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빈은 일단 달렸다

윤성빈이 세계의 정상을 차지한 건 누구보다 빨리 내려오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티셔츠 바이 디 바이.

티셔츠 코모도. 바지 제너럴 아이디어. 신발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기 전에 했던 한 인터뷰에서 설날 차례상에 금메달을 올리겠다고 공언했는데 실제로 금메달을 땄다. 올림픽 전부터 대단한 자신감이 있었던 걸까?

자신이 없었다면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거다.(웃음) 정말 잘 준비했기 때문에 확신이 있었다.

올림픽 전부터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번 올림픽에서 4차 시기까지 단 한 번도 1위를 내주지 않았다. 4차 시기를 끝내기 전에 금메달을 딸 것이라 확신하지 않았을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 건 첫날이었다. 4차 시기까지 진행되는 경기라 1차 시기가 정말 중요하다. 1차 시기에 격차가 얼마나 벌어지느냐에 따라 3, 4차에서 받을 심리적 부담감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1, 2차 시기에 2위와 격차가 꽤 나는 상황이라 3, 4차 시기는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편하게 하면 충분할 거 같다고 봤다.

스켈레톤에 입문해서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기까지 불과 6년 남짓한 시간을 보냈다. 되돌아 보면 그 모든 순간이 운명적인 흐름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딱 떨어진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아무것도 아닌 일도 괜히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더라. 우연의 일치겠지만 정말 내가 잘 풀리는 인생인가 싶기도 했다.

스켈레톤을 시작한 지 6년여 만에 세계 최고 자리에 올랐다. 마치 스포츠 만화 주인공 같은 인생을 살아온 느낌인데, 지난 6년은 윤성빈에게 어떤 시간이었나?

다들 짧은 시간이었다고 말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시간을 꽉 채워 준비했기 때문에 단기간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내 입장에선 1분 1초도 중요하지 않은 시간이 없었다.

가죽 재킷 올세인츠. 티셔츠 바이 디 바이.

고3 때 체육 선생님 추천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갔다가 상비군에 뽑혔다고 들었다.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가 전화를 받고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하게 됐다고 하던데.

아마 주말 점심시간 즈음이었을 거다.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갑자기 나오라고 해서 바로 나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선생님이 친구들에게 내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겨우 알아내서 전화한 거라고 하더라.

그러니까 정작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도 모르고 나갔다?

몰랐다. 별다른 설명도 없었고, 무작정 오라고만 했다. 현장에 갔을 때도 그냥 ‘저기 따라가서 해봐’ 이런 식이었다.

어쨌든 그 자리에서 달리기를 했고, 10등을 했지만 스켈레톤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혔다고 들었다.

그런데 사실 국가대표 상비군이라는 게 상비군이라고 이름만 올려놓는 것뿐이라 별다른 의미가 있다고 여길 만한 자리는 아니었다.

그럼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발탁됐을 때에도 스켈레톤 선수가 될 거란 생각은 못 했던 걸까?

상비군이 됐다고 해서 딱히 훈련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별다른 기회도 전혀 없었으니까.

재킷, 바지 모두 뮌. 신발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유년 시절부터 운동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던 것 같은데 스켈레톤 선수가 되기 전에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

딱히 운동선수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학교에서 운동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 있으면 내보낼 만한 시합에 꾸준히 나갔던 것뿐이고, 그것도 그냥 취미 정도의 수준이었다.

결국 2012년 9월에 국가대표 2차 선발전에서 대학생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면서 본격적으로 스켈레톤 트랙을 타게 된 셈인데, 당시에는 어떤 기분이었나?

그냥 이걸 해서 손해 볼 건 없겠다는 생각 정도였던 거 같다.

반대로 이걸 꼭 해야 되는 건지 의심이 들지는 않았나?

아무래도 아무도 모르는 종목을 한다는 게 좀….(웃음)

당시에는 국내에서 스켈레톤을 연습할 수 있는 장소 자체가 전무했다고 들었다. 스켈레톤 국가대표가 됐지만 정작 스켈레톤 자체를 알아가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을 거 같다.

선수가 됐다고 하지만 스켈레톤이라는 종목이 정확히 뭔지 몰랐다. 그러다 해외로 전지훈련을 나가서 처음으로 직접 스켈레톤 썰매를 타는 모습을 보고 이런 종목이구나 담담하게 생각했는데 직접 해보니까 되게 어렵더라. 눈으로만 봤을 땐 그냥 썰매를 타고 내려가면 되는 거구나, 저게 뭐가 어렵나, 생각했는데 막상 타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처음 타보면 정말 굉장한 충격이 온다. 그 뒤로 많이 고민했다.

스웨트셔츠, 바지 모두 노앙.

