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준은 붙잡고 싶었다

이희준은 다시 살 것 같았다. 그 순간을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셔츠 조르지오 아르마니. 타이 라르디니.

브라운 슈트 맨온더분. 버건디 터틀넥 브로이어.

최근에 ‘테드’ 강연을 했다던데.

아마 10번 정도 거절했던 것 같다. 평소에 즐겨 봐서 잘 알지만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나오는 곳인데 나 같은 게 무슨.(웃음) 어쨌든 만나자고 하길래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공황장애를 앓은 경험을 단편영화로 만들었다고 하니 그 얘기를 해보자고 하더라. 배우니까 연기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의외라고. 게다가 테드 총PD가 한예종 영화과 출신 선배였다. 그래서 결국 하게 됐지. 처음엔 민망했지만 반갑게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다들 비슷한 강박을 느낀다는 걸 알았다. 자신이 뛸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빨리 뛰다가 넘어진 사람이 많더라.

공황장애 증상은 언제부터 느낀 건가?

5년 정도 됐다. 그게 공황장애라는 건 나중에 알았지만.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출연할 때 <게이 결혼식>이란 연극과 영화 <감기> 촬영도 병행했다. 좋은 제안이 들어와서 욕심이 나기도 했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타입이라 동시에 소화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드라마 촬영을 끝내고 급하게 공연장으로 가서 무대에 올라야 했었는데 공연 중에 갑자기 한 대사를 계속 더듬었다. “그럼 같이 나가서 찾아볼까?”라는 대사를 “같이 나, 나, 나, 나” 이렇게 더듬은 거다. 결국 “나가자”라고 정리해버렸는데 다들 실수가 아니라 애드리브인 줄 알더라. 이상하다는 걸 나만 안 거지. 하지만 난 그날 집에 가서 잠을 못 잤다.

간단한 실수로 넘길 순 없었나?

연기에 대한 욕심이 너무 커서 연기할 때만큼은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편이다. 문제는 그 공연에서 같은 대사를 할 때마다 다시 대사를 더듬는 경우가 생겼고, 그때마다 더 긴장하게 되면서 실수가 잦아졌다. 그런데 가까운 배우나 감독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오히려 “잘하면서 무슨 소리야?”라고 하니 미칠 노릇이었지. 그래서 대사 한마디 제대로 뱉지 못하는 배우로 전락하느니 대구로 내려가 치킨집이나 열어서 후배들 연기나 봐줄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그게 공황장애라는 건 어떻게 알았나?

틱 장애를 앓다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호전된 동료 배우에게 소개받은 병원에 찾아갔다. 그런데 의사가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더라. 의사 말로는 ‘자기를 너무 몰아붙여서 넘어진 것’이라 했다. 그리고 신경안정제를 처방해줘서 그 뒤로 증세가 나타날 때마다 몰래 약을 먹고 연기했다. 덕분에 증세는 완화됐지만 여전히 마음이 괴롭더라. 그러다 연극·영화 관계자 200여 명과 함께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에 참석했다가 질문할 기회를 얻게 됐다. 거기서 대사를 더듬을까 봐 연기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그래서 연기를 포기할까 고민하는데 연기가 너무 좋아서 쉽지 않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법륜 스님은 그럼 그냥 대사를 더듬으라고 하더라. 어차피 인물이 당황하는 상황이라면 그 마음에 공감하듯 더듬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그 얘길 듣고 나니 마음이 너무 편해졌다. 대사를 더듬은 뒤로 지옥에서 사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다시 생을 얻은 기분이었다.

블랙 터틀넥 까날리.

그런 경험을 단편영화로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그 뒤로 어느 새벽에 잠을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그런 기분을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컴퓨터를 켜고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된 이야기를 영화로 찍어서 소유하고 싶어졌다. 나를 위한 처방전이자 치료제로써 갖고 싶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괴로움을 겪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주변의 도움을 구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평소 알고 지내던 촬영감독, 미술감독, PD, 배우 등의 동료들에게 대본을 보여주면서 도움을 구했는데 흔쾌히 노 개런티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들이 17명 정도 모였다. 2주 동안 프리프로덕션을 하고 정확히 3회 차 촬영을 마친 뒤 지금은 편집 중이다. 타이트한 일정 속에 밤샘 촬영도 강행하는 등 힘든 상황이었지만 다들 열정적으로 참여해줘 내겐 그런 과정 자체가 감동이었다. 그리고 소속사에서 회식비를 지원해준 덕분에 삼겹살집에서 쫑파티를 했는데 다들 한 명씩 자기도 장애가 있다고 고백하더라. 누구는 주의력 집중 장애가 있고, 누구는 오염 강박 장애가 있고. 사실 그런 게 있다고 인정하는 게 더 어렵다. 내겐 그 모든 순간이 이미 영화였다.

혹시 연출가로서의 욕심이 생기진 않았나?

