위기 바꿔보려고 동정심을 유발하고 계시네요, 편집장님. 영화, 경영, 인터뷰, 동정심 유발 전문 기자님.

(무시) 지난 3년 동안 지켜본 김종현은 너무너무 바쁜 사람이었어요. 어제는 일본, 내일은 중국, 모레는 동남아, 다음 주엔 남미까지 가야 하는 한류 스타였죠. 그런데도 심야 라디오 방송 일정을 꾸준히 소화해냈어요. 전 그 동력이 늘 궁금했어요.

제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때마다 고1 때, 자퇴했을 때라고 대답해요. SM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음악을 시작한 것도 아니에요. 자퇴를 결정하면서 불특정 다수가 살아가는 삶으로부터 벗어났고 스스로를 놓아버렸어요. 두 번째 터닝 포인트를 라디오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데뷔한 순간보다, 책을 냈던 순간보다도.

어째서요?

저는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무언가에 꽂히면 눈가리개라도 한 것처럼 그것만 바라보는 성향이 있거든요. 타고난 기질이죠. 그런데 라디오를 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각이 넓어졌어요. 자퇴하는 순간에 그랬던 것처럼.

라디오가 어떻게 김종현이라는 사람을 넓혀준 건가요?

신기주를 만났다?

(무시) 라디오 진행 전과 후는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어요?

일단 간접경험이 엄청나게 늘어서 저의 예술적 표현 능력도 늘었어요. 삶의 폭부터 넓어졌고. 제가 판타지스러운 것들을 상당히 좋아해요.

기자님은 아시다시피 히어로물도 엄청나게 좋아하고. 어쩌면 저는 늘 판타지적이고 동화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었던 건지도 몰라요. 라디오를 하면서 일상적인 얘기도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회사 생활이라거나 아르바이트 같은 것. 시시콜콜한 삶의 이야기. 오늘 회사에서 실수가 있었는데 상사한테 혼나서 지치고 힘들었다거나 하는 것. 라디오라는 매체가 그런 얘기가 없으면 진행이 불가능하고, 또 그런 얘기를 시시콜콜하게 늘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매체고. 그러다 보니까 제가 상상도 못했던 불특정 다수의 삶을 엿볼 수 있게 되었어요.

말씀을 듣다 보니까 종현 씨가 만든 노래 <하루의 끝>이 떠오르네요. “빈틈없이 널 감싸 안는 욕조 속 물처럼”이라는 가사.

<하루의 끝>은 정말 <푸른 밤 종현입니다>를 진행했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곡이죠.

수고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그댄 나의 자랑이죠.

그만, 그만!

(웃음) 처음엔 매일 규칙적으로 마이크 앞에 앉아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그런 규칙적인 삶에서 벗어나려고 자퇴했던 거였고. 그런 생활은 힘들고 금세 지쳐요. 제 기질과 안 맞아요. 그런데 라디오를 선택하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였나, 매일 같은 시간에 스튜디오라는 공간에 있다는 느낌 자체가 너무 좋은 거예요. 취직해서 회사에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연예인이라는 직업 자체가 되게 불규칙하잖아요. 매일을 외근하듯이 살아가는 직업인데 라디오를 하니까 매일 출근을 하게 되는 거죠.

답답함과 안정감이 동시에 들었던 모양이네요.

쉽진 않았어요. 낯선 환경을 접하면 거부반응부터 오잖아요. 전 여행 가는 것도 안 좋아해요. 쉴 때도 집에만 있는 걸 좋아하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익숙한 공간에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라디오 스튜디오가 너무 편해진 거죠.

얼마나 걸렸나요? 편안해지는 데까지.

8개월쯤이었던 것 같아요. 그 무렵부터 방송하면서 붉으락푸르락하는 게 좀 줄어들었어요. 제작진과도 편해지고. 도움도 많이 받고.

신기주도 도움이 됐나요? 설마?

세상 사람들이 좋다는 거 같이 싫다고 하기. 삐뚤어진 사고 표출하기. 꼬여 있는 속내 드러내기.

나쁜 형이네.

둘이 같은 성향이다 보니까 잘 맞았어요. 신 기자님은 어떠셨어요?

