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성, 나는 맷집 좋은 배우다

1990년대 촉망받던 청춘 배우 김의성이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세월이 흘러, 충무로의 대박 영화마다 악역 전문 으로 명성을 드높인 배우가 있었으니, 바로 중년의 김의성. 그가 다시 돌아왔다.

한때 영화계에서는 “한국 영화는 오달수가 출연하는 영화와 출연하지 않은 영화로 나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는데 최근엔 바뀌었다. 바로 ‘김의성이 출연하는 영화와 출연하지 않은 영화’로. 김의성은 지난 5년간 총 31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그렇게 많은 작품 중에 그의 대표작을 떠올려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부산행’에서 자기 살 궁리만 하는 용석 역, ‘소수의견’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홍재덕 검사 역, ‘관상’에서 다크 포스 가득 뿜는 한명회 역 등 하나같이 악역이었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의 수더분한 외모와 달콤한 목소리는 어디로 가고 옆집 아저씨처럼 후덕한 외모로 무섭도록 잔인하거나 발암 수준의 얄미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2017년부터는 착한 역할을 많이 하겠다”고 말했지만 역시, 지난 1월 18일 개봉한 ‘더킹’에서도 들개파 보스 김응수 역으로 쉽게 사람을 죽이는 악랄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김의성은 과연 악역 성애자일까. 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인터뷰 날짜를 잡았다.

‘나쁜 의성 전성시대’다. ‘국민 미운털’이 된 소감이 어떤지 궁금하다
요즘엔 나보고 ‘명존쎄’라고 부른다. ‘명치를 세게 치고 싶을 정도로 밉다’라는 뜻이라는데, 그만큼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더라. 사실 처음 출연 제의를 받을 땐 그렇게까지 악역인지 못 느꼈다. 그런데 작품이 공개되고 나면 사람들이 모두 나를 ‘나쁜 놈’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악역을 연기한 나로선 욕을 먹는 것이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싶다.

우연찮게 악역 제의가 계속 들어오는 것인가
요즘에서야 운신의 폭이 넓어진 거지, 복귀한 후 한동안은 섭외가 들어오면 마다하지 않고 다 해야만 했다. 사실 40~50대 중년 남자 배우들이 주연 배우가 아닌 이상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다. 주로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그렇다면 갈등을 야기해 전체적인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임팩트 있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착한 역할은 표현하는 방식이 정해져 있어 자유도가 적은 반면에 악역은 이것저것 다 해볼 수 있어 재미있다. 이런 부분이 나와 잘 맞아서 악역을 택하는 것 같다.

색다른 캐릭터에 대한 욕심이 생길 것 같은데
배우는 수동적인 직업이라 누가 뽑아주면 거기에 내 몸을 맡기는 것이지 ‘내가 이때쯤 이런 역할을 해야겠다’ 계산하진 않는다. 한 사진작가 선배가 “이미지가 고정된다는 것을 즐겨라. 네 이미지가 고정이 되면 지혜로운 누군가 나타나서 그 이미지를 깨트릴 새로운 역할을 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제법 고정적인 이미지가 생겼는지 올해 개봉 예정인 영화들은 나의 이미지를 바꿔줄 작품들이 될 것 같다.

드디어 착한 역할인가
그렇다. 남북 간 갈등을 그린 양우석 감독의 신작 ‘강철비’에선 충분히 이해 가능한 건강성을 띤 보수 대통령 역을 할 예정이다. 또 ‘골든슬럼버’에서는 주인공인 강동원을 돕는 역할이다.

젊은 시절의 김의성은 어떤 배우가 되겠다는 꿈이 확고했을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처음엔 정치적인 연극을 했었기에 배우로서 사명감을 느끼기보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연극’을 떠올렸다. 그러다 1990년대 초반 동독과 소련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사상적 혼란이 왔고, 문화 운동으로서의 연극에 회의를 느꼈다. ‘모든 것을 없던 것으로 하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그동안의 무대 경험 속에서 배우에 대한 애정이 싹 터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처음으로 뭐가 됐든 연기를 해서 승부를 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연기를 정말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졌다.

서클 프레임 안경 뮤지크

과거 예술계에선 가방끈 긴 게 통하지 않았는데 서울대생이란 이유로 차별당한 적은 없나
‘쟤는 공부를 많이 했으니 건방질 거다’ ‘우리를 우습게 볼 거다’ 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돌아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어디를 가나 이상한 놈들은 늘 존재하기 마련 아닌가. 그래서 별다르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내 인생에서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요소 중에 학벌이란 건 정말 무의미하다. 제대로 공부해서 학점을 딴 것도 아니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얻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고등학생 때 공부를 잘했다는 증거 정도일 뿐이다.

