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패스벤더와 낚은 시간

마이클 패스벤더와 함께 낚시줄을 드리우며 이야기를 나눴다.

The Spark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2월호

슈트, 셔츠, 타이 모두 폴로 랄프 로렌. 구두 크리스찬 루부탱. 양말 판테렐라.

마이클 패스벤더는 위대한 감독들이 줄 서서 기다리게 만드는 재능을 가졌다. 악마의 미소나 거친 잘생김, 또는 영화에 등장하는 가장 악랄한 캐릭터에 인간미를 불어넣는 능력의 소유자일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드러내야만 할 때 사적인 남자의 삶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낚시는 그가 생각해냈다.

마이클 패스벤더의 보도 자료를 뒤적이다 보면 그가 부담스러운 직업적 책무를 재미있고 때로 박진감 넘치는 일로 탈바꿈시키는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리포터를 부추겨 뉴저지의 사격장에 데려간 적이 있다. 몬트리올에서는 다른 이와 경주용 자동차를 몰았다. 가을이 드리운 토론토의 아침에는 에이허브 선장이 되기를 원한다.

그런 활동 계획은 패스벤더가 연기에 대한 논의를 싫어해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극장에서의 족보를 따지자면 패스벤더는 손색이 없다.

아카데미상에 두 번 후보로 올랐고 맥베스와 스티브 잡스를 연기했으며 이제 도전적인 독립 영화와 흥행 보장 프랜차이즈인 <엑스맨>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드러내 보여주기도 좋아한다.

아니, 사생활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 위해 자연에서 모험을 즐긴다는 이야기다. 뭐, 대단한 게 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취재 기간 동안 패스벤더는 의문의 여지 없이 예절 바르고 심지어 친절했지만 사생활을 공적 이야기에 끌어들이는 데는 완전히 무관심했다.

“나는 언제나 그를 좋아했어요.”

패스벤더가 잡스에 대해 말한다.

나는 그를 악독한 인간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 영화를 봐도 여전히 다른 이들과 타협하기 어려운 인간을 봅니다.”

토론토 리츠 칼튼 호텔 로비에 패스벤더가 도착했을 때, 그를 채 알아보기도 전에 주변 분위기가 들썩였다. 투숙객과 벨보이가 단체로 그에게 시선을 돌린 탓이었다.

그는 범죄 드라마 영화 <트레스패스 어게인스트 어스> 시사회를 위해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 참석했다. 나는 그가 이미 이 북새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고 느꼈다. 모든 기쁨의 악수, 엉거주춤한 사진 촬영 자세, 작별의 인사에 고음으로 짹짹대는 에이전트나 스튜디오 임원, 멍한 미소를 짓는 숭배자까지.

그래서 우리 둘은 잽싸게 호텔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겨 팬케이크 한 무더기를 놓고 탈출 계획을 살폈다. 차로 30분 거리의 선창에 가서 가이드이자 젊은 고깃배 선장인 애런을 만나 온타리오 호수의 무지개 송어와 치누크 연어를 잡는 것이다.

패스벤더는 문명에서 몇 시간 동안 벗어난다는 데 흥분된 나머지 말투에서 아일랜드 억양까지 살짝 묻어날 정도였다.

“어떤 고기를 잡든지 상관없죠!”

그가 인정했다.

The Spark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2월호

슈트, 셔츠, 타이 모두 버버리.

어떤 스타의 얼굴에 주름이 잡히는 순간 유명 인사가 되는 문을 세게 닫아버리곤 하는 업계에서 서른아홉 살의 패스벤더는 비정상적인 존재이다. 스티브 매퀸의 장편영화 <헝거>에서 IRA 죄수인 바비 샌즈로 출연했던 2009년까지 패스벤더는 뜨지 못했다.

분명 명성은 아직 그를 불편하게 만든다. 종업원이 필요 없이 왔다 갔다 하거나 특별 메뉴 설명을 너무 길게 할 때마다 패스벤더는 눈에 띄게 불편해한다. 그는 우리가 밖에 나갈 때마다 손을 계속 내리고 있었다. 모든 공간에 신경질적인 눈길을 던졌으며 지나갈 때마다 술래잡기하는 아이처럼 화분의 식물이나 큰 물체 뒤로 피해 다녔다.

