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의 2막 1장

이승엽은 다시 1루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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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용준(이하 민) 야구를 하지 않는 해는 올해가 처음 아닌가요?

이승엽(이하 이)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 처음이죠. 운동을 5개월 이상 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까.

신기주(이하 신) 게다가 요즘이 마침 프로야구 개막 시즌인데.

이_얼마 전에 누가 올림픽 컬링 팀이 2월 30일에 시구를 한다면서 올 수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2월 30일에도 경기가 있느냐고 반문했어요. 이번 시즌은 2월 24일에 개막했는데 그걸 몰랐던 거죠. 은퇴한 지 5개월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무뎌졌구나 싶었어요.

신_야구 없는 삶에 익숙해진 건가요?

이_이제 적응 단계죠. 적응하지 않으면 계속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고. 연령으로 치면 늦게까지 한 거지만 성적으로 보면 빨리 한 거라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을 것 같아서. 빨리 버려야 돼요, 어차피 은퇴했으니까.

신_은퇴 경기에서 홈런 쳤을 때 솔직히 조금 더 할걸, 이런 생각 안 했어요?

이_정말 잠깐 했어요. 2년 전에 은퇴 발표를 했는데 좀 성급했나 싶긴 했어요. 은퇴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니까.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잘했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이렇게 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잘한 거야’, 그러다가 또 성적이 좋으면 ‘왜 했지’ 이런 생각도 하고.

민_2017년 한 해는 계속 내가 잘했나 못했나 왔다 갔다 한 해였겠네요.

이_그때는 다 내려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제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스스로 그냥 잘했다고 최면을 건 거죠. 근데 은퇴식 날 홈런을 두 개나 치니까 이게 잘한 게 맞나 싶기도 하고.(웃음) 사실 작년에 시즌 중간중간 조금 더 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저도 하고 싶죠. 선수가 좋으니까. 근데 공식적으로 발표했으니 다시 주워 담기도 그렇잖아요. 그리고 어린 선수들이 제 은퇴만 보고 있을 수도 있어요. 제가 빠지면 그 자리가 하나 남으니까.

민_지금까지 은퇴 경기에서 홈런을 친 선수는 이승엽 씨가 처음인데요, 혹시 그날 홈런을 칠 거라 예상했나요?

이_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저한테 좀 극적인 부분이 있거든요. 덕분에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것 같아요. 사실 은퇴 경기 전에 서너 경기를 못 뛰었어요. 쇄골에 염증이 생겼었거든요. 그래서 이러다 은퇴 경기도 못하는 거 아닌가 불안했는데 당일이 되니까 컨디션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어차피 내일부턴 야구를 못 하니까 하고 싶은 걸 해보자 싶어서 한창 전성기 때 폼으로 쳐보자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날 홈런을 친 거예요.

민_혹시 두 번째 타석에서도 홈런을 예감했나요?

이_그때는 하나 쳤으니까 됐다고 생각했죠. 반대로 세 번째 타석에선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니까 안 돼요. 그래서 야구는 욕심을 버려야 돼요. 제가 프로야구 선수만 23년을 했어요. 일본 경력까지 합치면 제가 뛴 경기가 2500경기 정도 되고요. 그런데도 그동안 깨우치지 못한 걸 마지막 경기에서 깨우쳤어요. 욕심을 버려야 된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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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_혹시 은퇴 경기 당일 중계 장면을 찾아 봤나요?

이_그럼요. 계속 봤죠. 원래 전 잘한 거는 계속 봐요.(웃음)

민_사실 은퇴 경기에서 홈런을 두 개나 친 선수를 본 것도 처음이지만 중계진이 그런 리액션을 하는 것도 처음 봤어요. 정말 정적이 흘렀잖아요.

이_아마 떠나는 사람에 대한 예우 아니었을까요? 그 좋은 장면에서 말을 하면 주의가 분산되니까. 시청자들이 보는 그대로 느껴보라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요?

민_그냥 중계진도 할 말을 잃었던 것 같아요. 저도 누워서 보다가 첫 홈런이 넘어갈 때는 앉아서 봤고, 두 번째 홈런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거든요.

