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의 흔적

평소에 미래지향적인 이적이 모처럼 맘껏 돌아보았다.

박_오랜만에 새 앨범이 나왔습니다.

이_고민을 했어요. 정규 앨범을 낼 것인지, 아니면 조금씩 몇 곡씩 낼 것인지, 한 곡을 낼 것인지. 결국 겨울과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들을 먼저 내자고 결정했어요. <흔적>이라는 정규 앨범을 2018년 가을이나 겨울쯤 낸다고 하고, 이번에 <흔적> 파트 1을 내고, 봄에 2를 내고, 그다음에 가을, 겨울에 추가하고, 곡 수는 정확하지 않지만 그걸 다 모아서 정규 앨범을 내는 형식으로 해보자 싶었어요. 처음 하는 방식이에요. 따로 낸다고 해도 연결되는 정서는 있어요.

신_<고독의 의미>처럼 스토리텔링이 있는 음반을 기다렸어요. 그걸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고요. 역시 방식을 바꿔야 하는 환경이군요.

이_어떤 노래가 정규 앨범 수록곡인지 싱글인지 사람들은 관심이 없어요. 지금은 30~40대까지도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들으니까 앨범을 내도 사람들이 쭉 듣는 환경이 아니에요. 저는 제 곡이 다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 어필하고 싶죠. 앨범에 12곡이 들어가 있다면 사람들이 ‘12곡을 언제 들어. 회사 가는 동안 다 못 듣겠네?’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3곡이라면 ‘10분쯤 투자해서 들어봐야지’ 정도는 될 것 같아서요.

박_그러면 한 곡만 낼 수도 있잖아요?

이_그건 그래도 좀… 곡 사이의 긴장감이나 흐름이라는 것도 있는데 한 곡씩 내면 그런 게 없으니까 너무 쓸쓸한 것 같아요. 한 곡 냈는데 확 없어져버리면 뭘 냈나 싶을 것 같아서요.

박_앨범에는 그 흐름이 있죠. 이 사람의 음악을 이어서 듣는다는.

신_ 왜 첫 곡이 ‘나침반’이에요?

이_사실 무슨 곡이 첫 곡이 돼도 상관없어요. 어떤 곡을 쓰면서 ‘이게 12곡짜리 앨범의 일곱 번째 곡이다’ 이런 식으로 쓰지는 않거든요. 한 곡을 고르는 건데, 왜 이 곡을 타이틀곡으로 했냐고 물으신다면… 좀 더 저 같았어요. 노래 안에는 얼굴이 많은데 이 곡에는 저랑 같은 점이 좀 많았어요.

박_4년 전에 낸 직전 앨범의 타이틀곡은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었어요. 그동안 이적이라는 사람이 많이 변했나요?

이_아마도 변했겠죠. 가사로만 볼 수는 없지만 왠지 이번에는 지금의 저를 좀 더 보여야 할 것 같았어요. ‘나침반’은 조금 더 이적이구나 싶어요.

박_지금의 내가 많이 반영되어 있네요.

이_그렇죠, 어쩔 수 없이.

신_언제든 그렇지 않았나요? 항상 이적이었던 것 같은데.

이_그렇죠.(웃음) 어디 가겠어요? 뛰어봐야 거기지.

박_가정을 해볼게요. 음반업계가 하나도 안 바뀐 거예요. 그래서 지금도 10~15곡짜리 풀 앨범으로 가수 활동이 가능해요. 그런 세상이라면 이적의 활동이 지금과 달랐을까요?

이_음악 듣는 환경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한탄조로만 하는 건 아니에요. 예전에는 제가 CD를 잘라서 내고 싶어도 못 했어요. 지금은 그 싱글 시장이 생긴 거예요. 그러니까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이 있죠. 단 앨범을 쭉 듣는 문화가 사라졌어요. 파일로 들으면 ‘내가 왜 12곡을 쭉 들어야 돼?’라고 생각하는 게 잘못된 욕망이 아니잖아요. 이거 듣다 저거 듣고, TV도 그렇게 소비하고.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죠. 1시간 정도 내게 올인해주는 사람이 많이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박_대신 음악 시장이 공연 시장으로 재편되면서 1시간 동안 내 CD를 듣던 사람들이 2시간 동안 나를 보러 오잖아요.

이_요즘은 공연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어떤 사람이 이 노래도 있고 저 노래도 있으면 ‘한번 가서 들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지금 막 시작하는 친구들에게는 공연 시장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몇몇 사람이 공연 시장이 커질 거라 했고, 미국 공연 시장은 커지기도 했는데, 우리나라는 그게 잘 안 돼요. 뮤지컬 시장은 커졌지만, 음악 시장과 뮤지컬 시장은 다른 시장이에요. 한국 공연 시장이 막 커진 것 같지는 않아요.

박_뮤지컬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한 적도 있었죠?