체감 속도가 시속 400km까지 올라간다고 하던데, 이게 정말 할 수 있는 일인가 싶은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탔을 때 했던 생각이 바로 그거였다. 진짜 사람이 할 짓이 못 되는 거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 시작해버렸고, 돌아갈 방법이 없더라.(웃음) 그리고 사실 시속 400km의 체감 속도는 처음 탔을 때 이후로는 느껴보지 못했다.

처음 썰매를 탄 이후로 시속 400km의 체감 속도를 느껴보지 못했다는 말은 그 이후부터는 그 정도로 무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는 걸까?

아무래도 그런 느낌 자체가 처음이니까, 이후에는 그 정도로 엄청난 느낌으로 다가오진 않더라. 다른 썰매 종목도 마찬가지겠지만 이건 정말 타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스켈레톤과 비슷한 느낌으로 제시할 만한 게 없다.

이젠 스켈레톤을 즐길 수 있는 수준이겠지만 처음에 느꼈던 두려움이나 낯섦을 떨치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있지 않았을까?

처음에 어떻게 타는지 알려주긴 하는데, 알려준 대로 탄다고 해서 잘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타봤다. 어차피 잘 안 되는 거 내 마음대로 한번 해보자는 심산으로 막 했는데 그게 오히려 도움이 됐다. 그리고 그렇게 막 타다 보니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안 되는지, 오히려 남들보다 빨리 알아채지 않았나 싶다. 시키는 대로만 하다 보면 오히려 그런 틀에 갇혀서 뭐가 맞는지 더 구별하기 어렵겠더라. 결국 그런 요령을 빨리 파악한 덕분에 흥미가 생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 게 아닌가 싶다.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에서 주최한 2012-2013 시즌 아메리카컵 대회에서 23위를 기록했다. 스켈레톤에 입문한 지 몇 개월밖에 안 되는 선수가 국제대회에서 그 정도 순위를 기록한다는 게 대단한 일이었다고 하더라.

아마 그게 2차 대회였을 거다. 그 전에 참여한 1차 대회 때는 스켈레톤 썰매를 일주일 정도 타보고 나간 거라 꼴등에 가깝게 들어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 대회에서 그렇게 된 건데, 덕분에 스켈레톤에 좀 더 흥미가 생겼다. 물론 메달리스트가 되겠다는 야심까지 가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어떻게 하는 건지 조금 알게 됐다는 정도? 이렇게 하면 오른쪽으로 가는구나, 뭐 이런 수준이었으니까. 어쨌든 그게 시작이었다.

그 뒤로 특별히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었을까?

어느 정도 알기 시작하니까 그 이후로는 순탄하게 진행됐다. 스켈레톤이라는 종목이 어느 순간 느낌이 오면 그 뒤로는 어렵지 않은 것 같다. 다른 선수들도 그럴 거다. 다만 그 느낌을 얻는 게 어렵다. 늦는 사람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고.

본인은 그 느낌을 언제 받았던 거 같나?

남들보다 조금 빨리 느낀 것 같다. 입문 1년 차에 출전한 첫 시즌 대회인 2012-2013 시즌 월드컵에서 바로 그 느낌을 받았으니까. 그 시즌 중에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이 꽤 있었는데 훈련 중에 그런 느낌이 오더라.

그 뒤로 꾸준히 성장하는 일만 남았었나 보다. 결국 2012-2013 시즌 월드컵에서 최종적으로 4위까지 오르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만큼 스켈레톤에 재미가 붙지 않았을까 싶은데.

첫 시즌 이후부터는 스켈레톤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다음 시즌이 바로 올림픽 시즌이었는데, 사실 처음에는 올림픽에 나갈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스켈레톤을 시작할 때 이미 2년 뒤 소치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2년 만에 올림픽 출전 기회를 얻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올림픽이 다가오니까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기 시작했고, 그래서였는지 점점 썰매가 잘 나가더라.

결국 생애 첫 올림픽인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해서 16위를 기록했다. 대중적으로 큰 주목을 받은 건 아니지만 스스로에겐 대단히 고무적인 결과가 아니었을까?

처음 나간 큰 대회라 그랬는지 실수도 당황도 많이 해서 결국 16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애초에 올림픽에 나갈 거란 생각조차 못 했고, 대단한 성적을 거둘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15위권 정도에만 올라도 잘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4년 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4년 전 소치에서는 역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을까?

전혀 못 했다. 오히려 그 당시에 정상급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저것보다는 잘해야 될 텐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싶었지. 홈그라운드인 평창에서 올림픽이 열린다고 하지만 스켈레톤을 시작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입장에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다.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로 2015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선 8위를 기록했고, 2016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선 은메달을 땄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썰매 종목으로 메달을 획득한 최초의 사례였다. 2014년 올림픽 이후로 놀랄 만한 성장을 이룬 셈인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건 썰매를 타는 것이니 그저 항상 훈련하며 준비했을 뿐이다. 그러다 성적이 올라가면서 점점 상위권을 노리게 됐고, 그 과정에서 유명한 외국인 코치를 만나 모르던 것을 알게 되면서 기량이 더욱 발전하기도 했다.