이_다 잊어버렸는데 다시 생각나게 해주시네요.

민_상대 투수가 넥센 한현희 선수였잖아요. 초구가 낮은 직구였고 두 번째는 몸 쪽 직구였어요. 항간에는 한현희 투수가 선배의 은퇴 경기에서 정면 승부를 해준 거란 말도 있는데요.

이_그건 당연히 정면 승부였죠. 저로선 고마운 일이죠. 물론 정면 승부한다고 다 홈런을 치는 건 아니지만.

신_곧 자서전 <나. 36. 이승엽>이 출간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자서전에서 아름다운 야구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어쩌면 이런 게 아름다운 야구인 거 같네요. 정면 승부를 해준 투수에게 고맙다는 거. 덕분에 팬들 입장에서도 그렇게 멋진 장면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민_개인적으로 또 기억에 남는 게 마지막 타석에서 유격수 앞 땅볼을 쳐서 병살 코스였는데, 2루 포스아웃을 시킨 유격수가 1루에 뿌린 공이 떠서 1루수가 점프해서 베이스 커버가 안 됐고, 결국 마지막 타석에서 아웃되지 않고 1루로 나갔죠. 그런데 그때 정말 최선을 다해 전력 질주하더군요. 저는 그게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이_그게 마지막 타석이었잖아요. 최선을 다하고 싶었어요. 중간에 포기하는 건 말도 안 되죠. 후배들한테 마흔두 살 선수도 이렇게 열심히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내가 없는 자리에서도 더 열심히 해달라는 거였죠. 말은 안 했지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후배들한테는 좋은 걸 보여주고 교훈을 주는 게 선배로서 해야 할 일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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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_이제 야구 경기는 없잖아요.

이_연습도 없죠. 준비도 없고. 그런데 제가 KBO 홍보대사도 하고 장학 재단 이사장도 맡아서 아쉬움을 느낄 틈도 없네요. 경기장에서 야구할 때보다 수십 배는 더 걱정돼요. 야구는 몸으로 보여주면 돼요. 특히 장학 재단은 제가 해온 분야가 아니라 생소하니까. 안 그래도 오늘 재단 사무국장님하고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저한테 “많이 변했습니다” 하더라고요. 원래 제가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사람 만나는 걸 되게 꺼려했거든요. 성격상 힘들고. 이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이 왔고, 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느껴요. 구단 소속이 아니고 개인 신분으로 바뀌었으니 마음도 홀가분해졌는지 성격도 많이 바뀌었어요.

신_장학 재단은 왜 만든 거예요?

이_예전부터 꿈이었어요. 원래 어릴 때는 야구 학교를 설립해보고 싶었는데 그건 무리인 거 같으니 장학 재단을 만든 거죠. 사실 야구가 돈이 많이 들어요. 주변에 야구 좋아하고 재능도 있는데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그만두는 애들이 많았거든요. 그게 안타까웠거든요. 재능 있는 애들에게는 하고 싶은 걸 시켜야죠. 어렸을 때 이만수 선배가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를 찾아와서 한 번 야구를 가르쳐주신 적이 있거든요. 30년 전인데 그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정확하게는 2년 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아직 많이 어려워요. 혼자 힘으로 시작했지만 앞으로는 여러 사람의 관심이랑 호응도 필요하니까. 그래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어요. 항상 찾아오는 분들을 기다리기만 했는데 이제 반대로 찾아가야 하는 입장이 됐으니까요. 조금씩 사회에 적응해나가는 거죠.

신_혹시 아이들은 야구 안 하나요?

이_첫째는 좀 늦었고, 둘째는 리틀 야구를 시켜보려고요. 야구 선수가 되지는 않더라도, 리틀 야구는 단체 종목이니까. 요즘 저희 애들도 마찬가지로 협력하는 모습이 좀 부족하지 않나 싶어서 스포츠를 하면 단체 생활을 하니까 거기서 좀 더 배웠으면 좋겠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으면 좋겠고.

신_야구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없나요?

