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하이가 선택한 시간

성공적인 발매, 차트 정상, 모두에게 최고였던 콘서트가에픽하이 9집 활동의 전부였다. 인터뷰를 마친 세 사람은 다시 작업실로 돌아갔다. 하고 싶은 작업이 너무 많다며, 소년처럼 웃으면서.

9집, 고민이 깊었던 앨범이죠? 에픽하이 앨범 준비가 한창일 때 ‘아직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고 트위터에 타블로 씨가 쓴 걸 봤어요. 그 순간엔 힘을 더 주려고 했나요, 빼려고 했나요? 더하고 싶었던 건지 덜어내고 싶었던 건지 궁금했어요. 완성했다고 여긴 앨범을 다시 만져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에.

타블로(이하 타)_ 둘 다였던 것 같아요. 그 글을 올렸을 때 사람들은 발매 임박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때였어요. 저희도 완성됐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저희끼리 쫑파티처럼 술도 한잔하고 각자의 주말로 돌아갔죠. 그랬는데 주말에 갑자기 어떤 곡 하나가 떠올라서 그걸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쓰라 같은 경우는 잠깐 쉬려고 여행 계획을 잡고 있었는데 다시 녹음실로 오게 됐어요.

그 곡이 뭐였죠?

타_ ‘Bleed’라는 곡이었어요. 마지막으로 녹음한 노래죠. 앨범에서 뺀 노래가 넣은 노래만큼 있어요. 그냥 좋은, 자신 있는 노래를 다 집어넣는 게 일반적일지도 모르겠는데, 저희는 그런 앨범은 별로 선호하는 편이 아니에요. 그래서 넣고 빼는 작업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투컷(이하 투)_ 다 끝났다고 이제 약간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는데 하나 더 해야 했죠. 그런데 타블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맞는 얘기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필요했어요. 처음에 말씀하셨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힘을 주고 싶은 것과 빼고 싶은 것. 그래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고 다시 작업했죠.

그런 분위기의 노래가 필요했던 거였죠?

타_ 저희는 앨범을 만들면서 느끼거나 깨닫는 게 있거든요. 저희가 다른 작곡가의 곡을 받는 팀이면 어느 정도 정해진 감정을 갖고 그걸 완성하면 되겠지만 저희는 스스로 전곡을 만드는 상황이니까, 만들면서 새로운 걸 느끼고 하고 싶은 게 생기고 그래요. ‘Bleed’라는 노래의 가사 내용이 앨범을 다 완성한 상태에서 느끼게 된 거예요. 그래서 그 노래가 앨범의 중심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직도 펜으로 백지 위를 달린다’는 미쓰라 씨 가사로 끝나는 노래죠? 그 가사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하지만 휴가를 다 정해놓고 미룬 거죠?

투_ 그 이야기가 쓰라 가사에 다 있어요. 미쓰라(이하 미)_ 사실 이게 앨범 작업이 길어지면서 느끼게 된 것들에 대한 가사예요. 앨범 작업이라는 게 하다 보면 시간 개념을 잃기도 하고, 앨범을 완성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아내와 여행 가기로 했던 약속도 미루게 되고, 그런 것들을 썼던 거예요. 그 당시에도 분명히 우리 모두 박수 치고 끝났다고 했는데. 하하하, 너무 긴 작업이었기 때문에 끝나니까 너무 좋았는데 “한 곡을 더 해야 할 것 같아, 쓰라야”라고 연락이 왔을 때 순간적으로 ‘뭘 더 써야 되지?’ 그랬죠. 다행히 주제를 듣고 나서는 ‘이 주제는 지금 내 마음 그대로 쓰면 되니까 금방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노래가 들어가고 난 후의 앨범을 들었을 때 ‘아, 이래서 필요한 곡이었구나’ 하고 이해했죠.

