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건이라는 세월

때론 영예로웠고 때론 가혹한 시간이었지만 장동건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25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장동건은 여전히 흐르는 세월이다. 결국 장동건에게 말을 건다는 건 우리가 지나온 세월과의 대화나 다름없었다. 배우 장동건이란 어쩌면 모두의 시간이었다.

장동건 - 에스콰이어 장동건 - 에스콰이어

올해가 데뷔 25주년이라고 들었다. 25라는 숫자가 실감 나나?

개인적으로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다만 오래되긴 했다는 생각은 든다. 얼마 전에 박중훈 선배님이 진행하는 라디오에 출연했는데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을 보니까 어떤 사람은 <마지막 승부>를 언급하고, 어떤 사람은 <친구>에 대해 얘기하고, 어떤 사람은 <신사의 품격>을 말하더라.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내가 사람들에게 다양한 기억을 주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25년이란 세월이 그저 흘러가기만 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승부>를 보고 다음 날 농구했던 기억이 난다.(웃음) 1994년에 방영했으니까 벌써 23년 전이다. 당사자 입장에선 겸연쩍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장동건이란 배우는 이미 그 시절부터 스타였다. 20년 넘게 스타라는 지위를 유지하며 살아온 셈이다.

사실 중간에 부침도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점점 빨리 가서 이러다 30년, 40년도 금방 올 것 같은데, 그때도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좋았던 순간에 왜 더 즐기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그리고 힘들었던 순간에는 더 좌절하고 더욱 고뇌했어야 했을 것 같은데, 내 성격이 워낙 무딘 탓에 그러지도 못했다. <친구>가 흥행 기록을 세우고, <태극기 휘날리며>가 천만 관객을 동원했을 때도 그 순간을 즐기지 못했다. 오히려 ‘이젠 어떡하지? 다음엔 뭘 하지?’ 이런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이젠 지금의 감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왜 그렇게 걱정이 앞섰을까?

처음부터 그랬다. 아르바이트 삼아 광고 모델로 일하다 생계를 위해 MBC 탤런트 공채에 지원해서 배우가 됐다. 그러니 애초에 배우가 되는 게 간절한 꿈은 아니었던 셈인데, 어쩌면 그래서였던 것 같다. 공채로 방송국에 입사했을 때가 스물한 살이었는데 그때 선배들은 3년 정도 엑스트라 하면서 기회가 오길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운이 좋았던 건지 6개월 만에 <우리들의 천국>이란 드라마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그 뒤로 <마지막 승부>에 출연하면서 큰 주목을 받게 되니까 좋다기보다 문득 겁이 나더라.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막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운이 좋아서 큰 주목을 받게 됐지만 정작 그 당시엔 불안하기만 했다. <친구>를 통해서도 많은 칭찬을 받았고 남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걸 보여줬다는 성취감도 있었지만 결국 다음 선택에 대한 고민이 컸다. 항상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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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공채 탤런트 21기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과거에 이 시기를 스스로 2년간의 회사 생활이라고도 언급한 바 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배우라는 직업으로 살아갈 거라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뭔가 해내기 바빴던 시절이었다. 아무래도 작품 선택 권한도 없고, 예능부터 가릴 것 없이 주어지면 해내야만 했다. 신인 때부터 얼굴이 알려지니까 들어오는 일이 굉장히 많았다. 그런데 나는 어릴 때부터 내성적인 편이었으니 정작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던 셈이었다. 그래서 좀 힘들었고, 그런 상황을 즐길 수 없었다. 그저 해야만 하는 일처럼 했던 것 같다.

지난 8월 23일에 개봉한 <브이아이피>는 3년 만의 복귀작이기도 하다. 국정원 요원 박재혁을 연기했는데 지금까지 영화에서 연기한 캐릭터 중에서 이처럼 조직 생활에 밀착한 사회인의 이미지를 지닌 인물을 연기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현실적인 캐릭터로 보였다.

