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웃기는 장성규

‘진지’와는 거리가 먼 것 같은데 존경하는 인물은 손석희라고 대답하는 장성규를 만났다.

화이트 셔츠 베이지 재킷 모두 마시모두띠, 넥타이 S.T. 듀퐁 클래식, 안경 뮤지크.

장성규를 만나기 보름 전, 인터뷰 섭외를 위해서 전화를 건 기자에게 그는 “약속 시간을 조금 빠른 12시, 안 되면 조금 늦은 12시, 그래도 안 되면 제가 다음 약속을 조금 늦은 1시에 가죠”라며 예사롭지 않게 말한다. 위트 있으면서도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며 말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약속한 촬영 날,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잘 못할 수도 있으니 많은 지도 부탁드립니다”라며 짐짓 걱정을 했다.

드디어 첫 신. 혹시 배경 분위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멀티탭 여러 개를 흩트려놓았더니 알아서 목에 전깃줄을 휘감고 멀티탭을 휴대폰인 양 귀에 갖다대며 마임을 선보인다. 이날 촬영은 시작 5분 만에 이미 끝난 게임이었다.

슈트 자라, 화이트 셔츠 넥타이 모두 마시모두띠, 안경 뮤지크, 스니커즈 프레드 페리.

오늘 겪어보니 방송에서 오히려 덜 웃기는 거더라.
학창 시절부터 유쾌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학교에서 작은 행사를 하면 자주 MC를 맡았는데, 내가 던진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보면 쾌감을 느꼈다.

회사 회식 때 사랑을 독차지할 것 같다.
아니다. 노래방을 가면 슬픈 발라드만 불러서 ‘분위기 브레이커’를 맡고 있다(웃음). 사실 어른들과 함께할 땐 말을 아끼는 편이다. 방송에서도 까부는데 회사에서도 그렇게 까불면 ‘쟤는 가벼운 사람이다’라고 할 것 같아서다.

본래 캐릭터 때문에 주목받는 건데 다르게 행동할 필요가 있을까?
아직은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하며 천천히 나아가야 할 때다. 내가 김성주, 전현무 선배처럼 안정적인 진행자로 인정받는다면 까부는 모습도 캐릭터로 봐주겠지만, 지금의 위치에서 그런다면 과하게 보일 것이다. 뭘 해도 “장성규는 괜찮은 방송인이야” “귀여운 친구야”라고 인정해주는 분위기,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할 그 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다.

‘개아나운서(개그맨+아나운서)’라고 불린다. 인기를 실감하는지?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한 후 확실히 달라졌다. 유튜브에서 직접 운영 중인 개인 방송 ‘짱티비씨’는 요즘 20만~30만 뷰가 나오는데, 스타를 찾아가 편의점 음식으로 한 끼를 차려주는 ‘씨유세끼’ 등이 반응이 좋다. 요즘엔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내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건다. 그럴 때마다 난 ‘프로관종러’니까 행복해하며 반갑게 인사한다.

원래는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했다던데.
방송에 대한 호기심은 늘 있었지만 나와는 다른 세계 같아서 도전할 엄두를 내진 못했다. 지금 집사람과 초등학교 동창으로 만나 20대 때부터 교제를 했는데, 당시엔 나를 위한 미래보다는 아내와 결혼하는 것이 내 꿈이었다. 회계사 시험도 아내 앞에 당당히 서려면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는 남자가 되어야겠기에 준비했던 거다.

그러다 어떻게 방송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됐나?
아내가 “지금은 성규가 원하는 걸 찾아야 할 때인 것 같아”라고 말하며 헤어지자고 했다. 취업을 못 해서 이별을 통보받는 것 같아 많이 울었으나,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처음 생각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그때 내 나이가 28세였다. 방송을 해볼까 생각하고 가장 친한 친구에게 “내가 나이도 많은데 방송인을 꿈꾼다는 게 괜찮을까”라고 물었더니 잠시 고민하던 친구가 “네가 여태 말한 꿈 중에 가장 네 것 같다”고 얘기하더라. 그러고 나선 부모님께 단순히 방송하겠다고 하면 불안해하실 것 같아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씀드렸다.

거짓말을 한 건가?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웃음) 프리랜서 방송인을 한다고 하면 어느 부모가 좋아하시겠나. 사실 어머니가 끝내 허락하시지 않아서 누나와 매형을 꾀어 신용카드를 받은 후 그길로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등록했다. 그리고 두 달 만에 MBC 예능 <우리들의 일밤-신입사원>을 만날 수 있었다.