저희는 스스로 전곡을 만드는 상황이니까, 만들면서 새로운 걸 느끼고 하고 싶은 게 생기고 그래요. ‘Bleed’라는 노래가 앨범의 중심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대체 14년 동안 어떻게 이렇게 우애 깊은 팀으로 지낼 수 있죠? 하지만 늘 좋았을 리는 없고, 투컷 씨는 해체를 언급했던 적도 있었죠?

미_ 두 번 정도?

타_ ‘평화의 날’ 때 한 번이랑 ‘팬’ 나온 후에.

셔츠, 슈트 모두 맨온더분. 레이어드한 재킷 푸시버튼.

굉장히 사소한 의견 조율의 과정이 궁금해요. 누군가 주장을 하고 누군가 마음을 가다듬는 마음의 프로세스랄까요. 그야말로 매일의 갈등이잖아요. 감정은 말 한마디에도 쌓이고, 그게 팀이니까요.

타_ 의견 충돌은 항상 있어요. 저희가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 이유는 저희가 늘 의견이 비슷해서가 아니에요. 서로의 의견은 매우 다르고, 셋 다 굉장히 뚜렷하고 강한 편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의견 충돌 자체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투컷이 어떤 의견을 제시했는데 제 의견과 완벽히 달라도. 물론 저도 제 의견을 굉장히 강하게 얘기하겠지만 그렇다고 이 친구의 의견에 귀를 닫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 충돌을 통해 각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보곤 해요.

투_ 그게 비결인 것 같아요. 의견 충돌이 아예 없는 팀보다는 충돌이 많지만 그걸 조율해서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수월하니까. 그것 때문에 좀 더 오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일부러 아니라는 의견을 강하게 낼 때가 많아요. 셋 다 한 방향으로 쏠려가는 것보다는 아닌 쪽에 대한 의견을 피력해서 그것에 대해서도 토론을 해보는 거죠. 그래도 그게 맞다고 하면 따라가는 거예요. 최대한 예스맨은 안 하려고 해요.

타_ 그게 되게 도움이 돼요. 저는 현실 감각이 많이 부족해요. 정서, 성향 자체가 그래요. 아이디어를 내거나 뭔가 어떤 작은 소망이 생겨서 들떠 있으면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서 잘 생각을 못 해요. 그냥 온 마음으로 믿어버려요. 만약 멤버들이 제가 리더라고 그냥 그걸 받아주고 따라주기만 했다가는 저도 발전이 없겠죠. 그런데 이 친구들은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는 얘기를 해서라도 제가 좀 더 생각을 다듬게 자극을 주죠.

미_ 각자 성향도 취향도 다 너무 다른 사람들이긴 한데 목표는 같아요. 좋은 음악, 좋은 결과물을 향해 달리는 거죠. 그 사이에서 “어, 이건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은데”라고 하더라도 다른 두 명이 다른 게 맞다고 하면 우리는 두 가지를 다 해보긴 해요. 다 해보고 모두가 다 듣고 나서 더 좋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가는 거죠. 그런 의견 조율을 14년 동안 계속해왔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아예 싸우기도 했죠.

싸우다가 “와, 이거 못 해먹겠네!” 했던 적도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타_ 엄청 많았죠. 우리가 결성한 지 15년 됐으니까. 많이 싸우기도 하고 서로 섭섭해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게 결국에는 진짜 피와 살이 된 건 맞아요. 지금은 저희 셋 다 유부남이잖아요? 이렇게 셋이 하나로 지내다가 여섯이 됐고, 저랑 투컷은 아이들이 있으니까 이제 아홉이 된 거예요. 세 명이 다 다른 성격인데도 가족이랑 집에 있을 때는 다 비슷비슷해요. 셋 다 10년 넘게 다른 사람과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의견 조율 같은 게 익숙해지다 보니 집에서도 조연을 하는 게 더 익숙한 거죠. 그래서 좀 더 편해요.

비슷비슷하다는 건 무슨 뜻이죠?

투_ 당연히 가정에서는 우리가 조연이니까요. 아내와 아이들이 주연이고.