그래서 그 캐릭터가 끌렸다. 국정원이나 검찰 조직이 등장하니 거창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내겐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이야기로 느껴졌다. 실제로 있을 법한 일 같기도 하고. 일단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었다. 국정원 요원이라 하면 첩보원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고 실제로 <브이아이피>에서도 한두 장면 정도 그런 느낌을 주긴 하지만, 대부분은 일반 회사의 사무직 직원처럼 보인다. 구체적으론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서 좌천당할 위기에 처한 회사원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에 집중했다.

상황을 주도하기보단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수습하는 인물에 가깝다.

막상 시나리오를 볼 때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직접 연기해보니 박재혁은 리액션만 하는 인물이었다. 대부분 무언가에 반응하는 식이다. 그래서 박재혁이란 캐릭터를 어디까지 드러내고 감출지 수위를 정하기 위해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했다. 채이도(김명민)나 리대범(박희순)은 목표가 뚜렷하고 선명한 인물이지만 박재혁은 조금씩 계속 심경 변화가 있는 인물이라 그걸 너무 많이 드러내버리면 후반부의 반전이 약해질 것 같아서 최대한 많이 보여주지 않는 쪽으로 조율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답답한 생각도 들었지만 하다 보니 그게 맞는 방식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그만큼 힘을 빼는 게 중요했다.

박재혁이란 인물은 스스로를 누르고 조직의 나사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아오다가 끝내 자신의 감정을 거스르지 않고 격발하는 인물이 된다. 그래서 <브이아이피>라는 영화는 박재혁이라는 남자가 자아를 회복하는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박재혁이란 인물은 정의감이란 기준에서 굉장히 답답한 캐릭터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사람이 대단히 현실적이라고 이해했다. 절대 무리수를 두지 않고, 결코 선을 넘지 않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머리가 잘 돌아가고 능력 있는 직원으로 평가받는다. 본인이 다음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다. 결말부에서 박재혁이 그런 선을 넘었다고 느낀 관객도 있겠지만, 나는 선을 넘은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복수나 정의감을 구현한 게 아니라 그저 김광일(이종석)을 죽여도 되는 때가 돼서 수행한 것이라고 본다. 박재혁의 마지막 대사처럼 김광일의 깡통계좌는 다 털린 상황이고, 한국에서의 사건 이후로 3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이니 실행해도 되는 때가 온 것뿐이다. 어떤 식으로든 무리수를 두지 않은 셈이지.

오히려 김광일을 살려두는 게 비합리적이다?

그렇다. 그래서 임무를 완수한 뒤에도 복수를 마쳤다는 통쾌함보다는 여전히 하기 싫은 힘든 일을 끝내고 퇴근하는 피로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국정원 요원으로서 현실 감각이 사소한 일상에서는 어떻게 발휘될지 궁금하기도 했다.

연기하면서 박재혁은 왜 이렇게 사는지, 그가 결혼은 했을지, 아이는 있을지 생각했다. 그러니까 가정이 있는 남자라고 하면 설명이 되더라.(웃음) 가정이 있는 사람이니 회사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현장 요원이 아니라 사무직으로 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 혼자만의 이유를 확보했다.

김명민 씨와의 합도 좋아 보였다. 김명민이 +1의 세기로 들어오면 장동건은 -1의 세기로 받는 느낌이라 두 사람이 붙었을 때 0으로 수렴되는 인상이었다. 특히 두 사람이 갖은 충돌을 벌인 뒤 대교 위에서 만나 모든 패를 다 까놓고 대화하는 순간의 현실감이 생생하게 와 닿았다.

대본에서는 좀 더 브로맨스 같은 느낌이었다. 대교 위에서 서로가 서로를 마음으로 이해하는 느낌이었는데, 감독님이 현장에서 내용만으로 그런 느낌이 전달되면 되니까 연기로 굳이 표현하지 말자고 해서 그런 느낌을 덜어내고 좀 더 건조하게 연기했다. 박훈정 감독님이 <브이아이피>를 <신세계>와는 달리 건조하고 쿨한 영화로 만들고 싶었나 보다.

홍콩에서의 잠입 신에서는 <우는 남자>의 곤이 떠올랐다.