화이트 셔츠 베이지 재킷 모두 마시모두띠, 넥타이 S.T. 듀퐁 클래식, 안경 뮤지크.

예상보다 훨씬 빨리 기회가 주어졌다.
5500명이 지원해 3명의 아나운서를 뽑는 MBC 창사 50주년 특별 공개 채용 프로그램이었는데 초반부터 기운이 좋았다. 아나운서 선배들도 “너랑 일하게 될 것 같다”며 힘을 북돋워주곤 했다.

그런데 최종 5명 중 2명이 탈락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떨어졌다. 4개월간의 꿈이 허무하게 날아갔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 취업을 준비할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그런데 마지막 방송이 전파를 탄 다음 날, 또 한 번의 행운이 찾아왔다.

어떤 행운이었나?
당시 JTBC에서 1기 아나운서를 뽑고 있었는데 JTBC 상무이사였던 주철환 PD가 직접 전화해서 “이번엔 MBC가 큰 실수를 했네요. 우리랑 손잡고 MBC에 복수해보지 않겠어?”라고 얘기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를 듣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실 ‘복수’란 표현이 맞는 건 아니었지만 아마 내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 하는 말씀 같았다. MBC에서 떨어진 동기들을 비롯해 7명이 함께 면접을 봤고, 마침내 당당하게 JTBC 1기 아나운서로 뽑혔다.

반년 만에 천국과 지옥을 맛봤기에 JTBC 맨이 된 감회가 남달랐을 듯하다.
언론 통폐합으로 사라진 TBC의 정통을 잇는 JTBC였기에 뭔가 사명감 같은 게 있었고 1기 아나운서로 뽑혔으니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며 일했다. 그런데 입사 초엔 ‘배신자’란 악플 때문에 힘들었다.

악플이 달린 이유가 뭘까?
지상파 방송의 아나운서에 좀 더 도전하지 않고 왜 종합 편성 채널로 갔느냐는 거다. 당시엔 종합 편성 채널이 정치적으로 편향성을 띤다며 채널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반응 때문에 괴로워할 무렵, 손석희 사장이 부임했고 JTBC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씻는 정도를 넘어서 중립적이면서도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방송사란 이미지를 확립해줘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는 손석희 사장은 어떤 사람인가?
한마디로 ‘탈권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옆에서 바라보니 더 멋진 분이더라. 절대 목에 힘주고 일하지 않고, 농담하는 걸 싫어하실까 봐 아무 말도 안 하면 “야, 너답지 않게 왜 그래” 하며 먼저 분위기를 풀어주신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 ‘사장님 덕분에 세상이 따뜻해지고 있어요. 감사합니다’라고 문자를 드렸더니 ‘조금 닭살스럽지만 고맙다’는 답장을 보내주셨다. 그 문자를 평생 간직할 생각이다.

화이트 셔츠, 네이비 슈트 모두 마시모두띠, 안경 뮤지크, 윙팁 슈즈 푼크트.

처음엔 사건 현장에 잠입하는 프로그램도 했다.
2012년 <김국진의 현장박치기>라는, 시사 다큐멘터리에 예능적 요소를 녹인 프로그램이었다. 지금 방송 중인 ‘아는 형님’의 메인 PD이자 당시 조연출이던 (최)창수 형이 “널 유심히 봤다. 언제 꼭 같이 일하자”고 하기에 워낙 친하게 지내던 사이라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이후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너 키스방 들어갈 수 있겠니” 하더라. 그래도 아나운서인데 ‘이 형 너무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직접 잠입해서 파헤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장성규식 유머가 처음으로 통했던 프로그램이다.
키스방에서 “간단한 터치까지만 된다”고 얘기하기에 “복잡한 건 안 돼요?”라고 대답한 장면이나 업소 화장실에서 3분간 열심히 양치질을 하는 장면 등을 제작진이 재미있게 편집해서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처음엔 5분짜리 한 꼭지만 하다가 두 꼭지를, 나중엔 김국진·유세윤 형과 3MC로 발탁됐다.

예능형 아나운서의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 내가 워낙 필터링 없이 바로 말을 던지는 편인데, 그 프로그램 후 바로 <남자의 그 물건>에 캐스팅까지 됐다.

김구라, 이상민, 이훈까지 해서 4MC 체제였는데, 하루는 늘 하던 대로 ‘아무말대잔치’식의 막말을 던졌다가 구라 형에게 크게 혼난 적이 있다. 왜, 구라 형 트레이드마크 있지 않나. “야야,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라고 얘기하는 거 말이다. 직접 그 말을 들으니 점점 위축되더니 녹화 날이 다가오면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구라 형이 술자리에 나를 불러서 “네가 못했으면 널 빼자고 했지. 너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마라”며 긴장을 풀어줬다. 구라 형처럼 기가 센 사람과는 처음이기도 했고 비로소 ‘이건 프로들의 무대구나’란 생각이 들어 덜컥 겁이 났다.

