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열이 보낸 열기

간절하게 달아올랐던 김무열은 드디어 적정한 삶의 온도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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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쓰릴 미> 10주년 기념 공연에 참여했다. 새삼 배우로서 긴 시간을 보냈구나 실감했을 것 같다.

아직 어린 나이에 이렇게 말하는 게 겸연쩍긴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몸소 체감했다. 이 순간들이 내 몸을 관통해 지나갔다는 느낌을 받았다. <쓰릴 미> 10주년 공연은 그런 고마움에 대한 보답이었다. 그런 세월을 보내고 그 무대에 다시 서니까 작품 자체가 새롭게 다가오더라.

<쓰릴 미>는 김무열이라는 배우를 세간에 알린 신호탄이 되는 작품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0년에 한 차례 더 공연에 참여한 이후로 7년 만의 무대였으니 감회가 새로웠겠다.

첫 공연 때 재웅이 형이 엄청 떨더라. 왜 그렇게 떠느냐고 하니까 오랜만에 하니 더 떨린다는 거다. 이 일이 그런 거 같다. 알면 알수록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10년 전의 내 모습이 부럽기도 하다. 그때만 가질 수 있는 패기가 있었던 것 같다. 이게 다 나이 먹었다는 증거다.(웃음)

그렇게 무대에서 연기 경력을 쌓아가면서 영화와 TV로 연기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지금이야 익숙해졌겠지만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게 굉장히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었을 거다.

그때만 해도 잘 모르고 덤빌 수 있었으니까. 연기를 잘하고 싶었고, 그러려면 더 많이 배워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참 장하다는 생각도 들더라.(웃음) 그래서 지금도 뭔가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하지 않나 생각해보기도 한다. 연기라는 게 하면 할수록 힘드니까.

4월에 개봉하는 영화 <머니백>은 2016년에 크랭크업했던 작품이다. 함께 촬영했던 배우들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지 않았을까?

워낙 현장 분위기가 좋았으니까. (박)희순이 형이랑 워낙 친해서 촬영장에서 만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는데 2년 정도 개봉이 미뤄지면서 희순이 형과는 <작전> 이후로 10년 만에 재회한 작품이 됐다. 배우로서도 인간적으로도 많은 조언을 해줘서 내겐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사람이다. 나이 차이가 꽤 나고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받지 않아도 가까이 있는 것 같고, 오래갈 사람으로 느껴진다.

사실 <작전>으로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 서먹해서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심지어 박희순 씨와 친해지기 위해 2년 동안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웠다고 했고.

술도 안 마시는 편인데 형이랑 친해지고 싶어서 술도 마셨다. 한번은 <작전> 촬영장이었던 양수리 세트장에서 촬영이 끝나고 집에 가서 쉬고 싶었는데 형이 술 한잔하자는 거다. 알고 보니 형은 세트장 주변에 숙소를 잡았더라. 그래서 그 방으로 끌려가다시피 해서 캔 맥주를 마셨는데 형도 내가 빨리 가고 싶어 하는 걸 눈치챘나 보더라. 그래서인지 두 캔 먹고 나니, “자, 이제 가” 이러는데 되게 고마웠다.(웃음) 그렇게 계속 먼저 다가와주시는데 정말 좋은 분이라는 걸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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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역할에 충실하고 상대 배우와 호흡을 잘 맞추는 것만큼이나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교감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 계기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촬영이 끝날 즈음에는 너무 끈끈해졌는데, 그렇게 되니까 카메라가 돌아가면 대본에 없던 것들이 튀어나오더라. 정말 신기했다. 결국 내가 편하게 인물 안으로 녹아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 것 같다. 많이 배웠지.