요청하지 않은 관심은 아침 식사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우리는 뛰다시피 20미터를 움직여 로비 앞에 시동을 걸고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탔다. 사진가 한 무리가 잽싸게 움직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우아했지만 단호했다. 나중에요, 여러분!

그 장면에 눈치를 챈 우리 차의 운전사가 나중에 ‘마이클 패스벤더’를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는 모습이 하필 각도 덕분에 앞 유리에 비친 나머지 뒷좌석에서도 보였다. 그는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보세요, 기사가 나를 이미 구글로 찾아보잖아요. 늘 이런 식이죠.”

자기가 태우고 가는 사람의 중요성을 아직 모른 채 기사는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그는 마지못한 사과가 담긴 미소를 백미러를 향해 지어 보이며 차를 몰았다.

1653년에 출간한, 까다롭지만 친절한 낚시 지침서인 <숙련된 낚시꾼: 또는 사색하는 남성의 여가 생활>에서 아이작 월턴은 알을 낳기 위해 맑은 물로 향하는 길을 헤치고 나아가는 연어의 격렬함에 찬사를 보냈다.

그는 고향인 차가운 호수나 강물에서 ‘이미 찾은 바 있는 즐거움’을 다시 얻기 위해서 연어가 필사적으로 애쓴다고 생각했다.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연어는 물결 속에서 스스로를 자동 장전식 새총으로 만들어 놀랄 만큼의 높이에 내던진다. 심지어 5미터에 달하는 폭포에서도. 이를 두고 애런 선장은 이렇게 묘사했다. “스스로를 죽어라고 패는 거죠.”

The Spark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2월호

슈트, 셔츠 모두 돌체&가바나.선글라스 돔 베트로. 시계 파텍필립.

우리 대다수가 삶을 그런 식으로 산다.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곳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숱한 방황을 한다. 하지만 패스벤더에게 과거는 미래에 비하면 엄청나게 흥미가 덜하다.

패스벤더가 제작과 주연을 맡은 <어쌔신 크리드>는 1억 장 이상이나 판매되며 큰 인기를 누린 동명의 비디오 게임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패스벤더는 두 명의 다른 등장인물, 즉 영화 속 현재 시점의 칼럼 린치와 15세기의 조상인 아귈라르를 연기했다. 어린 시절에 가족 모두를 잃은 칼럼은 좋든 싫든 정확하게 비극적 유형의 영웅이다. 가족이 없는 젊은이가 강제로 자아실현의 여정에 오르게 되는 인물로 젊은 남성들을 대상으로 만든 영화에서 익숙한 인물이다.

하지만 <어쌔신 크리드>는 여러 면에서 패스벤더에게도 알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단순히 비디오 게임 원작 영화가 아슬아슬한 도박이기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게임 원작의 대작 영화였던 <페르시아의 왕자>와 <워크래프트>는 미국 박스 오피스에서 처절히 실패했다).

커리어의 대부분에서 패스벤더는 관객이 편안하게 응원할 수 있는 캐릭터를 선택하길 거부했다. 대신 어떤 현역 배우보다도 확실히 결핍된, 익숙하지 않다면 알 수 있을 만한 인물을 선택했다.

매퀸 감독과 세 번째로 만난 2013년의 영화 <노예 12년>에서 패스벤더는 남부의 농장 주인 에드윈 엡스 역을 맡았다. 엡스는 자신이 소유한 노예와 사랑에 빠져 그를 강간하는 인물이다. 패스벤더는 엡스를 자기 삶의 끔찍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로 연기했고, 덕분에 생애 첫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한편 작년에 개봉한 <스티브 잡스>의 경우 애플 공동 창업자가 분명한 유전적 근거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딸을 계속해서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핵심 주제와 관련된 갈등이었다. 잡스의 입장은 객관적으로 동정의 가치가 없었지만, 패스벤더는 마치 자신이 누구보다도 잡스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듯이 여전히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냉정함을 보여주었다.

대화를 통해 패스벤더는 새 정보를 향한, 감출 수 없는 굶주림을 표현했다.

