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덕의 전쟁

김시덕은 보르헤스를 좋아한다. 그는 이야기가 현실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본다. 옛날 책 속에서 지금 세상을 본다

김시덕의 전쟁 - 에스콰이어

신기주(이하신) 전쟁을 연구하시는 학자가 요즘은 직접 전쟁을 치르고 계시네요.

박찬용(이하박) 서울대학교와의 전쟁.

김시덕(이하김) 세상과의 전쟁이고, 한국학회 일부와의 전쟁이죠.

신_ 김시덕의 전쟁이 발발한 원인은 무엇인가요?

김_ 지난 수년 동안의 연구 활동 탓이죠. 특히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에선 임진왜란 등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에 관한 한국의 일반적 통념을 깨는 주장을 했잖아요. 그걸 한국의 어떤 사람들은 친일적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한국을 비하한다거나, 일본을 미화한다거나.

박_ 한반도가 원래는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 요충지가 아니었다는 주장이라든지.

신_ 16세기 이후 일본이 융성하기 전엔 대륙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는 내용.

김_ 더 본질적으론 ‘한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나 유라시아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사에서 일본의 비중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더니 제가 친일적이라는 얘기들이 나오더라고요.

신_ 그게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교수의 재임용에서 김시덕을 문제 삼은 근거라니.

신_ 서울대 규장각은 한국학의 메카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지 않고, 규장각의 방대한 자료를 기반으로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아시아학을 할 수 있는 학문적 거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박_ 규장각 하면 정조가 떠오르는데.

김_ 규장각은 정조 시절에는 싱크 탱크였고요.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는 일종의 국가 기록원이었어요. 지금은 이씨 왕실 관련 문헌은 한국학 중앙연구원 장서각으로 옮겨졌고, 나머지 공적 문헌이 모여 있는 곳이 규장각이죠.

신_ 수백 년 동안의 온갖 공적 서류가 다 모여 있다고요?

김_ 한국뿐만이 아니라 가까이는 중국부터 멀리는 유럽 서적까지 모여 있어요. 고종 때 중국에서 번역한 유럽의 경제 서적도 있고요. 1000점 정도 됩니다.

신_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를 읽어보니까, 조선 시대에도 일본 서적이 한국으로 들어와 지식인들한테 영향을 미쳤다고 쓰셨던데, 그 근거가 규장각 자료에 있었던 거군요?

김_ 자료의 힘이죠.

신_ 그렇게 오래되고 보수적인 규장각 같은 엘리트 집단에서 주류와 다른 비주류적 주장을 하는 건 위험한 일 아닌가요?

김_ 한마디로 사문난적이죠.

신_ 학문의 도리를 어지럽히는 자.

김_ 게다가 일본과 관련된 것이니.

박_ 더 위험하겠네요.

신_ 누구보다 전쟁이 벌어질 걸 아셨는데 전쟁을 좋아하시는군요?

김_ 인간은 생각이 다르면 충돌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번엔 좀 실망했죠. 굉장히 거칠게 들어와서. 학문적 논쟁이 벌어질 줄 알았거든요. 세련되게. 그런데 그냥 밀어붙이더라고요. 소송까지 각오하고 있었는데, 이건 뭐. 여기에 서울대 중심의 사고방식도 작용해요. 뭐든 서울대끼리.

박_ 하지만 세상은 서울대가 아닌데.

김_ 그러니까요.

신_ 교수님의 연구도.

김_ 이젠 교수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학교를 나올 텐데.

신_ 박사님의 연구도 결국 한반도 중심의 갇힌 사고방식에서 탈피해 다극 중심의 역사관으로 동아시아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는 거잖아요.

김_ 열국지적인 관점.

신_ 정작 한국학자들부터가 서울대적인 사고, 한국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네요. 그걸 깨려다 보니 전쟁이 난 것이고.

김_ 사실 서울대 국사학과 안에서도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조용히.

신_ 하지만 동조하면 역시 사문난적으로 몰리는 거죠?

