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완성

지성은 끊임없이 형성하고 반성했다. 그렇게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다. 끝내 자기라는 세계를 완성했다.

지성, BREITLING - 에스콰이어

내비타이머 01, 케이스 지름 43mm,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스테인리스 스틸 브레이슬릿. 1100만원대.

지성, BREITLING - 에스콰이어
지성, BREITLING - 에스콰이어

내비타이머 01, 케이스 지름 43mm,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스테인리스 스틸 브레이슬릿. 1100만원대.

“같이 줄 서서 기다리던 애들이 다 TV에서 본 애들인 거예요.” 지성은 드라마 <카이스트> 오디션을 기다리던 때를 떠올렸다. 1999년이었다. “TV에서 <카이스트> 1회를 봤어요. 거기엔 스포츠맨 캐릭터가 없었어요. 수재지만 운동 좋아하고 불의를 보면 못 참고 욱하는, 그런 캐릭터를 내가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1회 방송이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에 프로덕션 이름이 나왔어요. 114에 전화해서 그 프로덕션 연락처를 알아낸 뒤 전화를 걸어서 정중하게 물었어요. ‘<카이스트>에 출연하고 싶은 사람인데 어떤 방법이 없을까요?’”

“수화기 너머에서 조금 웃는 것 같더라고요. 그럴 만하죠. 그런데 누군지 모르는 그분이 도움을 줬어요. 중간에 투입될 캐릭터 오디션을 보는 날이 있으니까 와보겠느냐고요.”

지성의 형성

“프로필을 갖고 오라는데 프로필이 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사진 몇 장 들고 갔어요. 어설프게 사진 몇 장 들고 온, 아무것도 모르고 순진무구하게 눈만 껌뻑껌뻑거리던 제 모습이 인상적이었나 봐요.” 지성은 스위스 취리히의 호텔 슈바이처호프 2층 레스토랑에서 당시를 떠올렸다. 2017년 7월 8일 아침이었다.

스위스의 고급 시계 브랜드 브라이틀링이 이 자리를 마련했다. 브라이틀링은 고급 시계업계에서도 특이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항공과의 강한 연관성이다. 카드사 체리피커처럼 파일럿의 이미지만 빼먹는 몇몇 브랜드와는 달리 브라이틀링은 실제로 비행단을 보유하고 있다. 이름도 브라이틀링 제트 팀이다. 브라이틀링 제트 팀은 몇 년에 한 번씩 전 세계의 VIP를 불러 호사스러운 비공개 행사를 연다. 제트기를 태워 초고속 중력가속도를 느끼게 한다. 스카이다이빙도 할 수 있다. 1935년식 복엽기의 날개 위에 태워 하늘을 날게 해준다. 브라이틀링이니까 할 법한 압도적인 이벤트다. 지성은 이 행사에 초청받았다. 화보를 찍고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취리히는 우리의 유럽 동선 중 마지막 목적지였다.

호텔 슈바이처호프는 취리히에서도 손꼽히는 고급 호텔이다. 고급 호텔의 조건은 리모델링이나 방 면적 같은 게 아니라 아침 오믈렛의 숙련도에 달려 있다. 슈바이처호프의 오믈렛은 고급이란 말을 붙이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그 훌륭한 오믈렛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프로필 사진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순진무구한 청년은 촬영차 나온 취리히의 최고급 호텔에서 아침에 오믈렛을 먹는 성인 배우가 되었다. 그가 취리히에 도착하고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은 한 시간 만에 1만 개의 하트를 받았다. 하지만 지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성공 확률이) 70만 대 1이었어요, 그때는.” 지성은 담담하게 말했다. 69만9999명의 경쟁자 중에서 지성이 타고나게 돋보일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대신 그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근성과 성실성이 있었다. “연기 학원도 가봤는데 거기는 보조 출연자 양성 기관이었어요. 배우로 만들어주지 않았어요. 혼자 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본 연극영화과 시험에서도 떨어졌어요. 그러다 아는 분이 MBC에서 드라마 기획을 해서 만나러 갔어요.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요. 만나니 도움은커녕 얼른 빨리 접으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더라고요. 부탁했어요. MBC에 출입할 수 있게만 해달라고. 그건 할 수 있었어요. 경비실에 이야기하고 방문증 쓰고 데스크에 그분 전화번호를 적은 뒤 전화로 확인이 되면 들여보내주는 식이었어요. 그렇게 들어오면 그분을 만나지 않아도 방송국을 돌아다닐 수 있었어요.” 뭘 하려 했던 걸까.