정말 어느 순간부턴가 둘이 죽이 맞아가기 시작했죠. 종현 씨가 마이크 앞에서 편안해지면서 라디오 스튜디오가 거실 같아졌고. 그때부터 매주 종현 씨 집에 놀러 오듯 <푸른 밤 종현입니다>에 왔어요. 나쁜 삼촌과 조카 혹은 형, 동생 혹은 친구끼리 영화 한 편 놓고 떠들 듯 방송을 했고. 아시다시피 전 샤이니의 종현이라는 아이돌 스타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채로 합류했잖아요. 와서 보니 아이돌이네, 다시 보니 한류 스타네, 그랬던 거라. 오히려 나중에 종현 씨의 솔로 공연을 보고 놀랐죠. 무대 위의 종현은 마이크 앞의 김종현과 또 다르구나 싶어서. 처음엔 무대 위의 샤이니 종현이 대단해 보였지만 나중엔 무대 위의 샤이니 종현을 깨고 나와서 내 앞에 앉아 있는 김종현이라는 사람이 더 대견해 보였어요.

정말 삼촌처럼 말씀하시네요.

뭉클하달까.

지난 3년 동안 김종현이 성장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어른이 돼가는 걸 지켜봐온 것 같은 느낌.

벌서 울지 마요. 지금 눈빛 너무 습해요. 3년 전 종현을 만나면 다른 사람 같을까요?

충분히요. 제가 3년 전으로 되돌아가서 저를 본다면 분명 다른 사람이라고 느꼈을 것 같아요.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이지만.

샤이니의 다른 멤버들은 라디오를 하는 종현을 이해해줬나요?

힘들겠다는 얘기를 많이 했죠. 걱정해주는 멤버도 있었고. 키가 특히 걱정을 많이 했어요. 건강 걱정도 많이 해줬고.

샤이니 종현 - 에스콰이어

생방은 특히나 영혼이 털리잖아요. 새벽 12시부터 2시까지 생방송하고 집에 돌아오면 지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도 종현은 세상과 만나러 라디오 스튜디오에 왔던 거군요?

어쩌면 라디오로 도망쳤던 건지도 몰라요. 제가 밖에 나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사람들 많이 만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 것도 두려워해요. 라디오는 이제 내 공간 같았어요. 어색하지 않게 새로운 걸 만날 수 있는 탈출구가 됐죠.

낯선 세상이 낯익은 내 공간으로 흘러드는 거네요.

정신적 도피처가 됐지만 육체적 피곤함을 안겨주는 애증의 공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낯선 공간을 힘들어하는 사람이 무대에서는 어쩜 그렇게 훌렁훌렁 잘도 벗어버리는지. 맨날 거실에서 영화 과외해주던 동생이었는데, 어느 날 무대에서 보니까 근육질 몸매를 뽐내고 있었달까.

그게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큰 무기이자 단점인 것도 같아요. 신 기자님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 인간적인 부분까지 꽤 많이 이해하는 분 가운데 한 사람이죠. 그렇게 김종현을 이해하고 있었는데 가수로서의 제 모습을 보면 또 다른 거죠. 생경하고 놀랍고. 그 모습을 보면서, 김종현은 무대 위에서 김종현을 이렇게 만들어가는구나 생각해주면 고맙고.

어느 쪽이 진짜 김종현인지 생각해봤던 것도 같네요.

둘 다 진짜 김종현이죠. 다만 제가 어느 쪽이 더 편안한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가수 김종현이 좀 더 편했던 것 같아요. 그런 김종현의 이미지가 먼저 노출됐으니까. 나한테도 익숙했으니까. 그런데 라디오를 시작하면서 달라졌어요. 사람들한테 나도 인간이라는 걸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라디오를 통해 보여주는 김종현의 모습도 무척 편해졌어요. <푸른 밤 종현입니다> 덕분에 소품집 발매도 할 수 있었고 소극장 공연도 할 수 있었어요.

사람들한테 더 내밀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된 거네요.

라디오가 정말 어마어마한 역할을 했네요. 듣다 보니.