이_없습니다. 제가 해봤기 때문에 이게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싸움인지 알아서 아들들한테 물려주고 싶지는 않아요. 제일 우려하는 부분이, 아빠가 이승엽인데 너는 왜 아빠처럼 못 하느냐는 말을 듣게 만드는 거. 정말 굉장히 스트레스받을 거 같아요. 야구를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야구를 하면서 그런 말을 듣게 되면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 물론 본인이 원하면 막을 이유는 없겠죠. 막고 싶지도 않고. 다만 먼저 권유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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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_1994년도에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나가서 일찍이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아무래도 일찍부터 그런 큰 경험을 했으니 선수로서도 대단한 야심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이_그때는 국가대표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실력 면에서 저보다 잘하는 선수가 많았거든요. 저는 대구에서 잘하는 수준이라 전국에서는 그냥 그랬죠. 그래도 한번 해보니까 해볼 만하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원래 포지션이 투수였는데 그 대회에서 홈런왕이 됐거든요. 좋은 선수들 보니까 야구를 더 잘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그때부터 야구에 대한 욕심이 생겼어요.

민_원래 투수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어요. 투수로서의 미래를 염두에 두고 선수 생활을 시작했죠. 그래서 어릴 때부터 박철순 선수를 좋아하기도 했고요.

이_제가 정말 잘 던졌어요. 사실 타자로서는 그렇게 잘하진 못했고요. 다만 기본기를 잘 배워서 투구 폼이나 타격 폼은 다 좋았어요. 그런데 부상 때문에 투구를 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타자로 바꾼 거죠. 그런데 사실 타자로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50%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좀 고집을 부렸어요. 주위에서 장래를 생각하면 바꿔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자신이 없어서 한 달 정도 고집부렸죠. 결국 구단이랑 한 달간 실랑이하다가 결국 제가 진 거죠. 원래 그때까지 살면서 진학이든 진로든 고집부리면 제가 다 이겼거든요. 하고 싶은 건 해야 직성이 풀렸어요. 그런데 투수에서 타자로 바꾸면서 딱 한 번 진 거죠. 그 한 번이 제 인생을 바꾼 거예요.

민_삼성에 입단해서 등번호 36번을 달았는데, 원래 고등학교 때까지 썼던 27번을 달고 싶었지만 이미 다른 선수 몫이라 못 받았다고 들었어요.

이_제가 우리 팀에서 프로 계약을 제일 늦게 했어요. 11월 말인가 그랬으니까. 그리고 등번호 얘기가 나와서 27번을 원했는데 이미 가져갔다는 거예요. 그때 남은 번호가 36번하고 50번대였는데 그때만 해도 높은 번호를 다는 추세가 아니라서 그냥 36번 달라고 했죠. 그리고 나중에 바꾸려고 했는데 1년 지나고 보니까 또 누가 27번을 달았고, 그래서 또 1년 지나서 바꾸려고 했는데 성적이 좋아지니까 1년만 더 해보자 했죠. 그렇게 3년째가 됐는데 그해에 MVP가 된 거예요. 그러니 바꿀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성적이 계속 올라가니까 36번이 내 번호구나 싶었죠.

신_프로야구 선수한테 등번호가 그렇게나 중요합니까?

이_중요할 수도 있고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저는 이제 36번을 정말 좋아해요. 오릭스 갈 때도 36번 달고 싶었는데 못 달았거든요. 다른 거 하면 좀 이상하고 적응이 잘 안 돼요.

민_결국 그 36번이 삼성 라이온즈에서 영구 결번이 됐네요. 이런 거 보면 인생이란 게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싶어요.

이_사람 일 모르죠. 돌아가신 하일성 선배님이 야구도 모르고 인생도 모른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사람 인생은 언제 어디서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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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_야구 말고는 잘하는 게 없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래요?

이_네. 저는 야구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신_요즘 골프에 재미 붙이셨다던데.

이_그냥 좋아하는 수준이죠. 저는 길도 잘 몰라요. 길치예요. 몇 번을 가도 잘 몰라요. 센스가 떨어져요. 다른 스포츠도 잘하고 싶고 사람들 만나면 재미있게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더라고요. 야구 딱 하나밖에 없어요.

