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이라는 인생-2

시간에 쫓기지도, 시간을 쫓지도 않았다. 그저 시간 위에 있었을 뿐이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보고, 가야 할 길을 생각해왔다. 그렇게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푸르른 정우성은 정우성이라는 인생을 산다. 시간은 여전히 정우성 편이다.

스틸 케이스의 ‘탱크 아메리칸’ 워치, 못 모티브의 화이트 골드 ‘저스트 앵 끌루’ 브레이슬릿 모두 까르띠에.
코트 발렌시아가. 스웨터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스틸 케이스의 ‘탱크 아메리칸’ 워치, 못 모티브의 화이트 골드 ‘저스트 앵 끌루’ 브레이슬릿 모두 까르띠에.
터틀넥 스웨터 벨루티. 양털 러그 어그.

1997년에 개봉한 <비트>를 통해 당대 청춘의 아이콘처럼 각인됐다. 그 뒤로 1990년대부터 2017년까지 한국 영화 신에서 꾸준히 스타의 지위를 유지하며 한국 영화계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하고 목격해왔다.

1990년대부터 한국 영화가 성장하고 전성기를 맞이한 건 새로운 시도가 활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안정적인 이야기와 제작 방식에 안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선배 입장에서 솔선수범해서 새로운 시도에 앞장서야 할 것 같다. 물론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면 입지가 흔들릴 수도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선배로서 책임감을 느끼는 걸까?

후배들에게 뭔가를 해줘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건 아니다. 요즘은 시나리오를 보면서 여태껏 내가 해온 게 있으니 이제 조금 다른 걸 해봐도 될 거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해왔던 건 이제 다른 후배가 해도 되지 않을까 싶고. 장르적 재미나 흥행성을 대변하기보단 메시지를 던지는 역할을 하고 싶다.

포털 사이트에서 정우성이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비트’가 보인다.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청춘’이라는 단어를 대변하게 된 건 <비트> 덕분이고 이는 일찍이 차지한 영예 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배우로서 고정된 이미지를 극복해야 하는 숙제를 일찍부터 떠안은 것이기도 했을 테고.

한 편의 영화로 그런 지위를 차지한 건 분명 엄청난 행운이다. 하지만 그때는 청춘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로 규정되는 게 싫었다. 그래서 <비트>에서의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것처럼 보이는 캐릭터를 선택하지 않으려 했다. 지금 와서는 종종 아쉽긴 하다. 조금 즐길걸 그랬나 싶은? 그런데 그때 그런 분위기를 즐겼다면, 그 수식어에 안주하고 매달렸으면, 그걸 잡고자 연연하느라 배우로서 많이 망가졌을 것 같기도 하고.

<비트> 이후로 <태양은 없다> <유령> <러브> <무사> 등의 작품을 통해 무언가와 싸우고 저항하는 루저와 아웃사이더의 이미지를 구가해왔다. 감독들이나 제작자들이 정우성에게 어떤 고난을 안겨줄까 고민해온 것 같다고 했는데, 어쩌면 배우 스스로가 무언가와 싸우는 아웃사이더의 행보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사회에 나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회와 부딪쳐온 경험이 몸에 배어 있다 보니까 그런 캐릭터에 자연스레 정이 가고 그런 상황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무언가에 도전하는 인물에 대한 아름다움에 끌린 것 같다.

너트와 볼트 모티브의 화이트 골드 ‘에크루 드 까르띠에’ 브레이슬릿, 못 모티브의 화이트 골드 ‘저스트 앵 끌루’ 브레이슬릿, 스틸 케이스의 ‘탱크 아메리칸’ 워치 모두 까르띠에.
데님 트러커 재킷, 데님 바지 모두 캘빈클라인 205W39NYC by 10 꼬르소 꼬모. 티셔츠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강철비>는 제작비가 157억에 달하는 대작이다. 그런데 1999년 작인 <유령>은 당시 보기 드물게 20억이 넘는 제작비를 쓴 작품이라 화제가 됐고, 2001년 작인 <무사>도 70억 이상의 제작비가 투여된 대작으로 꼽혔다. 한국 영화 산업의 규모가 팽창하던 시기에 최전선에 있던 배우였고, 여전히 그런 배우인 셈이다. 배우로서 오랫동안 제자리를 잘 지켜왔다.