“MBC가 여의도에 있던 시절이었어요. 1층에 세트장이 있고 3층에 드라마국이 있었어요. 드라마국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선반이 있었어요. 모든 대본을 다 올려두는 곳이에요. 거기에 심부름해주는 분들이 들어와서 배우들에게 대본을 가져다줘요. 저는 그걸 하나씩 뺐어요. 훔치는 거죠. 그다음 1층 세트장으로 내려갔어요. A 스튜디오에서 뭐, B 스튜디오에서 뭐를 찍는다고 하면 그 일정에 맞춰 갔어요. 어두운 구석에 앉아서 몰래 그 신을 표현해봤어요. 지금의 선배님들, 고두심 선배님 같은 분들, 그분들 연기하는 거 보면서요.” 지성은 반 년 동안 어둠 속에서 연습했다. 훔친 대본으로 몰래 선배들을 보면서. 그러다 <카이스트>를 보고, 송지나를 만나고, 파격적으로 드라마에 투입됐다.

지성은 아직도 대본에 몰두한다.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계속보세요.” 이번 출장에 함께한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도영이 말했다. “매너도 좋으신데, 진짜 열심히 하세요. 이렇게 대본을 많이 보는 배우는 거의 못 봤어요.”

지성, BREITLING - 에스콰이어

콜트 스카이레이서, 케이스 지름 45mm, 브라이트라이트 케이스, 러버 스트랩. 200만원대.

지성의 반성

“자기 계획을 세우는 건 쉽지 않아요.” 지성은 말을 이었다. “예측할 수 없어요.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고 해도 배우가 성장하는 과정을 예측할 수는 없어요. 작품 선택의 기준에 대해 최대한 짧게 말씀드리면, 제게는 작품 선택의 기준이 없었어요.” 지성은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러다 <올인>을 만나게 된다. 지성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드라마 중 하나다. 지성은 그때도 절실했다. “제가 하고 싶다고 찾아가서 말씀드렸어요. 저는 이병헌 선배의 오랜 팬이고 그와 눈을 맞추며 같이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뻔한 말이지만 목숨을 걸고 하겠다고요. 감독님께서 좀 있다 말씀하셨어요. ‘너 해라.’ 그 자리에서요.”

지성은 <올인>을 통해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나도 그때 <올인>을 보고 처음 제주도 가는 비행기를 탔다. 섭지코지에서 사진도 찍었다. 지성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가 나온 드라마를 보고 사람들이 움직인다. 싫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지금을 사는데 계속 옛날이야기만 한다면. 아니었다. 지성은 긍정적인 의미의 반성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병헌 선배의 연기는 내가 감히 넘어설 수 없는 것이었어요. 노력과 시간과 연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정통 사극을 하기로 했죠. 내공을 키우기 위해서.” 지성과 일주일을 다니며 몇 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었다. 한결같다. 최선을 다한다. 그는 그렇게 천천히 커나갔다. “배우로의 성장을 숫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문화 산업은 누가 해도 애를 먹는 면이 있어요. 수치로만 설명되지는 않으니까요. 배우도 마찬가지예요. ‘누구 말이 맞다’ 같은 정답이 없어요. 스스로 알아서 찾아내야 해요. 저도 제가 가야 할 길을 하나둘 찾기 시작했어요. 정통 사극을 했다 실패하기도 했죠. 군대도 다녀와야 했으니까 작품을 쉴 새 없이 했어요. 주말 연속극, 장르물, 스릴러물, 홈 드라마, 트렌디 드라마.”