“최근에 ‘힐빌리’라는 단어가 ‘윌리엄 3세의 추종자-언덕에서 사는 이’에서 나왔다고 들었어요. 이런 것 좋아해요.”

그는 흥미롭게 말했다. 우리는 호숫가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케이준이 ‘아카디안’에서 온 말인 것도 몰랐죠. 이것도 정말 멋져요!”

The Spark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2월호

<모비딕>의 아합 선장을 연상시키는 마이클 패스벤더.

패스벤더는 상대적으로 늦게 연기를 시작했다. 그는 1977년 서독의 하이델베르크에서 독일인 아버지와 아일랜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두 살 때 가족이 아일랜드 남서부로 이주했고 아버지가 킬라니 호수 국립공원 근처 시골 여관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패스벤더는 워크숍에 참여한 뒤 연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두 군데에 지원했다가 낙방했지만 드라마 센터 런던에 입학했다. 얼마 뒤 더 진지하게 연기해보고자 학교를 자퇴했다.

광고 몇 편을 찍었으며(가장 유명한 기네스 광고에서 그는 다람쥐를 형과 화해시키기 위해 태평양을 수영으로 횡단한다), <300>의 긴 머리에 늘씬한 스파르타인 등 몇몇 조연을 맡았다. 하지만 매퀸이 <헝거>에 출연시키고 나서야 기반이 잡히기 시작했다.

<헝거>는 북아일랜드 감옥에서 샌즈가 겪는 참혹한 66일의 단식을 회고한다. 등장인물을 제대로 연기하기 위해 패스벤더는 하루에 600칼로리의 식사 1회라는 식단으로 18킬로그램을 뺐다. <헝거>는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탔고 패스벤더는 영국 독립영화상에서 최고배우상을 받았다.

이후 패스벤더만의 개성이 스티브 매퀸, 대니 보일, 쿠엔틴 타란티노, 데릭 시앤프랜스, 캐리 후쿠나가, 리들리 스콧 등 최강의 감독을 매혹시켰다. 연약함과 의연함의 불가사의한 공존, 비애와 쾌락을 동시에 품고 마음을 끌어 당기는 파란 눈.

“엄청난 내적 갈등을 지닌 인물을 연기하는 게 그만의 장점입니다.”

지난여름 <파도가 지나간 자리>를 감독한 데릭 시엔프랜스가 말했다. 시앤프랜스는 처음 <헝거>에서 패스벤더를 본 기억을 떠올렸다.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패스벤더는 화면에서 표범 같았죠. “존재에 투명함이 서려 있었습니다. 그를 보면 내면의 움직임이 보이지만 외양을 놓치지도 않습니다.”

매퀸과의 두 번째 작업인 <셰임>에서 섹스 중독만 아니면 잘나가는 뉴요커를 연기한 패스벤더는 병적이고 열에 달떠 보였다.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의 2010년 인디 영화인 <피시 탱크>에서 그는 내연 관계인 여자의 열다섯 살짜리 상처받은 딸을 유혹하는 유부남을 연기한다. 두 역 모두, 연기에서 결핍보다 절박함이 배어 나온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처럼 감정적으로 복잡하지 않은 영화에서도 패스벤더는 아주 말도 안 되는 대사 몇 마디를 읊으며 비범한 부드러움을 연기한다.

영화 끝에서 전직 나치 과학자였던 세바스찬 쇼(케빈 베이컨 분)가 텔레파시 간섭으로 움직이지 못할 때 패스벤더의 마그니토는 “날 알겠지”라고 말하는 듯이 자신의 얼굴을 쇼의 벌린 손으로 살포시 기울인다. 그리고 은화를 천천히 머리에 관통시켜 쇼를 죽인다.

얼굴 기울이기는 작은 요소이고 이야기 전개와도 상관없지만 초영웅 영화를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다.

The Spark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2월호

패스벤더는 사려가 깊다. 심지어 요즘 자신이 맡은 배역의 어려움을 설명할 때조차도 그렇다. 나는 궁금했다. 한 사람이 되는 것, 상처를 주고 또 받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촉매가 되는 일을 멈추려 하는 것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를 이 상처받고 수척한 이들이 들려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정확히 맞아요.”