신_이승엽 선수라면 늘 야구 잘하고 홈런 잘 치고 항상 잘해왔을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일본 진출 후 인생이 흔들린다고 느껴질 만큼 힘든 시절이 있었더군요?

이_그때 아내는 제가 부진한 모습을 처음 봤어요. 야구 못하는 모습을. 저도 적응이 안 됐거든요. 한 번도 부진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이 산을 넘어야 되는데 제 앞에는 벽이 있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보였어요. 정말 막다른 길 앞에 서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죠.

신_아내분이랑 많이 싸웠다고 하더군요. 서로 힘드니까.

이_그냥 말이 없어졌어요. 맨날 스트레스받으니까 행복하지도 않고. 사실 야구를 잘해야 행복한데 그게 안 되니까 많이 힘들었죠. 그런데 첫째 아이 가지면서 좀 더 어른스러워지고 더 잘해줘야겠다 싶었어요. 제가 밖에 나가서 운동하면 아내는 집에 혼자 있어야 되잖아요. 그런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던 거죠.

민_첫째 아이 출산 당일에 오사카 고베로 원정 경기를 갔다가 출산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택시 타고 부리나케 달려갔다고 들었어요.

이_출산 예정일이 열흘 정도 지났는데 안 나온다고 해서 기다려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다가 원정을 갔죠.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에서 서울보다 좀 더 먼 거리였을 거예요. 오사카 시내에서 식사하는데 애가 나올 것 같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차를 알아보니까 이미 끊겼고, 버스도 연휴라 만석이더라고요. 갈 수 있는 게 택시밖에 없어서 조금 싼 택시를 불러서 갔더니 13만 엔 나왔어요. 새벽 다섯 시쯤 도착했는데 다행히 애가 안 나왔더라고요. 그래서 출산하는 걸 봤죠. 감동적이었어요. 그리고 탯줄 자른 뒤 다시 오사카로 갔죠.

민_야구를 하기로 결심한 첫 단계 이후로 이승엽이라는 사람을 변화시킨 두 번째 계기가 첫째 아이를 만났을 때인가 싶네요.

이_그 중간에도 많았겠죠. 근데 아이가 생긴 뒤부터 제가 성숙해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빠라는 말을 불러만 봤지, 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더 어른스러워져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첫째 아들이 태어난 뒤로 좋은 일이 많이 생겼어요.

신_모든 스포츠 선수들이 그렇겠지만 운동과 일상의 균형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삶이 안정되면 경기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고.

이_그럼요. 야구라는 게 본인과의 싸움이 아니라 상대방이랑 싸우는 거거든요. 그 전에 본인 마음을 다스릴 필요는 있지만 그게 굉장히 힘들어요. 가정이 힘들면 운동도 잘 안 돼요. 운동이 잘되면 가정도 좋아지는데 반대도 마찬가지예요. 집중이 굉장히 필요한 스포츠라 야구는 야구, 가정은 가정 별개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게 안 돼요. 가정이 행복하지 않으면 운동이 안 돼요. 그래서 집안에 근심 걱정이 있으면 저는 집중을 못 해요.

민_국내에 있을 때는 딱히 기복이 없었어요. 데뷔 첫해에 홈런 13개 치고 그 이후로는 홈런 개수가 30개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었죠. 근데 일본 진출 후 첫해에 조금 힘들어했지만 이듬해에 페이스를 회복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넘어가서 홈런을 41개나 치면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죠. 그런데 바로 다음 해에 2군으로 강등됐을 때 기분은 어떨까 싶던데요.

이_2007년도에 무릎 수술을 했어요. 5~6월에나 나와야 되는데 저는 개막하고 바로 나왔거든요. 재활 기간이 좀 짧았죠. 욕심이 과했던 거예요. 그때 손가락도 조금씩 아프기 시작해서 2군으로 보내달라고 제가 요청했어요. 그런데 손가락 수술한 뒤로 완전히 망가졌어요.