지성, BREITLING - 에스콰이어

내비타이머 46 블루 다이얼, 케이스 지름 46mm,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블루 스트랩 1000만원대.

지성, BREITLING - 에스콰이어

슈퍼오션 헤리티지 II46, 케이스 지름 46mm,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브라운 스트랩. 500만원대.

지성의 본성

“그때 잘나가던 친구들이 있었죠.” 지성도 조바심을 느낄 때가 있었다. 권상우, 송승헌 같은 배우들. 옆에서 보고 있으면 같이 가고 싶고, 꽃미남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고, 트렌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 싶고. 외로울 때 그러고 싶지 않았겠어요? 빠른 방법이 뭔지는 알 수 있었어요. 비주얼. 멋져 보이는 방법을 연구할까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러면 내 수명이 짧아질 것 같았어요. 나는 그런 목적을 갖고 싶지 않았어요.” 그럼 지성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진정성이 없어 보였어요.” 진정성. 세련된 사람들은 이 말을 조금 촌스럽다고 여기기도 한다. 열정, 최선, 진심 같은 말. 하지만 사람들은 최선을 다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재능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지성은 느리고 튼튼한 길을 택했다. “저는 내 희로애락을 통해 사람들이 같이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연기를 해야 한다고 배웠어요. 그런 연기를 진심으로 해야 한다고 선생님에게 들었어요. 그러니 다른 것에 치중한다면 너무 방향이 다른 거죠. 그때는 제 연기 스타일조차 잘 몰라서 두서가 없었어요. 그래서 양과 경험으로 생각했죠. 주말 연속극, 일일 연속극, 영화, 사극 등을 다 했어요. 그때의 저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부분은, 20대의 막연함 속에서 제가 뭐든 했다는 거예요.”

지성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맨손으로 절벽을 오르는 사람이 떠올랐다. 높이 올라가고 싶다. 거기 뭐가 있는지는 몰라도. 내 손으로, 내 몸의 힘으로 올라가야 한다. 어떻게 손을 뻗어야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른다면 방법은 최대한 많이 뻗어보는 것뿐이다. 지성의 몸이 그 증거였다. 촬영 의상을 챙기다가 지성의 상반신을 본 적이 있다. 호리호리한 이미지와는 달리 지성의 몸은 굉장히 크고 두꺼웠다. 관상용 근육이 아니라 실제로 열량을 태워서 힘을 내는 근육이었다. 그 몸 안에 지성이 쌓아온 20년 치의 근성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 길 위에서 지성은 인생을 바꿀 드라마를 만나게 된다.

지성, BREITLING - 에스콰이어
지성, BREITLING - 에스콰이어

내비타이머 01, 케이스 지름 43mm,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스테인리스 스틸 브레이슬릿. 1100만원대.

지성의 달성

“어떻게 보면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 같은 드라마였어요.” 지성은 2007년 작 <뉴 하트>를 떠올리며 낭만적인 표현을 썼다. 아닌 게 아니라 지성은 낭만적인 남자였다. 이번 출장을 가기 전 사전 미팅에서도 지성은 “우리끼리 멋진 사진 남기고 추억을 만들어 오면 좋잖아”라고 말했다. 보통 연예인에게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순수한 말이었다.

“나쁘게 말하면 평범하다고 볼 수도 있죠.” 이번에 사진가로 동행한 김제원의 말이다. 그의 말은 비판이 아니라 애정이었다. “저도 연예인 촬영을 많이 해요. 그중에서도 지성은 제가 연예인 중 유일하게 편하게 맥주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예요. 너무 인간적이고 인품도 굉장히 훌륭해요.” 이 말 역시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연예인 촬영은 연예인의 태도에 따라 잡지 기자에게 악몽이 될 수도 있다. 이쪽 업계에 있다 보면 창의적으로 추잡한 연예인들의 온갖 에피소드가 들려온다. 신문에 나오는 A씨, B씨, C씨 등의 이야기 중에는 어느 정도 사실도 있다.