세 분이 팀으로서 다듬어진 정서가 가정생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군요.

투_ 가정을 갖는 것이 팀 생활에도 도움이 되고요. 우리는 혼자 돋보이려는 걸 안 해요.

이기심을 버릴 수 있게 된 건가요?

타_ 이제 완전히 반대로, 어떻게 하면 내가 돋보이지 않을까를 더 고민하는 것 같아요.

미_ 돋보이는 사람보다 뒤에 있는 사람이 좀 더 마음이 편한 것 같아요. 집에서도 뭔가 이끌어간다기보다 따라가는 게 편하고.

투_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우린 한배를 탄 거니까. 배가 잘 가는 게 중요하지, 내가 선장일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타_ 제가 2년 전인가 미국에서 혼자 공연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어요. 몇천 번이나 공연한 노래였어요. 가사를 틀릴 수가 없거든요? 자면서도 할 수 있는 노래였어요. 그런데 가사도 틀리고, 너무 떨려서 말도 잘 못 하겠더라고요. 멤버들이 없으니까요. 그걸 확 느끼고, 공연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서 혼자 이렇게 방에 있으니까 너무 외로웠어요. 어떤 사람들은 제 솔로 앨범 계획을 물어봐요. 낸 적이 있으니까요. 다시 낼 수도 있겠죠, 열심히 만들어서. 그런데 혼자서 하는 것보다 이 친구들이랑 같이 하는 게 더 행복해요. 솔로를 굳이 할 마음이 안 생겨요. 같이 있을 때 좀 더 안전한 기분이 들고요. 어렸을 때는 무대에서 더 돋보이고 싶은 적도 있었겠죠. 그런데 요즘은 무대에서 누가 멋진 순간을 연출해서 관객들이 호응하고 그러면 약간 떨어져서 이렇게 보게 돼요. ‘와, 보기 좋다, 잘한다. 아, 기분 좋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빠 마음인지 모르겠어요. 그냥 그게 자연스러워요. 가족이 되어버린 거죠.

스트라이프 셔츠 S.T. 듀퐁. 핀스트라이프 슈트 맨온더분. 레이어드한 니트 톱 펜디.

어느 정도의 나르시시즘이라는 건 무대에 서는 사람한테는 다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돋보이고 싶고 무대에서 멋져 보이는 내가 좋고. 그런 것이 어느 순간 사라졌네요. 에픽하이한테는.

투_ 그렇다고 내가 추하게 보이는 걸 용납할 수는 없죠. 하하. 일부러 막 그럴 수는 없는데.

타_ 확실해? 너 희한한 거 많이 하던데.

투_ 주목받는다기보다 무대 자체가 중요한 거니까, 큰 그림을 보게 된 거죠. 저 같은 경우는 데뷔 때부터 꾸준히 조연 역할을 했잖아요? 처음에는 그게 상처로도 다가왔는데 이제는 이게 내 일이라는 게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요. 어느 순간 그런 것을 놓게 됐어요. 저한테는 둘이 돋보이는 게 더 중요한 거죠.

타_ 이번 콘서트에서는 투컷이 역대 가장 긴 솔로 무대를 했어요. 그냥 그런 게 좋아요. 지난 1~2년간의 공연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요즘은 틈만 나면 제가 뒤로 가요. 그냥 그렇게 돼요. 쓰라가 랩을 할 때는 쓰라가 조명을 다 받게 뒤로 가서 랩 끝날 때까지 투컷 옆에 서서 둘이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그래요. “쟤 너무 흥분한 거 아니냐” 그런 얘기 나누고.

미_ 이제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타)블로 눈빛을 보고 ‘뭔가 하려는 것 같은데?’ 그러면 옆에서 그걸 도와주고, 또 투컷이 무대 앞으로 나올 때는 투컷이 최대한 잘 보일 수 있게 저희가 옆에 서서 도와주고. 예전에는 동선을 짜야지 그렇게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안 짜고도 다 되는 걸 보면.

