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가 남기고 싶은 기억

추신수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따라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과정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기억되는 시간, 추신수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1월호

채도가 낮은 붉은색 스웨터 우영미. 티타늄 케이스에 붉은색 알루미늄으로 장식한 시계 로저드뷔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스켈레톤 플라잉 투르비용.

값비싼 시계를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처럼 야구 선수 추신수도 남들이 할 수 없는 게 있으니까 그 자리까지 올라갔을 거예요.

저는 처음부터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어요. 모두 나름의 힘든 일이 있겠지만 저는 그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택했어요. 메이저리그에 바로 가서 현지에서 잘한 게 아니라 정말 밑바닥부터 올라갔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있어요.

전에는 스스로에게 엄격했나요?

네, 굉장히요. 잘해도 못한 걸 생각했어요. 4타수 3안타면 잘한 건데 한 번 못 친 걸 계속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잘 안 돼도 그 안에서 좋은 걸 찾으려는 성격으로 변했어요. 항상 잘할 순 없어요. 살다 보니까 야구뿐 아니라 세상일이 그렇더라고요. 여러 가지 시련을 겪으면서 생각이 조금씩 변했어요. 옛날엔 가시 같았다면 요즘은 좀 뭉툭해졌어요.

누군가에게기억되는 시간, 추신수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1월호

프린트 티셔츠 힐브로스 by 샵에스더블유. 회색 바지 브루넬로 쿠치넬리. 티타늄 케이스에 추신수의 색을 입힌 시계 로저드뷔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스켈레톤 플라잉 투르비용 추신수 에디션.

스스로 약해질 것 같을 때는 어떻게 극복해요?

10개 중 10개가 다 안 좋다고 해도, 그래도 뭔가 하나를 찾으려 하면 진짜 조그마한 거라도 긍정적인 게 하나 있긴 있어요. 그런 걸 생각하려 해요.

톱클래스 스포츠 선수의 실력 중엔 타고나는 것도 있고 노력도 있을 것 같아요. 추신수 선수는 무엇을 타고났나요?

멘탈, 승부 근성. 지기 싫어하고 하나를 하면 끝을 보는, 될 때까지 하는 그런 성격. 하지만 타고난 게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몸을 받은 건 맞지만 그걸 제 것으로 만들고 향상시킨 건 제 노력이에요. 그런데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못 이긴다는 말도 있잖아요? 저는 이제 즐기는 사람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처음 야구를 할 때는 즐기지 않았어요?

그렇죠. 늘 이겨야 했어요. 예전엔 진다는 사실 자체를 너무 힘들어했어요. 못했으면 다들 집에 가는데 저는 혼자 남아서 될 때까지 연습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봐야 안 늘어요. 지금 저희에게 필요한 건 다음 걸 생각하는 일이에요. 쉬는 것도 하나의 운동이고, 잘 안 된 걸 계속 생각해봐야 스스로 힘만 들게 만들더라고요. 예전에는 잘 안 됐을 때 연습을 했다면 지금은 그냥 잊을 수 있는 걸 찾으려 해요. 운동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잊게 해주는 게 제 아이들이에요. 야구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다 해도 집에 가면 아이들이 있어요. 그러면 또 애들이랑 야구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요.

누군가에게기억되는 시간, 추신수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1월호

검은색 셔츠 마시모두띠. 핑크 골드 케이스 전체에 276개의 바게트 컷 다이아몬드를 파베 세팅한 시계 로저드뷔 엑스칼리버 스켈레톤 더블 플라잉 투르비용.

가족에게 아주 헌신적이라고 들었습니다.

가족이 없었더라면 제가 야구를 즐기는 쪽으로 마음을 바꿀 수 없었을 거예요. 옛날에는 야구가 제 인생의 모든 것이었다면 이제 제 인생의 모든 건 가족이에요. 여전히 야구를 사랑하지만 사실 야구를 평생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이렇게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저는 늘 무엇보다도 야구, 누구보다도 야구, 항상 야구, 야구, 야구였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생각이 많이 변했어요. 가족을 많이 생각하는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해요.

확실히 뭔가 다른 게 있어요?

미국 선수들은 아내가 아프면 경기에 빠지고 함께 병원에 가요.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어요. 한국에서는 말이 안 되는데 미국에서는 안 가는 게 이상한 거예요. 그렇게 가족과 가까이 지내다 보니까 마음이 안정됐어요. 오늘 못해도 내게 더 중요하고, 내가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게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빨리 잊을 수 있는 거예요.

가족이 생긴 게 스포츠 선수의 멘탈에 좋은 영향을 미친 거네요.

처음엔 많이 힘들었죠. 금전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어요. 사실 애 키우면서 넉넉하게 사는 사람 없잖아요. 첫째가 태어났을 때는 아침을 먹으면서 점심, 저녁 먹을 것까지 미리 계산해야 하는 형편이었어요. 저 스물두 살 때 아내는 스물한 살이었고.

고생 많으셨겠네요.

아내가 고생 많이 했죠.

두 분 다 고생 아니었을까요?

서로서로 그런 거죠.

보통 사람들은 추신수 선수처럼 주목받는 삶을 살지 않아요. 연봉이 수백억 원도 아니고, 내 스윙 한 방에 몇만 명씩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요. 대신 추신수 선수가 중요 타석에서 받는 정도의 부담을 받아본 사람도 거의 없을 거예요. 보통 사람보다 극도로 큰 부담과 보상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기분을 설명해줄 수 있어요?