<머니백>에서 연기한 민재는 불우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지만 번번이 떨어지고, 위중한 병세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거짓말했다가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리게 된다. 결국 그로 인해 곤경에 빠지는 캐릭터인데, 상황 설정이 명확해서 배우 입장에서는 준비할 거리가 그리 많지 않다고 느껴지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그럴 수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굉장히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내 주변에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그런 공감대가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다. 굉장히 현실적인 캐릭터이기도 한데, 감독님이 실제로 이런 상황에 놓였던 분을 인터뷰해서 쓴 시나리오라고 하더라. 공무원이 됐다고 집안에 거짓말하고, 매일 넥타이까지 매고 출근하는 척한 뒤에 공부하러 다니고, 아르바이트하면서 사채까지 끌어다 쓰고, 그러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인물이 있었다고 하더라. 이만큼 현실적인 캐릭터였기 때문에 최대한 연기적인 클리셰에서 벗어나 온전히 내 안에서 끌어낸 연기를 해야 하는 게 어렵게 느껴졌다. 오로지 김무열이라는 배우가 이 역할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기능적인 연기로만 해결되는 게 아니다. 나도 100% 공감해야 하고, 감정적으로 더 많이 이입돼야 하고, 그렇게 기존에 있었던 걸 새롭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기억의 밤>에서 연기한 유석은 관객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극의 미스터리를 강화하는 인물이었다. <머니백>의 인수와 달리 배우 입장에서는 해석할 여지가 많은 캐릭터란 점에서 흥미가 있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기억의 밤>의 유석은 극 안에서 본인이 아닌 다른 인물로 존재하는 터라 정작 본연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극의 90% 정도는 다른 인물로 살아가고, 10% 정도만 자신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라 내가 혼자 만들어가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만큼 준비를 해야 진실이 드러나는 결말부에서 관객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봤으니까. 그런 부분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외롭기도 했다.(웃음) 혼자서 파고 들어가다 보면 나중에 감독님을 만나 얘기할 때 혼자 딴소리를 할 수도 있거든. 기능적인 측면에서 해줘야 할 몫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확실하게 생각하고 캐릭터를 구축해야 했다.

민재라는 인물의 인생을 단편적으로 놓고 봤을 때 조금 한심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캐릭터에 대해 필연적으로 애정을 가져야만 한다. 결국 민재라는 캐릭터의 입장에 서기 위해 이 인물의 서사와 인과를 들여다보는 과정이 있었을 텐데, 결국 그 과정에서 민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같은 게 생겨났을 것 같기도 하다.

일단 민재라는 캐릭터에 대해 가장 크게 공감했던 건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었다. 그 마음 때문에 취준생이지만 취업에 성공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편찮은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채까지 끌어다 쓰는 상황에 놓인다. 그런 맥락에 공감하게 되니까 한심한 마음이 지워지더라.

어릴 때 불우한 집안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말한 바 있다. 어린 나이에 가장 노릇을 했다고도 들었는데, 그런 입장에서 민재에게 감정이입이 될 수밖에 없었을 거 같기도 하다.

맞다. 정말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란 게 있다. 내일, 한 달, 10년이 지나도. 민재는 절실한 마음에 돈을 가져가서 도박을 하기도 하는데, 그런 마음이 이해가 됐다. 지금 그런 사람 많지 않나. 취업난에 시달리고, 당장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들. 그런 마음이 와닿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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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나?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가세가 확 기울면서 형편이 되게 안 좋아졌는데 그 이후로도 계속 안 좋았다. 흔히 말하는 사춘기 시절이었는데 정서적으로 예민한 시기라 그때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게다가 예고를 다니면서 연극영화과 준비를 했는데 재수까지 하게 되면서 진짜 더 예민해졌다. 할 수 있는 건 아르바이트밖에 없는데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이라는 게 모이는 돈도 아니고. 생활비도 감당이 안 되는 와중에 아버지까지 편찮으셔서 병원비까지 들어가니까 정말 답이 없었다.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난에 대해 뼈저리게 느낀 시절이다.

그 시절을 떠올리는 건 여전히 힘든 일일까? 혹은 어느 정도 극복이 됐나?

여전히 힘들고 가슴 아프게 기억되는 시절이지만 희한하게도 그런 최악의 시기에 가족이 화목해졌다. 아버지가 몸이 편찮아지신 뒤로 나도 그렇고, 내 동생도, 어머니도 서로 끈끈해졌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많이 후회되고, 가족들이 안쓰럽고 측은하고 여전히 아프게 느껴지는데, 한편으로 그런 기억도 난다. 이게 극복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절을 생각했을 때 후회가 되는 이유는 뭘까?

내가 지금 이 일을 할 수 있게 된 이유가 어떻게든 나를 뒷받침해주려고 노력하신 어머니 덕분이다. 배우로 10년 넘게 활동해왔고 이젠 잘한다는 말도 듣게 됐지만, 어쩌면 내가 이 일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했던 거다. 당장 대학로에 나갈 차비도 없을 정도로 집이 어려웠는데, 그나마 내가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었던 건 연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한테는 숨 쉴 구멍이 있었던 거다. 그때 내가 이 일을 계속 고집하는 게 말이 되는 일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 당시 돈이 안 되는 연기를 고집하는 게 아니라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일을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는 걸까?

맞다. 당시 나는 어떻게든 두 가지를 다 잡으려 했다. 어머니도 그런 나를 나쁘게 보진 않으셨고. 그래서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못 했다. 그래서 그때 너무 당연하게 받았던 거 같아서 후회도 되고.

