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의 저력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그는 예전의 능력을 다시 장착한 듯 하다.

김용만은 요즘 ‘아이돌 스케줄’이다. 한 달에 고정 프로그램만 6~7개를 할 정도로 바쁜 일정 때문에 소속사 식구들에겐 이미 ‘FNC의 아이돌’이라 불린다. 기자도 3개월간의 스케줄 조율 끝에 하와이에서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날인 5월 16일에 겨우 만날 수 있었다. TV에서처럼 촬영 현장에서 그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스텝들에게 농담을 던졌다. 기자에게도 우리같이 (얼굴이) 되는 사람들은 찍으면 또 금방 화보잖아”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인터뷰는 안 하시던데 화보 촬영은 가끔 하셨나봅니다.” “아니요. 2002년에 찍고 15년만인데 (얼굴이) 훌륭하니까 낯설지가 않네.” 그의 깨알 유머에 일일이 반응하다 보면 인터뷰 할 시간도 촉박할 것 같아 일단 촬영을 서둘렀다.

 

인터뷰를 잘 안 하기로 유명하다. 콧대가 높은걸까

절대 아니다. 예전만 해도 우리 같은 개그맨들은 작품으로 얘기해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잘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시대가 바뀌고 홍보가 필요한 세상이 되니 모두들 하니 나도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 아까 촬영 중에 장난으로 말했지만 사실 나 같은 얼굴로 찍어봐야 뭐 화보처럼 나오지도 않고.(웃음) 예전에 촬영하면 개그맨들에게 항상 “웃어봐라” 식의 똑같은 주문을 하는데 오늘은 구태의연하지 않아서 신선했다.

톱 MC로서 26년간 사랑받았다. 이토록 국민적인 지지를 받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개그맨이 되기 전부터 웃음을 사랑했던 것 같다. ‘웃으면 복이 와요’ ‘유머 1번지’ ‘한바탕 웃음으로’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한 주도 빠짐없이 챙겨보던 애청자였다. 그러다 꿈에 그리던 개그맨이 됐으니 얼마나 신났었겠나.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기며 하다 보니 뛰어난 제작진과 좋은 프로그램을 계속 만나며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히트 프로그램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그 중에서 대표작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쌀집 아저씨’로 잘 알려진 김영희 PD와 호흡을 맞췄던 ‘21세기 위원회’ ‘칭찬합시다’ ‘느낌표’ 등이 먼저 떠오른다. 김영희 PD와 내가 개그 코드가 잘 맞다 보니 그 시너지들이 컸다. 그리고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코너였던 ‘브레인 서바이벌’ ‘대단한 도전’ 등도 야구로 치면 홈런과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서프라이즈’나 ‘자기야’도 ‘MC 김용만’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프로그램이다.

그렇게 잘 나가던 김용만이 시청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준 사건이 있었다

2008년부터 5년간 불법 도박 사이트에 베팅한 혐의로 검찰에 소환됐었다. 그 때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당시 맡고 있었던 프로그램들을 모두 하차했고 2015년 말 방송을 복귀하기 전까지 3년간 연예계를 떠나 있었다.

당시 검찰 조사가 끝난 후 가진 인터뷰에서 담담하게 사죄를 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변명하거나 발뺌할 필요가 있나. 한 번을 하던 백번을 하던 잘못은 잘못이다. 나 스스로가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것을 뼛속 깊이 느꼈기에 토를 달 이유가 없었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반성의 시간들을 잘 보내야 한다는 생각만 했었다.

2015년 ‘쓸모 있는 남자들’로 복귀했을 때 생각만큼 반응이 좋지 못해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다

사실, 잘 되지 않을 거라 예상했기 때문에 크게 힘들진 않았다. 그리고 잘 안 될 때는 안 되는 프로그램이 들어온다. 내게 큰 기대를 안 하니 재기발랄한 기획의 프로그램보다는 안정적으로 진행만 하길 바라는 프로그램이 들어오는 것이다. 아내에게는 “3년을 쉬었으면 3년 이상은 고전할 거야”라고 말했는데 역시나 1년 반 가량을 대중의 관심에 동떨어져 있었다. 그런 상황임에도 아내는 도박 사건이나 일이 잘 안 풀리는 얘기들을 일절 물어보지 않았고 오히려 내 심정을 이해해주려 노력했다.