민_당시에 주변에서 엄지손가락 수술을 말렸다던데.

이_근데 안 하면 경기를 뛸 수 없으니까.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 한 3년 정도 걸렸어요.

민_베이징 올림픽 때도 엄지손가락 통증에 시달렸다고 들었거든요.

이_보호대가 정말 두꺼워야 돼요. 그리고 잘 맞으면 괜찮은데 잘 안 맞으면 손이 떨려요. 장갑만 빼면 손가락이 같이 떨어져나가는 느낌이랄까? 진짜 아팠죠. 공수 교대 때 수비를 나가야 되는데 장갑을 벗을 수가 없어서 통역한테 좀 벗겨달라 하기도 하고.

민_성적이 부진하니까 비난하는 사람도 꽤 있었어요. 일본 내에서도 그렇고. 그런 상황에서 손가락이 아프니까 힘들다는 말도 할 수 없고.

이_그때는 핑계밖에 안 돼요. 그 시기가 지나면 그랬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때 아파서 못 한다고 하면 핑계가 돼요. 아마추어는 과정이 중요해도 프로는 결과밖에 없어요. 굉장히 냉정한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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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_가끔 관중이 프로 감독처럼 구는 느낌도 드는데 그런 대중적 비난까지 감수해야 할까요?

이_그건 받아들여야 돼요. 프로야구 선수를 직업으로 선택했으니까. 반대로 베이징 올림픽 때는 부진 속에서 홈런을 치니까 전 국민이 환호해주고 같이 감동해주고 이런 경우도 있기 때문에.

민_베이징 올림픽 때 이승엽 씨 본인도 힘드니까 나보다 잘 치는 애를 써달라고 했는데 김경문 감독이 끝까지 기용했다고 들었어요. 그 이유가 감독으로서 이승엽을 뺀다는 것 자체가 우리 팀의 자존심이 깎이는 일이니 끝까지 밀어붙이기로 판단했던 거죠. 야구가 멘탈 스포츠라는 게 확실히 느껴지는 대목이네요.

이_멘탈이 정말 중요해요. 그런데 그때는 진짜 힘들었어요. 안타 치고 싶고 홈런 치고 싶고 이기고 싶은데 안 되니까 너무 답답했죠. 말해봤자 핑계밖에 안 되니까.

민_베이징 올림픽 때 이승엽 선수 홈런 덕분에 한국이 결승에 진출해 금메달을 땄고, 그 이후로 한국에 프로야구 팬이 정말 많이 늘어났어요.

이_맞아요.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야구 붐이 일어났어요. 지금 한국 야구가 위기예요. 올림픽이 없어지고 WBC는 두 번 연속 실패했으니까요. 그래서 올해 아시안게임이 중요한 포인트가 될 거라고 해요. 한국 야구가 인기를 유지하고 발전하려면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필요한 거죠. 나아가서는 2020년도 도쿄 올림픽에서도.

민_국제전에서는 언제나 한일전을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선수 입장에서도 일본과 경기할 때는 남다른 기분이 드나요?

이_다르죠. 전쟁입니다. 다른 팀 경기와는 집중력부터 달라요. 다른 경기는 몰라도 이 경기는 지면 안 되는 거죠.

신_그런데 하필 그런 경기에서 4번 타자를 맡게 될 운명이었던 거죠.

이_한일전 3, 4번 타자의 부담감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커요. 저는 어린 나이에 남들보다 좋은 성적을 올렸고 베이징 올림픽 때는 일본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에 감독님 판단으로는 다른 선수보다 부담감을 덜 느끼지 않을까 생각했겠죠. 정작 저는 부담감이 심했지만요.

신_어쨌든 큰 경기를 경험했으니까.

이_프로야구에서 경험은 무시 못 하니까요. 흔히 말하는 신구의 조화가 중요하죠. 어린 선수들만 있어도 안 되고 오래된 선수들만 있어도 안 돼요. 야구 잘하는 선수만 있다고 이기는 게 아니거든요. 4번 타자 아홉 명 있다고 이기는 거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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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_3할의 성공이라는 건 열 번 중에 일곱 번은 못 친다는 거잖아요. 결국 일곱 번을 실패한다는 건데, 실패도 많이 해봐야 잘할 거 같습니다.