지성은 긍정적인 의미의 평범한 낭만이 있는 남자였다. 브라이틀링과의 관계는 아주 인상적인 증거였다. “제게 브라이틀링은 사랑의 상징이에요. 저와 결혼한 이보영 씨가 처음으로 제게 선물해준 시계가 브라이틀링이었어요.” 지성은 실제로 그 시계를 계속 찼다. 때가 되면 배터리를 바꾸러 직접 브라이틀링 매장에 갔다. 브라이틀링 매장에서 지성을 알아봤고 본사에 ‘지성이 브라이틀링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건넨 것을 계기로 섭외에 들어갔다. 소위 말하는 ‘거마비 얼마’ 같은 식으로 진행된 섭외가 아니었다. 브라이틀링도 지성도, 그렇게 움직이는 타입이 아니었다.

“제게 브라이틀링은 기억인 것 같아요.” 지성이 말을 이었다. “내 인생의 기억. 무슨 대단한 시계 브랜드의 가치를 넘어서 내 인생에 브라이틀링이라는 시계가 나타난 거예요. 브라이틀링 중에서는 비싼 시계도 아니었고 그 후에도 시계가 몇 개 더 생겼지만 제게는 그 시계가 가장 중요해요. 가격이 아니라 의미가 중요한 거잖아요. 받는 순간의 그 반짝거림, 그 시계를 받았을 때 내가 느낀 설렘, 그게 고스란히 제 기억 속에… 그러니까 스틸로 된 시계만 보면 뭐든 ‘아, 이거 브라이틀링 같은 거네?’라고 하게 돼요. 제게 그 브랜드의 가치는 늘 진심이고 영원히 기억되겠죠.”

낭만을 비웃는 사람도 있다. 입을 열면 꺼낼 말이 없다는 사실을 가리기 위해 퉁명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시크하다는 칭송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건 냉소가 아니라 긍정이다. 한때의 재주가 아니라 지치지 않는 노력이다. 지성의 노력은 <뉴 하트>를 통해 한 번 결실을 맺었다. 지성은 그 드라마를 통해 ‘꽃미남’ 계열 연예인에서 벗어나 진지하게 연기를 논할 수 있는 배우가 되기 시작했다. 보상을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몰랐던 지성의 진정성 역시 천천히 보답받기 시작했다. 연기로도, 아니면 아주 의외의 곳에서도.

“아버지께서 편찮으신 적이 있었어요.” 지성의 아버지는 이번 화보 촬영 전에 수술을 받았다. “어느 대학 병원에 입원하셔서 심장 수술을 받으셨어요. 아버지의 주치의가 4년 차 펠로였어요. 내성적인 성격이신 것 같아서 말씀 붙이기 쉽진 않았지만 제 입장에서는 그분께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었죠.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분이 제 눈을 보지 못하고 하신 말씀이 ‘저, 은성이 따라서 흉부외과 의사가 됐는데 지성 씨 정말 원망스러워요. 너무 힘들거든요’라는 거였어요.” 은성은 <뉴 하트>에서 지성이 연기한 주인공의 이름이다. “어린 시절 그 드라마를 보며 정말 감동받았다고. 제게는 너무 뿌듯한 이야기예요. 그러면서 배우는 거예요. 연기로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다고. 그 의사 선생님께도 이야기했어요. ‘지금 힘드셔도 제 아버지를 살리고 계시잖아요’라고요.”

지성, BREITLING - 에스콰이어

어벤저 II, 케이스 지름 43mm,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스테인리스 스틸 브레이슬릿. 700만원대.