나도 처음에 보고 곤과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다행히도 <우는 남자>를 본 관객이 그리 많지 않아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웃음) 어떻게 보면 대단히 현실적인 영화가 마지막 장면에서 일종의 판타지를 부여하는 셈이고, 어쩌면 영화적으로 클리셰 같은 신이라 할 수 있는데, 관객들의 바람을 해소해주는 신이라 필요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김광일을 죽이고 나서 CIA 요원 앞에서 긴 대사를 하는 상황에선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연기한 젊은 대통령 차지욱의 패기나 강단 같은 것이 떠오르기도 했다.

사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그 장면이 통쾌해서 제일 좋았다. 그 통쾌함 때문에 <브이아이피>를 선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관객들도 그런 통쾌함을 느끼기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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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송 인터뷰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출연작이 <친구>이고 두 번째가 <굿모닝 프레지던트>라고 밝혔다. 사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언젠가부터 주로 맡아온 마초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지적인 인물이었고, 육체의 활동량보단 언어의 발화량이 더 중요한 캐릭터였다.

<친구>나 <굿모닝 프레지던트>에 애착이 가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 작품들을 통해 내가 새로워졌다는 느낌을 받아서였던 것 같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하기 전까지의 영화 출연작들을 보면 거의 다 사투리나 외국어를 구사한다. 심지어 <태풍>에선 북한 사투리에 태국어, 러시아어까지 했다. 물론 그걸 의식했던 건 아니고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촬영할 때 장진 감독님이 표준어로 연기하는 건 오랜만인 거 같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더라.(웃음) 그 전까진 계속 전쟁 영화에 출연하면서 땅바닥을 기어 다니곤 해서 그런지 멀쩡하게 걷고 말하는 인간을 연기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웃음) 장진 감독님 현장이 워낙 유쾌해서 좋았던 기억도 있고.

희한할 정도로 외국어로 연기해야 하는 캐릭터가 많았던 건 해외 로케이션 대작이 대거 제작되던 2000년도 초반에 장동건이라는 배우가 캐스팅 후보 1순위에 자주 거론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친구> 이후에 제작한 <2009 로스트 메모리즈>가 당시만 해도 한국 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를 쓴 작품이었고, 그다음에 <태극기 휘날리며>가 최대 제작비 기록을 깼는데, <태풍>도 역대 최대 제작비를 쓴 영화였다. 아무래도 <쉬리> 흥행 이후에 그런 대작이 많이 제작됐고, 덕분에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말이 생긴 시기였다. 개인적으론 2000년대 초·중반이 한국 영화가 가장 빛났던 시기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장르 영화가 등장했고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허진호 같은 감독들이 등장하면서 양적 팽창과 질적 성장이 함께 이뤄진 시기였던 거 같다. 그런데 어쩌면 한국 영화계가 나한테 양적 팽창의 임무를 다 맡겨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웃음)

이야기하다 보니 한국 영화 산업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는데 <친구>가 8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때 이 기록을 깨기 힘들 거란 얘기가 나왔고, ‘쌍끌이 흥행’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쓰게 만든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천만 돌파 경쟁 당시에 <태극기 휘날리며>가 1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것도 역시 쉽게 깨지지 않을 기록이라고 했다. 놀랍게도 그 순간마다 장동건이라는 배우가 있었던 셈인데, 한국 영화 산업에서 중요한 대목을 차지했던 배우라고 자부해도 좋을 것 같다.

운 좋게 그런 시기에 활동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는 자부심도 없진 않다. 다만 그때의 내가 그런 가치에만 매몰된 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좀 더 다양한 작품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있다. 그 시기엔 자꾸 더 세게 나 자신을 쏟아부을 수 있는 캐릭터를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결국 관성적인 자기 복제가 거듭된 셈이었다. 결국 배우는 지금 갖고 있는 욕망에 어울리는 작품을 선택하는 법이니 어쩌면 이제야 다양한 캐릭터를 시도할 만한 시기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런 방식이 산업의 변화와 깊게 맞물린 배우의 입장에선 스스로의 활용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향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연기를 대하는 여유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배우는 작품의 선택을 받아야 선택권이 생기는 셈인데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작품을 제안받는 경우엔 그런 작품이 먼저 눈에 띄는 경향도 있었던 것 같다.