사실 김무열 씨가 맡은 캐릭터들을 보면 모종의 연민이 느껴진다. 최근에 출연한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에서 연기한 노진평은 특별한 전사를 알 수 없는 캐릭터임에도 그가 살고 있는 자취방 풍경을 보면 뭔가 만만치 않은 삶을 견뎌온 것 같은 짠함이 느껴지더라. 가끔씩은 그것이 김무열이라는 배우의 기본적인 정서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검사를 해도 불쌍하다니, 이제 불쌍한 척 그만해야겠다.(웃음) 그런데 확실히 그런 느낌이 있었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검사라 험한 바닥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캐릭터니까. 심지어 말도 안 되는 인물들이 모여 있는 팀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생각하면 또 짠해진다.(웃음)

노진평은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에서 유일하게 성장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다른 캐릭터들은 자신의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다. 누군가는 정의 구현을, 누군가는 복수를, 누군가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노진평은 그 안에서 유일하게 물음표를 찍고 가는 인물이었고, 성장한 이후에 새로운 활약을 펼칠 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죽어버려서 당혹스러웠다.(웃음) 배우 입장에서도 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 인물이었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렇게 퇴장하는 게 아쉽지 않았나?

사실 처음에 제안받은 역할은 한강주였는데 당시 영화 촬영 중이라 16회에 다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노진평 역을 제안받았는데 그 역할은 8회까지만 나오면 되니까 물리적으로 시간이 맞아서 하게 됐다. 그리고 말한 대로 성장하는 과정이 보여서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였다. 그런데 이 캐릭터에 애정을 갖다 보니 감독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작가님도 그렇고,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캐릭터에 대해 더 많은 디테일을 만들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죽이기가 애매해졌다.(웃음) 사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그게 새로운 사건의 중요한 단서가 돼서 나머지 절반의 이야기를 힘 있게 끌고 나갈 수 있게 만드는 방아쇠 같은 인물인데 생각보다 캐릭터가 풍성해져서 수습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아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아무튼 죽고 나서 감독님한테 문자로 “재미있게 잘 보고 있다”고 하니까 답장으로 “너 죽였다고 욕먹고 있다”고 하더라.(웃음)

안양예고에 진학하고 싶었던 이유가 안양예고에 가면 머리를 기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정말 사소한 욕망이지만 결국 그 사소한 욕망 덕분에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다.

일찍부터 겉멋이 들어서.(웃음) 학교 축제에서 H.O.T나 서태지와 아이들 춤을 추면서 끼를 발산하면서 예고에 가면 더욱더 끼를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머리도 기를 수 있고.(웃음) 그래도 그때 연기를 대하는 자세나 배우로서 가져야 할 소양만큼은 정확히 몸에 각인된 것 같다. 당시에 에너지나 열정을 온전히 연기에 쏟아부을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된 시기였고, 그걸 가지고 지금까지 온전히 활동해온 거 같다.

어쩌면 그 시절이 배우 김무열의 오프닝 시퀀스일지도 모르겠다. 학전에 들어가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출연하며 진짜 배우라는 궤도로 올라갔다.

학전에 캐스팅될 때만 해도 대단한 일인 줄 몰랐다. 당시엔 학전에 들어가면 월급을 준다고 해서 생계에도 도움이 될 거 같아서 오디션을 본 거였다. 만약 학전이 대단한 곳이라는 걸 알았다면 분명히 떨어졌을 거다. 왜냐하면 그때 내가 오디션을 본다고 들고 간 대본이 <햄릿>이었으니까. 그 당시만 해도 뮤지컬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명성황후> 같은 대작만 인식할 때라 <지하철 1호선>처럼 리얼리즘에 입각해 대본을 연구하고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같은 건 없었다. 그런 걸 알면 절대 <햄릿>을 들고 가서 오디션 볼 수 없거든. 나중에 심사하신 김민기 선생님께 왜 내가 합격했느냐고 물어보니까 내가 거기서 가장 어린 애였는데 <햄릿>을 들고 와서 인상적이었다더라.(웃음)

뒤늦게 <지하철 1호선> 오디션 평가 점수를 알게 됐는데, 노래 점수는 높은 반면 연기 점수가 낮아서 충격 먹었다고 들었다.