그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삶에서 똑바른 길이 있나요. 매우 간단할 수도 있지만 아주 복잡해질 수도 있죠.”

<스티브 잡스>에 마이클 패스벤더와 함께 출연한 케이트 윈슬릿은 패스벤더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마이클이 위기를 감수하는 것 따위에 신경도 쓰지 않아요. 그는 ‘얼마나 더 밀어 붙일 수 있을까요?’라기보다는 그저 자신에게 도전적인 역할을 맡고 싶어 할 뿐이에요.”

패스벤더의 손길을 거쳐 스티브 잡스마저 공감할 수 있는 진짜 인물로 변신한다. 영화 후반부의 중요한 장면에서 잡스는 하버드에 갈 딸에게 “물론 학비는 내가 대지”라고 말한다. ‘네가 생각하는 만큼 형편없는 인간은 아냐’가 장면의 행간에 어린 의미다. 아마 그가 연기하는 모든 인물의 격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그를 좋아했어요.”

패스벤더가 잡스에 대해 말한다.

“나는 그를 악독한 인간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 영화를 봐도 여전히 다른 이들과 타협하기 어려운 인간을 봅니다.”

물론 이런 작품에 깔린 교훈이 진정한 자기 인식이기는 드물다. 패스벤더가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을 준다면 훨씬 쉬울 것이다. 악에 대해 진실이라 믿는 개념의 강화로,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것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실제로 모른다. 왜 다른 이들을 실망시키는지. 우리는 우리가 신경 쓰는 이들을 얼마나 나쁘게 대하는지 고의로 간과한다.

The Spark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2월호

슈트, 셔츠 모두 에르메네질도 제냐.타이 레이스.구두 크리스찬 루부탱.양말 판타넬라.

우리의 배는 10미터짜리 시레이 보트로, 수중 음향 표정 장치나, 깊이 감지 센서, 고급 낚싯대와 미끼 등 최신 낚시 장비를 갖추고 있다. 패스벤더는 바로 갑판에 올라 내 승선을 도와줬다. 애런 선장이 시동 걸어 바다로 나가는 가운데 나와 패스벤더는 나란히 앉아 토론토 수평선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가 얼굴을 내 쪽으로 기울였다.

“그래야만 한다면 수영해서 돌아갈 수 있겠어요?”

패스벤더가 거의 활기차다고 할 수 있는 어투로 물었다.

주제를 바꿔 나는 그에게 게임을 즐기는지, 새 프로젝트를 팬으로서 접근하는지 물었다.

“비디오게임을 마지막으로 심각하게 해본 때가 2000년이죠.”

그가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미니 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작지만 중요한 역할을 맡기 한 해 전이다.

“한때 창고에서 밤에 일했어요. 아침에 돌아와서 그냥 경주 게임 앞에 앉아 있었죠. 이름이 뭔지 기억나지 않지만 끝없이 즐겼습니다.”

어떤 종류라도 낮을 지우는 활동을 해본 이라면 가장자리를 조금 희미하게 만드는, 다만 잠깐이라도 삶의 힘들고 고됨을 좀 덜 또렷하게 만드는 방법을 안다.

그는 지루함과 망각에 대해 애석함의 낌새를 담아 이야기했다. 마치 우리 대부분이 하루하루 접어드는 삶이 자신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루기 어려워진다는 듯이 말이다.

해변가에서 더 멀리 떨어졌을 때 패스벤더는 몇 주 전 아일랜드에서 아버지와 고등어 낚시하는 사진을 스마트폰에서 보여주었다. 경치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뾰족한 산과, 너무 방대하고 생생해 데스크톱 월페이퍼 같은 하늘이었다.

“이것 좀 보세요. 믿을 수가 없죠.”

패스벤더가 자부심을 드러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멈춰서 엄지로 몇 장을 더 넘기다가 아버지와 같이 찍은 다른 사진에서 멈췄다. 낚싯대와 레슬링하고 있었다.

“제가 이 빌어먹을 놈을 끌어들이고 있는 거죠!”