<브이아이피>의 박재혁은 <태풍>에서 연기한 최명신과 반대편에 선 인물이라 해도 좋겠다. 2005년의 장동건은 대한민국 사회를 위협하고 그로부터 쫓기는 이방인으로 대중 앞에 섰는데, 2017년의 장동건은 국가를 대신해 이방인을 비호하거나 쫓는 역할로 대중 앞에 나타났다. 단순한 캐릭터 차이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배우가 작품을 선택하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예전에는 작품을 선택할 때 많은 생각이 개입했다. 배우로서 순수하게 끌리는 작품이 있다 해도 예상되는 결과에 대한 득실을 따져보기도 했고, 걸리는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끝내 그게 부담스러워서 선택하지 않았다. 이제 그런 강박은 자연스럽게 없어진 것 같다. 요즘은 일단 즐겁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려 한다. 걸리는 점보단 끌리는 점이 더 중요해졌다.

아무래도 2005년쯤의 장동건은 <브이아이피>의 박재혁을 선택하기에 걸리는 점이 있었을까?

아마도 분량?(웃음) ‘어, 단독이 아니네? 투톱까지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이랬을 거다.(웃음)

회사에 다니듯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배우라는 직업이 자신의 인생을 지배하는 운명이 될 거라 예감하지 못했을 것 같다. 결국 연기를 운명이라 받아들이게 된 시점이 있었을 텐데.

아마 한예종에서? 탤런트 공채 기수별로 우르르 불려 다니며 엑스트라로 촬영을 하다가 처음으로 이름이 있는 역할을 맡은 게 <우리들의 천국>이었다. 아직도 첫 촬영하던 순간이 기억난다. 서울여대에서 수많은 여대생이 구경하는 가운데 연기했는데 첫 촬영이 끝나고 나서 아무래도 이건 내가 갈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얼마나 더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런데 당시는 생계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일단 열심히 찍을 수밖에 없었지. 게다가 재수, 삼수까지 하면서 이래저래 방황하다가 얻게 된 직업이라 쉽게 버릴 수도 없었던 것 같고. 그래서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학교에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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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생활은 어땠나?

20년 전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생각만 해도 좋은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당시 한예종 연극원 1기 동기인 (이)선균이나 (오)만석이는 지금도 같이 학교 다니는 친구들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연극원 1기에 입학한 친구들은 정말 연기에 목숨을 걸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한 학생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 친구들도 대부분 무대 경험이 있었고, 서울대를 다니다 자퇴하고 왔다거나 기존에 하던 일을 다 포기하고 온 학생들도 있었다. 이력이 특이한 친구들이 많았다. 연기만 생각하는 그런 친구들과 2년간 생활하고 나니까 연기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게 학교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이선균 씨가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한예종 연극원이 ‘장동건 학교’라 불렸다고 말한 바 있다.(웃음)

아마 2월에 <마지막 승부>가 끝났을 텐데 3월부터 학교를 다녔으니까. 아무래도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시기였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는 작품에 출연한 캐릭터로 회자된다는 건 배우 입장에서 의미 있는 일일 텐데, 지난 성공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둬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던 시기가 있었나 보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없지는 않다. 최근 몇 년 동안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작품을 남기지 못했으니까. 사실 <위험한 관계>를 찍을 때 허진호 감독님과 이런 얘기를 나눴다. 우린 대표작을 갱신할 때가 됐다고.(웃음) 감독님도 언제 적 <8월의 크리스마스>고 <봄날은 간다>냐. 나도 <친구>나 <태극기 휘날리며>가 너무 오래됐다고.(웃음) 농담 삼아 한 말이긴 했지만 사실 농담같이 들리는 말이 아니기도 하지. 그리고 <위험한 관계>도 결국 관객들에게 어필하지 못한 것 같고. 그리고 뛰어넘어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건 나쁘지 않다. 그나마 몇 작품이라도 있다는 게 없는 것보단 나으니까.(웃음)