절박하다고 하기에는 저희가 방송 활동을 아예 안 하니까요. 하하. 하지만 음악을 만들 때는 절박해요. 콘서트나 공연을 할 때는 진짜 절박해요. 어쩌면 앞으로 할 공연보다 여태까지 한 공연이 더 많을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니니까.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한편 이번 앨범에선 절박함도 짙게 느꼈어요. 에픽하이 정도 되는 팀이, 아무리 오랜만에 낸 앨범이긴 하지만 이렇게 절박하게 만들어야 했나요?

타_ 저희가 절박했나요?

그간의 인터뷰에선 마지막 앨범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투_ 아, 아니에요.

타_ 앨범을 만들 때는 그렇죠.

투_ 근데 이게 안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아니라.

타_ 절박하다고 하기에는 저희가 방송 활동을 아예 안 하니까요. 하하. 진짜 절박한 사람들이 활동을 안 하면 정신이 나간 거죠. 하지만 음악을 만들 때는 절박해요. 콘서트나 공연을 할 때는 진짜 절박해요. 어쩌면 앞으로 할 공연보다 여태까지 한 공연이 더 많을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니니까.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내가 무대에 있고 관객을 보고 있으면 굉장히 큰 절실함을 느껴요. 그게 몸에 배어 있어요.

이번 앨범에서만 느꼈던 게 아니었군요.

타_ 이번 앨범에서 가장 많이 느꼈어요. 이전 앨범에서는 절박함이 아니라 각오였죠. 어렸으니까. 그래서 이번 앨범 제목이 되게 재미있어요. 회사에서는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이라는 제목이 에픽하이가 9집으로 보여주려는 포부라고 이해했어요. 그래서 그게 아니라고 정정해줬어요. 그 제목은 우리가 최선을 다했고, 우리가 이 앨범을 만들고 하루하루 잠들면서 뭔가 아름답고 놀라운 일을 함께 했다,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는 의미로 한 거라고. 14년 동안 함께하면서 겪었던 모든 순간이 좋든 안 좋든 우리한테는 원더풀한 순간이었다고.

투_ 간단할 것 같아요. 그 주어가 저희 셋일 수도 있지만 듣는 모두일 수도 있으니까.

타_ 콘서트도 너무 좋았어요. 여태까지 했던 공연 중에 가장 좋았어요. 저도 모르게 눈물도 흘렸어요. 그건 좀 후회스러운데, 하하. 영상이 돌아다닐 수도 있으니까요.

투_ 그때 너를 보는 내 표정 봤어?

타_ 정말 다 감격스러웠어요. 관객 중에 낯이 익은 분들도 너무 많고, 거울 바라보듯 시간이 흐른 게 느껴지기도 했죠. 너무 좋아서 무대를 떠나고 싶지 않았어요.

미_ 이런 식으로 콘서트를 한 건 처음이었어요. 다른 매체에 저희 음악이 전혀 노출되지 않고 콘서트에서 첫 라이브를 한 것. 되게 신선한 경험이었고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저희가 작업만 하고 3년간 사라진 것같이 보였겠지만 사실 굉장히 많은 페스티벌을 다니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거든요. 그때는 도전의식 같은 재미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뭔가 내 집에서 정말 편안하게 공연한 느낌. 어떤 실수, 어떤 얘기를 해도 귀담아들어줄 수 있는 팬들 앞에서 하는 거라서 되게 편했어요.

투_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오롯이 저희를 보러 온 팬들이잖아요.

타_ 팬 아닌 사람도 반 이상이었대.

그럼 누구죠?

타_ 특별히 팬이라는 게 아니라, 그냥 이번 앨범이 좋아서 그 라이브를 보고 싶어 했던 분들이 되게 많았다고 하더라고.

투_ 그분들도 팬이 된 거지.