잘 버텼지.(웃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잘생긴 배우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거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대중이 극장에서 평범하게 생긴 사람을 보는 걸 선호하는 쪽으로 돌아선 것 같다. 그런 변화 속에서 남들은 알 수 없는 소외감 같은 걸 느끼기도 했고, 나름대로 혼자 투쟁하듯 버텨왔다. 덕분에 늘 새로운 캐릭터를 겁 없이 시도한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대중에게 다양한 장르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다양한 배우가 등장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된 것 같다.

2006년에 출연한 <데이지>와 <중천>은 당시 큰 주목을 받은 대작이었지만 연이어 흥행에 실패했다. 어떤 식으로든 뼈아픈 경험이 아니었을까?

그렇긴 하다. 당시 일본에서 한류 열풍이 상당했는데,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흥행하면서 부수적인 가치 창출에 연연하는 데 많이 휘둘린 반면 영화 자체에는 크게 신경 쓰지 못한 것 같다. 배우 입장에서는 상처로 남는 경험일 수밖에 없는데, 한편으론 누굴 원망할 수도 없다. 어쨌든 선택은 내가 한 것이니까. 결국 겸허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인터뷰를 통해 연출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곤 했다. 젊은 배우가 감독이 되겠다고 공언하는 건 당시에도 지금도 드문 일인데, 일찍이 그런 야심을 품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예전부터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이야기를 끄적거리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 촬영 현장에서 컷이 어떻게 나뉘고 콘티 노트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게 되면서 이야기를 콘티로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트>를 촬영할 때 김성수 감독님이 직접 내레이션을 써볼 생각이 있느냐고 묻더라. 그래서 쓰게 됐는데 마음에 들어 했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나에겐 꿈이 없었다”도 내가 쓴 내레이션이었다. 그러니까 신이 난 거지. 그래서 시나리오를 써서 감독님들한테 보여주기도 하고, 그런 작업을 이어나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감독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거다. 그리고 1999년에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게 됐다.

핑크 골드 케이스의 ‘탱크 루이 까르띠에’ 워치, 못 모티브의 핑크 골드 ‘저스트 앵 끌루’ 브레이슬릿 모두 까르띠에.

GOD 뮤직비디오 말인가?

맞다. 당시에 뮤직비디오에서 쓰지 않는 촬영 방식을 동원하기도 했고, 덕분에 나름 화제가 된 뮤직비디오였다. 그런데 한 음악 방송 채널에서 연락이 왔다. 뮤직비디오 감독상을 주겠다고. 그때 내가 <무사>를 찍으러 중국 오지에 있던 상황이었는데 한국으로 들어오라는 거다. 당장 말 달리고, 창 돌려야 하는데.(웃음) 그래서 못 간다고 했더니 다른 감독한테 상을 주더라. 그때만 해도 시상식에 참여해야 상을 주는 시대였다. 그 이후로 2002년에 발표한 GOD 정규 앨범에서 세 곡의 뮤직비디오를 연결되는 시리즈 형식의 드라마타이즈로 촬영했는데 그게 미장센 단편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내 입장에선 뮤직비디오라고 찍었는데 왜 단편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하겠다는 건가 싶었지만 어쨌든 괜찮다고 하니까 그러라 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까 점점 겁이 없어져서 30대가 되면 감독이 되겠다고 얘기하기 시작한 거지. 그런데 아무래도 한국 영화계에서 이른 나이에 감독으로 입봉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고, 배우로서 작업을 이어나가다 보니 점점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됐지.

<킬러 앞의 노인>이라는 단편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는데 장첸을 비롯한 세 배우가 연출한 단편영화를 모아 장편영화 분량으로 구성한 <세가지 색-삼생>이라는 작품 중 하나였던 것으로 안다.

홍콩 국제영화제 쪽에서 제안한 기획이었는데, 그때 마침 제작자로 참여했던 <나를 잊지 말아요> 촬영팀이 꾸려지는 상황이라 한번 같이 작업해봐도 좋겠다고 생각해서 먼저 제안하고 진행하게 됐다. 홍콩 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뒤로 다른 영화제에도 출품한 것으로 안다.