출연 경력을 살펴보면 2000년도까진 영화보단 드라마 출연작이 월등히 많았지만 그 이후로는 영화로 무게중심이 이동한 느낌이다. 어떤 의미에선 2000년대 이후부터 영화 신에서 장동건이라는 배우를 활용하고 싶어 했다는 욕망이 명확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2012년에 <신사의 품격>으로 오랜만에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그 전에 출연했던 드라마가 아마 2000년에 방영한 <이브의 모든 것>이었을 거다. 2년간 한예종에 다니다 배우로 복귀할 때 특별히 방송사에 구속력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친분이 있는 감독님들이 거기 있다 보니 자연스러운 흐름이 생겼다. 그래서 <아이싱>이란 드라마로 복귀했고 그 이후로도 쭉 드라마에 출연했다. 그리고 사실 그 당시 영화에서 20대 중반의 나이인 배우가 맡을 수 있는 배역이 그리 많지도 않았다. 그나마 1990년대에 출연했던 영화 <패자부활전>이나 <연풍연가> 같은 경우도 사실상 채널만 스크린으로 옮겨간 것뿐이지 내용 면에선 TV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감정선을 요구하는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같은 영화가 각별하게 다가왔다. 또 이명세 감독님이나 안성기, 박중훈 선배님 같은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찍을 기회가 그 당시엔 드물었으니까. 결국 30대에 접어들어 <친구>에 출연하게 되면서 점점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연기한 김 형사는 원톱도 아니고 투톱도 아닌 조연이었지만 결국 그런 이유가 있어서 선택한 것일 텐데, 본인의 표현을 빌린다면 어쩌면 그 시기야말로 배우로서 처음으로 스스로를 내려놓은 때가 아니었을까?

맞다. 그런데 그건 사실상 무언가를 얻기 위해 내려놓은 것이라 지금 내려놨다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영화의 메커니즘이나 시스템을 좀 더 잘 알아야 할 거 같단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드라마에서 해왔던 연기 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도 강했던 것 같다

어쩌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거친 캐릭터를 연기한 경험이 생겼기 때문에 <친구>의 동수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일단 <친구>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너무 재미있었다. 20대 후반이었던 당시에는 <대부>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처럼 비장하고 뜨거운 남자들만의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던 시절이기도 했고. 다만 조금 걸리는 건 사투리를 쓰는 캐릭터라는 점?(웃음) 사실 그 전까지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투리를 쓰는 주인공은 찾기 힘들었다. 게다가 동수는 악해 보이는 인물이기도 했고. 하지만 결국 그런 기우를 뛰어넘는 매력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물론 안 했다면 큰일날 뻔했지.(웃음)

<친구>의 동수는 장동건이라는 배우의 인상을 완전히 달리 이해하는 계기가 된 작품이었다.

분장 테스트를 하던 순간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잘할 수 있을 거 같고, 잘하고 싶은데, 한편으론 정말 어울릴지 걱정이었다. 어쨌든 머리를 짧게 자르고 건달들이나 입을 만한 화려한 의상을 입고 금 목걸이까지 찬 뒤 거울을 봤는데 생각보다 어울리는 거다.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확 생겼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연기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는 기대감 덕분에 신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없앨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에너지가 됐다.

야구를 좋아하니까 야구로 비유하자면 오른손 타자가 왼손 타석에 서서 홈런을 치는 쾌감이랄까?(웃음) 그런데 그 뒤로 계속 왼손 타석에 섰다. 그리고 <친구>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대단한 흥행을 기록했고, 두 작품은 장동건이란 배우의 존재감을 인정하게 된 계기가 됐지만 그 뒤로 <태풍>과 같은 작품에 출연했을 땐 연기력 논란을 겪었다. 아무래도 그만큼 대중이 기대하는 배우가 된 때문이기도 할 텐데, 한편으로 배우 입장에서 배신감이 느껴지진 않았을까? 이를테면 ‘그때는 그렇게 잘했다고 하더니’라는 식으로.(웃음)

솔직히 내가 남우주연상 후보만 다섯 번 오른 배우인데.(웃음) 배신감을 느끼기보단 그냥 내가 더 분발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다른 선배들도 그런 경우가 없지 않았던 것 같고. 무엇보다도 지금은 관객들에게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 1990년대부터 나를 본 관객들도 있겠지만 어린 관객들 중엔 현재의 나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 관객도 있을 거다. 그리고 연기에도 나름의 트렌드가 있다. 1980~1990년대에 통용되던 연기 방식과 지금 인정받을 수 있는 연기의 수준이란 것도 완전히 다르다.