패스벤더는 정기적으로 고독이 동반된 경험을 찾는다. 그는 파도타기를 좋아하고 할리우드에서 몇천 킬로미터 떨어진 런던에 산다. 하지만 스스로를 외톨이라 여기지 않는다. 자신은 협력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더 크고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생각을 나누는 일 말이다.

“몇 시간을 혼자 보내고 대본을 읽고 또 읽는 준비 과정이 어렵더라고요.”

20분 뒤 해변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우리는 닻을 내렸다. 패스벤더는 친근하게 애런 선장과 배에 실린 여러 가지 낚싯대와 다양한 입질 전략 등에 관해 잡담을 나눴다. 우리는 찌를 내렸다.

낚시도 일종의 활동이다. 섹스나 스케이트보드처럼 잘할 때나 재미있다. 낚시를 그날 내내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제물낚시로 몇 마리 잡았을 뿐이고, 패스벤더는 무엇이든 물에서 꺼내려고 했다. 우리는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움직이지 않는 찌를 쳐다보며 과거의 성취에 대해 토론했다.

어릴 때 육상을 했던 그는 100미터와 200미터를 뛰었고, 허들을 넘었다. 장난만 치는 열등 선수는 아니었지만 최상급으로 발돋움하지 못했다. 아마도 불필요할 정도로 겸손해서 그랬으리라. 그는 괜찮은 감독만 만나면 누구라도 좋은 배우가 된다며 자신의 연기력을 폄하하는 사람이다. 물론 그의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순전히 거짓말임을 알 수 있겠지만.

그날의 정신은 캐나다식 친절함이었다. 병에 담긴 물과 사교적 농담을 예의 바르게 나누며. 우리의 눈은 호수에 머물렀다. 애런 선장은 안개 정도는 괜찮고 오히려 좋다며 연어 낚시를 고집했다. 그에게는 물고기의 성향처럼 답할 수 없는 질문으로 압박당하는 남자의, 아버지 같은 편안함이 있었다. 연어를 잡을 거라고 그가 우리를 안심시켰다.

그러던 중 갑자기 미끼 하나가 움직였다. 애런 선장이 치켜 들었다.

“여성 먼저요.”

패스벤더가 옆으로 물러나며 말했다. 나는 낚싯대를 잡고 끝을 엉덩이에 맞댄 채 줄을 감기 시작했다.

“그냥 작은 것 같은데요.”

애런 선장이 기대를 낮추라고 세 번은 말했다. 갈고리에는 정말 한 살쯤 돼 보이는 작은 치누크 연어가 걸려 있었다. 나는 마이클 패스벤더와 물고기를 잡았을 누구라도 취했을 행동을 했다. 그에게 내 전화기를 건네고 물고기와 사진 찍기 위한 포즈를 취했다. “이야아아아아!” 하며 소리도 쳤다. 그리고 애런 선장이 갈고리에서 꺼내 바다로 던지는 걸 도와줬다.

영광은 짧았다. 몇 분 지나 정말 큰 무지개 송어로 보이는 걸 놓친 바로 얼마 뒤 한 마리가 물에서 뛰어올라 줄에서 벗어났다. 외로운 햇살 한 줄기가 생선 옆구리의 외로운 줄무늬를 비추었다. 패스벤더는 연어를 잡았다. 애런 선장이 뜰채를 꺼내 보트로 끌어들이는 걸 도와줬다. 패스벤더는 놓아주고 씩 웃었다. 월척이었다.

누가 달리기를 제안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두 시간 낚시 여행 뒤 나와 패스벤더, 애런 선장 셋이 나란히 쭈그리고 앉아 주차장 아스팔트를 보다가 마리나와 호수를 경계 짓는 노란 담장까지 50미터쯤 돌진을 준비했다.

나는 출발선에서 숫자 세는 임무를 맡았다. 패스벤더는 주머니를 비우고 핸드폰을 풀밭에 던졌다. 그는 스트레칭을 했다. 애런 선장은 진짜 러닝화로 보이는 신발을 신고 있었다. 나는 딱히 대상도 없이 “그래요, 해보죠”라는 말이나 뱉고 있었다. 나는 숫자를 세었다. 우리는 달렸다. 패스벤더가 저만치 앞서 이겼다.