이_어렸을 때 특히 그랬어요. 20대 때. 그때 “30대에 뭐 할 거예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아마 음악극을 만들고 있지 않을까요?”라고 했어요. 제가 20대 때는 앨범을 내고 콘서트를 하는 선배가 굉장히 적었거든요. 대부분 제작자를 하거나 다른 일을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40대까지 왔는데 아직도 앨범 내고 공연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음악극을 만드는 일이 계속 뒤로 미뤄지고 있어요. 제가 음악극을 워낙 좋아하고 관심이 있고, 제가 하고 싶은 음악극은 제가 쓴 이야기에 제가 쓴 노래로 만드는 극이에요. 그걸 하려면 제가 그걸 써야 하잖아요. 제가 예전에 낸 <지문사냥꾼>이 ‘뮤지컬을 하면 이런 게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쓴 이야기예요. 그 이야기는 있지만 대본을 쓰는 건 새로운 쓰기니까 시간이 필요한 거죠. 곡을 쓴 후 그걸 앨범으로 내서 사람들과 호흡할 수 있는데, 제가 뮤지컬에서만 쓸 수 있는 곡을 쓰는 건 아니에요. 하다 보면 ‘앨범을 내지’가 돼요. 뮤지컬 쪽 프로덕션은 과정도 지난하고 잘될지 안될지도 모르고, 실무 경험도 없는 상황이라서. 이러다 50대쯤 하지 않을까요?

박_역으로 그만큼 가수 생명이 길고 훌륭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네요.

이_되게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대표 형과도 이야기해요. “그래도 이 나이에 공연하면 1만 명이 오고, 이럴 줄 알았나.” 저도 몰랐거든요.

박_이적이요? 왜요?

이_제일 인기 있을 때도 1만 명이 안 왔거든요.(웃음) 지금은 개인 공연으로는 가장 많은 관객 수를 매년 갱신하고 있어요. 공연 시장은 아이돌이 아닌 이상 나름 검증이 됐다는 사람들도 관객에게 믿음을 주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죠. 저는 이제 관객의 믿음이 쌓인 것 같아요, 어느 정도는.

신_20~ 30대 때에 비해 여러 가지가 쌓인 거군요. 곡도 쌓이고, 세대가 쌓이고.

이_제 공연이 매진되기 시작한 게 2007년부터였던 것 같아요. 이런 얘기를 하면 후배들이 나름 용기를 얻어요. 후배들도 제가 처음부터 잘됐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이적 팬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저 사람 공연을 한번 보고는 싶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오셔야 공연의 크기가 커지더라고요.

박_내 노래가 내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 알려지려면 방송 활동이 필요한가요?

이_보면 상황에 따라 달라요. 제가 예능에서 웃긴다고 사람들이 공연에 오지 않아요. 경연 프로그램에 나온 제 노래가 몇 곡 있어요. 허각의 ‘하늘을 달리다’나 인순이 누나의 ‘거위의 꿈’처럼. 그런 곡들은 공연하고도 당연히 연결되고, 저라는 사람의 지난 커리어를 한 번쯤 돌이켜보게 되기도 해요. ‘이적이 이런 노래도 있지’라는 인식을 주는 데는 도움이 됐죠.

박_‘이런 노래’라는 말씀이 20년 동안 조금씩 바뀐 것 같아요. 저는 패닉의 ‘아무도’를 TV에서 본 세대예요. ‘아무도’가 1위까지는 못 했잖아요. 한 7위까지 했을까.

이_10위 정도 했을 거예요.

박_그때의 이적은 화난 소년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그걸 듣다 이번에 ‘나침반’을 들으니 ‘그때는 굉장히 화나 있던 형이 스스로를 지탱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잔잔한 노래를 만드는 남자가 됐구나’ 싶었달까요. 제게 이적은 모르는 사람인데도 머릿속에 이 사람의 이야기가 쭉 이어졌어요.

신_저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에요. 이런 말을 써도 되나 싶은데, 이적이란 사람을 아는 것 같은 거예요. TV에서 본 게 다인데도, 이적의 인생을 알고 있고 가까이서 본 것 같은 느낌? 비슷한 인생을 산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요.

이_제 노래를 들은 세대가 다양해요. 저와 같은 세대라면 그러실 거고요, 지금 어린 친구들은 ‘다행이다’나 ‘하늘을 달리다’까지 알아요. 대체로 패닉과 저를 연결시키지 못해요. “패닉 들어봤는데.” “이적이 하던 거야.” “아, 진짜?” 이렇게 되는 거예요.

신_카니발은?

이_카니발은 더 모르죠.

박_긱스는?

이_당연히 모르죠. ‘오피셜리 미싱 유’ 긱스만 알지.(웃음) 더 어린 친구들은 ‘무도 나온 아저씨’로 알아요. ‘말하는 대로’를.

박_저도 인터뷰 준비하면서 ‘이적 긱스’를 찾아보니 ‘라이언 긱스 이적설’이 먼저 나와서….

