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수는 계속 개선했다

27년 차 배우 이범수는 단역으로 시작해 강렬한 조연을 맡은 후 예능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얻었다가 시청률 1위 드라마에까지 출연했다. 2000년 예능 <동고동락> 멤버 중 지금 연예계에 남아 있는 건 이범수와 유재석뿐이다. <에스콰이어>와 만난 이범수가 그간의 노력과 행운과 성공 비결을 이야기했다.

이범수는 계속 개선했다 - Esquire Korea 2016년 8월호

슈트 발렌시아가 by 무이. 셔츠 S.T. 듀퐁. 타이, 구두 모두 디올. 스틸 시계 오데마 피게.

이범수는 계속 개선했다 - Esquire Korea 2016년 8월호

스리피스 슈트, 셔츠 모두 디올옴므. 타이 코르넬리아니.

계획대로 되든 안 되든 한결같이 소신을 갖고내 분야에서만 일했다.박수 앞에서 흥분하거나 인색한 평가 앞에서 서운해하지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그냥 계속 갔다.

당신의 인터뷰에는 ‘캐릭터’와 ‘매력’이란 말이 반복되더라. 그 말처럼 당신이 출연한 모든 작품엔 나름의 이유와 매력이 있었을 것이다. 이번 <인천상륙작전>의 매력은 무엇인가? 작품과 캐릭터의 매력이 반반이었다. 작품에 대한 매력은 우리가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에서 왔다. 나도 이번에 촬영하면서 알았는데 인천상륙작전에서 유엔군만 열심히 하고 우리 국군이나 국민이 멍하니 있었던 게 아니더라. 그런 식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주는 영화가 기획되고 개봉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캐릭터의 매력은? 내 역할은 림계진이라는 악역이다. 북측 엘리트 군인. 악역이 주는 매력이 있다. 악역을 연기하게 되는 배우는 연기력을 펼칠 공간이 넓어진다.

악역 연기의 목적은 관객의 미움을 사는 건가? 그건 결과적인 거고, 배우의 관점에서는 푸짐하게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내가 연기해야 하는 기술적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것이다. 가장 적절한 예가 <다크 나이트>의 조커 같다. 조커가 더 화려하게 공간을 누빈다. 악역인 만큼 자유로워지는 게 있다.

캐릭터 이야기로 돌아가자. 나는 당신이 자기 캐릭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아, 그런가?

그럼. 그렇지 않나? 어떤 면에서 그런가? 배우 이범수, 인간 이범수라는 캐릭터가 어때 보이나? 내가 궁금하다.

인간 이범수는 처음 보니까 모른다. 다만 배우 이범수에게는 ‘저 사람은 연기를 잘할 것 같다, 못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신뢰가 있다. 그리고 오늘은 웃긴 이미지를 만드는 걸 기피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기피하지 않는다.

사실 아까 촬영할 때도 재미있는 장면이 나올 수 있는 소품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런 소품을 쓰지 않으려는 것 같아서 이제 웃기는 건 안 하려는 건가 싶었다. 전혀. 그러면 <슈퍼맨이 돌아왔다>도 안 했겠지. 거기서 엄청 망가지는데.

하지만 나는 남자가 웃길 때 제일 멋있다. 특히 망가지면서 웃길 때. 아무리 망가져도 자신이 망가지지 않는다는 걸 아는 사람만 스스로를 낮추면서 웃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척 흥미로운 지점인데. 내려놓아도 멋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거라고 해석해도 되는 건가? 그런 지점은 분명히 있지. 그런데 반대편으로는 이런 지점도 있다. 사람들이 ‘저놈은 웃기는 놈이야’라고 보는 시선. 안 좋은 의미로.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나?

이해할 수 있다. 남들이 나를 우스워하는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은 건가? 그런 시선에선 누구나 벗어나고 싶겠지. 그리고 받아들이는 사람의 수준도 가끔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맥락에 따라 다르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웃기는 걸 기피하는 건 아니다. 적절할 때 웃겨야지. 그리고 유쾌한 거랑 마냥 웃긴 건 또 조금 다르니까 그런 것도 구분해야겠고.

이범수는 계속 개선했다 - Esquire Korea 2016년 8월호

슈트 조르지오 아르마니. 셔츠 코스. 타이 버버리. 선글라스 고 게터.