조금 지나면 소품집 에피소드 2가 나올 거예요. 앞으로 그런 식으로 두 가지 앨범을 낼 거예요. 좀 판타지적이고 퍼포먼스가 가능한 음악과 소품집에 실리는 곡처럼 발라드와 재즈와 약간 어쿠스틱한 감성이 담긴 음악.

샤이니의 김종현과 <푸른 밤>의 김종현.

어쩌면 샤이니의 음악 속 제가 이상화된 모습이라면 소품집의 음악 속 저는 좀 더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이죠. 앞으로 더 또렷하게 그 두 가지를 구분해나갈 작정이에요.

아이돌은 명칭처럼 이상화된 존재잖아요.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도록 이상적으로 빚어진 아름다운 존재.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일단 그런 존재로 만들어지면 당사자는 아이돌이라는 외피를 벗는 게 두려울 수밖에 없어요. 당연히 안주하고 싶어지죠. 종현이 자신을 드러내고 세상과 만나고 싶어 하는 의지를 가질수록 주변에선 오히려 불안해할 수도 있어요.

솔직히 미친 짓이죠.

그런데 왜?

그런데도 할 수밖에 없었던 건 상처를 받아서예요. 연예인으로서 받은 상처만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살면서 받은 상처. 살아가면서 얻는 상처. 제가 자주 쓰는 표현으론 성장통. 사람이 확 커버리면 튼살이 생기잖아요. 저도 허리에 튼살이 있어요. 어릴 적에 사람은 왜 클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이런 튼살이 보기 싫어서. 어린 모습 그대로였다면 이렇게 보기 싫은 튼살이 안 생겼을 텐데. 성장통도 없었을 텐데. 왜 굳이 커야 할까.

그때부터 이미 철학자였네요.

어릴 적부터 말도 안 되는 것에 관해 몽상가적인 상상을 하곤 했어요. 답도 안 나오는 철학적 고민에 골몰했죠. 사람이 고통받으면서도 성장하는 건 살기 위해서인 것 같아요. 살기 위해서 스스로한테 상처 내고 고통을 감내한다는 거죠. 저 역시 성장하느라 상처를 받았고 그 상처를 드러낼 필요가 있었던 거죠.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선택하면서 남보다 서둘러 자랐겠죠. 아픈 줄도, 튼살이 생기고 흉터가 남는 줄도 모른 채. 그걸 숨기고 아픔이 없는 존재인 척할 수도 있었겠죠. 거꾸로 상처를 드러내고 진짜로 세상을 살아낼 수도 있고.

그냥 살고 싶어서, 살기 위해서 저 스스로가 저를 좀 깼던 것 같아요.

살아남기 위해서, 살아내기 위해서, 어느 쪽에 가깝나요?

전 기본적으로 염세적인 사람이에요. 어릴 적부터 우울감을 많이 표출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언제까지나 그런 우울감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인생의 초중반까지는 그런 우울감으로 살 수도 있죠. 성장하려면 그런 우울감을 버려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나 스스로한테 갇혀서 죽지 않으려면 고통스러워도 성장해야 하는데 두려워서 멈춰버리면 결국 어린 정신에 머물 수밖에요. 전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선택을 했어요. 내 모습을 대중에게 드러내는 것. 내 생각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는 것. 내가 이렇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만들고, 그들이 알고 있다는 걸 내가 알고 있어야 내가 방어 태세를 취하죠.

더 적극적인 소통을 위한 것인가요?

그보다는 이게 나라는 걸 입증하고 싶어 하는 것에 가까워요.

기자님과 방송에서도 얘기했던 건데, 인간은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세상에 남기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내가 진짜 누구인지 말해야 하는 거죠.

‘미드나잇 스포일러’ 첫 방송에서 다룬 영화가 <다크나이트> 시리즈였어요. 마지막 방송에서 다룬 영화도 <다크나이트> 시리즈였죠. 수미상관이었어요. <다크나이트>는 브루스 웨인이라는 인물이 배트맨이라는 아이돌을 만들어서 사람들한테 상징화하는 이야기죠. 배트맨으로 상징되는 어떤 가치를 구축하는 것. 그런 과정이 아이돌이 살아가는 법과 닮은 구석이 있다고 방송에서 말했잖아요. 대중한테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그 존재의 껍질을 버리고 진짜 내가 돼서 떠나는 것. 물론 어떤 사람은 영원히 그런 대중의 존재로 남으려고 발버둥 치죠. 다른 사람은 자신이 세운 상징을 스스로 깨고 나와서 진짜 자신으로 돌아가요. 난 김종현은 후자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돌계의 다크나이트.