아내의 내조 덕분에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겠다

사실, 쉬는 동안 방송을 하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운동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수술하고 3개월간 입원해 있던 적이 있는데 5초도 똑같은 자세로 누워 있지 못할 만큼의 고통을 느낄 때였다. 그 때, 아내는 내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지극 정성으로 수발해줬는데 그 덕분에 지금 이렇게 건강하다 못해 여행 프로그램까지 맡을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내가 뒷바라지 해줄 때 느꼈던 아내의 따뜻한 마음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출연하며 다시금 시청자들의 마음을 얻었다

작년 말, 소속사 전체 회식을 하는데 본부장님이 “김용만이 소속 연예인 중 적자 1위다”라고 발표했다. 연말정산을 해보니 내가 제일 못 번거다.(웃음) 우리 소속사가 참 좋은 회사라고 느낀 게 계약한지 1년 8개월이 됐는데도 한 번도 채근을 하지 않고 심지어 회사 대표도 나에게 수입에 대해 왈가왈부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상장산데 투자한 사람들한테도 미안하고 그래서 “이제 뭐든 할게. 하자”고 했더니 그때부터 인기 아이돌급 스케줄을 잡더라. 그 첫 시발점이 ‘해피투게더3’ 설 특집이었다.

역대급 회차라는 말이 있을 만큼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녹화를 하는데 잠시 쉬는 시간에 PD가 들어와서는 “너무 재미있어서 2회로 나눠서 나갈게요”라고 했다. MC인 (유)재석이도 “형. 이거 방송 나가고 나면 형에게 섭외가 쏟아질 것 같아”라고 했는데 진짜 그 뒤로 여기저기에서 연락이 왔다. ‘한끼줍쇼’ ‘백종원의 3대천왕’ 등에도 게스트로 출연해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그런 반응들을 발판삼아 현재는 JTBC ‘뭉쳐야 뜬다’를 비롯해 6개의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뭉쳐야 뜬다’를 보면 한참 동생인 다른 멤버들보다도 더 활기차다. 3년을 쉬고 나와도 하나도 늙지 않았다는 말이 떠오르더라

촉이 좋기로 소문난 (주)병진이형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너 표정이 참 좋아졌다”라고 하더라. 병진이형은 재석이가 무명일 때도 “저 친구를 보면 기분이 좋아. 나중에 너희보다 유명해질거야”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지 않았나. 그 형은 ‘개밥 주는 남자’를 할 게 아니라 ‘점을 보는 남자’같은 프로그램을 해야 한다.(웃음) 나 같은 경우 쉬는 기간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질 때도 있다. 1991년도에 데뷔해서 22년간 앞만 보고 뛰었는데 덜컥 무기한 휴가를 받게 된 것이 아닌가. 열심히 성경공부를 하며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또 표인봉, 송은이, 정태우 등과 함께 해외로 선교 공연과 봉사활동을 하면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나아가는 법을 배우게 됐다. 예전처럼 쫓기며 살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얼굴에도 나타나는 것 같다.

운동선수 출신의 안정환과의 호흡이 돋보인다

정환이는 형들한테 깍듯하고 정말 착한 동생이다. 정환이도 아픔이 많다. 은퇴 후 찾아온 우울증과 불안함 때문에 약 8개월을 집 밖에 잘 나오지 못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사실 남자 나이마흔이 넘어가면 말 못할 고민 같은 것들이 생기고 괜히 마음이 쓸쓸할 때도 있고 그렇다. 정환이 뿐만 아니라 나나 (김)성주, (정)형돈이도 각자의 삶에 어둠이 있었고 그런 이야기들을 ‘뭉쳐야 뜬다’를 통해 다 같이 나누며 가까워진 것 같다.