김_ 몇몇 사람이 규장각에 대한 아주 좁은 해석을 하는데 그들의 목소리가 큰 거죠. 그뿐만 아니라 솔직히 한국에서 일본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예민해요. 기본적으로 전 제가 쓴 칼럼의 댓글은 안 봐요. 20년간 그랬어요. 글을 쓸 때도 최소한 세 번 정도는 자체 검열을 합니다. 언론 쪽도 안 믿어요. 한국에선 일본 연구가 북한 연구보다도 어렵다고 느껴질 정도예요.

신_ 서울대 규장각에서 처음 김시덕이라는 일본 전문가를 교수로 임용했을 때는 한국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자는 의지가 있었던 게 아닌가요 다극적 관점의 역사관을 수용하려는.

김_ 규장각 안에도 있었고, 서울대 안에도 있었죠.

신_ 그런데 이제 와서 학문의 물줄기를 바꾸려면 최소한 학문적 논쟁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김_ 그런데 너무 거칠게 나오니까 저조차도 처음엔 당황했어요. 정작 그런 사람들이 진보를 자칭하니까. 너무너무 수구적인데.

박_ 그래도 김시덕의 전쟁이 소송까지는 안 갈 거라고요?

김_ 서울대학교는 학교 본부와 단과대의 관계가 좀 독특하거든요. 교육부까지 간여하게 돼 있고. 저의 재임용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의사 결정이 늦어지고 있어요. 정권도 바뀌었고.

박_ 혹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쪽이 386세대인가요?

김_ 맞아요. 저는 한국에서도 일본에서처럼 세대론이 유의미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본의 전공투 세대가 그래요. 공부도 안 했으면서 주장만 강한. 하루키가 정말 치를 떨죠.

신_ 박사님의 주장 가운데 또 흥미로운 건, 이젠 한반도가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충돌이 일어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중요도가 줄어들고 있다는 거였어요. 두 세력이 구태여 한반도를 통해 충돌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거죠.

김_ 대륙과 해양 세력이라는 틀 자체가 사라져버렸으니까요.

신_ 그렇게 기존의 사고방식과는 다른 틀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요? 왜일까요? 다극적 세계관으로 비주류적 비판 의식을 갖게 된 건?

김_ 대학원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 연구 테마를 잡았던 게 일본과 외국과의 대외 전쟁이었거든요. 문헌 조사를 통해서. 그러다 보니 임진왜란이 나왔고 만주전쟁,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다 건드리게 됐죠. 심지어 일본에는 백거이가 일본으로 쳐들어와 전쟁이 난다는 전설까지 있었어요. 백거이의 시가 너무나 인기여서.

박_ 요즘으로 치면 랩 배틀 같은 얘기네요.

김_ 일본이 지닌 문화적 공포 같은 걸 반영하는 거죠. 백거이의 시가 일본에서 워낙 인기였으니까. 중국에서 안녹산의 난이 터졌을 때도 일본까지 쳐들어온다는 전설이 있었고, 신라가 철인을 보내서 침략할 거란 전설도 있었어요. 외부에 대한 공포가 많은 거죠. 김시민이 임진왜란에 관한 복수를 하려고 쳐들어온다는 전설도 있었으니까요.

신_ 상상의 전쟁이네요.

김_ 국제 전쟁이라는 게 워낙 바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경우라,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방에 대한 우월감만 키우면서 모든 게 엉켜버리는 거죠. 상상과 현실이. 상상의 전쟁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현실을 상상처럼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마치 보르헤스의 소설처럼 말이죠.

신_ 문헌학자 김시덕이 보르헤스를 좋아한다 •••.

김_ 제가 워낙 보르헤스를 좋아해요. 보르헤스의 소설을 보면 프리메이슨들이 상상의 백과사전을 만든 다음 상상의 물건을 상상의 논리를 바탕으로 만들고 숨겨두잖아요. 그게 발굴되면 현실이 되는 거고. 이런 현상은 특히 전쟁과 전쟁 문헌을 보고 있으면 잘 드러나요. 상상의 적을 만들고 그 적이 현실에선 진짜가 되고.

