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특별시장과 나눈 이야기

박원순을 따라다니며 일을 구경하고 인터뷰를 나눴다.

나를 이틀 따라다녔잖아요. 내가 인터뷰를 해봐야겠네. 어땠어요?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일 너무 많지 않으세요?

많기는 하지만 재미있게 하면 재미있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결정하고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건 즐거운 일이에요.

시장님은 뭔가 계속 교섭하고 연결하고 있었어요.

인간의 본질이 사회성이에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말한 의미도 그거라고 생각해요. 혼자 외롭게 사는 게 아니고 늘 함께 소통하고 교감하는 게 인간의 본능일 거예요. 특히 나처럼 정치적인 인물은 그걸 즐겨야 해요. 싫어하면 안 되죠. 늘 사람들과 교감하고 교섭하고 창조하는 게 특징이 돼야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칠 때는 없나요?

당연히 있지만 일할 때 느껴지는 성취감이 있어요. 사람이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피곤하잖아요. 인간은 오히려 열심히 뛸 때 쾌감을 느끼고 엔도르핀이 돌아요.

복잡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서 재미를 느끼는 편이군요.

단순하고 뻔한 일은 하기 싫어요. 내가 처음에 검사가 돼서 계 모임 사건을 담당한 적이 있었어요. 수천 명이 관계되는 엄청 복잡한 사건이었어요. 그걸 하나 하고 나니까 세상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런 성취감이 있죠. 지금까지 나는 늘 도전했다고 생각해요. 스물일곱에 검사가 됐으면 최고 아닙니까? 근데 나는 싫었어요. 사람들 잡아넣고 이런 게 아름다운 일이 아니잖아요. 30대 초반에는 저택도 있었고 땅도 있었지만 돈보다는 성취감이 내게 더 큰 동기였어요. 돈을 더 벌었다면 장관 청문회 때 위장 전입이나 다운 계약서가 쫙 나왔겠죠. 더 낮은 곳으로 가서 더 큰 꿈을 갖고 싶었어요. 세상을 바꾸는 거.

서울시장 일은 재미있으세요?

재미있죠.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게. 보세요,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 많은데. 수많은 과제가.

지금까지 서울시장 임기 안에 해온 일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문제를 대면하고 마스터플랜을 딱 만들어내는 것. 거기서부터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 예를 들어 서울시 비정규직이 거의 9000명이었어요. 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어요. 크게 보면 그런 것들이 쌓여서 서울시의 패러다임이 변했어요. 그게 중앙정부에 의해 전국화되고 있고. 어마어마한 보람이죠.

특정 프로젝트라기보다는 큰 패러다임 전환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거군요?

그렇죠. 성장 지상주의에 입각한 개발 시대가 있었어요. 고도성장이 끝날 무렵에는 새로운 시대의 갈망을 제도나 사회 흐름으로 만들어내지 못했어요. 제가 서울시장으로 취임하고 나서 6년의 시간이 그 흐름을 바꾸는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문재인 정부도 서울시의 정책을 전면적으로 가져갔어요. 전에는 서울시만 해오던 일을 중앙정부가 채택해서 앞으로 5년 동안 밀고 가면 확실한 변화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임기 중에 있었던 큰 실패나 실수를 꼽을 수 있나요?

솔직히 많죠. 특별히 구의역 사고가 가슴에 남아요. 이것도 결국은 신자유주의가 결부된 사회적 문제였죠. 모든 걸 다 외주화해 아끼려 했는데 그게 시민들의 삶을 짓밟았어요. 외주화하고, 비정규직 늘리고, 월급을 적게 주면서 경영의 효율화를 기하려 하고. 그러면 인간은 소외되고 불안해지고 일의 성과도 제대로 이루기 어려워요. 그 물결이 주변에 있었는데 내가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걸 보는 혜안을 못 가졌죠. 그래서 김 군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어요. 그게 또 다른 혁신의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정규직이 많아지면 조직이 비대해지지는 않나요?

세상의 모든 제도가 플러스, 마이너스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움직이는 세상이에요. 선진사회일수록 국가가 훨씬 더 인간에게 투자하는 걸 볼 수 있어요. 북유럽처럼 삶의 질이 높은 국가일수록 인간에게 투자해요. 사람이 시스템을 만든다는 신념에 기초하는 거죠.

국가보다 개인이 더 앞에 있다는 말씀이군요.