풀오버, 가죽 재킷, 바지, 모자 모두 Z제냐. 신발 프라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을 듣기 전까지의 에픽하이 앨범 중 제일 좋아했던 건 1집과 2집이었어요. ‘Remember’와 ‘신사들의 태도’.

타_ 신기하다. 정말 제일 다시는 안 듣는 앨범이 1집과 2집이에요. 옛날 사진 보는 것 같아요. 고등학생 시절 사진 보는 느낌?

투_ ‘나 좀 멋있지’라고 생각했던 포즈나 옷 입고 사진 찍었을 때의 느낌 있죠? 부끄러운 느낌.

또 하나는 정서예요. 이번 앨범은 정말 솔직해서 30대 중·후반의 정서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10대와 20대, 40대 이상에서도 공명하는 느낌이 있었죠?

타_ ‘빈차’ 같은 노래도 그랬어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공감할 거라고 생각하며 만든 노래라고는 할 수 없거든요. 굉장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시작한 노래인데 다양한 분들이 가사에 공감하는 걸 보니 우리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모두 느끼는구나, 힘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외로움의 형태는 다르지만 핵심은 같잖아요. 그래서 앨범 만들 때도 누구의 취향에 맞게 만들려고 하지 말고 그냥 우리 하는 거 하자고 마음 비우고 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확실히 마음을 비우고 한 건 있어요.

미_ 예전에는 제 감정이나 얘기를 많이 안 했어요. 오히려 더 숨기는 편이었죠. 그런데 이번 앨범에서는 편하게 생각이나 감정을 얘기했던 것 같아요. 지금 이 나이에 느끼는 것들을 써냈죠. 20대에는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약한 부분을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지금은 솔직하게 이런 얘기를 하고, 저희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이 많으니까 좀 더 공감이 되지 않았나 해요.

DJ 입장에서는 어땠어요?

투_ 트랙메이커로서, 아까 말씀하신 대로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저희 지점을 찾는 게 제일 중요했어요. 악기도 어릴 때는 오버 프로듀싱이 일상이었죠. 더 보여주려고. 나 이만큼 한다, 내 드럼이 이렇다는 걸 어필하려는 느낌이었어요. 이제는 좀 자연스럽게? 가사와 곡의 주제에 맞는 힘, 그 중간을 찾는 과정이죠.

이번 앨범에서 소리 때문에 놀란 적이 몇 번 있어요. 아주 미니멀하지만 효과적인 소리. 독특하지만 뒤로 물러나 있는 소리. 굉장히 신경 쓴 소리.

투_ 디테일한 부분을 신경 많이 썼는데 그런 부분이 도드라지는 걸 원치는 않았어요.

타_ ‘빈차’ 같은 경우가 진짜 언더 프로듀싱의 끝판이라고 봐야 하거든요. 진짜 베이스, 드럼, 피아노만 나오는 거예요. 에픽하이는 언더 프로듀싱이 맞는 팀 같아요. 전달하고자 하는 가사가 있기 때문에. 목소리를 너무 크게 내서 자기 하고 싶은 얘기를 하면 뭐라고 하는지 잘 안 들어오잖아요. 갈수록 뭔가 속삭이듯 만들게 되는 것 같기는 해요.

‘노땡큐’의 비트는?

타_ ‘노땡큐’도 언더 프로듀싱이지.

투_ 그것도 뭐, 랩이 잘 들려야 하니까.