신_ 적을 만들고 적을 과장하고 적보다 우리가 우월하다고 믿게 만들고, 그래서 정복해야 한다는 논리를 정당화하고.

박_ 없던 공포도 생기고, 없던 정의도 생기고.

김_ 거의 모든 전쟁에서 발견되는 특징이죠. 사실 저는 밀리터리 마니아도 아니에요. 무기 같은 것에도 별 관심이 없어요. 근본적으로 저는 사람들이 왜 똑같은 걸 두고 다른 생각을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되거든요. 그렇게 생각이 충돌하는 사건이 뭘까 했는데, 그게 전쟁이더라고요. 가장 극적인 충돌이 일어나죠.
박_ 연애 아닐까요?

신_ 연애도 전쟁인 걸로.

김_ 저는 대학에서 일본 문학을 공부했어요. 학문적 스타트가 문학이다 보니까 언어 사용에 예민해요. 전쟁 같은 연애와 전쟁은 정말 다르죠. 정말 전쟁이 난다는 건 인간의 물리적 구조를 완전히 바꿔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전쟁에 관심을 두고 처음 공부한 전쟁이 임진왜란이었어요. 사실 고3 때부터 한일 고대사를 공부하고 싶었거든요.

박_ 고3 때? 노선이 굉장히 확실하셨네요?

김_ 고2 때 신학 대학에 가서 <구약성경>을 공부해볼까도 생각했었죠.

신_ 도대체 어떤 영향을 받으면 고등학교 때부터 그런 데에 관심을 갖게 되나요?

김_ 초등학생 때 본 다큐멘터리 <실크로드> 때문인 것 같아요. ‘이란 어딘가에 금은붙이가 굴러다닌다니 내가 가서 가져올까?’ 뭐 이런 생각부터. 사실 파보면 거의 픽션이죠. 역사와 상상은 그렇게 뒤섞여 있는 거고. 사실 고2 때 <구약성경>에 관한 성경 비평을 하면서 매우 심각한 고민에 빠졌어요. 제 나름대로 성경을 파헤치다가 모순을 발견하고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죠. 그때 목사님의 대답이 제 인생을 바꿨어요.

박_뭐라셨는데요?

김_ 그건 악마의 시험이니까 기도를 하라고. 그때 깔끔하게 교회를 나왔죠. 알고 보니 그 교회가 이단으로 치부되는 곳이더군요. 그러곤 고3 때부터 고대사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신_ 그런데 지금은 사문난적. 평생 이단아의 운명일까요?

김_ 평생 이리저리 떠돌아다녀요.

신_ 일본을 연구하다 보면 결국 다극적 세계관에 눈을 뜰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김_ 제국을 경영해본 나라를 공부하면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 같아요. 반면에 중국이나 한국을 공부하면 자기중심적이 될 확률이 높아지겠죠. 그 안에 완성된 세계가 있다고 보니까. 한국은 과거를 배척해요. 그것도 한국 중심적인 사고 탓이죠. 이 안에서만 사고하니까. 좁은 울타리 안에서. 요즘은 안동에서 종손들끼리 삼년상 지내는 경쟁이 붙었다고 하네요.

신_ 2017년에?

김_ 21세기에. 전통이라는 고정관념 안으로만 파고드는 거죠. 사회가 퇴행하고 있는 거예요. 그것 역시도 한국 중심적인 역사관과 세계관에 함몰돼 있기 때문이고요.

신_ 정작 우리의 역사관은 영화 <명량>을 통해 구성돼 있죠. 더 큰 사고를 해야 하는데,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을 통해 형성된 좁은 역사관 안에 있는 거예요.

김_ 전 또 그게 인간사인 것 같아요. 조선 시대 사람들도 역사 공부를 정사를 보고 했느냐? 아니거든요. 다들 소설을 보고 공부했어요. 일본인들의 역사관을 지배하는 것도 시바 료타로가 쓴 역사소설이고, 한국은 김진명이 지배하고 있는 거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진짜 다들 믿잖아요. 전 100년 뒤 한국 현대사를 얘기할 때 역사가의 역사책보다 김진명의 소설이 더 중요한 텍스트가 될 것 같아요.