우리 공무원만 해도 서울시 예산은 몇 배로 늘었는데 공무원 숫자는 그대로예요. 유럽은 우리보다 세 배를 더 고용해요. EU 국가들이 다 그렇죠. 그 나라들은 공공에서 일하는 인력이 우리보다 세 배 많아요. 우리는 효율 중심의 사회를 강조하다 보니 서울시도 공무원들이 지금 정말 힘들죠. 초과근무도 많고. 만약 내게 그런 권한만 있으면 서울시 공무원 월급을 올리고 채용도 늘릴 거예요. 이게 시민 서비스의 질을 확 높이는 계기가 되겠죠. 그런데 관련 규제가 있어서 할 수가 없어요. 모든 걸 자율과 분권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데 아직은 그게 잘 안 돼요.

북유럽과 EU 국가를 언급했는데 박원순 시장이 이끄는 서울의 롤모델이 될 국가나 도시가 따로 있나요?

어느 곳에서도 배웁니다. 바르셀로나나 로테르담에는 도시 총괄 건축가가 있어요. 오슬로, 암스테르담, 코펜하겐 같은 경우는 자전거 수송 분담률이 40%가 넘어요. 우리는 겨우 3%쯤이거든요. 지금은 ‘따릉이’ 때문에 조금 높아졌을 겁니다. 동시에 서울시가 세계의 다른 도시에 수출하는 것도 압도적으로 많아지고 있어요. 환승 시스템, 지하철 시스템 등 서울시의 50여 개 프로젝트가 수출되고 있어요.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도시의 위상도 확실히 갖고 있고요. 사회적 경제가 성장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GSEF’라는 게 있는데 그것도 우리가 창립했고, 내가 의장이고. 서울시가 이런 데서 압도적인 글로벌 리더십을 가져가는 거죠.

본인의 장점을 굉장히 잘 자각하고 계시네요.

단점도 잘 자각하고 있어요.

단점은 뭔가요?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거. 사사건건 너무 개입하는 거. 그걸 반성하고 수첩을 안 갖고 다녀요. 웬만하면 남에게 맡기고. 단점을 줄여나가고 장점을 계속 가져가야겠죠.

박원순의 평소 업무 복장. 두꺼운 외투, 목도리, 신은 흔적이 완연한 구두. 박원순이 늘 움직인다는 증거.

서울시장은 하나의 수단인가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서울시장이 되기 전이나 후나 내 꿈은 같아요.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서울이 글로벌 도시로 우뚝 서는 등의 목표가 중요하죠. 서울시장이라는 직책이 수단이라면 어폐가 있지만 나의 목적과 비전이 더 중요합니다. 나만이 아니라 서울시 직원도 똑같이 생각하길 바라고요. 이왕 한배를 탔으니까 같이 가자는 게 내 마음이죠.

그 비전이 공유되는 걸 느끼나요?

그럼요. 옛날에는 내가 도시 재생 같은 걸 수없이 이야기해야 했어요. 지금은 각 부서가 가져오는 새로운 정책이나 사업이 정말 놀라워요. 펄펄 날고 있어요. 늘 감동받아요.

따라다니면서 본 것 중에 디지털 시장실이 인상적이었어요. 이걸 만든 이유가 있나요?

정보가 분산되어 개별적으로 존재하기보다 모아지고 분류되고 통합되고 공유되는 게 더 중요해요. 그래서 서울시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들었어요. 이걸 이용하면 내가 서울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볼 수 있어요. 나뿐만 아니라 서울시 공무원도. 더 나아가서 우리 시민도 공유할 수 있다고 봐요.

그걸 시민과 공유할 생각이 있나요? 또 공개 가능한 자료가 많이 있나요?

그럼요. 보안 문제가 걸린 걸 빼면. 시민에게 편리한 자료도 있거든요. 뉴스라든지, 여러 지표라든지, 물가라든지 하는 항목은 공개하고 있습니다.

공무원 조직과 일해본 경험은 어땠어요?

처음부터 생각했어요. 사회적 변화와 성취를 누구와 함께 이루느냐. 결국 우리 서울시 공무원들이에요. 그러면 이 공무원을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주체로 만들어야 해요. 그래서 공무원의 자존감과 능력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내가 가진 여러 비전을 나누고 공무원이 그 비전에 매료되게 할 수 없을까’ 고민했죠. 서울시의 많은 성취는 우리 공무원의 공동 협력으로 이룬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상호작용을 하잖아요. 공무원 조직이 바뀐 만큼 시장님 자신도 변한 게 있나요?