이_검색하기 정말 어려워요. 요즘 같은 때는 더 이적이 많고. 농구도 야구도 이적이 있으니까 이적을 찾기가 어려워요. ‘가수 이적’으로 검색하면 또 어느 가수 소속사 이적이 나오고.

박_그런 개념이 없을 때 데뷔했으니까요.

이_그때 네이버나 검색엔진이 있었다면 쳐보고 ‘이건 아닌 것 같다’고 했을 것 같아요.(웃음)

박_처음부터 이름에 ‘피리 적’ 자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_한 글자 이름을 쓰고 싶었어요. 생각해보다 ‘적’을 넣었는데 느낌이 좋았어요. 이름에 칼날이 있는 것 같은 느낌? 나중에 혹시 어르신들이 “이 이름을 한자로 어떻게 쓰나?”라고 하면 뭐라고 할까도 생각했어요. 저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좋아해요. 음악의 마술적인 힘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이게 다 맞아떨어지는구나 싶었죠. 어감으로는 ‘내가 적이다’, ‘내가 만드는 게 이적 표현물이다’도 있었고요.

박_늘 곡을 쓰나요?

이_‘곡을 써야지!’가 아니라 작업실에서 뒹굴뒹굴하다가 영화도 보다가 책도 보다가 기타나 피아노를 쳐보다가 ‘괜찮은데?’ 해서 곡이 나와요. 요즘은 전화기에 음성 메모를 넣고 1~2년 후에 들어봐요. 발전시킬 것들을 새로운 귀로 고르는 거예요.

박_멜로디와 가사가 함께 떠올라요?

이_대부분 곡을 먼저 써요. 음이 먼저 나오고 그 음을 편곡하기도 하고, 부르기도 해요. 그러다 보면 노래가 지닌 정서가 올라와요. 다른 사람의 곡을 받아서 가사를 쓰는 것과 사실 같은 작업이에요. 정확한 그림을 모르다가 (음과 말이) 붙는 거죠. 그게 오면 확 한순간에 써요. 쭉. 10~20분 안에. 그렇지 않고 하다가 막히잖아요? 그럼 뭔가 잘못된 거예요. 곡이 잘못됐거나 가사 접근이 잘못됐거나. 그럼 곡을 버리거나 다시 또 듣다 붙이는 거죠.

박_이른바 대중의 반응은 어렵게 만든 곡이 좋아요, 쫘르륵 만든 곡이 좋아요?

이_쫘르륵 만든 게 좋아요. 무조건 그래요. 자꾸 고쳐야 되는 곡이나 가사는 앨범에 안 넣는 경우가 많아요. 노래는 시와 달라요. 실시간으로 지나기 때문에 그 흐름 안에서 납득이 되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요. 멋있는 말을 쓰고 고쳐도 듣는 사람에게는 가지 않아요. 직관적으로 가야 해요.

신_어떤 가수는 가사를 먼저 쓰기도 하죠.

이_그런 분도 많아요. 제게 제일 좋은 칭찬은 “가사랑 곡을 같이 쓴 것 같아요”, “가사를 먼저 쓴 것 같아요”예요. 그만큼 가사와 곡이 딱 붙었다는 이야기니까. 그렇게 쓰기가 되게 어려워요.

박_이적의 노래는 확실히 이적에게 최적화된 느낌이 있어요. 음을 만들고 말을 붙이는 동시에 보컬까지 자신의 목소리죠.

이_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경연 프로그램에서 제 노래를 불렀는데 잘된 경우는 몇 없어요. 제 노래를 막상 다른 사람이 부르면 심심해요. 드라마틱하지 않고. 정서 전달이 좀 다르게 되기 때문에 가사가 죽을 때도 있고. 저는 누군가 제 노래를 한다고 하면 “다른 좋은 노래 해”라고도 했어요.

신_득음하는 순간이 있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음을 다룰 줄 아는 가수가 되었다고.

이_이게 제 입으로 얘기하긴 그런데, 노래가 되게 늘었어요. 되게 뿌듯해요. 요즘 “우리가 늙지만 말고 늘기도 하자”고 하거든요. 주름만 늘지 말고. 데뷔했을 때 저는 저를 보컬리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 음악을 하려 진표 불러서 패닉을 하는데 노래할 사람이 없어서 제가 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변칙적으로 노래했어요. ‘이 노래는 내가 만들었으니까 이렇게 부르는 거야’라고 생각하고 듣는 사람도 ‘쟤는 참 노래를 특이하게 한다’고 생각하고. 그때 사람들이 제게 가창력 있는 가수라고 하지는 않았어요. 음악성 있는 가수라고 했지.(웃음)

신_방향이 바뀐 계기가 있었나요?