신_ 김진명이 역사라•••.

김_ 중국도 애초에 <십팔사략>이라는 근거가 희박한 이야기로 역사를 공부했거든요. 일본에서도 훌륭한 사상가라고 불리는 사람의 역사적 레퍼런스를 추적했더니 결국 통속소설이었다는 얘기가 있어요. 제가 전쟁사를 연구하면서 경험한 바로는 역사와 문학과 사상은 결국 한 덩어리라는 거예요.

신_ 우리가 안다고 믿는 역사는 팩트가 아니다.

김_ 지금 <명량>을 보고 역사를 이해한 사람들이 몇십 년 뒤에 한국을 이끌고 있을 텐데요.

신_ 박사님은 그래도 팩트가 많이 담긴 역사서를 자주 접하셨을 텐데요.

김_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그게 싫어요. 역사를 하는 사람들이 ‘이건 팩트가 담긴 사료고, 이건 위서고’ 이렇게 구분하는 게 싫어요. 저는 역사적 사료도 아니고 문학적 가치도 없는 중간의 덩어리 사료에 더 관심이 있어요. 흑백으로 보지 않는.

신_ 평생이 이단아이고 전쟁이군요.

김_ 흑백으로 보지 않고 무지개로 보자는 거죠. 프랑스식으로 말하자면 잡사에 관심이 있는 겁니다.

박_ 대중사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지금 들고 계신 책은 뭔가요?

김_ <도요토미 히데요시 무장들의 연대기>예요. 일본 서민들이 보던 책. 당시 일본 서민들은 이런 책을 보면서 임진왜란을 이해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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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당시의 김진명인 거죠. 역사학자나 문화학자는 저같이 접근하지 않아요. 저는 그냥 문헌학자라서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문헌학이나 서지학의 대표적인 격언이 있는데, ‘하나의 책은 하나의 사건’이라는 거예요. 사료 가치가 있고 없는 걸 구분하는 것도 아니고, 초쇄본만 작가의 사상이 있으므로 중요하고 8쇄본은 안 중요한 게 아니라 8쇄본이 나올 때는 사회적 맥락이 있다는 거죠.

박_ 여덟 쇄나 찍은 거니까.

김_ 러시아어에선 역사라는 단어와 이야기라는 단어가 같아요. 한국은 여전히 둘을 억지로 구분하려고 하죠.

신_ 앞으로 한국에선 대중 활동을 하고 연구는 일본에서 하겠다는 생각이 있으시다면서요?

김_ 당장 러일전쟁을 연구하고 싶거든요. 일본, 러시아, 만주, 조선까지 4개국이 얽힌 전쟁. 그런데 이걸 한국에서 얘기하면 안 먹혀요. 한국의 전쟁이 아니란 거죠. 한국은 한국과 관련된 게 아니면 관심이 없어요. 좁죠.

신_ 우리의 찬란하신 역사를 연구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거군요.

박_ 저서에서 아메노모리 호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고 생각했어요. 아메노모리 호슈에 대해 조금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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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_ 아메노모리 호슈를 일러 조선 통신사가 말하기를, “당신은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다 잘하는데 일본어를 조금 더 잘한다”는 말을 할 정도로 각국의 언어에 능통한 외교관이었어요. 일본어는 기본적으로 할 줄 알고, 나가사키에서 중국인한테 중국어를, 부산에서 한국인한테 한국어를 배웠거든요.

박_ 쓰시마섬 사람이었죠?

김_ 원래는 교토 사람. 아메노모리 호슈에게는 아라이라는 선배가 있었는데, 아라이는 일본 중앙 정권에서 활동했어요.

박_ 아라이요?

김_ 네, 아라이 하쿠세키라는 사람인데 아메노모리 호슈가 아라이에게 자신도 중앙정부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았고 중앙정부로 가지 못한 아메노모리 호슈는 쓰시마섬에서 한일, 조일 관계를 다룰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런 외교관이었어요.