이_야구는 얼마만큼 성공하느냐보다 실패를 줄이는 싸움이에요. 성공과 실패의 확률이 3 대 7 비율이죠. 실패가 더 많으니까 조금이라도 누수를 줄이는 실패를 하는 게 중요하죠. 이를테면 만루와 투아웃 무사에서 아웃이 되는 건 다르죠. 아웃 카운트는 하나라지만 내용이 아주 달라요. 실패를 잘해야 돼요. 항상 성공하고 싶지만 아무리 잘해도 3할밖에 성공을 못 하니까 얼마나 효율적으로 실패하느냐가 중요하죠.

민_타석에 서면 공이 0.1초 사이에 들어오잖아요. 내가 어떤 구종을 칠 건지 생각하고 타석에 들어가야 되고, 초구가 어떤 볼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전략이 바뀌기도 하죠. 타석에 선다는 건 정말 복잡한 일 같아요.

이_그럼요. 일반인 분들은 타석에 들어가서 공 오면 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매 경기마다 오늘 상대 투수가 누구고, 변화구 각이 어느 정도고, 직구와 변화구 비율이 어느 정도고, 다 나와요. 그걸 다 보고 미팅해서 준비하고 가는 거예요. 그냥 간단하게 공만 보고 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작전도 많아요. 그냥 나가서 사인 주고 작전하는 게 아니라 미리 예상하고 통계를 내서 하는 거라 굉장히 힘들어요. 요즘 할 게 많아졌어요. 어릴 때는 그런 게 없었는데 이제는 전략 싸움이에요.

민_혹시 지도자의 길을 갈 생각은 없나요?

이_지금은 그걸 생각할 단계는 아니고 재단을 탄탄하게 만들고 정상 궤도로 올려놓은 이후에야 뭔가를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언젠가는 야구계로 복귀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어요.

민_사실 이승엽 씨는 어떤 식으로든 야구계를 떠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_저는 야구 이외에는 할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요. 야구가 너무 좋았고, 지금도 야구를 좋아하거든요. 죽을 때까지 야구계에서 일해야죠.

신_이승엽 감독이 이끄는 구단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이_제 스타일은 되게 무서울 것 같아요. 무섭다는 게 상대방하고 싸워서 무섭다는 게 아니라 생각보다 냉철하거든요. 일단 제 자신에게 굉장히 엄격해요. 남들한테는 항상 부드럽게 대하고 괜찮다고 말하지만 제가 세운 목표는 꼭 달성해야 되고 그 이상까지 하는 편이죠. 공 100개 친다고 해놓고 150개 치면 내일 50개만 쳐도 되지만, 100개 목표 잡고 50개만 치면 내일 150개 쳐야 되거든요. 저는 그런 걸 철저하게 잘 지켜요.

저는 야구 이외에는 할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요. 야구가 너무 좋았고, 지금도 야구를 좋아하거든요. 죽을 때까지 야구계에서 일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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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_2012년도에 다시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했을 때 삼성 라이온즈의 역사는 절정이었어요. 4년 연속 한국 프로야구 통합 우승을 했죠. 그중 3년을 같이했는데요, 친정 팀에 돌아와서 그 시절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기쁨이 상당했을 거 같아요.

이_삼성 라이온즈라는 팀을 너무 좋아하죠. 출신 지역이 대구였기 때문에 운명적인 관계이기도 했고. 그런데 지금은 좀 버렸어요. KBO 홍보대사를 맡게 돼서 10개 구단 전체를 동일한 조건으로 봐야 되니까. 그래도 저에게 삼성 라이온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팀이죠. 너무 많은 좋은 걸 준 팀이니까. 한국에 돌아와서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행복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돌아오고 4연패를 했으니까 그중 3년간 우승 멤버였다는 게 너무나 자랑스러워요. 3년 연속 우승도 몇 명 못 해봤거든요.