과거에 함께 활동했던 배우들 중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배우들이 있다. 이를테면 이정재 씨가 그렇고, 김희선 씨나 아내인 고소영 씨도 오랜만에 연기에 복귀했다. 동시대에 함께 활동했던 배우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건 한편으로 반갑고 고무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오랜만에 복귀하는 분들도 있고, 지금까지 꾸준히 경력을 이어오고 있는 분들도 있는데, 모두 다 반갑다. 이정재 씨도 배우로서 부침이 없지 않았을 텐데 그런 과정을 이기고 계속 활동해왔으니 더 좋은 상황을 만날 수 있었을 테고, 더욱 단단한 배우로 남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어떻게든 여기까지 왔으니 이젠 뭔가를 더 보여주기보단 나를 위해 즐기고 싶다. 그래야 보는 사람도 즐겁게 내 연기를 볼 수 있을 거 같다.

이제야 즐기는 법을 알게 된 걸까?

그보단 즐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할까? 어쩌면 이제야 내가 품어야 할 책임감도 줄어든 거 같다. 실제로 현장에서도 예전보단 훨씬 즐겁게 일한다는 걸 느낀다.

실제 성격은 무딘 편이라 했지만 되짚어 보면 악바리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캐릭터에 자신을 반영해 연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내게 없는 부분을 가진 캐릭터에 더 큰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그게 연기할 때도 편하다. <7년의 밤> 촬영 전에 추창민 감독님과 논의하면서 캐릭터의 의상이나 헤어스타일을 파격적으로 선택했다. 처음에는 오영제라는 캐릭터와 딱히 상관없는 모양새를 만드는 것 같아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지 의심했는데, 사람이 가면을 쓰면 더 편해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장동건에게는 그런 게 필요할 거 같다는 말에 공감했다. <복면가왕>에서 가면을 쓰고 춤추던 사람이 알고 보면 의외의 인물인 것처럼. 돌이켜보면 <친구> 촬영 전에 의상 피팅을 할 때도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나를 드러낼 때보다 감췄을 때가 더 편하고 자유롭다. 그래서 그런 캐릭터들을 선택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파격적인 선택이라는 게 어떤 건지 구체적으로 물어봐도 될까?

음,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얘기해선 안 될 거 같다. 나는 이제 자주 봐서 그런지 그렇게까지 심하게 느껴지진 않는데, 어쨌든 소설과는 좀 다른 부분이 많다. 원작에서의 오영제란 캐릭터는 사이코패스라 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영화에선 조금 이상한 사람 정도랄까? 동네의 권력자 같은 느낌? 원작처럼 샤프하고 날카로운 느낌과 달리 영화에선 시골 마을에 군림하는 완고한 중년 아저씨 같은 느낌으로 각색됐다.

<이끼>의 이장 같은 캐릭터가 생각나기도 하는데.

맞다. 그런 캐릭터에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 같은 인물.

일단 원작 소설의 오영제는 악랄한 모순이 있는 인물이다. 자신이 학대하던 딸을 사고로 죽인 남자, 최현수에게 복수하겠다는 비틀린 소유욕의 모순. 그런데 지금까지 굉장히 독한 인물을 연기하긴 했어도 근본적으로 악한 인물을 연기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오영제는 첫 번째 악역이라 정의해도 될 거 같다.

그래서 오영제가 악인이 맞나 싶기도 하다. <7년의 밤>이 배우로서 매력적이었던 건 선과 악이 뒤바뀌는 아이러니 때문이었다. 선한 사람이 죄를 짓고 나쁜 사람한테 쫓기는 이야기니까. 그리고 오영제는 아이를 학대하긴 하지만 최현수와의 관계만을 두고 보면 그에게 잘못한 사람이 아니긴 하다. 역설적이지만 최현수는 선한 사람이지만 우발적인 사고로 애를 죽인 뒤 시체를 유기하고, 끝내 아들 하나 살리겠다고 수많은 사람을 수장시켜버린다. 결과만 두고 보면 오영제보다 최현수가 더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입힌다. 그리고 정작 악한 인물인 오영제는 딸을 잃은 피해자가 돼서 선한 인물에게 복수를 감행한다. 그래서 결국 나는 <7년의 밤>을 부성의 대결로 봤다. 물론 오영제의 부성은 왜곡돼 있고, 딸을 잃었다는 슬픔보단 자기 세계가 침범당하고 훼손됐다는 분노가 더 큰 캐릭터이긴 하지만 이런 모순이 내겐 재미있게 다가왔다.