이_제일 큰 훈련은 밴드 긱스 시절이었어요. 긱스는 각자 똑같이 숫자를 맞춰 곡을 썼어요. 남의 노래를 불러야 했죠. 저는 제 보컬의 특성을 아니까 제가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썼는데 남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멜로디가 도약도 심하고. ‘랄랄라’ 같은 노래는 “하얀 겨~울에/ 우리 모~두” 같은 도약이 특히 심했는데, 그걸 뛰어다니면서 부르려면 돌아버리는 거예요.(웃음) 그리고 서울 외 지역 공연을 다니다 보면 스피커도 없는 공연장이 있어요. 그러면서 제가 어렸을 때 안 했던 훈련을 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하늘을 달리다’ 같은 것도 자신 있게 쓸 수 있었어요.

박_저는 이적이 본인의 보컬 특성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만든 노래가 ‘하늘을 달리다’라고 생각했어요. 저음으로 시작하다 이적 특유의 톡 쏘는 고음을 탁 치는.

이_그 노래는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는 나를 상상하면서 만들었어요. 여기서 ‘아!’ 하면서 뛰기 시작해서, 막 이런 그림을 그리죠. 노래할 때 고음을 치는 건 극히 일부예요. 피아니시모를, 제일 작은 소리를 잘 내는 게 진짜 어려워요. 읊조리는데도 사람들이 ‘아’ 하는 반응을 만들어내는 게 되게, 말하듯이 부르는 게 되게 어려워요. 여러 과정을 통해서 어느 순간 옛날에는 안 되는 게 되니까 노래가 재미있었어요. 옛날엔 당일에 드라이 리허설하며 노래하다 목이 나가서 본방송 때 노래를 못 한 적도 많았어요. 그러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밀듯 당기듯 전하는 게 어느 정도는 되는구나’라고 느끼며 지금까지 왔죠. 아직 그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박_비교가 되는 두 노래가 있네요. 패닉 2집의 ‘강’과 솔로 3집의 ‘소년’. 둘 다 읊조리는 건 같은데 ‘강’의 보컬에는 장식적인 효과가 들어 있었어요. ‘소년’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네요.

이_그 노래도 지금 하면 더 좋을 거예요. 계속 나아진다는 걸 믿고 가수를 하는 것 같아요.

신_대화도 잘하나요? 음악인에게 요구되는 게 노래뿐 아니라 소통 능력도 있을 것 같은데요. 라디오가 되었든, 소극장 공연에서의 관객과의 대화가 되었든. 말씀을 잘하시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쓰면 바로 글이 되고, 단어 선택이 정확하고.

이_좀 그렇긴 해요. 그래서 예능을 하다 보면 좀 걸려요. 좋은 이야기를 해도 그 이야기를 앞뒤 없이 툭툭 해야 하는데 저는 상황을 정리해버리니까.

신_원맨쇼할 때는 좋겠군요.

이_혼자 공연할 때는 좋죠. 라디오도 그런 의미에서 좋긴 하지만 저는 아주 좋은 라디오 진행자 같지는 않아요. 정리해서 말하니까 청취자들이 약간 거리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DJ 중에서는 청취자와 같이 울거나 아주 영리해서 같이 우는 척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그 둘 어느 쪽도 아니에요. 제가 스스로를 볼 때 그런 이미지가 있어요. ‘너 똘똘하다’ 싶은, 약간 재수 없는 거리감? 그런데도 20~30대 분들이 저를 편하게 대하시는 건 예능의 힘이 되게 커요.

신_그것 때문에라도 예능에서 좀 더 솔직한 모습을 보여준 건가요?

이_‘못친소’를 본 사람들이 제게 “으이구 맹꽁이”라고 해주는 게 너무 좋아요. 예전의 제게는 쉽게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거든요. 전에는 호오가 갈렸다면 지금은 친근감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요.

박_그런 변화를 이적의 진성 팬은 이해하나요?

이_진성 팬도 이제 연세들이 있으셔서 되게 좋아해요.(웃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 쪽 뮤지션들이 예능 프로에 나가면 변절했다고 했어요. 심야 라디오를 해야지. 어쩌다 라디오 특집을 해서 예능에 나가면 텃세도 있었어요. ‘TV 안 나오시는 분이 왜 나오셨나. 고귀하신 분이 어쩐 일로 오셨나’ 같은 분위기가 있었죠.

박_그러게요. 짝짓기 예능 프로그램도 많았는데.

이_그게 바뀌기 시작한 게 <무한도전>이에요. 그 전의 예능은 사람을 데려다 이미지를 막 소비한 다음에 버리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무도>는 나온 사람들을 빛나게 해줬어요. 시청자들이 패널을 잘 모르면 자막도 막 띄워주고 캐릭터가 생길 때까지 인내해주고. <에스콰이어>에서 인터뷰하자고 하면 하는 거랑 비슷한 거죠. 엄한 얘기가 아니라 좀 다른 얘기를 하니까 여기라면 할 수 있다는 것처럼. 그래서 <무도>에서 같이 하자고 했을 때 되게 기뻤어요. 그사이에 사람들 생각도 많이 바뀐 거죠. 엄숙주의가 많이 없어졌고, 그러는 동안 예능이 영화까지 밀어내고 콘텐츠업계의 중심으로 온 거죠.