박_ 하급 외교관입니까, 말하자면?

김_ 하급? 따지고 보면 중상급은 됐죠. 그런데 본토 출신이 아니라서, 또 쓰시마 출신이 아니라서 끝내는 좀 밀려난…. 어쩌면 네덜란드나 중국 쪽 일을 했더라면 조금 더 뜻을 펼쳤을지도 모르는데 한국을 다루다 보니까 일본 중앙정부에서 소외되기도 했죠.

박_ 주한 네팔 대사 같은 걸까요?

김_ 네팔까지는 아니겠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이라는 나라를 다루는 외국인들은 그 나라에서 1급 대우를 못 받았어요. 해당국도 한국보다 강한 나라를 다루는 사람들의 입지가 더 클 테니까요. 막상 한국인들은 지한파를 공박해요. 그래서 아메노모리 호슈는 일본의 관점에서는 ‘그냥 저기 구석 섬에서 한국 문제나 다루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조선인이 보기에는 ‘정말 화 잘 내고 얍삽한 사람’이라는 말이 나와요. 통치자의 관점에서는 양국 모두에서 환영을 못 받은 거죠. 보면 볼수록 불쌍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은 정말 성실해요. 목숨을 5년 깎아 내리겠다는 각오로 한국어를 배웠어요.

박_ 네, 그 대목이 나오죠. 왜관에서, 초량에서.

김_ 한여름의 조선에서 고생하면서 한국어를 배웠어요. 인생 말년에는 일본 왕가의 전통 시를 공부했는데 이것도 거의 10만 수를 만들었어요. 혼자 앉아서. 이렇듯 아메노모리 호슈는 천재 끼는 없지만 성실했어요. 그래서인지 이 사람의 주장도 성심 외교였어요. 이런 사람은 온건해요. 범재들이 천천히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요. 보면 반짝이는 건 없죠. 그러다 보니 티가 안 나요. 한마디로 불쌍한 사람이에요. 다행히 노태우 정권에서 이 사람을 언급해주면 좋겠다고 해 일본에서 재발견됐어요. 그 뒤로 다시 잊혀져 버렸지만.

박_ 노태우 정부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알았어요?

김_ 한국에서 전여옥 씨가 낸 <일본은 없다>라는 책에 맞춰서•••.

신_ <일본은 있다>.

김_ 네, <일본은 있다>를 쓴 서현섭 선생이 일본 주재 한국 외교관이었어요. 그분의 주장으로 아메노모리 호슈가 알려졌죠. 역사적으로 비둘기파는 묻혀요. <징비록>을 쓴 류성룡도.

박_ 비둘기파는 그렇지.

김_ 양쪽을 다 본 사람들을 파고들면 재미있는 게 나와요. 그런데 사람들은 양쪽 다 본 사람을 안 좋아해요. <구약성경>에서 야홰가 바깥에 다곤이든지 바알이 있는데 그냥 알면 안 되고, 미워하라고 하잖아요. 딱 그런 감각이에요.

신_ 알면 물든다고 생각하니까.

김_ 저 역시 물들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친일파다, 너무 일본 위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거죠. 이런저런 학계 내 스터디에서 말할 기회가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조금 뒤에서 들어요, 요즘.

박_ 하지만 일본 역시 일류 제국은 아니지 않았습니까?

김_ 그러니까요. 지금도 그렇고. 일류 선진국이 안 되는 게 일본이 또 마지막 시점에서 어딘가 걸려요. 일본이 조금만 넘어가면 보편 제국으로서 한국과 중국도 포괄해가면서 스스로가 맨날 주창하던 아시아 대장으로서 나갈 수 있었는데, 왜 마지막에 막혔을까?

신_ 왜일까요?

