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아현지사 화재가 알려준 것

KT 아현지사 화재로 하루종일 먹통이 됐다.

상상만 했던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지난 11월 24, 25일 주말, 서울 은평구 마포구 용산구 서대문구 중구, 경기도 고양시 등에 거주하거나 머물렀던 시민들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11월 24일 오전 11시 12분쯤 발생해 약 10시간 후 진화된 KT 아현지사 통신관로 화재 때문이다.

눈만 뜨면 스마트폰을 보고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현실에서 통신망은 디지털 산소 같은 역할이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통신망이 막히자 일상이 완전히 멈춰버렸다. KT 아현지사 화재가 주말에 발생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평일이었다면 은행, 병원, 경찰서, 각종 정부 기관 등에서 더 큰 혼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몇 달 전 우리은행 온라인 뱅킹이 몇 시간 동안 정지됐을 때도 사회 곳곳에서 불편함을 토로했다. 게다가 이번 화재는 잠시 정전된 수준이 아니었다.

요새는 정전이 돼도 촛불을 켜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의 손전등 기능을 터치하는 세상이다. 아날로그 시절처럼 지인의 연락처를 외우고, 긴급 연락망을 확보하는 식으로 개인이 대비책을 마련할 수도 없다. 서울과 경기도 일부 지역이었지만 카드 결제 단말기를 이용할 수 없었던 소상공인의 불편함과 답답함, 경제적 손실은 정확한 집계가 불가능한 수치다.

화재는 언제나 불의의 사고이지만 KT 화재는 실로 다른 차원의 공포를 안겨주었다. 스마트폰 한 대에 우리 일상이 완전히 저당 잡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국가의 핵심 인프라가 이토록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이 더 컸다.

2007년에 개봉한 영화 <다이하드 4>에는 ‘파이어 세일(Fire Sale)’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사이버 테러리스트의 3단계 공격에 의해 교통기관, 금융망과 통신망, 가스, 수도, 전기 등 국가 기반 시설이 차례로 마비되고 사회는 공황 상태에 빠진다.

이번 KT 화재는 부분적이지만 이 파이어 세일의 공포를 체험한 첫 번째 사례로 남을 것이다. 똑같은 화재가 다시 발생한다고 가정해도 지금으로서는 KT와 정부가 완벽한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신뢰할 수 없다. 이 상태라면 2018년판 ‘파이어 세일’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소방서 등이 합동으로 2차 감식까지 진행했지만 명확한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장비 노후화, 전날 서울 시내 폭설로 인한 배수 펌프 사용 과열 등 추측만 난무했다.

5G 상용화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최신 기술 선점이라는 자부심이 무색할 지경이다. 초연결 사회를 맞이하려면 비상사태에도 안전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인프라를 탄탄하게 구축하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 KT와 정부, 우리 모두 비싼 비용을 치르고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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