박_이적과 함께하던 다른 음악인도 다들 나이가 들었어요. 어떤 사람은 프로듀서가, 어떤 사람은 방송인이, 어떤 사람은 시대의 투사가 되었죠. 이적은 그때는 가장 사회적인 일에 목소리를 내던 사람이었어요. 그러던 사람이 지금은 오히려 노래 자체에만 집중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이_제가 사업을 잘했다면 LJ 엔터테인먼트를 할 수도 있었겠죠. 저는 제작 쪽으로는 감각도 없고 관심도 없어요. 프로듀서도 제 코가 석 자예요. 남의 곡도 가끔 친한 사람이 부탁하면 만들어주고요. 노래하는 게 점점 즐거워지면서 소극장 투어만 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박_한때는 이적이 변했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나 ‘벌레’를 부르던 사람이 ‘다행이다’를 부르고 신용카드 광고에 나오니까. 그런데 좀 더 있다 보니 다들 각자의 음악을 하지만 진짜 내 노래를 계속 만들고 내 목소리를 끌어올리는 사람은 이적이었어요. ‘나침반’을 들으면서도 생각했어요. 이 사람은 계속 자기 길을 가고 있었구나.

신_늙지만 말고 늘기도 하면 멋있게 늙는 거죠.

이_패닉 2집 같은 경우는 칼날이 제 밖에 있었어요. 그 칼날이 어느 순간 제 안쪽으로 들어갔어요. 저는 정치적으로는 항상 진보적인 선택을 했어요. 많은 부분에서 우보다는 좌에 가까워요. ‘노래를 통해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너 자신이나 잘해라’가 되더라고요. 제가 봤던 사회의 수많은 악 같은 요소가 제게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반성적인 곡을 쓰게 되고요. 물론 타이틀곡은 러브 송적인 면이 있지만 앨범은 나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예요. 패닉 3집부터 나를 좀 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 사람이 밖에다 이렇게 이야기하더니 왜 안 하느냐” 같은 말도 있었죠. 저는 사실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어요. 뭐가 문제라고 할지 조심스러웠어요. 제 안을 들여다보니 내가 남에게 노래로 뭔가를 설파해서 어느 방향으로 가자고 할 일이 아닌 것 같았어요. 그래서 기존에 쓰던 노래를 덜 쓰고 좀 더 스스로를 반성하는 쪽으로 간 것 같아요.

박_‘빨래’ 같은 노래도 이적의 변화에 포함되나요?

이_그렇겠죠. 사랑 노래를 안 썼던 이유는 사랑 노래 쓰는 게 제일 어려워서였어요. 사랑 경험이 많지 않은 제가 사람들을 사랑 노래로 절절하게 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안 그런 가사는 잘 쓸 수 있었어요. ‘왼손잡이’를 누가 쓰겠어요.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를 그 당시 한국 작사가 중 누가 쓰겠어요. 그리고 가요계에 워낙 사랑 노래가 많다 싶기도 해서, 안 그런 노래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다른 노래를 쓰다 보니까 어떤 면에서는 피해서 가는 느낌도 있는 거예요. 정면 승부를 안 하고.

신_사랑 노래가 메인스트림인데.

이_한 번쯤은 정면 승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요. 그래서 ‘레인’ 같은 노래를 최초의 사랑 노래로 쓴 거예요. 그게 지금까지 오래오래 나와서 세월이 스테디셀러로 만들어줬는데 그 당시에는 안됐어요. 그래서 사랑 노래를 써봤죠. 오기가 생기니까. ‘아리랑’을 들어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가니까 ‘너 잘되나 봐라’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하기 전엔 그걸 러브 송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러브 송이 정말 사랑에 대한 에피소드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가장 깊은 서러움, 그리움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거죠.

박_감정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이_그 노래를 여기서도 저기서도 부를 수 있고요. 사람들이 ‘왼손잡이’를 부르는 순간은 정해져 있지만 ‘하늘을 달리다’는 더 많은 곳에서 부를 수 있어요. ‘하늘을 달리다’도 들어보면 러브 송이에요. 저는 그런 의미의 러브 송을 써보자고 생각했어요. 생각해보니 러브 송인 노래.

신_그렇게 사랑을 했는데 그다음 앨범이 ‘고독의 의미’였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 중 하나이기도 해요. 갑자기 굉장히 깊은 내면의 고독, 남자의 어떤 슬픔, 이런 것들이 쫙 퍼져 나와요. 왜 사랑 다음이 고독이었어요?

이_건강보험공단에서 ‘생애 전환기 암 검진’ 우편물 같은 게 오는 나이가 만 40세더라고요. 저는 그 말이 너무(웃음) 직설적으로 느껴졌어요. ‘너 지금 반환점 돌았어’ 같은 느낌.