카메라 뒤에 있는 입장은 앞에 있는 입장과 얼마나 다르던가?

일단 더 자유롭고 에너지가 넘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내 에너지 때문에 스태프들이 작업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버거워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걸 알면서도 종종 강압적으로 작업을 끌고 갈 때도 있었다. 나는 1990년대의 영화 작업 환경을 겪었기 때문에 당시의 치열함을 잘 알고 있다. 요즘은 작업 환경이 시스템화된다고 하지만 영화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거라 어떤 감독 밑에서 얼마나 작업을 해봤느냐가 중요한 경험이 되고 훗날 영화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아무래도 요즘 영화 현장으로 들어오는 어린 친구들은 그런 도제 시스템의 장점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착취를 했다는 말은 아니고.(웃음)

2014년에 개봉한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에 출연했는데 멜로 영화 제작이 드문 상황에서 제작자로서 영화에 참여한 것이 화제가 됐다.

사람들이 여유가 있어야 사랑도 꿈꾸고 멜로 영화도 볼 것 같은데 아무래도 지금이 낭만 시대는 아닌 거 같다. 시대가 대중에게 낭만을 뺏어갔기 때문에 극장에서도 사랑 이야기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겠지. 그만큼 멜로 영화 흥행이 부진하니까 투자 배급 라인에서도 꺼리고, 제작 편수도 줄어드는 것 같고. 찾지 않는 걸 계속해서 만들어서 보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시도가 있어야 관객의 반응도 얻을 수 있는 법이고 대중의 움직임을 끌어내야 산업의 성격도 바뀔 수 있다. 후배 영화인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지지해주는 기성세력이 있어야 다양성이라는 게 만들어질 수도 있을 거고.

제작자로서 촬영 현장에 있을 땐 배우나 감독일 때와는 또 다른 기준이 필요할 거 같다.

연출하는 감독과 거리를 둬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옆에서 잔소리하는 입장이 된다. 후배의 좋은 아이디어를 지지해준다 해놓고 내 마음대로 흔들어버리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는 거지.

김지운 감독의 차기작인 <인랑> 촬영이 절반 정도 끝났다고 들었다.

나는 6회 차 정도 촬영했다. 내 촬영 분량은 1~2월에 많이 몰려 있어서.

일본의 전공투 세대를 반영한 원작을 한국적인 현실에 어울리게 각색했다고 들었다. 통일준비위원회가 만들어진 근미래의 한반도를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라던데 희한하게도 <강철비>에 이어 또 한번 연이어 통일이라는 단어와 깊은 연관이 있는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

나도 희한하다.(웃음) 사실 <인랑>은 일찍이 부탁을 받은 상황이라 참여를 생각했던 작품이긴 했는데,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강철비>에서 이어지는 흐름이 있어서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관객 입장에서도 확대 해석할 수 있는 데에서 흥미가 있을 테고, 내게도 그런 해석을 보는 재미가 있을 거 같다.

<강철비>에서 북한군 제복을 입고 등장하기도 했는데 <인랑> 팬들이 기대하는 강화복은 어떻게 등장할지 궁금하다.

원작 애니메이션과 똑같다. 할리우드에서 아이언맨 슈트를 만든 업체에서 만들어서 퀄리티도 상당하고. 그리고 제복이 얼마나 멋있는지는 <인랑>에서 더 확실히 보여줄 수 있다.(웃음)

<아수라>와 <더 킹>과 <강철비>를 통해 국가의 사정 기관이나 안보 기관과 엮여 있는 인물을 거듭 연기하고 있는데, 심지어 지금 촬영 중인 차기작 <인랑>도 국가 기관의 일원으로 등장한다고 들었다. 무언가를 의도한 선택이 아닐지 모르겠지만 한편으론 배우 스스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진 상황은 아닌지 궁금했다.

지금 아마 대다수의 기성세대가 느끼는 감정은 미안함일 거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광장에서 촛불 집회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왜 이렇게 무덤덤하게 살아왔을까 스스로 자책한 이가 많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랬던 거 같고. 그러면서 나는 어떤 기성세대가 돼야 할지 고민하던 과정이 작품 선택에도 은연중에 반영된 것인지 모르겠다.