제 스스로도 일하는 시스템을 많이 바꿨죠. 이제 이야기를 안 해도 알아서 잘해요. 그리고 일정이 많이 늘기는 했어요. 대신 회의하는 시간은 줄었고. 행사나 사람 만나는 게 훨씬 많아졌죠.

오늘 일정은 몇 개예요?

오늘은 20개네요.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일정은 안 하기도, 못 하기도 합니다.

저라면 안 할 것 같은데. 일정이 늘 20개씩은 있는 건가요?

늘 그렇지는 않아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정이 있죠. 어디에 간다거나.

시민운동을 오래 하다가 시장이 되었어요. 개인적으로는 포지션이 바뀌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남에게 부탁을 하다 여러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는 입장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어요. 위치가 변하며 새로 깨닫게 된 것이 있나요?

근본적인 건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을 해왔어요. 지금도 내용만 달라졌을 뿐 실제로는 서울시라는 거대도시를 바꾸는 일을 하잖아요. 너무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죠. 시민운동을 할 때는 직접 쓸 수 있는 자원과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자원을 사회적으로 모으는 일을 했고. 지금도 서울시의 예산과 권한만으로는 하기 어려운 게 많아요. 그럴 때 시민들을 참여시키죠. 서울시는 큰 조직이에요. 규모로도 10대 거대도시잖아요. 이 거대한 조직은 구청까지 다 합치면 4만1000명 정도 돼요. 그런데 진짜 어려운 게 하나도 없었어요. 신기하게도.

머리가 좋아서일까요?

하는 일이 비슷한 거죠. 시민운동은 종합 백화점 같은 일이었어요. 안 하는 일이 없었어요.

서울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있겠죠. 이해 당사자들의 이해를 반영하는 우선순위가 있습니까?

나한테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그게 현장을 중시하는 정책이고. 용산국제지구 사업이 취소돼서 지역 주민의 반발이 심했어요. 서울시가 한때는 멀쩡한 아파트 다 철거하고 국제 항구로 만들려 했는데 그게 철회되니까 상실감과 분노는 말할 나위가 없었죠. 보좌진은 ‘거기 가면 달걀 맞는다’고 계속 가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현장에 갔어요. 종일 다니면서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다 모여서 이야기했어요. 지금부터 밤을 새워도 좋으니 여러분 하고 싶은 말씀을 빠짐없이 다 듣겠다고. 한두 시간 이야기하시니까 할 이야기가 없어지더라고요. 제가 결론을 내리면서 마지막에는 주민에게 이런 이야기도 했어요. “결국 여러분도 주거나 도시를 투기 대상으로 본 것 아니냐.” 앞에서 충분히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안 그러면 내가 돌을 맞았겠죠.

달걀은 안 맞았나요?

그날 박수만 엄청 받았죠.(웃음) 공감을 충분히 했으니까. 서울로 7017도 반대가 심했어요. 모욕감도 상당히 많이 느꼈어요. 남대문시장을 못 들어오게 막고 곳곳에서 항의했어요. 그걸 다 듣고 다 참으면서 1박 2일 동안 남대문, 충무로 일대를 다 돌았죠. 약속한 것들도 있고. 그게 지금 다 이뤄지고 있어요.

서울로 7017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는데, 이 프로젝트가 긍정적이었다고 자평하는 건가요?

그걸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나요?

있죠.

하긴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없을 순 없죠. 이건 세계적인 프로젝트라고도 생각해요. 런던은 우리와 달리 템스강에 인도교를 놓지 못했어요. 그래서 <가디언>이 ‘왜 서울이 하는 걸 런던은 못 했을까’라는 기사도 냈죠. 고가 하나를 변화시킨 게 아니라 핵심 철학이 있어요. 도시를 연결하는 것. 도심과 서부역 일대가 단절되어 있었죠. 그게 연결되며 그 일대가 다 살아났어요. 정상화되는 걸 경험하고 있잖아요.

서울로 7017의 남대문시장 쪽 지역은 원래 베드타운이 아니었어요. 거기는 이전에도 차로 잘 연결되고 있던 데 아닌가요? 서울에서 고가도로가 사라지는 경향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기존에 없어진 서울의 고가도로와 서울로 7017의 가장 큰 차이는 철도를 지나느냐 안 지나느냐였어요. 지금까지 서울이 없애는 고가도로는 교차로 위에 있던 곳인데 서울로 7017은 철로를 넘어가는 도로를 인도로 바꿨어요.