내가 인간으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사람으로 말이에요. 연예인은 한 인간이라기보다는 어떤 캐릭터로 표현되고 이해되는 경우가 훨씬 많잖아요. 적어도 나는 인간으로서도 살아가고 있다는 내 나름의 대답 같은 것? 그렇게 혼자 웅변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한테는 왜 자꾸 이런 감정이 생기는가, 왜 쓰거나 부르지 않으면 못살겠는가, 이런 고민을 하다가 결국엔 살아남기 위해서 지금처럼 사는 건가요?

이게 저의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제 직업은 제가 가진 능력 중에선 가장 괜찮은 재주고. 저는 좋아하는 일보다는 잘하는 일을 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있는 게 아니었나요?

사실 제가 진짜 좋아하는 일은 프로듀싱하고 글 쓰는 쪽이에요.

그러고 보니 지금 그 반지는 늘 끼고 다니던 반지가 아니네요?

이 반지는 우리 콘서트에서 판매하는 굿즈예요.

늘 끼지도 않고 들고만 다니던 반지가 있었는데.

그건 빼놓았어요. 그 공간이 어색해서 이 반지를 끼고 있는 거죠.

그것도 인간적 상처?

(웃음) 성장의 과정?

솔직히 라디오를 놓아서 상처가 늘어나는 건 아닐까 걱정되네요.

제가 일신상의 문제로 라디오를 그만두는 거라고 얘기하고 있잖아요. 일신상의 문제라고 말한다는 건 더 이상 이유를 물어보지 말아달라는 정중한 거절의 의미라고도 생각해요. 그래도 일신상의 문제가 치유되면, 이제는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면, 날 찾아주는 이가 있다면, 돌아가고 싶어요.

샤이니 종현 - 에스콰이어

처음 샤이니 멤버들 만났을 때 기억나요?

그때쯤이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3학년이었던 그때.

결성된 게 아니라 회사에서 만든 거잖아요.

5명이 함께 데뷔한다고 통보를 받는 입장이었죠.

당시로선 이렇게까지 오래 함께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을 테고. 그 때야말로 운명적인 순간이었을 것 같아요.

우리는 운명 공동체인 거죠. 가족과 비슷한. 나와 보니까 내 가족이잖아요. 나와 보니까 내 팀인 거죠. 물론 이 회사에 들어온 건 제 선택이었지만 그 외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은 제 선택이라기보다는 조언자들의 결정에 따른 결과죠. 물론 제가 선택하지 않았으면 그쪽으로 가지 않았을 거예요. 그분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저는 사실 주변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 케이스는 아니에요. 당시에도 ‘이 친구들이랑 같은 팀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했고, 그냥 ‘데뷔를 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했어요.

덤덤했네요.

물론 누구와 데뷔하느냐는 중요하죠. 하지만 어리다 보니까 그것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어요. 나 하나 챙기기에도 바빠서.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강박이나, 나의 역할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죠.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꼈으니까요.

여러모로 참 맏형 같네요, 종현 씨는.

샤이니라는 이름은 마음에 들었나요?

깊이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어요. 그냥 데뷔가 결정됐고, 연습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열등감에 휩싸였거든요. 내가 좋아하고 꿈꾸던 아티스트에 대한 열등감이랄까. 누군간 크리스 브라운과 널 왜 비교하느냐고 할 테지만 저한텐 위로가 안 돼요. 저의 개인적 판단이 중요하니까요. 그게 저를 가장 크게 발전시킨 원동력이니까. 저의 우울감이나 열등감이 언제나 저를 지배하는 감정이었어요.

지금 글을 쓰고 있죠?

스릴러 소설. 지난번엔 연애 소설을 썼는데 그건 제가 원했던 장르는 아니에요. 저는 연애 얘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스릴러가 좋아요?

제일 좋아하는 장르예요. 저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고.