6월부터는 게스트로 출연해서 큰 재미를 선사했던 ‘해피투게더3’ 2부를 맡는다

종영한 예능 중 다시 보고 싶은 인기 프로그램들을 우리 식대로 재해석해서 매주 방송할 예정인데 재석이는 포함해 나, 김수용, 지석진, 박수홍이 출연한다. MC인 재석이가 “형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강력히 추천했다는데 우린 계속 거절을 했다. 동생이 잘 이끌고 있는 프로그램에 형들이 나가서 숟가락만 얹는 것 같은 모양새가 싫었다. 그런데 또 재석이 입장을 생각해 보니 걔는 어디서나 리더가 되어서 치고 나가야 하니 부담을 많이 느낄 것 같더라. 아무래도 우리랑 있으면 국민 MC 가 아니라 그냥 철부지 막내로 맘 편히 까불고 그럴 텐데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주고 싶어서 응하게 됐다.

가끔 방송에 출연했던 아들 도현이가 궁금한데 혹시 개그맨을 하고 싶어 하지는 않나

지금도 좀 수줍음이 많고 그런 편인거로 봐서 내 과는 아닌 것 같다.(웃음) 고 2때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가 되고 싶다고 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10대 때 꿈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도현이가 꿈을 이룰 수 있게 적극 응원 중인데 벌써 미국에 있는 대학에 합격해서 올 9월에 입학할 예정이다.

부자지간에 사이가 참 각별한 것 같다

그 친구가 태어날 때부터 각별했던 것 같다. 가만히 보면 우리 아들이 나를 참 좋아한다. 그리고 나도 그런 아들 도현이가 좋더라. 둘이서 영화 보고 운동도 함께 한다. 특히, 아들친구들하고도 잘 지내서 아예 우리 집에 놀러오면 제가 라면을 끓여준다. 내가 또 고등학생들이 배고픈 시간을 기가 막히게 아니까 그 시간에 갖다 바치니 애들이 좋아죽는다. 도현이가 가끔 잘못을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현관문 앞에서 어떻게 훈육할지 생각을 해서 1분 안에 말할 내용을 정리하고서 들어간다. 어차피 1분이 지나가면 듣질 않는다.(웃음)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그 시간 내로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메시지만 확실히 전달한다.

좋은 아버지, 좋은 부모 같다

어릴 때 다들 내가 만들어보고 싶은 가정이라는 게 있지 않나. 그런 것들을 최대한 지키며 가보고 싶어서 노력을 했다. 아이는 잡으려고 하면 더 안 되더라. 그저 부모라는 울타리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바르게 자란다고 생각한다.

어느새 김용만 50살이 됐고 데뷔 30년을 바라보고 있다. 아직도 이루고 싶은 꿈이 있을까

늘 나이를 32살에 맞춰놓고 살다가 요즘은 양심에 찔려서 38살로 맞췄다. 아직도 40대는 아니니 50이란 숫자도 꺼내지 말아 달라. 방송 외에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서 살던 적이 있었다. 요식업부터 의류업까지 안 해본 사업이 없었고 또 모두가 아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내 자신에 대해 확신이 없을 때 나를 채우려 노력해야 했는데 자꾸 다른 데서 보상받으려 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으니 후반전부터는 멋지게 나이 들고 싶다. 아들 또래의 젊은 세대도 ‘김용만이 하는 이야기는 듣고 싶다’란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 즉,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일에만 집중한다면 나의 꿈이 허황된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김용만은 태생적으로 유쾌한 사람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재기발랄한 끼와 안정감 있는 진행 능력을 두루 갖춘 몇 안 되는 개그맨이었다. 시련을 겪고 3년여의 자숙 끝에 거울 앞에 선 그는 예전의 능력을 다시 장착한 듯 하다. “3년을 쉬었으니 복귀 후 3년은 고전할 것”이라는 그의 말 속에 답이 있다. 22년 동안 사랑받아온 그 기량은 어디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 Kakao Talk
  • Kakao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