‘보행 친화 도시’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화두예요. 전 세계적인 추세고요. 이경훈 교수는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에서 걷지 않는 도시는 도시가 아니라고 이야기해요. 전부 차로 다니면 지나가버려요. 도시에서는, 특히 도심권에서는 머물고 먹고 자고 즐기고 쇼핑해야 해요. 서울역 고가는 그냥 차로 지나가는 길입니다. 남대문시장 사람들도 불안해했어요. 차가 못 오면 망하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 사실 남대문시장은 이미 위축되고 있었어요. 우리는 잘못된 신화를 갖고 있어요. 자동차 도로가 생겨야 그 도시가 산다고 하는데 사실은 반대예요. 도시와 문명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뉴욕은 주말 아침에 산책하고 카페 가서 커피 마시고 빵 먹으면서 신문 보는 일로 오전을 보내요. 그러다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끼리 만나고 악수하고 인사하고 이야기하는 커뮤니티가 만들어져요. 우리는 다 자동차로 다니니까 전부 개별화되고 공동체라는 게 생겨나지 않아요. 공동체적인 전통 사회였던 대한민국이 전부 개별화되고 분산되는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도시로 바뀐 거예요.

영국은 놀랍게도 지역 공동체에도 장관이 있어요. 규제나 감독처럼 추상적으로 접근하는 대신 시민들의 삶의 본질을 보고 그 공동체의 삶을 연결하고 행복을 키워주는 게 그들의 일이에요. 이런 걸 보면 우리가 어떻게 가야 될지 알 수 있어요. 미국에도 시민 참여 및 사회 혁신부가 있어요. 제게도 사회 혁신 분야에 세계적인 네트워크가 있었어요. 시장이 되고 나서 서울 혁신 7년 기획안을 만들었죠. 이번에 문재인 정부에서도 사회혁신수석을 말했잖아요. 흐름이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좋은 걸 보고, 서울시가 실험하고, 안착되면 중앙정부로 가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면 그 역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일까요?

지금 내가 서울시장을 이렇게 재미있게 하고 있는데 왜 자꾸 딴소리를 해요?

저 지금 처음 말했는데요….

(웃음) 혁신과 변화를 만드는 일에 더 몰입해서 서울시를 더 번듯한 도시로 만들어야죠.

서울시장 지방선거에 한 번 더 출마할 거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그것도 (말하기는) 좀 이릅니다.

알겠습니다. 박원순을 이끌어나가는 근원적인 동력은 무엇인가요?

호기심과 성취감 같아요. 2010년에 런던에서 석 달을 보낸 적이 있어요. 사람은 걸어야 보여요. 걸을 때 보이는 미세한 것들이 있었어요. 그걸 보게 하는 건 호기심이고, 그렇게 본 건 나중에 반드시 성취했어요. 실제로 만들었어요.

나중에 이러이러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욕구도 있나요?

역사가 기록하고 시민들이 기억하게 해야죠. 내가 원한다고 원하는 대로 되는 건 아니죠.

원하는 게 있을 수는 있잖아요.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로마에 위대한 황제가 있었어요. 로마 시민이 그를 위한 기념비를 만들려 했대요. 그런데 그 황제가 반대하면서 했다는 말이 있어요. “나는 로마 시민들의 마음속에 세워지는 기념비를 원한다.” 저도 그런 마음은 있어요.

본인을 둘러싼 비판에 많이 신경 쓰는 편인가요?

비판을 안 들으면 안 되죠. 그것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것까지 즐겁게 들을 수 있나요?

훈련하면 돼요. 스트레스 받으면 나만 손해니까.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있으세요?

그럼요. 처음에는 우리가 이렇게 고민한 정책이 왜곡되거나 편파적으로 해석되면 마음이 안 좋았죠. 그런데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 민주주의에는 언론의 자유가 있고, 권력은 늘 견제와 감시를 받아야 해요. 언론이 비판한다면 그건 언론이 스스로의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는 거예요. 언론과 권력이 서로를 인정하고 내가 더 큰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해야죠. 우리가 돈 줘서 해야 할 일을 언론이 자기 돈 내고 해준다고 볼 수도 있어요. 그렇게 치면 우리를 도와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이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즐거워지죠.

이런 태도가 서울시장이 되고 나서 바뀐 건가요?

점차적으로 변했죠. 처음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니까요.

이제 그 정도 마음가짐이면 안 즐거울 일이 없겠네요.

나는 처음에 시장 부임할 때보다 지금이 더 젊어졌어요. 첫째 이유는 삶에 대한 태도를 즐겁게 만들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아리수를 열심히 먹었기 때문이에요.(웃음) 아리수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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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사진Shin Donghoon
출처
28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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