사실 내가 노래를 배운 것도 아니었고, 학전에 들어가기 전까진 정기적으로 공연을 한 것도 아니었다. 돈을 벌려고 단기적으로 악극 공연에 참여하거나 어린이 뮤지컬을 하거나 지방 행사에서 노래를 부른 게 다다. 나름대로 돈도 벌면서 공연이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던 건데 다른 친구들처럼 대학에 다니면서 연기를 배우는 것도 아니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침에 일어나 발성 연습을 했다. 매일 듣던 뮤지컬 OST CD를 1번부터 20번까지 완창하고, 항상 노래나 대사를 녹음하면서 연습하곤 했다. 어차피 어릴 때부터 연기를 배웠고 노래는 발성 연습 삼아 한 건데 연기 점수가 10점 만점에 4점 나오고 노래는 9점이 나와서 완전히 자극받았다.(웃음)

나름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걸까?

안양예고를 나왔으니 남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자신만만함이 있었다. 재수를 하고 잠깐 대학 생활을 했을 때도 동기들은 대부분 연기를 처음 시작하는 편이라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다.(웃음) 그런데 학전에서 연기 점수 4점을 받은 것뿐만 아니라 수많은 오디션에서 낙방하고 정말 많은 사건이 있었지.

연기를 계속하는 게 맞을지 고민되진 않았나?

그때는 연기 자체에 대한 경외심이 컸던 거 같다. 무대를 되게 신성하게 생각했지.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다. 동네 체육관을 빌려서 친구들끼리 모여 스터디도 하고, 공연하면서 느낀 점을 비롯해 배우 일지도 썼다. 지금 생각해보면 뭘 안다고 지들끼리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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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절실하게 연기를 생각했던 것이 배우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피아노 한 대와 두 명의 배우만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쓰릴 미> 같은 작품을 책임질 수 있는 배우가 됐으니까. 어쩌면 그 작품을 통한 경험으로부터 여전히 에너지를 얻고 있는 것 아닐까?

맞다. 그때 내가 그 작품을 했던 이유가 새롭고 낯설지만 하고 나면 너무 좋을 거 같아서였다. 소재나 내용, 무대 장치도 그렇고. 피아노 한 대로 음악을 끌고 나가는 것도 그렇고, 퀴어를 다룬 이야기도 그렇고. 다만 대중적으로 흥행하진 못할 거라 생각했고, 이 작품을 싫어하는 관객들도 있을 거라 예감했다. 지금보다 동성애에 관대하지 않았던 때니까. 게다가 뮤지컬이라는 장르에서 살인 같은 소재를 잘 사용하던 때도 아니었다. 그래서 관객은 많지 않을 거 같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재미있을 거 같아서 했는데 그게 잘돼서 <작전>에 캐스팅되는 계기까지 만들어줬다. 덕분에 그 뒤로도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진 거 같다. 그래서 고마운 작품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여전히 큰 숙제처럼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하다.

김지운 감독이 연출하는 <인랑>을 촬영 중인 것으로 안다. 어떤 역할을 맡았나?

주연을 맡은 강동원 형이 연기하는 임종경과 친구 사이이기도 한 한상우라는 역할인데 특수기동대 출신이지만 특수기동대를 해체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공안부 요원이다. <기억의 밤>을 준비하면서 트라우마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는데 이 인물은 정말 트라우마 덩어리더라. 덕분에 그 부분에 대한 공부를 따로 할 필요가 없어서 조금 편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기억의 밤>이 <인랑>의 예습이 된 셈인데.

장항준 감독님이 이거 보면 양아치라고 할 거 같은데.(웃음) 아무래도 도움이 됐지.

과거에 했던 인터뷰에서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겁이 나고 무뎌진다는 얘기를 했더라. 하지만 언제나 활시위를 당기듯 팽팽하게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혼한 뒤로 어쩔 수 없이 일상으로 끌려가는 측면이 생긴다. 의도치 않게 느슨하게 살아가는 순간이 생긴다고 할까. 결국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결혼한 뒤로 이런 시간을 갖게 되는 게 배우로서도 큰 도움이 된다.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면 일상을 꾸려나가는 것도 중요할 거 같다. 인생에 끌려가는 게 생각보다 괜찮더라.(웃음)

뛰어난 배우가 되기 위한 기술을 치열하게 고민한 시절도 있었다. 이젠 배우로서의 삶을 고민하는 시절로 들어섰다는 말처럼 들린다.

삶을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내 것이 아닌 삶을 살게 될 것 같다. 결국 껍데기 같은 가짜 삶만 남게 된다. 과거에는 이런 걸 몰랐다. 배우로서 공부하고 열심히 사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분명한 건 그것 역시 내 인생이어야 한다는 거다.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 자라난 감성들을 그때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젠 그런 경험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나를 성장시켰다는 것을 안다. 덕분에 이제 내 삶을 소중하게 여기게 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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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어시스턴트신동윤
사진곽기곤
헤어조영재
메이크업원조연
스타일링신지혜(IN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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