이범수는 그런 식의 선별을 거쳐가며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본인이 활동한 20여 년을 돌아봤을 때 캐릭터와 매력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었나? 여러 가지 있는데 일단은 연기. 내가 맡은 배역을 연기로 하는 과정,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다.

매력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건 내 일을 좋아하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을 좋아하는 것. 일하는 걸 즐거워하는 것.

그런데 자기 일을 안 좋아하는 배우도 있나? 그걸 내가 구체적으로 다 말할 순 없고 잘 알 수도 없지만, 어쩌면 자기 일을 즐거워하지 않는 배우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말 나온 김에 비유를 해보겠다. 축구를 잘하는 사람은 축구를 하는 시간이 즐겁다. 공 던져주면 갖고 놀면서 어쩔 줄을 모르지. 그런데 가끔 축구를 못하는데 스타플레이어가 된 사람이 있다. 그러면 분명 힘들겠지. 경기를 뛸수록 그게 드러나거든.

내 구멍이? 그렇지. 실력이 들통나면 경기 출장 수도 줄어들겠지. 내가 뭔가를 되게 잘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잘하고 싶고, 즐겁게 하고 싶은 것만큼은 틀림없다. 그리고 나는 내가 못하는 게 두렵지 않다. 더 배우고 더 훈련하고 더 익히면 되니까. 축구로 예를 들긴 했는데.

그걸 다 연기로 바꿔 말해도 되는 건가? 그렇지. 애들이 축구하면서 낄낄거리는 건 그 자체가 즐거워서지 잘해서가 아니다. 못해도 그냥 재밌고 형들이랑 다니는 게 좋을 수도 있다. 뭔가를 할 때 결과에 상관없이 즐거움이 맨 밑에 있어야 그다음이 있다. 그래야 잘하고 싶고, 잘하고 싶어지면 더 잘하기 위해서 겪는 고통도 감내할 수 있다. 그래서 기량이 늘면 더 수준 높은 축구를 할 수도 있겠고. 그런 선순환이 필요하다. 그 선순환에 오르지 못한다면 오히려 악순환이 계속될 수도 있다.

당신은 선순환을 몇 년째 하고 있는 건가? 1990년에 데뷔했으니까 27년째다. 1990년 5월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속편인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에 출연했다. 1990년 3~5월에 촬영했다.

그때 배역은 뭐였나? 주인공 옆에 서 있다가 카메라에 걸리는 말썽쟁이 너덧 명 중 하나였다. 대사 몇 마디 없고.

그때에 비해 작품이 만들어지는 방식이 많이 변했나? 그렇지.

당신은 작품과 예술보다 좀 더 포괄적인 시스템과 구조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종편 채널의 제작 시스템 자체를 칭찬한 적도 있고. 지상파 방송국 제작 시스템의 쪽 대본 같은 문제는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습관의 문제라고 한 적도 있다. 지금 회사를 만든 이유도 후배에게 더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왜 구조에 관심을 갖게 됐나? 질문 재미있네. 배우가 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대학 연극영화과였다. 하지만 내가 대학에 다닐 무렵 연극영화과에서 공부하는 건 TV나 영화배우가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배우가 되는지에 대한 루트가 없었다. 축구 선수나 판검사나 의사는 다 정확한 루트가 있다. 결심해서 어딘가에서 시작해 적당한 경쟁을 거치면 되는데. 그게 안타까웠다. 누군가 “나는 배우가 되고 싶다”라고 했을 때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할까 싶었다.

연극영화과를 졸업하면 배우가 되지 않나? 안 된다.

정말? 우리나라 대학에 연극영화과가 70여 개 있다. 거기서 한 학년에 30~40명이 졸업한다. 모두 합하면 2800명쯤 되겠지. 그 사람들이 어떻게 배우를 하나. 배우는커녕 영화나 TV에 데뷔라도 할 수 있을까? 나도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대학에 갔는데 별 소용이 없었다.

그러면 과 동기들은 뭐 하고 있나? 다 일반인이다.

아, 회사원이나 자영업? 그래도 일반 회사 다니면서 배우를 꿈꾼다, 뭐 이러면 할 말 없는 건데.