외국인 코치라면 이용 감독이 자신을 만나주지 않아서 차를 가로막고 겨우 설득해 섭외했다는 리처드 브롬리 코치를 말하는 건가?

차를 막고 선 것까진 잘 모르겠다.(웃음) 어쨌든 그런 세계적인 코치가 우리나라 썰매 팀을 돕는다는 것 자체가 되게 신기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정식 코치도 아니었다. 단순히 도움을 주는 정도였는데 그 과정에서 뭔가 확신이 들었나 보다. 발전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우리 팀으로 올 이유가 없었으니까. 우리 팀 분위기와도 잘 맞는 사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리처드 브롬리 코치를 만난 것이 실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됐나 보다.

덕분에 우리가 전혀 모르던 장비나 기술을 알게 됐으니까. 우리가 왜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됐는지, 왜 더 발전할 수 없었는지 그제야 알았지.

실제로 리처드 브롬리 코치를 만난 이후인 2014-2015 시즌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따기 시작했고, 2016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선 은메달리스트가 됐다. 그 즈음에는 평창에서의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때는 메달을 딸 가능성을 확인한 시점이었다고 본다. 실제로 메달을 수상하든 수상하지 못하든, 일단 금메달을 목표로 잡고 갈 수 있는 상황이 된 거다.

그리고 2015-2016 시즌 월드컵 7차 대회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수상했다. 그 대회가 처음으로 항상 자신의 우상이라고 말했던 마르틴스 두쿠르스를 이긴 대회이기도 했다. 그해에 열린 월드컵에서 두쿠르스가 우승하지 못한 유일한 대회이기도 했고.

두쿠르스는 항상 승자였다. 모든 대회에서 1등 하는 선수였지. 그만큼 내게는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지만 정작 두쿠르스 입장에서는 한 번 정도 지는 게 큰 의미가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어쨌든 내겐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두쿠르스를 이겨보고 싶진 않았나?

당연히 이기고 싶었지만 그 당시에는 이길 수 없다고 여기던 선수였다. 내 능력이 그 정도는 안 되는 걸 아니까 막연하게 바라고만 있는 상황이었다고 할까.

이겨보니 어떤 기분이 들었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할까?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한 번 이기니까 두 번도 가능할 거란 생각이 들지는 않았나?

그런데 그 선수가 못해서 나한테 졌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시즌 중에 한 대회 정도는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는 거고. 그래서 대회 중에도 새로운 시도나 실험을 강행하는 경우도 있다. 혹시 그가 그런 시도를 하다 나한테 진 것이라면 그의 입장에서는 별 상관없는 일일 수도 있을 테니 그냥 내 입장에서 의미가 생겼다는 점에 만족했고 마냥 기분이 좋았다.

2016-2017 시즌에도 금메달을 땄고, 2017-2018 시즌에는 5번이나 금메달을 따면서 세계 랭킹 1위까지 올랐다.

그저 두쿠르스를 따라가는 정도로만 실력을 유지하면서 홈 어드밴티지를 노리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둘 거라 생각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준비를 잘해왔기 때문에 그 결과가 빨리 나타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난 시즌 성적이 좋을 거라 생각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을까?

그냥 1위를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계속 1등을 하게 되니까 스스로 놀랍다고 느꼈는데 정작 브롬리 코치를 비롯한 코치진은 담담하게 이렇게까지 했으면 당연한 거라고 얘기하더라. 나는 그저 도전자 입장으로만 임해왔으니 그냥 계속 경기를 해왔을 뿐이지, 그런 현실감이 없었다.

그만큼 꾸준히 성실하게 훈련에 매진했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리고 만만치 않은 훈련량을 소화하는 것 외에도 체중 조절을 위해 하루에 여덟 끼를 먹었다고 들었다. 그 역시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

정말 힘들었다. 오랫동안 운동을 해온 사람이 아니었던 터라 체중을 조절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경험도 없어서 너무 괴롭더라.

그런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노하우가 필요했을 것 같다.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특별히 노하우랄 건 없었다. 다만 이젠 어느 정도 몸이 다 만들어진 상태라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몸을 금방 만들 수 있게 됐다. 기본적인 상태를 만드는 게 가장 힘들지, 그 이후부터는 크게 힘들 일이 없었다.