패스벤더는 음악을 좋아했다. 그날 아침 일찍 그는 좋아하는 밴드를 물었다. 내가 한때 글렌 댄지그가 이끌던 1970년대 말 펑크 밴드 미스피츠를 듣고 있었노라고 말하자 그는 “좋아요!”라고 말했다. ‘해볼 만한데!’라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패스벤더는 고등학교 시절 밴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로 밴드라고 불리는 것조차 과장이라고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기는 했다. 두 명에 둘 다 기타를 쳤다. 레스토랑에서 공연을 한 번 했는데, 앰프 음량을 낮춰달라고 거듭 요청받은 나머지 앰프에 꽂지 않은 전자 기타로 연주하는 메탈리카 꼴이 됐다.

도시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패스벤더는 1992년 더블린에서 너바나 공연을 본 이야기를 해주었다. 가수 브리더스의 오프닝 공연이었던 ‘네버마인드’ 투어로, 그때 그의 나이 열다섯이었다. “하지만 나쁜 공연이었어요. 집중해서 연주하지 않았죠”라고 그가 말했다.

스피드메탈 밴드 슬레이어에 대해서는 마치 현실 선언이라도 하는 양 그들의 최고 앨범 제목 <Reign In Blood>를 중얼거렸다. 그는 확실히 이 과정을 즐겼다. 폐에 신선한 공기를 채워 넣고, 음악가에 초점을 맞춘 대화는 우리를 확실히 젊었을 때로 되돌려 보내줬다.

그는 도시에 가까워질수록 말수가 적어졌다. 낚시와 달리기 이후 느글거리는 쿠바 샌드위치를 먹은 점심 식사 자리에서 우리 바로 맞은편의 여성이 원래 그렇게 신호를 잡는 것이라도 되는 양 핸드폰을 흔들기 시작했다.

패스벤더는 말을 중간에서 멈추고 글로 썼다.

“그녀는 나를 찍고 있지만 안 그런 척하는 거예요.”

내가 넘겨다보았지만 여성은 눈 맞추기를 꺼렸다.

패스벤더는 투덜대기를 증오한다. 끊임없이 침해받는 명예의 속성, 오늘 아침과 지금. 하지만 그를 지치게 만든다는 걸 확인하기란 쉬웠다.

“내가 어디에서 자고 똥 싸는지를 안다니 오싹한 일이죠.”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The Spark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2월호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연인(2016).

나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파도가 지나간 자리>의 공동 주연인 스웨덴 여배우 알리시아 비칸데르와 2014년 말부터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그는 사실 아주 단순한 일이라고, 둘의 관계에 대해 각자 말하지 않기로 했노라고 확신시켰다. 물론 둘이 연애 중이며 서로에게 노력하고 영감을 주는 관계라는, 친절하고도 존경스러운 상투적 이야기는 기꺼이 되풀이한다. 하지만 양쪽 모두 관계의 내밀함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가 사랑하는 이를 향한 자기 보호 방식의 논리와는 맞서기가 어렵다.

패스벤더는 가족과 가깝다. 여전히 아일랜드에 사는 부모님과 캘리포니아에 사는 누나가 있다. “그들은 확실한 나의 일부죠”라고 그는 말했다

“누군가 나에게 어젯밤 감정적인 장면을 촬영할 때 어떻게 그렇게 감정을 발산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많은 경우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합니다. 마치 나와 공존하는 것 같아요. 삶에서 때로 ‘누군가 나를 돌봐주고 있어. 누군가 나를 살펴주고 있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죠.”

그는 한껏 진부하게 웃었지만 나는 그 발상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작별의 포옹을 나눈 뒤 패스벤더는 레스토랑을 허겁지겁 나서다가 몇 사람과 악수하느라 멈춰 섰다. 고깃배에서 그가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나는 낚시 같은 활동을 통해 사고하기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투덜거려왔다. 종잡을 수 없는 속성 말이다. 그게 아마 삶의 진실이라고 농담하곤 했다.

“모든 것의 진실이죠!”

패스벤더가 말했다

“첫 출어 다음엔 생각을 너무 많이 해요. 사는 데 생각을 너무 많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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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AMANDA PETRUSICH
사진CEDRIC BUCHET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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