지성이 지금 같은 인기와 실력을 얻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덕분에 지성은 스스로의 인기 앞에서 냉정해질 수 있었다. 연기를 대하는 뜨거운 자세와 인기를 대하는 냉정한 자세가 지성이 얻은 진짜 달성이었다. “카메라에 안 담기면 제 열정이든 뭐든 끝이에요. 사람을 여러 각도에서 찍으려면 정말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요. 스태프들이 고생을 하고요. 내 연기는 내가 뭘 했다기보다는 내 열정 있는 연기를 우리 팀이 잘 담아준 거예요. 저 혼자만의 열정을 표현했다고 생각하면 ‘내가 연기를 잘해서 우리 작품이 잘됐다’는 착각 속에 빠져들어요. 저는 그러지 않기 위해 늘 스태프들을 생각해요. 그 느낌이 바탕이 되어야 내 연기가 빛을 발할 수 있어요.”

스태프를 생각한다는 지성의 말에는 나 자신이 증인으로 나설 수도 있다. 그는 모든 스태프에게 먼저 말을 걸고 눈을 마주치고 안부를 물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악천후 때문에 비행기를 못 탄 마지막 날까지 한결같았다. 지성에게 안티 롤모델을 물어보았다. 이렇게 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는지. 온화했던 지성의 표정이 단호해졌다. “있죠. 우리나라에서는 나쁜 걸 잘해야 잘돼요. 그걸 연기로 하는 게 아니라 인품 자체가 나쁜 사람들이 있어요. 숀 펜 같은 반항아와는 달라요.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뭐라고 할 순 없지만 프로답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마침 요즘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인성도 재능 아닐까?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을 한다면 서로 뜻을 맞춰서 멋진 목표를 향해 함께 나갈 수 있는 능력도 재능 아닐까? 이런 이야기를 건네자 지성은 다시 살짝 웃었다. 먼저 살았고 먼저 성공한 형 같은 웃음이었다. “정말 재능이 특출 난 1%는 그런 말조차도 안 해요. 인생이 어쩌고저쩌고 이런 이야기. 그 이야기 자체에 관심이 없어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그 1%의 코스프레를 하는 거예요.”

여기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아침 식사 시간이 끝났다. 이제 옷을 입고 사진을 찍으러 나가야 했다. 지성은 몸에 잘 맞는 정장을 입고 반호프스트라세를 걸었다. 마침 동네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지성은 브라스 밴드 사이로 정장을 입고 걸어 다녔다. 스파이 영화에 나오는 남자 같았다. 거짓말처럼 날씨가 맑은 날이었다. 촬영이 끝나고 다 같이 점심을 먹다 문득 생각났다. 1999년 <카이스트> 오디션을 볼 때 같이 기다리던 연예인들은 뭐 하는지. 지성은 살짝 놀란 것 같았다. “아무도 없어요. 다 어디 갔지?”

지성, BREITLING - 에스콰이어

내비타이머 01, 케이스 지름 43mm,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블랙 스트랩. 1000만원대.

지성의 완성

취리히에서 인터뷰가 끝나고 지성이 내게 살짝 말했다. “제 입장에서는 기존에 한 이야기를 또 한 감이 있어요. 시간이 나고 물어볼 게 더 있으면 나중에 더 이야기해도 좋겠어요.” 역시 열심이었다.

지성의 매니지먼트를 전담하는 나무액터스 최우혁 실장은 지성과 12년째 함께하고 있다. 한 사람과 12년째 일을 하고 있다는 점 역시 지성의 품성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그에게 지성의 약점을 물었다. “너무 열심히 하는 거? 같이 하는 분들도 그런 말씀을 많이 하세요. 가볍게 할 수 있는 것도 너무 열심히 한다고.” 이 역시 깊은 애정과 신뢰에서 나온 말이었다. “지성 형님은 제가 이쪽 분야에서 자리 잡을 수 있게 해주신 분이에요. 제게 기회를 주셨죠. 형님과 일하면서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부모님께 이야기할 수도 있게 됐어요.”