그러니까 프로 배우가 아닌 사람이 더 많다는? 아무튼 안타까웠다. 대학은 탤런트를 양성하는 곳이 아니라 학문을 추구하는 곳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연영과에 지원하는 사람의 90퍼센트 이상이 카메라 앞에 서는 배우를 꿈꾼다. 스타가 되고 싶은 거지. 난 뭐든 순수하고 정직하고 정확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학교는 정직하지 못하다. 출신 연예인을 자랑하지만 커리큘럼이 연극 위주로 되어 있다.

실정과는 차이가 있는 건가? 한심하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 학생들이 바라는 것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짜줄 필요도 있을 텐데. 연영과에서 카메라 연기를 배우고 싶다고 하고 대중 스타를 지향한다고 하면 혼났다. 그래서 대학생들이 자퇴하고 연기 학원으로 간다. 거긴 실제적인 교육이 있으니까.

당신이 운영하는 테스피스 엔터테인먼트도 그래서 만들었나? 그렇다. 물론 거창하고 철없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 같은 시도나 내가 하려는 지향점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술에 배부르지 않겠지만 점점 개선하고 변화시킬 것이다. 가수는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다. 훈련을 시키고 수준 높은 결과물이 계속 나온다. 그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선순환을 배우고 싶다. 연기 쪽으로 해볼 수는 없을까. 비싼 배우를 비싼 돈 주고 데려와서 여기저기 지르는 게 아니라 값지고 의미 있게 투자하고, 배우를 꿈꾸는 일반인 수준의 사람들에게 투자하고, 연기를 가르치고, 그런 양성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내게 이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싶은 일이 있나? 내 삶을 바꾼 작품에 캐스팅된 것. <태양은 없다>. 무명 단역 배우 시절 거기 나갔기 때문에 인터뷰도 하고 영화배우 소리도 듣게 됐다. 그리고 특정한 일이 있다기보다 계획대로 되든 안 되든 한결같이 소신을 갖고 내 분야에서만 일했다. 박수 앞에서 흥분하거나 인색한 평가 앞에서 서운해하지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그냥 계속 갔다.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나? 재미없는 답변인데, 내 일을 좋아하니까. 좋아하니까 할 수밖에 없다.

카메라 앞에선 아직도 막 좋은가? 재미있다. 연기가 역할 맡는 놀이거든. 언제 총을 쏘고 언제 탱크를 몰고 돌아다니겠나.

당신 회사의 인사말에 로버트 드니로의 졸업식 연설을 인용했다. “화려한 졸업식이 끝나면 여러분 앞엔 ‘거절당하는 인생’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라는 구절. 가장 분했던 거절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야기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음, 이건 이야기해도 된다. 고생할 때 이야기하면 모교를 비판하게 되는데 그게 모교가 나빠서가 아니라 당시 몸담고 있던 곳이 모교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가 맨주먹으로 배우를 꿈꿀 때 가진 재산이라고는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다음엔 채용이 되어야 하는데 안 되니까 동문 선배밖에 찾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아주 높은 동문 선배께 이런 상담을 했더니 “어느 방송국 PD 하는 선배를 찾아가봐라.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전화를 드렸더니 “얘기 들었다. 언제 와라” 해서 찾아갔지. 그런데 만나서 내게 아주 처참하게 면박을 줬다.

어라, 기껏 만나서? 그러게. ‘네가 무슨 배우가 된다고 하냐. 정신 못 차리냐. 연극이나 열심히 하다가 나이 한 50 먹어서 인정받으면 되는 거지. 선배들도 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 무슨 탤런트니 영화배우니 스타를 꿈꾸냐’라는 말을 계속했다.

왜 굳이 만나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말 자체도 앞뒤가 안 맞았다. 왜 본인은 방송 일을 하는 거지? 탤런트를 비하하면서 왜 탤런트를 칭찬해가면서 일하는 거지? 무척 비인간적이었다. 입장 바꿔서 나라면 여기까지 온 게 가상하니까 단역이라도 줬을 것 같다. 정 자기랑 생각이 다르면 설득할 수도 있었을 거고. 그때 너무 서러워서 눈물을 흘리며 방송국을 나온 기억이 난다.

그분 아직 현업에 있나? 얼마 전에 물러났다. 별 볼일 없이. 그 당시 40대였고 이제 60대가 됐으니까. 그런데 인생이 재미있는 게 그 일이 있고 딱 10년 후에 그 방송국에서 내가 멋지게 주인공이 된 드라마를 찍었다.