신_너 살아왔고,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

이_지금까지가 오르막이었다면 앞으로는 내리막, 마라톤이면 터닝 포인트를 돌았다는 느낌. 서른 살 때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이 지나갔어요. 그런데 40대가 된 나는 ‘벌써 반환점을 돈 건가? 노화는 예전부터 시작됐겠지만 세포들이 내가 느낄 정도로 기능이 떨어지는 건가? 이렇게 가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면서 고독이라는 정서에 휩싸였어요. 40대가 된다는 건 사람에게 좀 큰 충격이구나 싶었어요. <고독의 의미>라는 앨범은 잘 아는 사람이라도 ‘내가 이 사람을 정말 잘 아나?’라는 생각이 들 때에 대한 이야기예요. 사이가 안 좋은 것도 아니고 되게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우리는 각자 닿을 수 없는 고독한 선들인가?

신_‘고독의 의미’에 대해서는 저희 둘이 의견이 달랐어요. 박찬용 기자는 ‘다 이뤘는데 왜 고독일까’라고 생각하고 저는 ‘다 이루지도 않았고 당연히 고독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내게는 내가 믿었던 세상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느낌도 강한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봐도 ‘뭔가 이뤘고 안정적인 사람처럼 보이는데 왜 자꾸 고독을 말하지?’라고 생각하나 싶기도 했어요.

이_좀 쓸쓸한 건 있어요. 특히 후배들이 저를 자꾸 40대 남성으로 대할 때. 저도 어릴 때는 농담했죠. 나이 많은 선배들한테 “아유, 환갑이 내일모레인데” 이런 이야기 하잖아요. 듣는 사람은 그게 팍 오는 거예요.

신_그게 설명 못 할 고독과 쓸쓸함으로 다가오고 이해받기도 어렵죠. 설명하면 처량해지고.

이_구차하고. “그럼 어떤 대접을 바라는 거야?”라고 하면 “아, 그게 아니라…” 하게 되고.

신_저는 ‘그땐 그랬지’를 군대에서 불렀던 세대예요. 고참 선임들이 장기 자랑해보라고 할 때 아는 노래가 그것밖에 없어서.

박_외람되지만 고참들이 좋아할 노래는 아닌 것 같은데요.

신_군 생활 내내 고생했어요. 어쩌면 평생 ‘그땐 그랬지’ 하는 것 같아요. 30대 때도 그땐 그랬지. 40대 때도 그땐 그랬지. 20대 초반에도 그땐 그랬지. 하지만 이적의 노래는 그 순간을 담죠. 당시에 그랬던 것들. 인생이 화두죠. 화자는 나. 이적 자신.

이_실시간으로 동시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저는 되게 미래지향적이었어요. 그게 40대가 되니까 변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심심함은 있어도 외로움은 모르던 사람이에요.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고독을 느끼기 시작한 건 40대부터였어요.

박_이적은 늘 뭔가에 맞서고 있었던 것 같아요. 패닉에서는 젊은 남자가 싫은 게 많이 보이는 세상에 맞서고 있었고, 그러다 나의 고민과도 맞서기 시작했고. 대놓고 맞선다는 메시지가 드러나지는 않아도 나 스스로 숙제를 만들어 나와의 한계에 맞서서 사랑 노래도 만들고 고독 노래도 만들었고요. 이제는 어떤 존재로 인해 힘을 얻는 것에 대한 노래를 만들었네요.

신_나아가려고 하는 거죠.

박_책 많이 읽죠? 지금은 어떤 책 읽어요?

이_로스 맥도날드의 <소름>, 거의 다 읽어가고 있고요, 조선희 씨의 <세 여자>,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가장 위대한 실수>를 읽고 있어요.

박_비틀스도 여전히 좋아해요?

이_네. 예전처럼 막 미친 듯이 듣지는 않지만요. 오전에 헬스클럽에 잠시 갔는데 거기서 <비틀스 에잇 데이즈 어 위크>를 하더라고요. 투어 다니는 영화. 보는데 막 가슴이 쿵쿵 뛰는 거예요. 시들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진짜 비틀스를 좋아하긴 하는구나 싶었어요.

박_저는 ‘20년이 지난 뒤’가 이적판 ‘웬 아임 식스티 포’ 같기도 했어요.

이_‘20년이 지난 뒤’는 제가 가사에도 ‘비틀비틀’이라고 썼어요.(웃음)

박_귀여운 오마주네요. ‘다행이다’는 아내를 생각하면서 만들었다고 했어요.

이_‘하늘을 달리다’의 “귓가에 울리는 그대의 뜨거운 목소리”도 그때 사귀던 지금 아내였어요. ‘정류장’은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썼고요. 저희 어머니는 우리를 독립적으로 키우셔서 한 번도 그런 식의 액션을 하신 적은 없지만요. ‘다행이다’는 ‘누군가 완전히 나를 이렇게 전적으로 믿고 응원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썼어요.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내 치부를 보여줘도 그것까지 안아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어요.