타_ 처음에 제가 베이스 라인을 스케치해서 데모를 만들었는데 너무 지나치게 언더 프로듀싱인 거예요. 처음에 제가 만들었을 때는 좀 암울했어요, 노래가. 그래서 투컷한테 이걸 듣고 느끼는 대로 다시 손대보라고 줬는데 투컷이 다른 해석을 한 거죠. 똑같은 라인이 있는데도 전혀 다른 노래로 느껴지는 거예요. 같이 뭘 만드는 게 이래서 재미있어요. 처음에 투컷이 저한테 ‘연애소설’ 트랙을 처음 들려줬을 때는 진짜 놀랐어요. 꼭 제가 만든 것 같아서요. 누가 들어도 제가 만든 트랙 같다고 느꼈을 거예요. 그래서 듣자마자 멜로디를 바로 작곡해서 녹음했어요. 가사도 바로 나오고. 이제 하도 오래 같이하다 보니까 서로의 감성을 서로 다 갖고 있는 거예요. 미쓰라의 한 부분, 투컷의 한 부분을 제가 갖고 있는 거죠. 너무 좋은 거예요. 내 손이 두 개 이상 생긴 것 같고. 내 부족한 마음이 더 넓어진 것 같고. 팀이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서로가 서로의 어떤 부분을 갖게 됐나요? 하나씩 꼽아주시겠어요?

투_ 제가 못하는 것을 서로 갖고 있기 때문에 제가 더 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감상, 감성적인 사람이 아니거든요. 저는 저를 잘 알아요. 제가 감성적인 트랙을 일부러 쓰게 되면 말이 안 돼요. 피아노를 더 감성적으로 만들어야지, 그게 말이 안 되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제가 뭘 줘도 타블로가 그런 요소를 입혀줄 수 있다는 걸 아니까 부담 없이 그 느낌만 갖고 시작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각자의 것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아예 분리를 하는 태도라서요, 저는.

타_ 투컷이 저보다 전문적이에요. 음악이나 기술적으로나. 기계나 악기를 다루는 것도 더 전문적이죠. 저는 더 몽상에 가까워요. 그래서 저한테 떠오르는 것들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들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할지 헷갈릴 때가 많아요. 다행히 투컷이 생활에서도 저보다 훨씬 더 체계적인 사람이라서 그런 생각을 정리해주죠.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 어쩌면 그 덕분에 제가 미치지 않는 거죠. 쓰라의 경우는, 제가 가사를 쓰는 스타일이 워낙 개인적이거든요. 항상 내면을 다루기 때문에 팀으로 뭘 하는 게 원래는 쉽지가 않아야 해요. 제 노래 가사를 보면 이게 팀으로 하는 음악이기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생각을 해봤어요. 이 세상에서 가사를 쓰는 사람 중에 이렇게 나랑 잘 맞는 사람이 또 있을까? 없어요. 시간을 15년 전으로 되돌린다 해도 없어요.

미_ 블로 같은 경우는, 생각하지 못했던 소재나 감정을 굉장히 탁월하게 선택해요. 저는 쓰는 걸 좋아하지 관찰하고 그런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래서 블로가 그런 것을 집어내는 게 내가 이런 것을 쓸 수 있게, 깨달을 수 있게 많이 도와주는 편이죠. 투컷의 경우는, 사실 저도 블로도 일을 잘 정돈할 줄 몰라요. 뭔가를 하고 있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스타일이죠. 그걸 투컷이 굉장히 잘 정리해줘요. 그리고 실질적이고 객관적인 조언을 많이 해주죠.

이번 앨범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분은 역시 아이유, 혁오 씨였죠?

타_ 워낙 타이틀이니까요. 두 분의 보컬이야 말할 필요가 없고. 부러워요. 저는 래퍼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었거든요. 제가 노래 목소리를 갖고 태어난 게 아니기 때문에 음악으로 뭘 표현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적화된 것이 랩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가끔 아이유, 오혁 같은 친구를 보면, 내가 저런 음성을 갖고 저렇게 노래할 수 있으면 매일 노래를 내겠다고 생각해요. 되게 부러워요.

그분들 외에 이번 앨범에서 소중한 일을 했다고 자랑하고 싶은 분은?