예능 고수들 앞에서는 주눅이 드는 건가?
그렇다. 사실 구라 형이나 국진 형 같은 경우는 자기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PD의 마인드를 갖고 프로그램 전체를 본다. 그래서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모르게 연차도 짧은 내가 저 위의 형들처럼 하려고 흉내를 내더라. 그러니 예능 울렁증이 생길 수밖에.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나?
회사에서 아침 종합 뉴스 ‘아침&’을 진행해보라고 했다. 슬럼프에 빠지고 나니 오히려 아나운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 거다. 가족들은 예능 할 때보다 더 기뻐했다. 근데 한 1년쯤 지나니 실패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즈음 ‘짱티비씨’를 해보자는 제의도 있었고 다시 한번 예능에 도전하고 싶어서 뉴스에서 하차했다. 아무리 사람 웃기는 일이 재미있어도 예능과 보도를 동시에 하면 시청자들이 나의 진정성을 의심할 것 같아서였다.

이제 마음의 부담을 완전히 떨쳤나?
지금은 예능 프로 선수들이 던져주는 걸 열심히 받아먹는 신인 선수의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아는 형님>에서 (강)호동이 형이 한 번씩 “손 사장님이 뭐라고 안 하세요?”라고 물으면 “날 지웠대” “연락 끊긴 지 오래야”라고 얘기했는데 그런 것들이 반응이 좋더라.

지난번 녹화 때 잠시 쉬는 시간에 호동이 형이 지나가면서 엉덩이를 툭 쳐주는데 묘한 성취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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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던 직장을 얻고 자리를 잡았다. 이쯤에서 아내와의 러브 스토리 결말이 궁금한데.
아나운서가 된 날 바로 전화해서 “나 이제 취업했으니 다시 만나자”고 얘기했다. 그런데 아내가 “이제 더 어리고 예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데 1년간 열심히 만나보고 그래도 내 생각이 나면 연락해”라고 말하더라. 늘 하는 생각이지만 내 아내는 참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멋지게 거절했나?
다음 날부터 클럽을 다니기 시작했다(웃음). 어쨌든 1년 동안 만날 수 있는 분들을 최대한 만나려고 노력해봤는데 아내처럼 진심으로 날 생각해서 얘기해주는 여자가 또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초등학생 때부터 함께 자라며 모든 추억의 한 장면을 차지하던 사람을 뒤로하고 새 사람을 만난다는 건 중요한 가치를 놓치는 기분이었다.

1년이 지나던 날, 아내에게 “다시 만나자”고 얘기했다. 그런데 또 거절당했다.

그 정도면 좀 떨어져 달라는 건데, 혼자 눈치 못 챈 거 아닌가?
하하하. 아내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었던 건데, 나는 자꾸 다른 얘기만 했으니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만남과 이별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던 중 ‘아이가 생기면 결혼하자’고 서로 약속했고, 그러자마자 덜컥 아이가 생겼다. 그렇게 우린 하늘이 주신 선물과 함께 2014년에 결혼을 하게 됐다.

SNS 메신저를 보니 온통 아들 사진뿐이다. 이제 아내는 뒷전인 건가?
우리 아들 옆엔 항상 아내가 있으니 아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아내가 생각난다. 요즘에 바빠서 자주 놀아주진 못하지만 아내가 잘 키우고 있어서 다행이다.

아무래도 내가 사람을 좋아하고 술자리를 좋아해서 거절을 잘 못하는 터라 아내가 고생을 한다. “지금은 사람을 많이 만나고 열심히 해야 할 때라서 그러는 거지. 자리를 잡고 나면 그러지 않겠다”고 아내에게 얘기했는데 아내가 마음이 넓어서 잘 이해해준다.

이렇게 ‘열일’ 하는 장성규의 넥스트 스텝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김성주, 전현무 선배처럼 유명 쇼 프로그램의 원톱으로서 패널들과 함께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요즘 ‘프리 선언을 언제 할 것이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데 난 JTBC를 ‘나의 고향’ ‘엄마’라 생각하기에 쉽게 떠날 생각은 없다. 억만금을 준다면 모르겠지만.

끝으로 한 가지만 묻겠다. 나를 뽑지 않은 MBC에게 할 말이 있다면?
MBC! 보고 있나? 농담이고 또 한 명의 시청자로서 항상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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