책임감은 있지만 부담을 좀 즐기는 스타일이에요. 내 위치에서 하고 있는 일이 있고, 거기서 오는 부담이 당연히 있죠. 사람들이 다가올 때도 그래요. 예전엔 조금 불편한 자리에서 사인을 부탁하면 ‘왜 사인을 받는데 저런 메모지에 받아? 어차피 관리도 안 되는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저와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 추신수를 만난다고 생각하면서 나온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때 아니면 저를 언제 또 보겠어요. 그래서 준비가 안 된 채로 저와 마주친 분들을 위해 제가 사진을 뽑아 갖고 다니며 사인을 해드려요. 저도 기분 좋고, 받는 분도 간직할 수 있으니까요.

솔직히 추신수 선수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는 뭔가요? 돈? 명예?

저는 명예요.

훌륭한 선수라는 명예 말인가요?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누구도 하지 않았던 마이너리그 진출이란 길을 택했어요. 거기서 메이저리거가 되어서 이제 매일매일 경기를 뛰는 지금의 제가 됐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추신수는 ‘메이저리거 추신수, 돈 얼마 버는 사람’ 이게 끝이에요. 제가 여기까지 온 과정이 없어져버리면 마음이 아플 것 같아요. 모든 일에는 과정이 없을 수 없어요. 과정과 단계별 순서가 있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온 건데. 한국 선수 중 마이너리그를 거쳐 이렇게 메이저리그까지 온 선수는 아직 아무도 없어요. 현재까지도. 저는 거기에 대한 자부심은 있어요.

성공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간 건가요?

지금 같은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메이저리그 구장에 서서 TV에 나오는 저 선수들과 단 한 번이라도, 단 한 타석만이라도 같이 해봤으면, 그 한 번의 한 번, 그 하나만 보고 이 길을 온 거예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보니 매일 메이저리그에 서고 있는 거죠. 만약 처음부터 돈을 얼마 벌어야겠다고, 너무 큰 그림을 그렸으면 잘 안 됐을 것 같기도 해요. 대신 저는 딱 하나만 생각했어요. 10년이든 5년이든 7년이든, 딱 한 번만이라도 나와서 해보자.

그 ‘딱 한 번’에 가기까지 얼마나 걸렸어요?

제일 처음 메이저리그 타석에 서기까지 4년 걸렸죠.

그때 기분 기억나요?

기억나죠. 메이저리그에서 통보를 받고, 아내와 안고 울고, “다 왔다, 이제 다 왔다” 하고. 사실 메이저리그 타석에 설 기회 자체가 별로 없어요. 메이저리그랑 트리플 A를 왔다 갔다 하다 없어지는 선수도 굉장히 많아요. 기회를 잘 잡은 것 같아요.

첫 경기와 첫 안타도 기억나요?

시애틀 매리너스에 있을 때 홈경기. 대타로 나갔어요. 세 번째인가 두 번째 타석에서 쳤던 것 같아요. 빗맞아서 안타가 됐는데, 그때는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아무 소리도 안 들렸어요. 진짜 막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았어요. 너무 긴장을 많이 해서.

그때 이후로 수많은 타석에 섰어요. 야구를 하면서 가장 짜릿한 순간과 가장 안 좋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지고 있는 상황에서 역전을 하는 안타나 홈런이 나왔을 때 제일 좋죠. 안 좋을 때는 아무래도 저 때문에 경기에 졌을 때. 공을 놓치거나 주루 플레이를 잘못해 아웃돼서 경기 흐름이 바뀐다거나.

그럴 때는 어떡해요?

예전엔 많이 신경 썼는데 지금은 덜 그러는 편이에요. 우리는 사람이니까. 저희 애들도 야구를 하는데 계속 가르쳐요. “아빠도 실수한다. 괜찮다. 아빠를 포함해 최고의 자리에 있는 우리도 실수한다. 그게 사람이고, 그 실수로 인해서 배우는 게 사람이다. 실수 없이는 절대 못 배운다.” 항상 그렇게 가르쳐요.

누군가에게기억되는 시간, 추신수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1월호

푸른빛이 도는 회색 스웨터 우영미.카본으로 케이스를 만든 시계 로저드뷔 엑스칼리버 오토매틱 스켈레톤.

왜 처음부터 한국 팀과 계약하지 않고 미국으로 바로 갔어요?

제 성격이에요. 저는 누구나 다 가는 길, 누구나 이길 수 있는 실험이 싫어요. 정말 힘들어서 10명 중 한두 명만 성공하는 시련에 끌려요. 저는 처음부터 잘된 케이스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시련이 와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많이 잃었던 언젠가에 비하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가 내 몸으로 실험을 해보는 건데 겁나지는 않았어요?

저는 한국에서 야구할 때는 야구를 잘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미국에 가니까 ‘세상은 넓구나.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열여덟 살 때였는데, 그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노력했어요. 아들에게도 이야기해요. “네가 잘했다고 해서 자만하지 마라. 너 같은 선수가 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만족하는 순간 더 이상 나아지지 않는다. 계속 노력해라.”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되고 싶어요?

저는 대단한 기록을 세워서 주목받을 선수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냥 제가 어떤 선수인지보다는 제가 간 길을 누군가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추신수 하면 ‘아, 정말 남과 다른 길을 가서 성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사람들 머릿속에 떠오르면 좋을 것 같아요.

방금 질문을 조금 비틀어서, ‘이렇게는 되고 싶지 않다’는 것도 있나요?

포기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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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김참
헤어장 해인
메이크업장 해인
스타일링김 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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