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데이비드 핀처

MAN AT HIS BEST

지금껏 들어온 조언 중에서 가장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게 있나?

내가 지금껏 만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현명하다고 손꼽는 사람은 조엘 슈마허 감독인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 혼자서만 작업에 신경 쓰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다른 이들은 모두 끌려다닐 뿐이다. 어떤 순간에도 ‘모두 준비를 마친 것 같군요. 지금 해야 할 일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제 시작해볼까요? 내가 없어도 괜찮겠죠?’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일이든 주도권을 잡고 싶다면 일일이 참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준비를 마쳐야 한다. 종종 이런 말을 하는 감독도 있다. “2년 동안 영화를 못 했는데 이젠 뭐라도 해야겠어.”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바로 이것’이라고 느껴지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이건 반드시 이런 식으로 돼야만 해’라고 말할 수 있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도 모두 다 그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명확한 목표를 제시할 수 있다. 조엘 슈마허 감독의 말은 결국 그런 의미인 셈이다.

지독한 완벽주의자라서 재촬영을 많이 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

헛소문이다. 물론 게으른 사람들 사이에선 내가 완벽주의자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야기 속에서 관객이 놓칠 수 있거나, 이해하기 어렵거나, 다시 생각해야만 할 것 같은 부분이 보일 때 ‘설득력 있는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이 인물은 오늘 운수가 나쁜 것이라 믿고 다른 사람들이 화풀이하도록 내버려두자’란 식으로 시퀀스를 방치할 순 없다. 이는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부당한 일이다. 내가 할 일은 스토리에 필요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지 배우들을 배려하기 위해 손쉬운 촬영을 하는 게 아니다.

작품에서 감독은 궁극적으로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나?

내 생각에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이란 창의적인 진화론에 가까워 보인다. 결국에는 가장 좋은 아이디어만 살아남는다. 그리고 나는 감독으로서 관객의 시야를 효과적으로 가릴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관객을 진창으로 빠뜨리지 않도록 길을 내는 동시에 끝내 최종적인 결말로 다다랐을 때 보다 큰 희열을 느낄 수 있도록 시선을 잡아둬야 한다. 또한 스케줄이나 날씨 때문에 촬영을 포기하지 않도록 일정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껏 연출한 작품들을 보면 마음속에 짙은 어둠이 깔려 있는 인물에 끌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어느 동네에나 ‘저기 사는 사람은 뭘 할까?’ 하고 궁금하게 여길 만한 집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것이 재미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도 일상적인 풍경에 숨겨진 사악한 비밀 같은 것에 흥미를 갖게 되는 심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사악한 기질이란 드러나기보다 숨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작품을 끊임없이 만드는 이유가 그저 관객을 겁주기 위해서인가?

만약 사람들이 망각한 동물적 본능을 일깨우고 싶은 것이냐고 물어본다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답하고 싶다. 다만 낯선 사람의 동물적 본능을 일깨우기 위해 초등학생이 희생되길 바라진 않는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러길 바란다. 다만 내가 살인마 같은 존재에 계속 매료되는 건 우리가 그런 이들의 행위를 단순히 광기라고 규정하기 때문인 것 같다. 연쇄살인마가 되려면 적어도 세 번 이상 살인을 저질러야 한다. 다시 말해서 두 번의 살인 이후 잡히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살인을 치밀하게 계획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이들은 대부분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 연쇄살인마가 무서운 건 바로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행위를 단순히 광기로 정의해선 안 된다.

데이비드 핀처는 언제나 악의 평범성에 주목한다.

ⓒNETFLIX

<마인드헌터>는 프로파일러들에 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과거에 <양들의 침묵>을 보고 FBI에 지원한 사람이 아주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내게 “<마인드헌터>가 <양들의 침묵> 같은 반향을 일으킬까요?”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내 생각을 말한다면, 아닐 것이다. 수사관들의 생각은 어떤 면에서 범죄자의 생각과 유사하다. 하지만 큰 차이는 이런 비인간적인 일에 관여하는 데에서 대가를 지불하는 존재란 것이다. 수사관들은 슬픔을 느낄 줄 안다.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저 매우 사려 깊은 사냥꾼인 것이다. 수사관들은 모든 인과를 상상하고 예측해야만 한다. ‘살인자가 이런 선택을 한다면? 희생자가 이런 상황에 놓였다면?’ 그들은 앤서니 홉킨스가 연기한 요리를 즐기는 미식가라든가 소믈리에라든가 체스 마스터가 아니다. 대부분의 살인마는 유년 시절에 학대를 당했거나, 혼란스러운 감정에 휩싸여 있으며 대체로 사악하다. <마인드헌터>는 결국 프로파일러들의 영웅담을 그린 작품이라기보단 비인간성의 자취를 추적하는 이야기에 가깝다.

만약 어느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가볼 수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가?

<소프라노스> 5시즌이나 6시즌을 작업한 데이비드 체이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보고 싶다. 그의 머릿속에는 완벽한 세계가 있을 것 같다. 그다음은 <데드우드> 1시즌을 쓴 데이비드 밀치의 머릿속도 궁금하다. 사실 <데드우드> 파일럿 시즌의 연출을 거의 수락할 뻔했던 것도 데이비드 밀치에게 매료됐기 때문이다. 체이스와 밀치는 정말 대단한 작가들이다. 어떤 상황이 그려질지, 인물로부터 무엇을 끌어낼 수 있는지, 호기심을 자아내는 법을 잘 안다.

<월드 워 Z> 속편을 제작 중이다. 브래드 피트와는 네 번째 작업인 셈이다.

일단 농담을 받아들이는 취향이 비슷하다. 덕분에 관계가 보다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의중을 파악할 정도인데, 한편으론 각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떠들어도 결국 서로를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영화는 한 편으로 끝나지만 TV 드라마는 여러 편의 에피소드를 전개해야 한다. 그러니 연출 방식에도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일단 TV 드라마는 제작비가 적기 때문에 이야기보다도 캐릭터를 묘사하는 데 공을 들여서 흥미를 끌어낼 수밖에 없다. 영화는 반대로 인물 자체보단 인물들의 행위와 인과를 설명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결국 그 세계를 일관성 있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감독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영화 촬영장에서 감독은 장군과 같다. 모든 스태프가 감독을 위해 일한다. 하지만 TV 드라마에서는 한 편의 에피소드를 연출한 감독이 다음 에피소드를 연출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TV 드라마 촬영장에선 감독을 이주 노동자처럼 보는 경향이 있다. 장기적인 관계로 여기질 않는다. 그 때문에 감독의 의견을 먼저 묻기보단 작품의 흐름부터 살피는 분위기가 있다.

그렇다면 TV 드라마를 연출할 때 팀워크를 어떻게 관리했나?

일단 사람들이 던지는 어떠한 질문에도 답할 수 있도록 그 누구보다도 먼저 30분 일찍 현장에 도착했다. 또 촬영이 끝난 뒤에도 다른 이들보다 30분 늦게 나갔다. 스스로 그런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참고로 <하우스 오브 카드>와 <마인드헌터> 촬영장에서 처음 몇 주 동안은 사람들이 내게 와서 이렇게 묻곤 했다. “점심 메뉴는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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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ADAM GRANT
출처
27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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