연출보다 연기가 훨씬 쉽다는 것 하나는 확실히 알았다.(웃음) 연출과 연기를 병행하니까 1초도 쉴 시간이 없더라. 감독으로서 계속 결정해야 하고, 동시에 연기도 해야 하고, 후반 편집까지 관여해야 하고. 물론 재미있는 부분도 있지만 너무 어렵더라. 부담도 너무 크고. 친한 만화가가 내 방에서 먹고 자면서 콘티 작업을 해줬는데 나중에 이런 얘기를 하더라. 내가 집에 들어와서는 세 글자만 내뱉더라고. 아이고, 아이고.(웃음) 아무래도 연출은 건강에 해로운 것 같다.

사실 지난 5년간 공황장애를 앓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탄탄한 연기를 선보여왔다.

그래서 더 두려움이 컸다. 잘했다는 얘길 들을수록 내가 이렇다는 걸 알게 될까 봐. 정작 정말 중요한 순간을 망쳐버릴까 봐. 한번은 “들어가세요”라는 대사가 안 나와서 한 장면을 10번 넘게 찍은 적도 있었다. 정말 죽고 싶더라.

자신에게 조금 관대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노력한다. 최근에 드라마 촬영 중에도 아쉬운 순간이 있었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계속 ‘괜찮아. 이만하면 잘했어.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혹시 촬영 중이라는 드라마가 노희경 작가의 리메이크작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인가?

맞다. 노희경 작가님을 왜 대단하다고 하는지 알겠더라. 작가님 대본에는 대사뿐만 아니라 인물의 행동까지 섬세하게 묘사돼 있다. 이를테면 “컵을 잡는다. 컵을 들려다가 말고 인물을 보지 않고 대사한다” 이런 식이다. 인물에 대해 정말 깊게 생각한다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좋은 배우가 많이 출연한다.

사실 원미경 선생님이 출연하신다고 해서 정말 하고 싶었다. 얼마 전에 선생님과 함께 <낫 플레이드>라는 단막극을 촬영했는데 연기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느껴져서 감동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 원미경 선생님과 만나는 건 한 신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너무 좋다.

<유나의 거리>를 통해 좋은 대본과 좋은 배우들이 있는 드라마의 강점을 충분히 경험했으니 더욱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유나의 거리>는 여전히 가슴속 깊이 남아 있는 작품이다. 그런 좋은 작품은 연기를 했다기보다 정말 그렇게 살았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다. 8개월 동안 다세대주택에서 살았던 추억을 되새기는 것 같다. 그 이후로 만나는 감독님들마다 <유나의 거리> 얘기를 하셨는데, 내가 그 작품을 만난 건 여러모로 행운이었다.

그런 작품을 마치고 나면 세상을 보는 시선도 달라질 것 같다. 하나의 작품을 끝낸 게 아니라 어떤 세계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 같다고 할까?

맞다. <유나의 거리> 덕분에 세상을 보는 눈이 정말 달라졌다. <유나의 거리>를 하고 나니 공사장 함바집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 아저씨들이 눈에 들어오더라. 그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싶고, 궁금해졌다. 나도 무일푼으로 서울에 올라와 고시원 생활도 해봤고, 막노동으로 벌이를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새 그런 시절을 잊었던 거다. 좋은 작품을 하면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는 걸 깨달았다.

베스트, 셔츠, 타이, 모두 조르지오 아르마니.

작품을 보는 눈도 달라졌을 것 같다.

몇 년 전에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라는 연극 무대에 섰는데 당시에는 그 작품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잘했다고 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인데 최근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대본을 보면서 문득 그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작품이 어렵게 느껴졌다는 의미를 좀 더 부연해줄 수 있을까?

대사가 어렵게 느껴졌다. 혼자 ‘썰’을 풀듯이 A4 용지 한 장 반짜리 대사를 해야 했는데 대사에 치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알겠더라. 대사를 뱉는 기술보다 그 인물의 마음을 아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노희경 작가님의 대본을 보니까 내가 지금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어쩌면 내가 남들보다 늦게 깨닫는 편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과정을 재미있게 느낀다는 건 배우로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배우로서 나이를 먹는다는 게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연기를 통해 삶을 배우는 사람처럼 보인다.

배우로 살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해보려 하지 않았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배우로 산다는 것이 고맙다. 한번은 수레에 기댄 채 몸을 구부리고 있는 할머니를 멀리서 봤는데 그 자세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허리가 아파서 괴로워하고 계신 거였다. 배우란 직업이 이런 것 같다. 사람들을 보다 자세히 보려 하기 때문에 더욱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일. 덕분에 사람을 관찰하는 것도, 드로잉하는 것도 좋아하게 됐다.

어머니가 미술 전공이라던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그림을 그리는 건가?

유년 시절에 볕 좋은 날 어머니께서 그림을 그리시던 게 기억난다. 그래서인지 그림에 대한 향수가 있다. 그림을 그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만큼 더 집중해서 관찰하게 되기도 하고. 주로 붓펜으로 사람들을 그렸는데 어느덧 노트로 30권 넘게 쌓였다. 아직 누구에게 보여줄 수준은 아니지만 일단 잘 보관하고 있다.