핑크 골드 케이스의 ‘탱크 루이 까르띠에’ 워치, 못 모티브의 핑크 골드 ‘저스트 앵 끌루’ 브레이슬릿 모두 까르띠에.
스웨트셔츠 스튜디오 세븐 by 분더샵. 이너 티셔츠 T by 알렉산더 왕. 데님 바지 아크네 스튜디오 by 10 꼬르소 꼬모.

얼마 전에 시리아 난민의 참상을 다룬 <시리아의 비가: 들리지 않는 노래>라는 다큐멘터리가 개봉했을 때 영화에 관해 설명하고 질문을 받는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그때 관객 한 분이 정우성 씨가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것으로 안다며, 이런 현실을 보다 폭넓게 알리는 데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에스콰이어> 1월호 커버스토리 주인공이 정우성 씨니까 만나서 이 얘기를 꼭 전달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 정말 열심히 활동하는 것 같더라.

약속한 거니까. 일단 유엔난민기구(UNHCR)를 다른 단체랑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기자분들도 헷갈리는지 나를 유니셰프 홍보대사라고 쓰는 경우도 있고. 사실 유엔난민기구에서 난민 문제를 알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분쟁 지역마다 정치적 대립이 벌어지는데 결과적으로 꼭 종교 문제가 끼어든다. 그러다 보니 난민들의 어려움을 설명하기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그냥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라고 뭉뚱그려 말하게 된다. 그러니까 일반인 입장에선 잘 와닿지 않겠지. 그래도 내가 친선대사로 활동한 뒤로 후원금 모금액이 많이 늘었다고 하더라. 유엔난민기구나 난민들의 어려움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고. 그러다 보니 난민 캠프에서 봉사 활동을 하겠다고 자원하거나 물건을 기증하고 싶다는 분들도 생긴 거 같은데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일단 유엔난민기구에선 정말 많은 난민을 보호하는 상황이라 체계적으로 조직화돼 있으니 거기 끼어드는 건 오히려 일을 방해할 가능성만 높아진다. 단순히 불우한 가정을 찾아가서 돕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물자는 옮기는 비용이 든다. 그래서 물건이 아니라 후원금을 모금하는 거다. 난민들은 지금 어쩌다 보니 난리를 피해 잠시 집을 떠나온 사람들이지 나라를 등진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니 감정적으로 보다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다. 사실 한국이 유엔난민기구 지원금이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는 아니지만 일반인들의 모금 기금은 상위권을 차지한다는 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상당히 크다는 걸 느낀다.

눈으로 직접 보게 되면 더욱 간절한 마음이 들 것 같다.

로힝야족 상황이 굉장히 참혹하다. 난민들은 그래도 희망을 갖고 산다. 평화가 찾아오면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 그런데 로힝야족은 평생 조국이라 믿고 살았던 미얀마에서 더 이상 국민이 아니라며 학살당하고 쫓겨나고 있으니 본질적으로 조국에 대한 가치관이 무너진 상황이다. 희망이 없는 사람들의 건조한 눈빛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

배우로서 연기를 잘하는 건 직업적 의무겠지만, 잘 알려진 배우로서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는 개인의 선택에서 비롯된다. 결국 배우 정우성은 자신이 더 넓은 세계에서 활용될 수 있는 존재로 확장하고 싶은 걸까 궁금하다.

젊은 시절에는 더욱 거창한 생각을 했다. 30대가 되면 아이들과 세상에 사랑을 실천하는 재단을 하나 만들자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30대가 되니 개인사에 더 집중하게 되더라. 그러다 유엔난민기구의 제안을 받고, 지금 이 제안을 거절하면 언제 행동할 수 있을까 싶어 수락하게 됐다. 사실 난민 문제라는 게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세운 상해임시정부도 난민 정부였으니까. 그리고 난민 캠프에도 한류가 있다. K팝도 안다. 결국 이것이 국격을 높이는 활동이란 것을 느끼게 된다.