타_ 저는 이하이. ‘Here Comes the Regret’은 이번 앨범에서 유일하게 영어로 된 노래예요. 카니예 웨스트 회사 프로듀서들이랑 같이 송캠프에서 만든 노래죠. 원래 카니예가 찜해서 가져가겠다고 했던 곡인데, 중간에 계획이 바뀌었는지 ‘어, 거기서 안 쓰면 우리가 써야겠다’ 하고 기다리다가 앨범에 넣었어요. 이하이 목소리가 저는 너무 매력적이에요. 수현 씨도 그랬고, 뭔가 저희 앨범에 많은 분들이 흔쾌히 피처링으로 참여해주는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기도 해요. 저희가 만든 노래에서는 흔하지 않은 어떤 색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행히도 저희가 함께 하자고 부탁할 때 되게 좋아하세요.

투_ 한 명만 꼽기가 애매해요. 앨범을 위한 거니까. 다 고맙죠. 다 필요한 역할들을 잘해주셨고요.

미_ 감사할 따름이죠. 다들 고맙게 흔쾌히 해주시고, 저희 음악이 많은 분들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게 도움이 됐다고 하니까요, 하하. 굉장히 감사합니다. 언제든지 저희에게 요청하시면 밥 먹다가도 가서 할 의향이 있습니다.

타_ 저희 앨범 나온 다음에 보시면, 저희가 참여했거나 피처링한 노래들이 저희 앨범 나오고 1~2년 동안 되게 많이 나와요. 저희는 보답을 철저하게 하기 때문에. 공연 게스트에 갑자기 에픽하이가 나타나거나, 여기저기에 가사를 썼거나 곡을 만들었거나 그럴 때 놀라지 않으셔도 돼요.

그게 애픽하이의 장수 비결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타_ 많은 교류.

미_ 그분들이 잊고 있어도 저희가 잊지 않고 있어요.

다음 공연도 정해져 있나요? 이제 막 콘서트를 마쳤는데요.

타_ 7~8월 즈음에 ‘현재상영중’이라고 소극장 공연을 해요. 100% 재미를 위한 공연인데 그걸 준비해야 해요. 7월에 하는 시즌 3.

그걸 지금부터 준비해요?

타_ 어제도 문자로 회의하고.

미_ 생각보다 그게 준비가 오래 걸려요.

타_ 패러디할 포스터 선정이 가장 오래 걸려요.

봄 즈음에 패러디할 포스터가 나올 수도 있잖아요?

미_ 차곡차곡 미리 준비를 해놔요.

타_ 영화인들과 저희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죠. 그분들이 잘돼야 저희가 그 공연을 풍요롭게 할 수 있거든요.

미_ 그게 또 포스터만 있는 게 아니라 포스터에 관련된 영상도 저희가 준비해서 관객분들이 그걸 다 보시니까, 그게 제작 기간이 길어요.

타_ 그리고 약간 다른 색의 공연. 밴드 어쿠스틱이 아니라 클래시컬 공연이 하고 싶어요. 내년 초에 바람이 아직 불 때. 대화도 나누면서, 약간 연주회 겸 힙합 공연.

오케스트라와? 실내악 규모인가요?

타_ 저희 생각은 그냥 피아노와 랩, 그런 공연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주변에 클래식 하는 친구들이 에픽하이 음악은 힙합인데 다른 가요보다도 클래식 연주에 굉장히 잘 맞는대요. 한두 곡을 피아노 연주곡으로 만들어봤는데 정말 좋았어요. 고민 중이에요. 한번 해볼까 말까.

우리한테는 시간이라는 게 너무 귀해요. 저희만을 위해서 쓸 수가 없거든요. 우리가 한정된 시간을 갖고 진짜 해야 하는 일이 뭘까 생각했을 때, 당연히 음악이고, 그다음이 공연이죠.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공연이라도 준비할 건 너무너무 많죠?

타_ 많죠. 그런데 더 편하게 하는 방법도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스스로 힘들게 하는 것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걸 안 하면 좀 덜 힘들겠죠. 2~3년 전부터는 콘서트 머천다이즈도 쓰라가 직접 디자인하기 시작했거든요. 안 해도 되는데 하는 게 워낙 많은 거예요. 솔직히 에픽하이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게 그것인 것 같아요. 안 해도 되는 걸 되게 많이 하고, 해야 되는 걸 안 해요. 예를 들면 앨범 방송 활동.