최측근이 말하는 자신의 약점을 지성은 흥미롭다는 듯 들었다. 인천으로 돌아가기 직전, 샤를 드골 공항 활주로가 보이는 바의 카운터 자리에서였다. 지성은 말했다. “연기에 힘을 빼야 하는 면이 있어요. 적절하게 빼야죠. 힘을 빼려고 생각하니까 힘을 뺀 연기를 못 하겠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물건을 들 때 팔로만 들어요. 어떤 사람은 온몸을 쓰죠. 승모근만 쓰는 사람도 있고. 저는 그걸 다 해보는 사람이었어요. 사람들은 힘을 빼라고 하면 그냥 힘을 잃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내가 성에 찰 때까지 열심히 했어요. 나는 부족하니까.”

지성은 부족하다기보다는 이상이 높은 사람처럼 보였다. “100명이 내 연기를 심사한다 치면 한두 명만 좋아해주던 때가 있었어요. 그럼 내가 모르는 98가지를 위해 열심히 달리려는 거예요. 난 90 정도는 얻고 싶은데 그게 나한테 없으니까 그걸 받기 위해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어요. 모든 걸 경험할 수는 없으니까 내 감정을 디테일하게 표현하려 노력할 수밖에 없고. 행복이라는 감정을 10가지, 20가지로 나눠서 표현해볼 수밖에 없고. 남들이 ‘몸 좀 챙겨가면서 해’ 같은 말을 한 적도 있었어요. 아니에요. 내가 소화할 수 있는 한 그만큼 많이 해야 하는 거야. 내 시야를 넓히기 위해서 더 많이 보고 공부하려 노력한 거예요.”

지성, BREITLING - 에스콰이어

그렇게 지성은 완성됐다. 외적으로도 검증됐다. “MBC 드라마 주연은 전통적으로 배우의 상품성을 많이 봐요. <뉴 하트>에서 제가 주연이 된 이유는 PD가 실험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이에요.” 지성은 회고했다. 지성은 그 MBC에서 2015년 연기대상을 받았다. <킬미, 힐미>의 다중 인격자 연기를 통해서였다.

“그때 어떤 감정이 들었을 것 같아요? 기뻤을까요? 통쾌했을까? 아니야. 씁쓸한 거예요. 나를 안 보던 사람들이 내게 모두 박수를 쳐주는데, 조바심을 내던 나는 너무 17년 전의 이야기고,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어요. 기자님, 그런 거예요. 1년이 끝날 때쯤에는 한 해를 정리할 이벤트가 필요해요. 그 자리에서 주인공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해요. 물론 그 상은 감사한 상이었어요. 그런데 상은 받고 나면 그냥 좋은 추억이에요. 나는 돌아갈 곳이 있어요. 내 딸과 아내가 있는 집이 있어요. 내 일을 끝내고 그 집으로 돌아가면 돼요.”

나이가 들면서 예전에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줬던 점수를 조금씩 빼고 있다. 한때의 감으로 하는 것들이나 젊음과 우연이 맞물려 확률적으로 일어나는 아름다움이 이제는 더 이상 별로 멋져 보이지 않는다. 지성은 정확히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딱 하나 감사한 건 제 진심이 통했다는 거예요. 누군가 알아줬기 때문에 이 세상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제가 열심히 해서 주변 사람들이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야?’ ‘무리하는 거 아니야?’ ‘너는 너무 올바른 부분만 생각하는 거 아니야?’ ‘너무 재미없게 사는 거 아니야?’ 같은 말을 해요. 그냥 나는 내가 열심히 하는 게 즐거울 뿐이에요. 그게 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에요. 그러면서 두려움을 없애는 것 같아요. 나는 후회 없이 했으니까. 특히 연기할 때만큼은.”

지성과의 일정 중에는 브라이틀링 공장 견학도 있었다. 브라이틀링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브라이틀링의 모든 조립 공정은 1000가지 이상으로 구분되며 각자의 조립 공정은 모두 추적이 가능하다고 했다. 공장을 보여준 브라이틀링 관계자는 말했다. “조금씩 나아지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겁니다.” 지성의 20년을 요약하는 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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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KIM JEWON
헤어김 현진
메이크업이 도영
스타일링김 하늘
출처
기타with BREIT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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