글은 고독해야 해요. 역시 종현은 양면적이네요. 자기 안으로 침잠하는 김종현과 무대 위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김종현.

얼마 전에 <푸른 밤 종현입니다> 듣다가 울 뻔했어요. 종현 씨는 울었고. <푸른 밤> 처음 시작하는 날, 퇴직한 아버지와 온 가족이 고깃집을 열었다는 사연이었어요. 가까스로 손님을 치르고 문을 닫았을 때, 이제 좀 쉴까 싶었을 때 마침 들리던 방송이 <푸른 밤> 첫 방송이었던 거예요. 그날부터 그분은 하루를 마치고 종현 씨 방송을 들으면서 쉬는 거예요. 그 사연 기억하세요?

청취자들한테는 얘기를 못 했지만 그때 이미 저는 하차를 결정한 후였어요. 그러다 보니까 미안함이 훨씬 컸던 거고, 그래서 눈물이 너무 많이 났어요. 왜냐하면 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저는 알고 있었어요. 나에게도 그만큼 크니까. 계속 얘기하지만 제가 미안하고 죄책감에 휩싸이는 거죠. 근데 이게 성격 탓이기도 할 거예요. 둥근 성격이 아니고 모난 성격이라서 그런 사연을 만났을 때 스스로에 대한 질타. 왜 더 하지 못하니. 왜 네가 한 말을 더 완벽하게 책임지지 못하니. 그러다 보니까 되게 더 좀….

다 느껴졌어요.

그래서 이런 글을 썼어요. “어찌하면 좋을까, 이리 커진 나의 공간을.” 이 문장을 앞으로도 곱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있다가 마지막 생방송을 할 텐데, 또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네요. 어찌하면 좋을까.

샤이니에서 ‘큰 댐’을 담당하고 계신다고. 너무 울어서.

그렇죠. 최근에는 눈물을 많이 안 보였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눈물을 보이면 제가 너무 힘들어져서, 개인적으로. 눈물을 보이는 걸 무서워하거나 슬퍼하진 않아요. 사람이 감정 표현하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찌하면 좋을까.

사실 실감도 잘 안 나요.

오늘 방송 내용은 정해진 거죠?

오늘은 청취자 사연 소개를 많이 할 거고. 손편지들 얘기 할 거고. 사실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하는 심야 방송은 정서적으로 위험한 일이라고들 하거든요. 감수성이 표출되는 시간이니까. 저 역시 그랬고. 오늘도 아마 그렇겠죠.

자, 이제 우리 쫑디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사실 지금 슈트 입고 있는 것도 나름 예의를 차리는 방법이에요. 오늘 생방송은 오픈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데 청취자분들이 좀 많이 오실 거예요. 보이는 라디오로 진행할 거고. 마지막 인사 나눌 때 좀 차려입고 싶은 기분이기도 해서 예의 차리는 중입니다.

행복하세요? 듀오 인터뷰 마지막 질문이에요.

행복하려고요. 최근 반년 동안 가장 많이 생각했어요. 행복이라는 것. 저는 성향 자체가 스스로를 괴롭혀요. 이런 사람들은 행복하기가 쉽지 않아요. 대신 성장은 할 수 있죠.

이젠 행복하면서 성장하고 싶군요.

몇 년 전에 어머니랑 누나한테 울면서 투정 부린 적이 있어요. 술 엄청 취해서. 엄마랑 누나한테 물어봤어요. 이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거든요. 행복하냐고 물어봤어요. 술 먹고. 자고 있는 가족들 깨워서. 아저씨처럼. 제 삶의 첫 번째 목표였거든요. 엄마랑 누나가 행복한 거. 둘 다 자다 깨서는 행복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너무 부러운 거예요. 행복하다고 대답할 수 있다는 게. 나는 안 그런데. 나도 행복하고 싶어, 하면서 펑펑 울었어요. 엄마랑 누나한테 몹쓸 짓을 한 것 같은데. 그때부터 행복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거죠. 한 6개월 동안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구체적으로 했던 거예요. 저에게는 그 변화의 시점이 온 것 같아요. 이젠 행복해져야겠어요. 행복해져야 돼요. 행복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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