영화 <1987>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끈질기게 취재하는 기자 역을 맡았다고 들었다. 실존 인물을 바탕에 둔 캐릭터를 연기한 건 처음이다.

윤상삼이란 분이 실제 인물이었는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끝까지 조사해 가장 구체적으로 기사를 쓴 기자라고 하더라. 정말 잘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영화를 준비하던 시기에 국정 농단으로 인한 촛불 시위가 한창이었던지라 기자로서 그런 시절을 살았던 그분의 마음은 어땠을지 더 엄숙하게 고민했다.

기막힌 우연이지만 <1987>을 촬영할 무렵에 영화 속의 시대상과 유사한 분위기가 2017년 현실에서도 펼쳐지는 상황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현실의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

사실 바쁘다는 핑계로 촛불 시위에 못 나가다가 <1987> 시나리오를 받고 처음 나갔다. 1987년도 상황을 검색하고 영상을 찾아보는데, 만약 내가 저 순간에 눈감고 있었다면 지금 얼마나 후회할까 생각하게 됐고 지금 촛불 시위에 안 나가면 언젠가 후회할 거란 생각에 아내랑 같이 광장에 나갔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지더라. 덕분에 <1987>의 상황에도 더 공감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사실이 실화라는 것 자체가 너무 원통했다.

<최악의 하루>의 운철이나 <여교사>의 상우를 보면서, 이희준이라는 배우가 실제로 저렇게 능청스럽고 뻔뻔하고 염치 없는 인물인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진짜 같았다.

덕분에 여성 관객들에겐 많은 욕을 먹었지만 일단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다.(웃음) 개인적으론 두 사람이 완전히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운철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보면 너무 몰염치해서 웃기지만 운철의 입장에서 그 영화의 결말은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일이었을 거다. 그래서 “어떻게 진실이 진심을 이겨요?”라는 대사의 진심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운철이 너무 웃겨서 웃음을 참는 게 힘들었다. 그리고 <여교사>의 상우는 자존심 하나밖에 남지 않은 인물이라 그 입장이 아프게 느껴졌지만 역시 내 입장에선 너무 웃긴 인물이었다. 특히 파리에서 아는 형이 출판사를 열었다면서 의기양양하게 가방을 싸는 장면이 너무 우스웠다. 내가 보기엔 아무리 봐도 파리를 갈 만한 입장이 아닌데 그러고 있으니까. 그래서 얘 진짜 파리를 가겠다고 이러는 게 맞느냐고 감독님한테 물어보기도 했다.(웃음) 그런데 내가 연기한 최고의 비호감 캐릭터는 아무래도 <해무>의 창욱인 것 같다. 심지어 제작자로 참여한 봉준호 감독님이 손을 잡고 말했다. “희준 씨, 이제 멜로 같은 건 다신 못할걸.”(웃음)

연기했던 캐릭터에 대한 여운을 잘 지워내는 편인가?

금방 털어내는 편이긴 하지만 힘들 때도 있다. <미옥>에서 손발이 묶인 채 수조에 갇히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촬영을 끝낸 뒤 3일 정도 우울하고 멍한 기분을 느꼈다. 연기라는 게 ‘가짜’를 표현하는 간접경험이긴 하지만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선 언제나 ‘진짜’로 연기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사람들도 진짜 공감할 테니까. 그만큼 배우에게 연기란 직접경험으로 와닿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긴 어려운 것 같다. 예를 들어 사람을 때리는 연기를 하고 나면 여러모로 찝찝하다. 그래서 늘 작품이 끝나면 등산을 갔다. 혼자 몇 시간씩 산행을 하면서 내가 연기했던 인물을 떠나보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 때문에 한 작품을 끝낸 뒤 다음 작품에 바로 들어가게 되거나 두 캐릭터가 겹치면 힘들다. 확실히 더 많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고생해서 촬영한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배우 입장에선 아쉬울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럼에도 영화에 대한 애정을 피력해야 한다는 게 더 힘들 것 같기도 하고.

배우와 스태프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 때문에 그만큼 안타까울 수밖에 없지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니까 결과를 받아들이고, 미련을 갖지 않으려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장에서 얻은 재미와 의미를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대화를 해보니 크게 낯을 가리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원래는 그랬는데 요즘은 자리에 따라 말을 가리는 편이다. 얼굴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조심성이 생겼다. 진심이 늘 통하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 것 같고. 어쩌면 예전보다 조금 더 철이 들었다고 할까. 그리고 어차피 배우는 말보다 연기로 보여주면 되는 직업이니까.

올해 안에 <1987>이, 내년에는 <미쓰백>과 <마약왕>이 개봉할 예정이다. 연기로 보여줄 기회가 줄을 서 있는 셈이다.

누가 그랬다. 갈아놓은 밭이 많다고.(웃음) 김윤석 형님이나 김상호 형님이 말했던 거 같은데. 어쨌든 아직은 연기가 너무 재미있다. 그러니 일단 따라가보는 거지.

  • Kakao Talk
  • Kakao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