캐릭터보다도 작품 자체에 끌린 것 같다.

원작 소설을 재미있게 봤다. 소설이 출간된 초창기에 봤는데 그 당시엔 판권까지 알아볼 정도로 꽂혀 있었다. 그런데 이미 판권이 팔렸다고 하더라. 그리고 나처럼 꽂힌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게 류승룡 씨였다.(웃음) 그래서 판권을 산 제작사와 류승룡 씨가 작품을 계속 빌드업하고 있었는데 내가 <7년의 밤>에 꽂혀 있다는 소문이 제작사 쪽에 들어가면서 출연 제안을 받게 됐다. 그리고 촬영하면서 느꼈지만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는 게 역시 어렵더라. 원작을 보면 심리 묘사가 대부분이라 그런 부분을 영화적 감정으로 소화하고 표현하는 게 만만치 않았다.

소설을 자주 읽는 편인가?

많이까진 아니고, 간혹 보게 되는 소설이 있다. 그러다 종종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느껴지는 작품을 만난다. <살인자의 기억법>도 그랬다. 그래서 판권도 알아봤는데, 이미 팔린 뒤였다.(웃음)

제작이나 연출에 대한 계획도 있나?

연출은 감히 엄두가 안 나지만 제작이나 기획에 대한 관심은 예전부터 있었다. 나이가 들면 물리적인 이유로 연기를 못 할 때가 올 텐데 제작은 가능할 거 같고, 배우로서 여건이 안 된다면 그런 방향을 찾아보는 게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싶다.

장동건 - 에스콰이어

스웨터, 셔츠 모두 가격 미정 버버리.

지난 9월 1일부터 차기작인 <창궐> 촬영이 시작됐다. 사극인데 한복 입은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사실 한복이 진짜 안 어울린다.(웃음)

광고 촬영 때문에 한복을 입으면 외국인이 한복 입은 느낌이란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걱정이 없지 않았는데, 테스트 촬영 때 보니까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아무래도 나이가 드니까 그런 건가.(웃음)

<창궐>의 김자준은 왕과 대립하며 왕권까지 노리는 인물이라고 들었다.

배우가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달라 보일 수 있는 캐릭터라 고민이 된다. 단순히 악역이라 정의할 수 있지만 <다크나이트>의 조커(히스 레저)처럼 파괴적인 인물로 가느냐, <더 록>의 험멜(에드 해리스)처럼 명분을 설득하는 인물로 가느냐에 따라 캐릭터의 관점이 달라지는 인물이다. 결국 연기하는 배우의 이해가 중요하다. 그래서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떤 식으로든 재미있게 촬영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친한 배우와 함께 연기하니까.

친한 배우란 아마 현빈 씨를 말하는 것일 텐데, 과거에 <친구>를 TV 드라마로 제작할 때 동수 역할을 두고 고민하는 현빈 씨에게 역할을 권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친구>에 출연할 때 내 나이가 서른이었는데 현빈 씨도 아마 드라마 제안을 받았을 때가 그쯤이었을 거다. 작품의 결과가 어떻든 간에 남자 배우가 그런 역할을 한번 해보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곽경택 감독님은 마초 영화의 장인이니까.(웃음) 어쩌면 <친구>의 동수이기 때문이라기보단 곽경택 감독님의 작품을 한번 경험해보는 게 남자 배우로서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단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시청률이 저조해서 미안했지.(웃음) 그런데 다행히 현빈 씨도 후회는 없다고 했으니까.

<창궐>의 크랭크업 예정일은 언제인가?

내년 1월 중이다.

아무래도 남은 한 해의 대부분을 영화 촬영장에서 보낼 거 같은데, 촬영 현장에 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됐을 것 같다.