<온에어>? <외과의사 봉달희> 때였다. 희한하게 로비에서 만났다. 실실 웃으면서 와서 악수를 청하더라.

그런 사람들 꼭 그러더라. 얼굴 한 번 쳐다보고, 대꾸도 안 하고 그 자리를 피했다. 그게 내 최고의 예의였다.

이범수는 계속 개선했다 - Esquire Korea 2016년 8월호

슈트 브루넬로 쿠치넬리. 피케이 톱 마르지엘라 by 마이분. 구두 아몬 무브먼트. 포켓스퀘어 코르넬리아니. 레더 스트랩 시계 오데마피게.

2000년의 예능 프로그램 <동고동락> 역시 당신의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 그때는 예능에 나가는 배우가 별로 없었는데 고민은 안 했나? 그게 운명인지 운인지는 모르겠다. 그때 <하면 된다>에 출연한 걸 보고 예능 PD가 나를 섭외했다. 난 그때 심플하게 생각했다. 대학생들 MT 가서 놀듯 놀면 되겠지. 그게 반응이 좋았던 모양이다. 2~3주 후에 <동고동락>으로 개편한다면서 정식 섭외가 왔다. 고정으로 나갈 마음은 없어서 거절했다가 결국 설득당했다. 그때만 해도 적당히 하다 탈락되며 그만할 생각이었는데 너무 반응이 좋았던 거다. 그래서 유승준이랑 결승까지 갔지. 16년 전이네, 2000년. 이제 활동하는 사람이 없다.

그때 누가 있었나? (유)재석이 사회, 다음 박경림, 막 데뷔한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유엔, 버거 소녀 양미라, 쿨의 성수형, 유승준, 개그맨 김종석, 강현수, 이제니 정도?

그렇게 보니 정말 대단하다. 16년이 지났는데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은 유재석과 당신뿐 아닌가. 따지고 보면 그렇네.

그 비결이 뭘까? 또 답이 같을까? 연기를 좋아해서? 운이 좋은 거지. 그런 거야말로 운이 좋은 거다. 아유 글쎄, 내 입으로 비결을 말하자니 재수 없을 것 같고 대답을 안 하자니 무성의할 것 같은데, 굳이 말하자면 자기 계발 같다. 자기 계발 당연히 해야 한다.

난 농담 반진담 반으로“연기 못하면 어때, 잠만 잘 참으면 되지”라고 이야기한다. 연기 잘하면 뭐해, 잠을 못 참는데.잠을 못 자고 연기를 하면 혀가 꼬인다. 그런데 연기를 못한다고 하면 되나.

지금처럼 활발하게 영역을 넓히며 일하면 가장 바꾸고 싶은 환경은 무엇인가? 방송의 쪽 대본과 밤샘 촬영이 불만이다. 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연기 못하면 어때, 잠만 잘 참으면 되지”라고 이야기한다. 연기 잘하면 뭐해, 잠을 못 참는데. 잠을 못 자고 연기를 하면 혀가 꼬인다. 그런데 연기를 못한다고 하면 되나.

밤을 얼마나 새우나? 3일씩 새우기도 한다. 무박 3일이 되는 거지.

왜 그렇게 하나? 방송이 3일 후에 나가야 하니까.

왜 미리 안 찍나? 대본이 늦게 나오니까.

왜 대본이 늦게 나오나? 아, 내가 따지려는 건 아니고…. 대본을 빨리 써줘야 하는데 글이 안 나온다고 하니까. 이게 다음 주에 나갈 걸 오늘부터 찍어도 벅차 죽겠는데, 대본이 안 오니까 일주일 찍을 걸 이틀 만에 찍으면 사람 미치는 거지. 졸립다는 말도 못하고.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작가의 창조 정신은 이해한다. 하지만 이게 공동 작업인데, 현장의 배우나 연출이나 스태프도 건강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는 조심스러운 바람이 있다. 그럴 기회가 없으면 찍어내기에 바빠진다. 이틀 동안 대본 한 권을 외우는 건 좀 고통스럽다.

다음에는 어떤 영화를 하나? 1970년대의 반체제 학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사선에서>다. 재미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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