김_ 모르겠어요. 그게 아시아의 한계인가? 아시아적 아집을 못 버리고. 민족주의적 관념은 여전히 너무 강한 것이고 저는 어찌 보면 그걸 넘어간 나라가 세계에서는 독일밖에 없는 게 아닌가 싶어요. 유대인들이 요즘 영국에서 독일로 돌아온다잖아요? 그리고 시리아 난민, 그 많은 모순을 무릅쓰고 받아들이고 있고 메르켈의 독일이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그 단계는 영국도 프랑스도 못 갔던 거고, 미국도 못 갔고 일본도 못 가고. 그런 것이 아닐까? 한국 사람들은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무 일본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게 아니라 한국이 너무 제국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해요.

박_ 제국적인 걸 해본 적이 없으니까.

김_ 저는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역사를 연구해온 입장에서 보자면, 역사적인 사건은 많은 경우 우연이라고 생각해요. 일본의 메이지유신이 성공한 것도 유럽 열강의 관심이 중국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었고.

신_ 원인과 결과로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다는 거죠. 역사를 인과관계로 완벽하게 설명하려고 할 때 오히려 역사가 왜곡되는 거고.

김_ 문헌학은 기본적으로 귀납적입니다. 얘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요 물건으로서의 책임, 요것부터 시작해서 올라가기 때문에 요거를 보편 논리로 만든다는 건 굉장히 자괴적으로 느껴져요.

박_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안 믿으시겠네요?

김_ 안 믿죠. 밖에서 봤을 때 역사는 빙글빙글 돌지만 4차원적으로 돌기 때문에 결코 겹칠 리가 없죠.

신_ 하지만 인간은 인과관계로 설명이 안 되는 현실을 마주하면 불안해져요. 예측이 불가능해지니까요. 그래서 소설 같은 픽션을 통해서라도 역사를 완결한 인과관계로 이해하려고 하죠.

김_ 제가 종교를 버렸을 때 그런 느낌을 받았죠. 고2 때. 이제는 막 간다.

박_ 사람이 이야기를 믿고 살아야 되잖아요?

김_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내죠.

박_ 그럼 박사님은 지금 어떤 이야기를 믿고 사나요?

김_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점점이 사는 거고 뒤에 돌아보면 흐름이 이어지게 되는 것뿐이죠. 스토리는 정해진 것도 아니고, 인과적인 것도 아니에요. 다만 어느 시점마다 한 번씩 정리를 하자는 생각이죠.

박_ 앞으로 해나갈 작업이 뭔가요?

김_ <일본인의 역사>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도쿠가와 이에야스부터 메이지유신 전까지를 10권짜리 책으로 묶어내는 기획이에요. 1권당 10명씩.

박_ 인과관계도 믿지 않고 학계와는 전쟁 중인 학자는 무엇에 기대고 있나요?

김_ 저는 편의상 자연 신이라는 막연한 존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요. 저는 스토리텔링의 힘을 믿어요. 스토리텔링을 통해 인간은 힘을 갖죠. 저는 제가 스스로 좌충우돌해오면서도 장하게 살아왔다고 말하고 다녀요.

박_ 말하자면 내 신화 속의 신인 거네요.

김_ 신화까지는 그렇고 스토리 속의 주인공이죠. 모두는 저마다의 주인공이지 않습니까? 저는 아내한테도 딸한테도 많이 얘기해요. 내가 나를 사랑해야지. 누가 나를 사랑하겠느냐. 인간은 그러다가 죽는 것 아니겠습니까?

신_ 역사 속 사람들이 남긴 수많은 스토리텔링을 연구해온 학자가 말해주는 인생의 진리 같은 거네요.

박_ 인간은 자기 말고 다른 것들을 사랑해서 문제죠.

신_ 결국 묻게 되네요. 행복하세요?

김_ 행복해야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을 포기할 생각은 없어요.

박_ 행복해지는 법을 아는 분 같았어요. 나를 사랑할 줄 아니까.

김_ 연구하면서 대상을 플랫하게 봐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해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내 좌표를 알면 행복을 찾기가 더 쉬워지죠. 그걸 굳이 거부할 이유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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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어시스턴트 assistante_김신영(에스콰이어), 신효섭 ∙이수환(김참 스튜디오)
사진 KIM CHAN
출처
20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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