투_ 필수인 것들 있죠?

타_ 그러니까 활동을 안 하는 이유가 하기 싫어서도 아니고, 그게 다 음악을 듣고 저희를 좋아해주는 팬들한테 모습을 보여주는 건데 그걸 싫어할 이유가 전혀 없죠. 하지만 저희 셋 다 유부남이고 둘은 아이가 있고. 둘 다 오늘 아침에도 등교를 도와주고 이런 것들을 해야 되는 상황에서 음악도 하는 거거든요. 이제 우리한테는 시간이라는 게 너무 귀해요. 저희만을 위해서 쓸 수가 없거든요. 우리가 한정된 시간을 갖고 진짜 해야 하는 일이 뭘까 생각했을 때, 당연히 음악이고, 그다음이 공연이죠. 뮤지션이라면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 그걸 최선을 다해서 하려면 이미 시간이 부족해요. 콘서트 날에 운동회가 있고, 앨범 발매일에 저는 학부모 상담 다녀오고. 이게 필수이고 원해서 하는 거니까. 해야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기 위해서는 아쉽지만 어떤 것은 포기를 해야 되더라고요.

미_ 집중하고 싶은 곳이 달라진 것 같기는 해요. 굳이 방송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저희가 노출될 수 있는 채널이 많기 때문에. 지금은 그냥 다른 것을 할 게 많아서 잠깐 이렇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좋은 방송으로 뵐 수도 있는 거죠.

오늘 여기서 나가시면 세 분은?

투_ 녹음실 가요.

타_ 녹음실.

아니, 다 끝났는데 쉬지 않고 왜요?

투_ 말씀드렸던 그거 한번 해보려고요.

타_ 진짜 한번 해보게요. 지금 우리가 활동하고 있었다면 이런 걸….

투_ 생각할 겨를도 없죠.

타_ 물론 활동을 안 하면 금전적인 손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저희는 그런 것보다는 창의적인 부분에 손해가 없었으면 좋겠거든요.

미_ 감성적인 손해도.

미디어가 그런 거죠, 요즘은. 에픽하이는 힘을 줄 곳과 뺄 곳을 정확하게 선택할 수 있는 팀이 됐다는 생각이 드네요. 음악에서도 인생에서도.

투_ 포기라고 생각 안 해요, 기회비용? 이걸 포기한 대신 다른 것의 가치를 더 높게 두는 거니까요.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삶을 스스로 주도할 수 있다는 건.

투_ 그냥 저희가 이런 걸 좋아하는 거죠.

타_ 에픽하이가 영화를 좋아하는 그룹이었다면, 이제는 연극 하는 걸 더 선호하는 것뿐인데 그게 여유에서 나오는 건 절대 아니고요. 저희가 TV에 나온다고 누가 보고 싶어 하겠어요?

미_ 그러니까요, 저희를?

투_ 막판에 진실이 나온다. 하하하.

타_ 나와서 서서 랩하고 있는데 굳이. 하하하.

미_ 음악 방송에 에픽하이가 나오는데 그 멋진 모습을 반드시 보고 싶다, 그런 마음은 별로 안 들 거예요, 아마.

타_ 심지어 콘서트 첫날 공교롭게도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했어요. 그런데 저희가 안 나갔잖아요. 저희가 거기 없잖아요. 그게 더 자연스럽더라고요. 잘생기고 예쁘고 화사한 친구들이 거기 있고.

미_ 저희가 이런 노선을 택해도 잘 들어주시고 잘 찾아주시고, 너무 감사드립니다.

투_ 열심히 몇 년간 연습해서 방송 나오기 굉장히 힘들거든요, 사실. 그런 친구들이 한 번 더 나오는 게 낫죠.

타_ 맞아. 내가 봐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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