배우로서 입지를 다지던 1999년, 돌연 영화계를 떠났다
1987년 극단 천지연에서 연기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영화 ‘성공시대’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후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에서 주연을 맡으며 탄탄대로를 걸었고, 당시 ‘천재 감독’이라 불리던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주연을 맡을 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당시 출연 제의가 들어왔던 모든 작품 속 캐릭터를 ‘내가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다.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상황에 캐스팅이 들어왔으니 일단 가짜 연기를 해야 할 것이고, 결국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자문자답을 하다 보니 어느새 매너리즘에 빠지게 됐다. 그 길로 바로 ‘도망’을 쳐서 베트남으로 떠났다. 거기선 FnC미디어 대표, CJ미디어 베트남 공동 대표를 하며 드라마 제작자로 일했다.

그래도 11년은 너무 길었다.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후회는 없는지
내가 서른다섯에 떠나서 마흔여섯 살 때 돌아왔다. 남자 배우로서 다양하고 재미있는 역할을 할 수 있고 가만히 있어도 기백이 넘치는 꽃 같은 시기를 다 날려먹었으니 후회가 없다면 거짓말일 거다. 그런데 한편으론 과연 꾸준히 배우로서 살았다면 지금 현재 느끼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아마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연기를 해서 밥 벌어먹고 많은 사람이 사랑해주는 ‘직업적 배우’라서 행복하다.

50대 중년의 남자. 사랑이나 결혼에 대한 얘기가 거의 없던데 혹시…
물어보는 사람이 없으니 특별히 알려진 내용이 없었다.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모두 쿨하게 헤어졌다. 지금은 정말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 6년째 동거 중이다.

동거 사실을 바로 솔직하게 답변해서 놀랐다
뭐, 같이 사는 게 대단한 사생활이라고 말을 못하나. 같이 살다가도 불같이 싸우면 헤어지고 그러는 건데 이 사회가 사귀다 결혼을 안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니 실제로 같이 살고 있어도 ‘예쁜 연애하고 있어요’ 이렇게 둘러대는 게 아닐까.

말이 나온 김에 여자 친구 자랑을 좀 해달라
프리랜스 디자이너인데 노는 걸 좋아해서 내가 돈을 많이 벌면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한다. 일을 하면 여러 사람에게 잘 보여야 하는데 그냥 나 한 사람에게만 잘 보이며 살고 싶다더라. 무엇보다 나를 굉장히 좋아해주고 잘 이해해주는데, 나에겐 세상에 좋은 걸 다 가진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사랑스러운 여자다.

자신의 트위터가 많은 사람의 놀이터가 될 정도로 열심히 하던데
박중훈이 “야, 이거 사람들하고 얘기하는 재미가 쏠쏠해” 하며 자신의 트윗 친구 500여 명을 소개해주기에 시작했다. 소소하게 사는 이야기를 주로 하다가 이제는 어디 가서 떠들고 싶은데 할 곳이 없는 경우 트위터에다 한다. 배우로 복귀하기 전에 만든 계정이라서 ‘공인이니까 참아야겠다’보다는 하고 싶은 말이 있거나 사람들이 재미있어할 얘기가 있으면 가감 없이 떠든다.