박_이번에 ‘나침반’을 만들 때는 딸들을 떠올렸다고 했어요. 아내와 아이는 스스로의 노래나 자아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이_아이들에게 저는 거의 작은 세계이거나 완벽한 존재예요. 뭘 고쳐달라고 하면 고쳐주고, 해달라면 해주고, 모르는 거 있으면 대답해주고, ‘보잘것없는 나라는 존재가 되게 대단한 줄 아는 존재가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미안하기도 하고.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야’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벅차기도 하고, 책임감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이에요. 아이를 키우는 게 나를 키우는 느낌이에요. 저 어렸을 때 모습이 나와요. 제가 잃어버린 정서들이 나와요. 나도 정말 말도 안 되는 걸로 짜증 내고 상처받고 기뻐하던 것들이 막 다시 생각나요. ‘나란 존재가 이런 과정을 겪었구나’ 싶어져요. 그게 굉장히 큰 공부예요. 나라는 사람에게 이런 밑바닥이 있구나 싶어지고요. 아이들에게 말이 막 나갈 때 자괴감이 들기도 하죠.

신_완전 공감해요. 저도 딸이 있어서.

이_제가 경우 없고 예의 없고 사람 많은 데서 시끄럽게 하는 걸 워낙 싫어하니까 아이들에게 약간 과하게 말할 때도 있어요. “너 이러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안 줘.” 귀여운 협박이지만 애한테는 청천벽력 같은 거거든요. 이거 못 하게 한다고. 애가 까맣게 내 말을 잊고 10분 있다가 “아빠” 하면서 오면 너무 미안하면서 감사하고 눈물이 나다가, 석 달쯤 뒤에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 아빠가 그랬잖아. 그거 못 하게 한다고”라고 하면 너무 미안한 거예요. 얘가 그걸 마음에 뒀구나 싶어지면서. 그걸 푸는 데 몇 달이 걸려요. 끝까지 완전히 풀렸는지 확신할 수도 없고요.

신_저는 비슷한 경험을 편집장 하면서 느꼈거든요. 후배 에디터들한테. 내가 리더가 되어보기 전에는 내가 어떤 리더인지 나는 몰라요. 내가 어떤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믿거나 믿고 있죠.

박_이적 씨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나요?

신_득음하셨죠.

이_어떤 면에서는 분명히 그래요. 훨씬 사교적인 인간이 됐어요. 전에는 항상 날이 좀 서 있었어요. 제가 좋아하지 않는 선배에겐 인사도 안 했어요. 왜 인사 안 하느냐고 물으면 “저 선배님은 나한테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요?” 이런 식이었어요. 형이라는 말도 쉽게 못 했어요. 후배들한테는 말을 잘 안 놓고. 그런 면에서는 부드러워졌어요. 누군가는 ‘이적의 것이 사라졌어’라고도 하겠지만 편해진 부분도 있어요.

신_내 음악 세계는 유지하지만 세상에 대한 자세가 바뀌었군요.

박_말을 나누다 보니까 전혀 안 변한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예민함이라든지.

이_있겠죠. 어딜 가겠어요, 뭐.

신_변할까 봐 두려운 건 있어요?

이_제가 막 바뀌자고 작정하고 난리 쳐도 안 바뀌는 부분은 안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생물학적 결정론자는 아니지만 많은 부분은 타고나는 천성이고.

박_이적이 정의하는 이적의 천성은 뭔가요?

이_제가 답을 어떻게 해요.(웃음) 제가 다른 뮤지션들처럼 예민하지는 않아요. 음악 하는 사람 중에 예민한 사람은 진짜 예민해요. 저는 그것보다는 선이 굵은 편이에요. 동률이나 희열이 형에 비하면 저는 정말…. 저는 좀 굵직굵직하게 그리는?

박_목탄화처럼.

이_네. 어떤 면에서는 디테일이나 정교함이 떨어지고, 어떤 면에서는 스트레이트하게 팍 들어가는 게 또 있기도 하고요.

신_인터뷰 잘 안 하는데 <에스콰이어>랑 인터뷰하는 건 <에스콰이어>에 대한 인상이나 이미지가 있어서인가요?

이_화보 페이지나 뒤쪽에 남자 모델들 쫙 나오는 부분은 저와 되게 먼 세상이에요. 그런데 <에스콰이어>에는 읽기 좋은 꼭지가 있어요. 예를 들어 문학이나 경제 관련해서, 스포츠에 대해서도 좀 다르게 들어가고. 저는 잡지나 책이 나오면 바로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하는 것도 꽤 돼요. <에스콰이어> 독자가 두 부류로 나뉘지 않을까 싶어요. 패션 정보를 얻으려는 사람, 그리고 ‘왜 패션지에 이런 기사를 써’라는 기사를 읽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신_이번에 이적 인터뷰가 실리면 선물 같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분명 있을 거예요. 지금 말씀하신 그런 콘텐츠를 좋아해서 <에스콰이어>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요.