민_2002년도 첫 우승을 경험할 때도 정말 결정적인 역할을 했죠. 9회에 LG의 마무리 투수 이상훈을 상대로 3점짜리 동점 홈런을 넘겼고 그 덕분에 마해영 선수가 끝내기 백투백 홈런을 쳤습니다. 그리고 우승했죠. 첫 우승의 감격이 상당했을 거 같아요.

이_그때 엄청 울었어요. 삼성 하면 제일주의인데 야구는 맨날 2등만 하는 거예요. 무언의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했거든요. 전년도에도 페넌트레이스 1위를 했는데 한국 시리즈에서 두산한테 져서 준우승했거든요. 너무 오랫동안 기다린 우승이라 울분이 터져 나오고 극적인 우승이라 엄청 울었죠. 여섯 번 우승을 경험했는데 아무래도 2002년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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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_우승하려면 뭐가 필요하나요? 이승엽이 필요한가요?

이_일단 부상이 없어야죠. 팀에 구설수도 없고. 팀워크가 굉장히 중요하니까. 1년간 해야 하잖아요. 부상이 없으면 선수들이 1년간 쭉 뛸 수 있고, 구설수가 없으면 팀 분위기를 저해시키는 일도 없으니까 팀이 잘나가겠죠. 실력은 그다음이고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신_야구도 협동이니까 인간 관계가 잘 맞아떨어지는 상태가 중요하군요.

이_팀 분위기가 굉장히 많이 좌우하거든요. 우리가 2015년도에 페넌트레이스 1등을 했는데 한국 시리즈 전에 구설수에 휘말리면서 팀 분위기가 완전히 다운됐고, 결국 졌잖아요.

민_2015년도도 사실 삼성이 우승할 거라 예상했는데 한국 시리즈로 가는 과정에서 도박 스캔들이 터지고 팀의 주축 선수들이 경기를 뛸 수 없게 된 상황에서 한국 시리즈를 허망하게 내줬죠. 그 뒤로 2016년, 2017년 시즌에는 완전히 팀 전력이 하략했어요. 그 와중에 이승엽 씨는 꾸준히 실력을 유지하면서 팀을 이끌었어요. 만약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고 우승 전력이 꾸준히 이어져서 계속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면 은퇴를 좀 더 나중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이_아니에요. 어차피 은퇴해야 할 나이였으니까요. 1군으로 올라오고 싶은 후배들도 굉장히 많을 거고요. 나 같은 터줏대감이 있으면 이 자리에는 못 온다고 생각하니까 자포자기하고 노력할 의지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제가 빠져주면 두세 명이 뛸 수 있는 기회가 생겨요. 저는 어차피 다 이뤘으니까, 잘됐다고 생각해요.

민_그런데 사실 실력으로 봤을 때 지금 팀에서 가장 필요한 선수 아닐까요?

이_2년 연속 9등을 했으니까 변화가 필요하죠. 제 성적은 좋았지만 팀 성적이 안 좋은데 저만 잘했다고 버티는 건 좀 죄송스럽기도 하고. 팀에서는 먼저 은퇴하라고 말도 못 하잖아요. 제가 결정하면 2년 동안 새로운 선수를 키울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거니까. 그리고 선배들에게서 마지막에 너무 안 좋게 헤어지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그런 걸 피하고 싶었어요. 헤어질 때는 깨끗하고 깔끔하게. 사실 저도 1년 더 하면 좋죠. 작년 연봉이 10억이었는데 정말 큰돈이거든요. 지금은 연봉이 없어요. 그러니까 1년 더 뛰고 싶은 마음이 들 만도 하지만 그건 개인적인 욕심이고, 한국 프로 야구를 위해서도 여기까지만 해야죠. 새로운 스타도 나와야 하고.

신_은퇴는 결국 팀을 위한 결정이었군요.

이_팀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원래는 서른일곱 살쯤 은퇴하려고 했거든요. 일본에서 은퇴하려고 마음먹었고 당시엔 다시 한국에 올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고요. 그래서 오릭스랑 2년 계약하고 은퇴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서른일곱에 5년을 더 했어요. 더 하면 욕심이죠.