‘SNS는 인생의 낭비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럼 왜 인생을 낭비하면 안 되냐’고 되묻고 싶다. 정해진 시간에 합리적인 가격의 끼니를 채우고 ‘나인 투 식스’로 일하면 경제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 걸까? 인생에 낭비적이지 않은 요소가 얼마나 되는지도 잘 모르겠다. 가끔 가다 사치도 하고 돈, 시간도 쓰고 싶을 때 쓰는 것에서 행복함을 느낄 때도 있는데, 왜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 가두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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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트위터에 “구차한 설명 따위 달지 않고 사진을 올리는 설리가 제일 멋있다”라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 있었다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나는 설리의 그런 용기가 멋지다 생각하는데 뭔가 너무 부당하게 공격당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친구로서, 그리고 정의 사회의 구현을 위해서 얘기를 꺼냈다. 그런 사진 대부분이 내 여자 친구를 포함해 다 같이 어울리는 한 자리에서 연출해 찍은 사진인데 한 누리꾼이 “시국이 이런 판에 벗고 찍는 22살이나 두둔하는 54살 영감이나 대단하다”고 댓글을 남긴 걸 팔로잉을 하는 걸 보고서 응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사실 난 계속 공격을 받아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그 공격에 1원 어치의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무가치함’이란 건 늘 존재했고 나를 싫어할 사람은 싫어하고 좋아할 사람은 좋아하는 거지 모두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위한 광화문 1인 시위나 김무성, 유승민 등 정치인들에게 트위터를 통해 쓴 소리를 하는 걸 봤을 때 김의성은 꼭 펜이란 검을 휘두르는 협객같다
난 최소한 내가 떠들 권리만큼은 절대 잃고 싶지 않더라. 우리는 헌법의 소중함에 대해 무관심하게 살았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처럼 말할 수 있는 자유가 모두에게 있는데 이를 당연하게 막고, 부당하다 얘기하려면 불이익을 주고 그래서 결국 참고 감수하게 되는 건데 그런 게 너무 싫더라. 주변 동료 연예인들만 해도 정치적인 관심을 표명하면 사람들이 무슨 ‘연예인 따위가 그런 얘기를 하냐’며 비난받으니,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처럼 나이 많은 중년의 잃을 것 없는 맷집 좋은 남자가 공을 하나씩 던져서 스트라이크존을 형성하고 나서 ‘이 정도면 안전하니 너네도 던져봐’란 메시지를 주고 싶어서 여러 활동을 하게 된다. 어마어마하게 좋은 세상은 아니어도 모두가 각자 하고 싶은 얘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나이 많은 중년의 남자면 ‘꼰대’가 되는 게 더 쉬웠을 것 같은데
철이 없으니 가능한 얘긴데 인생 후반기의 인격 형성은 트위터에서 배웠다.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에서 기성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며 충격이 컸다. 젊은 친구들이 하는 얘기가 더 옳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들이 안 놀아주면 우리만 외로워지고 우리의 손해라는 걸 깨닫게 됐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누구를 가르치려 든다거나 한 마디라도 덧붙이는 걸 좋아하는 ‘꼰대’에서 점점 벗어나게 됐고 주변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몰리기 시작했다. 현장에서도 후배들이 나를 어려워하기보다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데 고아성, 배성우는 우리 집에 놀러 오면 밤새고 놀다 간다. 종석이랑도 잘 지내고 있고. 윤균상은 나를 진짜 친구로 생각하는지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괴롭힌다. 근데 그런 게 나한텐 이익이고 기본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생각해 즐겁다.

연기 경력이 벌써 30년째다. 김의성에게 가장 소중한 작품은 무엇이었을까
한 작품만 고르라면 되게 어렵다. 근데 난 철저히 나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내가 나온 작품은 다 소중했고 내가 출연하지 않은 작품엔 크게 관심 없다.(웃음) 사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그냥 내가 새롭게 찍는 영화들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또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

바꿔 말하면, 관객들 역시 “김의성의 영화는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겠나
좋은 영화인데 안 보면 본인들 손해지, 안 본다고 억지로 목을 끌어다 보여줄 필요가 있나. 나는 영화 잘 된다고 인센티브 받는 위치도 아니고, 돈도 다 받았고.(웃음) 가끔 배우들이 “천만 관객을 넘기겠다”고 공약을 거는데 나랑은 별로 상관이 없다. 대신, 내가 바라는 건 딱 두 가지다. 제작자가 손해를 안 봤으면 좋겠고 감독이 그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도만 되도 행복할 것이다.

다음 영화들의 끊임없는 제의 같은 건 바라지 않는지
이제 웬만하면 들어올 것 같다.(웃음) 대중적인 인기도 물론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론 영화업계에서 신뢰받고, 제작진이 나를 기용할 때 돈값하는 배우이자 현장에서 모두가 좋아하는 배우라고 인정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인터뷰가 끝난 뒤, 김의성은 “동부이촌동 산다고요? 나도 거기 꽤 오래 살았는데. 지금도 그 근처 이태원에 살고.”라고 얘기했다. ‘주당’이라는 그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어쩐지 신호(?)처럼 들려서 “시간 괜찮으실 때 한 번 연락드려도 될까요?” 얘기했더니 “시간만 맞으면 언제든지 좋죠. 수일 내에 연락할 테니 술 한 잔 합시다”고 흔쾌히 대답했다. 정치극을 하고 배우로서 자리 잡지 못하던 청년 김의성은 어둡고 자기 파괴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온전히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자신보다 훨씬 어린 세대와의 소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중년 김의성은 유쾌하고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10여년 세월간의 공백을 훌쩍 뛰어넘고 배우로서 재조명을 받고 있는 김의성. 악역 이외에도 그가 보여줄 다른 캐릭터들은 어떨지, 또 소셜테이너로서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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