이제 현장에 가면 선배보단 후배가 훨씬 많다. 스태프들도 그렇고, 심지어 감독님들도 나보다 어려지기 시작했다.(웃음) 그만큼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래서 더욱 선배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는 긴장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스스로 현장을 즐기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과거에는 6개월 동안 촬영 현장에 있어도 어느 스태프를 보면 저 사람이 원래 있었나 싶었다.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릴 여유가 없었던 거지. 그런데 요즘은 현장 구석구석이 다 보인다. 물론 즐겁기만 하면 안 되는데. 영화가 잘 나와야지.(웃음)

어쩌면 이제 중견 배우로서의 삶을 생각해볼 만한 나이일지도 모르겠다.

이순재 선생님은 지금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신다 하고, 현장에서도 정말 열정적이다. 안성기 선배님도 여전히 매일 운동하며 자기 관리를 하셔서 젊은 사람보다 근육량이 더 많을 거다. 그런 선배님들을 보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한때는 기억에 남을 만한 캐릭터나 작품을 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이젠 관객 곁에서 오래 활동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그만큼 선배님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결국 지금보다 더 많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최근 인터뷰들을 보니 잘생겼다는 말을 능청스럽게 잘 받더라. 나이가 들면서 군살이 붙는 대신 넉살이 붙었나 보다.(웃음)

옛날에는 공손하게 대답했는데 이젠 좀 재미있게 답해야 할 거 같더라. 사실 이젠 많이 내려놨다. 어차피 이제 얼굴에 주름도 많아졌고, 외모에 별로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아무래도 결혼 생활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놓게 되더라. 자기애가 좀 없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

결혼 생활과 육아가 인간 장동건에게 영향을 주는 만큼 배우 장동건에게도 영향을 미치나 보다.

애를 낳으면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진다. 내가, 내 인생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더라.

사실 아빠가 장동건이고 엄마가 고소영인 아이들은 자라면서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반대로 유명한 부모 때문에 자식들이 곤란해지진 않을까 염려되는 바도 있을 거 같은데.

당연히 있다. 요즘 아이들을 우리가 어렸을 때랑 비슷하게 생각하면 안 되겠더라. 자연스럽게 밖에서 뛰어놀고 서로 어울리는 환경이 아니니까. 이제 큰애 같은 경우는 엄마랑 아빠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정확하게 아는데,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자주 들여다봐야 할 거 같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됐는데 고학년 형들이 교실로 구경하러 온다고도 하더라. 그러니까 애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게 될 거 같다. 그래서 그런 이상한 느낌을 잘못된 감정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부모 입장에서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일종의 숙제지.

배우들과 야구단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아는데, 주변에 그런 고민을 나눌 동료 배우도 많을 거 같다. 그리고 요즘은 만나면 육아 얘기가 주된 화두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맞다. 다들 육아 얘기만 한다.(웃음) 이제 친한 배우 중에서 솔로인 사람은 주진모 씨랑 현빈 씨 정도인데, 현빈 씨는 자기가 겪어야 될 일이라 생각해서 귀담아듣는 편이지만 주진모 씨는 육아 얘기 되게 싫어한다. 자기랑 상관없으니까 그만 좀 하라고.(웃음)

예정대로라면 내년에 <창궐>이 개봉할 것이고 그 전에 <7년의 밤>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배우 입장에서는 보여줄 영화가 있다는 것만큼 긴장되고 흥분되는 일도 없을 것 같다. 그리고 25년 동안 배우라는 업을 갖고 살아왔음에도 여전히 장동건이 바라는 배우 장동건의 모습이 있을지 궁금하다.

사실 배우들끼린 배우라는 게 직업은 있지만 직장이 없는 일이라고도 이야기하는데, 그래서 작품에 들어갈 때 일종의 직장이 생긴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25년 동안 나름대로 한 직장에 몸담아왔던 셈이라 할 수도 있으니 그 안에서 좋은 선배이자 직업인으로서 동료나 후배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심은 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의지할 수 있는 좋은 동료로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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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 HONG JANGHYUN
헤어 임 정호
메이크업 김 성혜
스타일링 정 윤기, 권 혜미
출처
24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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