이정재 씨와의 우정이 주목받고 있는데 두 사람은 매니지먼트 회사 아티스트 컴퍼니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배우들이 소속사 사무실을 찾는 일은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아티스트 컴퍼니 사무실에는 늘 배우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까 말이다. 오면 밥을 사줘야 하는데.(웃음)

배우가 모여서 배우 매니지먼트사를 세우자고 한 배경이 궁금하다.

사실 오래전부터 계속 논의해왔다. 그러다 더 나이 먹기 전에 해봐야지 아니면 후회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결국 실행하게 됐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매니지먼트사와 긴밀한 소통을 하고 싶어 한다. 배우로서 동료의 고단함이나 애로 사항을 편하게 들어줄 수 있고, 먼저 인지해서 잡아줄 수도 있고, 서로 격려해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배우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어떤 영화에 참여하고 싶은지 논의하면서 우리가 스스로 작품과 캐릭터를 개발할 수도 있을 거 같고. 상대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적은 여배우들을 위한 시나리오를 개발해서 여배우들을 주목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도 있고, 실제로 그런 작업을 진행 중이다. 다만 우리가 매니지먼트 산업의 체질을 바꾸겠다는 식의 야심을 가진 건 아니다.

나이가 들면 점점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귀해진다. 실제로 두 사람을 보면 서로의 인생에서 중요한 관계라는 걸 잘 아는 사이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조심하려고 한다. 예전에는 각자 겪은 개인사를 얘기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함께 몸담고 있는 조직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의사소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재 씨가 하는 말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고자 집중해서 들어보려 하고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하게 된다.

그런데 <태양은 없다> 이후로 함께한 작품이 없다. 두 사람이 한 작품에 출연하자는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나?

많이 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아무래도 업계의 기대치도 높고. 두 배우와 함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여러 감독에게 들었지만, 두 명의 배우에게 프레임을 정해놓고 이야기와 캐릭터의 균형을 맞추며 시나리오를 개발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함께 매력을 느낄 만한 작품을 우연히 만나지 않는 이상 힘들 거 같다.

데님 트러커 재킷 캘빈클라인 205W39NYC by 10 꼬르소 꼬모.

<강철비>에서 고기를 구워서 후후 불어 식힌 뒤 어린 딸의 숟가락에 얹어주는 장면을 보면서 정우성이 부성애를 표현하는 것이 처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일단 내가 아이를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 꿈이기도 했고.

아빠가 되는 날이 오긴 올까?

당연히 와야지!(웃음)

결혼할 생각은 있나?

있다. 그런데 지금 주변 상황을 놓고 보면 아무래도 까마득해 보이기도 하고. 그리고 너무 많은 관심이 쏟아질 텐데 일반인 여성이 그런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지레 걱정되기도 하고. 그렇다면 결국 다 아는 이쪽 업계의 누군가를 만나야 할까 싶지만, 그건 또 내 성향상 아닌 거 같고. 잘 모르겠다. 한 살씩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어려워지는 숙제가 돼가는 거 같다.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두렵지 않으니까 이러는 것 같기도 하고. 두렵다면 당장 결혼부터 할 텐데.(웃음) 사실 갖고 싶거나 먹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게 별로 없다. 물건에 집착하는 편도 아니다. 그냥 내 앞에 주어진 걸 즉흥적으로 선택하는 게 편하다. 그러니 내 앞에 온 작품이 나를 자극하거나 재미있게 느껴지면 바로 선택하게 된다. 결국 그런 선택의 연속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내년에도 아마 그렇게 가게 되지 않을까.

반대로 지금까지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떳떳하게 살았구나. 정당하게, 내가 가져올 수 있는 것만 가져오면서. 물론 팬들의 사랑을 받고 스타가 된 건 큰 행운이었다. 다만 그걸 바라며 열심히 해온 건 아니었다. 영화배우가 됐고, 영화가 좋아서 그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배우가 되고자 했는데 어쩌다 보니 행운까지 얻게 됐다. 그러니 그 행운까지 내 것이라 생각하며 안주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결국 이런 과정이 진짜 나를 찾아가도록 이끄는 길이 될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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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패션 에디터고동휘
어시스턴트박 유신
사진김형식
헤어임 해경
메이크업배 경란
스타일링정 윤기, 김 혜정, 김 신혜(어시스턴트)
출처
기타with CAR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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