스켈레톤은 각국에 있는 트랙마다 길이와 형태가 달라서 일반적인 경주 종목과 달리 경기 신기록 자체가 없다고 들었다. 그러니 저마다 다른 트랙에서 우승 기록을 수집하는 게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성과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아무래도 트랙마다의 기록이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에 각각의 트랙마다 좋은 기록을 갖고 있다는 건 선수로서 당연히 기분 좋은 일이 된다. 가장 중요한 건 모든 트랙을 잘 타는 선수가 되는 거다. 한 트랙만 잘 타는 것도 어려운 만큼 모든 트랙을 잘 탄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최상위권의 수준을 유지하는 선수가 되려면 꼭 해내야 하는 거지.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2017-2018 시즌 월드컵 8차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서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의 트랙에서 많은 연습을 했다던데.

한 50회 정도 타본 거 같다.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의 트랙이 선수들에겐 굉장히 어려운 트랙이었다는 평이 자자했다. 특히 9번 코스에서는 세계적인 선수들도 실수가 잦았고, 두쿠르스도 4차 시기에 4번 코너에서 실수하는 바람에 결국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본인은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하다.

어려운 트랙이라기보다는 까다로운 트랙이었다. 어려운 트랙은 타다 보면 충분히 극복해낼 수 있는데 까다로운 트랙은 그렇지 않다. 다른 깨달음이 필요하다. 단순히 많이 탄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이 코스가 어떤 구조인지 원리적으로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까다로운 트랙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린다. 물론 어떠한 트랙도 100%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렵긴 하다. 완벽한 정답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의 트랙에서 가장 까다롭게 느껴지는 코스는 어디였을까?

2번과 4번 코너였던 거 같다. 모든 선수들이 가장 많이 실수한 코너이기도 하다. 그런데 까다롭게 느껴지는 코너만 계속 신경 쓰다 보면 오히려 다른 코스에서 실수가 나온다. 그래서 처음부터 가장 까다로운 코스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면서 오히려 다른 선수들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코스에 더 신경 써서 경기했다.

이번 올림픽 경기에서 1차 시기부터 4차 시기 중에서 가장 편안하게 썰매를 탔다고 느껴지는 건 언제였을까?

다 비슷한 마음으로 경기했다고 생각하지만, 4차 기록이 가장 좋았으니까 결과적으로 4차 시기가 가장 편했던 거 같다.

올림픽 전에 약속한 것처럼 설날 아침 전 국민에게 금메달을 선물했다. 금메달이 확정된 직후에 관중석을 향해 큰절도 올렸다. 혹시 금메달 세리머니로 큰절을 미리 생각해뒀던 걸까?

그냥 스스로 설날이라는 걸 엄청 의식한 거 같다. 그러다 보니까 응원해준 관중에게 자연스럽게 큰절로 보답하고 싶어지더라.

어머니와 여동생도 관중석에서 경기를 봤다고 들었다. 스켈레톤을 시작할 때 어머니에게 많은 격려와 위로를 받았다고 하던데.

처음에는 무슨 운동인지도 모르셨고, 비전도 없어 보이는 종목의 선수가 되길 바라진 않으셨을 거다. 그만큼 고민이 많으셨을 텐데 내색하지 않고 하고 싶으면 하라고만 하셨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지 2주 정도 지났는데 금메달을 목에 건 순간의 여운이 좀 남아 있나?

이젠 당시의 영상이라도 찾아 보지 않으면 그때와 완전히 똑같은 기분을 느낄 수는 없는 거 같다. 사람들이 잊어버리는 것처럼 나 역시 일상으로 돌아가며 자연스레 잊게 된다.

금메달을 따고 나서 가장 크게 변했다고 느끼는 게 있다면?

아무래도 내가 가장 바랐던 것처럼 스켈레톤이라는 종목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 종목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게 된 거?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의 운영 주체가 정해지지 않으면서 예산 배정에 대한 논의도 부진한 가운데 폐쇄된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래도 이번 올림픽에서 활약한 썰매 종목 선수들 입장에서는 힘 빠지는 소식이 아닌가 싶은데.

우리가 올림픽에서 많은 걸 이뤄낸 장소이기도 하니 그렇게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이후에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훈련 시설은 선수 육성에 가장 중요한 장소인 만큼 이런 상황이 너무 아쉽다.

우상이던 두쿠르스도 꺾고, 세계 랭킹 1위도 차지했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까지 됐다. 어떤 면에서는 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목표를 모두 이룬 셈인데 그 이상의 새로운 목표가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남들이 이루지 못한 것을 생각하며 쫓아가야 하니 당연히 쉽지는 않을 거다. 그리고 어떤 목표에 시달리기보다는 그냥 지금껏 해온 것처럼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Kakao Talk
  • Kakao Story

Credit

에디터
어시스턴트신 동윤
사진윤송이
헤어한 결
메이크업김 범석
스타일링서 래지나
출처
31877
본 기사를 블로그, 커뮤니티 홈페이지 등에 기사를 재편집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웹사이트 내 모든 컨텐츠의 소유는 허스트중앙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