민_그래도 그때 은퇴 안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진 않나요?

이_저는 한국에 돌아와서 은퇴하고 싶었거든요. 결국 꿈을 이룬 거죠. 그래서 스스로 지난 선수 생활에 점수를 매긴다면 90점 이상 주고 싶어요. 사실은 100점 주고 싶은데 미국에서 뛰어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10점 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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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_프로야구 역사상 은퇴 투어가 열린 것도 처음이었죠. 보통 상대편 구장에 이기자고 가는데 환영받으러 간다는 건 오랫동안 야구를 해왔어도 신기할 거 같아요.

이_정말 감동받았어요. 한국 야구가 이렇게 발전했구나 싶었고. 9개 구장을 은퇴 투어하는데 처음에는 상대편 홈에서 하니까 좀 무안했지만 마지막에는 좀 적응이 되니까 진짜 끝났구나 싶어서 아쉽더라고요. 고마웠죠.

민_국내 복귀 이후로 굉장히 낙후됐던 대구 구장 대신 그토록 염원했던 라이온스 파크가 만들어졌어요. 선수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었겠죠.

이_행복했죠. 그런데 거기서 9등을 해버리니까. 예전에는 더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4년 연속 우승했는데 이런 좋은 환경에서 2년 연속 9등을 하니까 좋은 구장 만들어준 분들에게 죄송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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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_홈런 친 다음에 고개 숙이는 것이야말로 이승엽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는 것 아닐까 싶어요.

이_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실패를 해보니까 실패한 선수들 마음도 알고 성공한 선수들 마음도 알게 돼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겠다, 보여줘도 되겠다, 이런 걸 자연스럽게 판단한 거죠. 의식해서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거예요.

신_종교가 ‘나를 믿는다’라면서요. 그런데 사실 야구하다 보면 모두가 나를 안 믿는 순간도 있잖아요. 심지어 나조차도 나를 안 믿게 되는 때도 있고.

이_요즘 제가 골프 치면서 그래요. 나도 나를 모르겠더라고.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신_그 순간에 필요한 게 뭘까요? 나도 나를 못 믿겠고, 세상도 나를 안 믿고.

이_저희는 프로입니다. 프로이기 때문에 자신을 냉철하게 판단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안 된다면 프로야구 선수로서 자격 박탈이에요. 그래서 강한 마음을 가져야 되고 상대방에게 유해져야죠.

신_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순간에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는 거죠. 그게 가족일 수도 있고.

이_근데 모든 건 결국 본인에게 달렸다고 생각해요. 모든 게 본인이 하는 거니까요.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본인이 해야 되는 거죠. 안 좋을 때는 다 안 되고요. 종교도 ‘나를 믿는다’라고 하는 게 나를 못 믿는데 어떻게 다른 걸 믿어요. 다른 걸 믿고 싶은 생각도 없고요.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없을 것 같아요.

신_저는 일본인 코치가 이승엽 선수에게 해줬다는 말이 인상 깊던데요. 생각할 시간이 있으면 저쪽에 가서 스윙이나 한 번 더 하라고.

이_전 그 말에 충격받았어요. 저한테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만약 제가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냥 짜증 난다고 생각했으면 그 말을 안 들었겠죠. 근데 생각해보니까 맞는 말이더라고요. 공감이 되는 거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돼 있었던 거죠.

신_마지막 질문입니다. 행복하십니까?

이_너무 행복합니다. 근데 요즘 조금 고민이 생겼어요. 아들이 열네 살이거든요. 제가 화를 잘 안 내는데 이틀 전에 크게 화를 내서 굉장히 미안했어요. 아빠로서 자격이 없나 싶을 정도로 고민하고 있거든요. 그런 걱정만 빼면 다 행복한 것 같습니다. 아들에게 더 신경 써주고 더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가족이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밖에 없어요. 다른 건 너무 만족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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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어시스턴트이 정훈
사진CHUN YOUNGSANG
헤어정 지은
메이크업정 지은
스타일링류 시혁
출처
3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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