이_좋은 인터뷰를 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인터뷰는 결국은 어떤 질문을 하느냐가 제일 중요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에스콰이어> 인터뷰는 항상 판에 박히지 않고 뻔하지 않아서.

신_제게 이번 인터뷰는 오히려 비슷한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느낌이었어요. 40대에 대한 고민도 일치하고.

박_편집장님 아까 공감했어요? 얼굴이 빨개지시는 건 처음 봤어요.

이_박 기자님은 전혀 공감 안 하는 것 같은데. ‘저런 걸 공감했단 말이에요?’ 이런 느낌인데?

박_제가 아직 미혼에 아이도 없어서 그럴 거예요. 상황이 달라지면 공감할 수 있겠죠.

이_‘생애 전환기’가 되면(웃음) ‘남은 날이 온 날보다 짧단 말이야?’ 이런 생각하면 확 와요. ‘건강하게 살 날로 치면 이것밖에 안 남았나? 20년은 눈 깜짝할 새 지났는데 앞으로 20년은 얼마나 빠를까? 영화 끝나가는 거야?’ 이런 느낌이 들면 쓸쓸해지죠. ‘이상한 거 하지 말고 경건하게 의미 있게 이 삶을 잘 꾸려나가야겠다’ 싶기도 하고, ‘영업 끝나기 전에 끝까지 한번 놀아보자’ 싶기도 하고요.

신_저는 평생 글을 썼어요. 시작은 영화였어요. 그 후로 경제, 경영, 정치, 건축 등을 했는데 요즘 화두는 끊임없이 인생이에요. 어떻게 사는 게 맞나.

이_앨범 제목이라 치면 ‘중년의 위기’. 20대는 거들떠도 안 보겠죠, 그런 앨범은.

박_앞으로 뭘 하고 싶어요?

이_계속 좋은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 ‘이런 노래를 내가 썼나’ 하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면 나름 성과는 있었구나, 좋은 삶이었구나’ 하는 그런 노래요.

신_한 가지 일을 20년 넘게 하면 또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특히 40대부터 60대까지 해오던 걸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으면 거장이 되죠. 대부분 남자들이 그때부터 집중력이 떨어져요. 이적 씨는 이미 그 길을 가는 것 같아요.

이_그렇게 말씀해주시면 너무 감사한데 그 생각을 안 하려 노력해요. 그건 어쩌면 모든 게 나이로 치환되는 것이기도 해요. 제가 20대 때 곡이 안 써지면 슬럼프지만 지금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됐지’가 돼요. 늙으면 처진다는 근거들이 인류 역사상 쭉 있어서겠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재단되고 싶지 않은데. 자꾸 그런 틀에 나를 넣으니까. 그건 마치 누군가 어떤 이야기를 하면 “얘는 이해찬 세대니까”라고 하는 건데, 그런 식의 이야기는 무의미하잖아요.

신_늙지만 말고 늘기도 해야죠. 저희 인터뷰 제일 마지막 질문은 ‘행복하세요?’예요.

이_집에 돌아갈 때 기대감이 있어요. 딸들을 만난다는 기대감. 번호 누르는 순간 “아빠” 하는 소리가 나오거든요. 총합으로 보면 그래도 행복한 편이 아닌가 해요.

신_나침반이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는 거죠.

이_그런 의미인 것 같아요, 이 노래가. 오늘처럼 나와서 사진 찍으면 “메이크업을 그렇게 했는데도 늙었구나” 같은 말이 나와요. 서글픈 일도 있죠, 당연히. 그런데 공연하면 와주시는 분들이 있고, 제가 차트 줄을 세우는 가수는 아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들어서 제 노래를 살아남게 해주신 분들이 있고. 행복한 거죠.

박_장례식장에서 틀고 싶은 내 노래가 있나요?

이_그런 노래를 쓰는 게 꿈이에요. 아직 나오지 않았어요. 노래를 쓰는 건 ‘만들어야지’ 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발생하는 일이거든요. 어느 순간 코드와 멜로디와 가사가 나와요. ‘이런 거 하면 멜론 차트에 올라가지 않을까’ 고민하면서 쓴 노래는 그냥 이미 별로예요. 과한 설정과 잔꾀가 보이니까. 오히려 그냥 훅 쓴 노래가 타이틀이 돼요. 그런 의미에서 기다리는 거죠. 그런 게 팍 생기기를. 안 생기면 있는 것 중에 골라 올게요.

박_다음 인터뷰 때 말씀해주세요. 만약 <에스콰이어> 읽으시면 앞으로 매달 보내드릴게요.

이_아, 정말요? 그럼 너무 감사하죠.

박_당연히요.

신_저희가 원하는 진성 독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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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KIM CHAM
헤어장 해인
메이크업장 해인
스타일링김 영진
출처
28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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