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과 나-2 폴 스미스 경

폴 스미스 경, 런던 코벤트 가든의 사무실에서.

패션 디자이너, 71세

아버지는 직물점을 운영했다. 침대 시트, 홑이불, 커튼처럼 집에서 쓰는 것을 팔았다. 아버지가 그 사업을 시작한 건 세계대전 직후였다. 원래는 집집마다 방문하며 보험을 들게 하는 일을 했는데, 그러다 옷감, 베개 같은 것을 팔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다. 아버지는 ‘한 구역’이라는 말을 썼는데 그건 한 그룹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고, 그 사람들이 매주 매출을 많이 올려주었다.

사이클 선수가 되고 싶었다. 아버지가 선수용 자전거를 사주었고 열두 살 때부터 열여덟 살 때까지 열심히 사이클을 탔다. 가수 버디 홀리가 쓰던 안경처럼 테가 두껍고 큰 안경을 쓰고 아주 멋진 차림으로 사이클을 타던 어느 날, 사고가 났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자동차와 충돌한 것이다. 결국 세 달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영국인들은 비폭력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 늘 뛰어났다. 펑크, 뉴 로맨틱, 고스, 모즈, 히피 등. 프랑스에서는 사람들이 자동차를 불태운다. 영국 사람들은 이런 식이다. “커튼을 옷으로 입었는데, 어때? 어울려?”

첫 컬렉션은 조촐했다. 셔츠 둘, 바지 둘, 재킷 둘, 니트 둘, 슈트 하나였던 것 같다.

내가 처음 패션 디자인을 시작했을 때,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은 머리와 가슴에 아이디어가 있고 그 아이디어를 좋아할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것,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은 ‘프라다에서 이걸 하고 있고, 구찌에서 저걸 하고 있다’는 게 전부가 되었다. 모두가 신경과민이다. 전에는 그저 ‘이것이 내가 하는 것이다’가 전부였다.

열한 살 때 처음 내 카메라가 생겼다. 들여다보고 시각화하는 법을 배웠다. 요즘은 휴대폰을 쓴다. 삭제, 삭제, 삭제, 삭제. 예전에는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구도를 정말 잘 잡아서 찍어야 했다. 필름 한 롤로 24장이나 36장밖에 찍을 수 없고 인화비가 아주 비쌌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들여다보며 시각화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했다.

어느 날 노팅엄 바이어드가를 지나가는데 나이 지긋한 퇴역 군인이 나에게 말했다. “끝내주는 여자처럼 입었군요!” 좋은 의도로 건넨 말이었고, 사실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나는 하이힐을 신어서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걸어갔다.

패션은 이제 특정한 브랜드를 지니는 것이 되었다. ‘나는 돈이 많아’ 혹은 ‘나는 패셔너블해’ 혹은 ‘나는 이런 부류야’ 하고 드러내는 것 말이다. 내 생각에 그런 행동은 자기 확신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스타일’이라는 말은 어렵지 않은가?

어느 파티에서 멋진 여자를 만났다. 알고 보니 개 두 마리, 고양이 두 마리, 자식 두 명이 있는 유부녀였다. 나는 스물한 살, 그 여자는 스물일곱 살이었고, 그녀는 런던에, 나는 노팅엄에서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 나에게는 순식간에 가족이 생겼다. 그 여자가 폴린이다. 1967년의 일이다. 우리는 2000년이 되어서야 결혼했다. 나는 결혼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시간이 좀 걸렸다.

서로 주고받는 법을 배우는 것, 스스로가 흥미로운 사람이 되고 상대에게 흥미를 느끼는 법을 배우는 것, 자기 이야기만 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 자기 일상뿐 아니라 상대의 일상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 주고받는 법을 배우는 것, 스스로가 흥미로운 사람이 되고 상대에게 흥미를 느끼는 법을 배우는 것, 자기 이야기만 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 자기 일상뿐 아니라 상대의 일상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어야 한다. 설거지를 하고, 손에 잘 닿지 않는 곳도 청소하라. 나는 그런 일을 좋아한다. 긴장을 푸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요즘 마케팅에서 단어를 남발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한정판. 빈티지. 럭셔리. 밑을 닦는 화장지에도 ‘럭셔리’라고 적혀 있다. 그나마 ‘빈티지’는 아니겠지.

카를로 스카르파라는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가 있다. 고인이 된 지 꽤 됐다. 스카르파는 오래된 건물을 현대화하는 작업에 뛰어났다. 가령 트레비조에 있는 아름다운 오래된 저택을 고친다고 하면, 200년 된 벽에 청동과 강철로 된 선반을 넣는 것이다. 나는 그런 작업을 아주 좋아한다.

대립되는 옷을 좋아하지 않는다. 입었을 때 편안한 옷이 좋다.

처음 일본에 간 것은 1982년이다. 가나자와에서 오사카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데, 기차 맨 앞에서 뒤까지 쭉 걸어보았다. 기차에 외국인은 나뿐이었다. 객차 안의 문이 열릴 때마다 아이들이 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나는 키가 꽤 크다. 호텔에서는 침대 밖으로 발이 나왔다. 당시 일본에는 서양인을 위한 침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손을 씻기도 힘들었다. 세면대 높이가 낮아서. 다른 것들도 다 그랬다. 이제는 일본에 내 사무실이 있다. 폴 스미스 스토어는 200곳쯤 있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아주 많다.

40년 넘게 나한테 물건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의자, 로봇, 스키, 사다리. 상자에 담아서 보내지도 않는다. 물건에 바로 주소를 적고 우표를 붙여서 보낸다. 이전에는 우체부가 호주에서 소에 다는 방울을 자기 목에 걸고 왔다.

미니를 한 대 갖고 있다. 그걸로 충분하다. 자가용 제트기는 없다. 제트기를 어디에 세워두나?

단지 언론의 주목을 받으려고 작업하는 디자이너가 많은데,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는 거다. 패션 산업에 큰 해를 입히고 자기 자신에게도 전혀 좋을 게 없다. 사람들이 한심하게 볼 뿐이다.

항공 마일리지로 보면 지구를 50바퀴 돌았다고 내 비서가 알려주었다.

맞춤 슈트는 어깨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는데, 사람 손으로 만들었다는 걸 증명하는 멋진 상징이며, 그것이 맞춤 슈트를 입을 때 느끼는 즐거움이다. 수작업인 만큼 실 하나가 다른 실보다 살짝 더 당기는 것 같은 느낌의 완벽하지 않은 면이 있는데, 그게 또 즐겁다. 멋지다.

폴린은 휴대폰을 쓰지 않는다. 우리 집에는 전화 응답기도 없다. 컴퓨터도 없다. 그게 좋다는 말도, 나쁘다는 말도 아니다. 그저 우리는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사업을 하고 싶다면 잘난 체하거나 틀에 갇혀서는 안 된다. 흐름을 따라야 한다. 공식에 갇히는 사람이 아주 많다. 이런 사람들은 ‘나는 이런 식으로 해’라며 자신이 변하지 않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긴다. 아니, 그러면 안 된다. 전에는 그런 식으로 했더라도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

나는 이 분야에 오래 몸담고 있다. 로켓처럼 치솟은 적이 없지만 돈을 빌린 적도 없다. 아주 신중하고 부드럽게 일해왔다. 또 천천히, 천천히 발전시켜왔다.

우리 아버지는 94세에 세상을 떠났다. 평생 하루도 빠짐없이 넥타이를 매셨다. 유행을 따르지는 않았지만 아주아주 깔끔하게 옷을 입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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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Alex Bilmes
사진Jooney Woodward
출처
28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