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노믹스, 차가울수록 좋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를 잘 이끄는 법.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냉철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J 노믹스, 경제 정책 - 에스콰이어

문재인 정부는 분명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세련된 정권이 될 것이다. 정치, 사회, 교육, 문화, 과학, 기술 그리고 외교에서도 역대 최고의 업적을 남길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경제 부문에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문재인 대통령의 ‘J노믹스’에 대한 바람은 딱 한 가지다. 이번만큼은 어설픈 공동체주의에 휩쓸리지 말고, 유능하고 냉혹한 나눔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모두가 함께’ 앞으로 나아가자고 주장한다. 이걸 시장에 맡기지 않고 국가가 직접 이끌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처럼 정부가 경기장에 심판이 아닌 선수로 뛰어들어 재정을 이끌어가는 소득 주도 성장을 완성하려면 감정 과잉이나 편 가르기, 무능과 오류는 절대적으로 금물이다.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가 더 잘 느끼고 있을 것이다. ‘노무현 트라우마’라고도 하는 그 2003~2007년 대한민국 경제 상황의 현장에 있었으니까. 정말이지 이번엔 그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칼은 빠르고 유능하게 휘둘러라

똑같은 스마트폰을 비슷한 요금제로 사용하는데 누구는 10만원을 내고, 누구는 35만원에 가입한다. 불평등하다. 나보다 싸게 가입했다는 누군가를 보면 화가 치민다. 그러더니 급기야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나서 ‘더 싼 스마트폰을 사려고 줄을 서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쐐기를 박았다. 그렇게 2014년 10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시행됐다. 신형 스마트폰에 보조금 상한선을 정해놓고 모든 국민이 똑같이 할인받으라는 취지다.

단통법 시행 이후 3년 가까이 된 지금 과연 국내 휴대전화 시장은 정의로워졌는가?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모두가 비슷한 가격을 지불하니까. 하지만 미국에서 30만원이면 개통하는 신형 스마트폰을 우리 국민은 80만원 이상 주고 산다. 단통법의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무능이라고 본다. 뭘 모르고 시장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정말 박근혜 정부가 경제 정의를 실현하고 싶었다면 보조금 상한선이 아니라 보조금 하한선 또는 무제한 보조금 정책을 써야 했다. 그럼 당연히 불평등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통사들만 희희낙락하고 전 국민이 ‘호갱님’이 되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직설적으로 ‘재벌 개혁’이란 단어를 언급했다. 이에 많은 국민이 기대하고 있다. 우린 그간 재벌이 망하면 한국 경제가 무너진다는 극단적 가정을 동반한 결론을 학습해왔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재벌이 망하면 로열패밀리가 힘들어지는 것이고, 그 손자·손녀와 사돈의 팔촌이 괴로워질 뿐이다. 재벌 그룹에 따라 어쩌면 주가가 급등하는 상황도 나올 수 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재벌 개혁을 이뤄내려 한다.

첫째는 다중대표소송제 같은 제도 개혁, 둘째는 지주회사 전환을 사칭한 경영권 승계 원천 봉쇄, 셋째는 납품 단가 후려치기나 일감 몰아주기 같은 대기업의 악습 청산이다. 무엇보다 효과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재벌 개혁은 단칼에 끝내야 한다. 핵심을 정확히 찾아 짧고 빠르게 칼을 휘둘러야 한다. 재벌의 적폐를 모르는 국민은 없다. 그러니 자칫 사설이 길어지면 자본의 역습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팀은 정말 똑똑하고 유능해야만 한다. 또 하나, 칼은 오너가의 불법에 맞춰져야 한다. 기업이 망하게 하면 안 된다.

부동산, 토끼몰이 전법은 어떨까

2002년 부동산 취재 기자들의 이슈는 강남 아파트 가격이었다. 평당 2000만원대였던 가격이 꼭지라는 쪽이 있었고, 반면 무조건 평당 3000만원은 올라간다는 의견도 있었다. 결과는 독자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강남 아파트는 2004년부터 상승 시동을 걸더니 평당 2000만원을 가뿐히 넘겼고 2005년 3000만원대에 올라섰다. 그리고 그 뜨거웠던 2006년 여름을 지나 2007년엔 드디어 평당 4000만원을 찍었다. 이렇게 강남이 치고 나가자 서울과 경기도 아파트 가격이, 곧 전국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다. 버블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시기의 부동산 버블은 우리뿐 아닌 세계적인 현상이었지만 우린 아직도 이 책임을 노무현 정부에 돌린다. 그런데 이게 참 역설적인 상황이다. 왜냐하면 고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유일무이하게 부동산 투기 세력과 정면 승부했다. 그런데 왜 항상 노무현 정부가 대한민국 부동산 버블의 책임을 지는 걸까. 바로 규제에서 감정의 과잉이 나왔기 때문이다. 난 당시 노무현 정부가 펼쳤던 담대한 도전과 진정성에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의욕이 너무 앞섰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를 통해 양쪽에 벽을 쌓고 퇴로를 막아놓은 채 ‘강남 아파트에 살고 있으면 모두 투기 세력’이라고 몰아치자 어마어마한 자본의 반항이 나왔다. 임기 5년간 버텨보자면서 똘똘 뭉쳤고 부동산에 대한 부정적 코멘트가 나올 때마다 가격은 튀어 올랐다. 만약 그때 양도세는 풀어줘 탈출하려는 일부 세력은 용인하거나 자본의 내분을 유도했다면, 고 노무현 대통령은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만큼은 부동산 버블을 피하게 하는 최고의 경제 대통령으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부동산은 경제 부문에서 노무현 트라우마의 핵심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금융은 풀어주지만 부동산은 옥죄겠다는 방향을 천명한 상태이다. 또다시 정면 승부하겠다는 용기를 낸 것이다. 그런데 난 이번엔 ‘토끼몰이’ 전법을 권하고 싶다. 즉사시키겠다고 몽둥이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대신 선의의 피해자는 빠져나가게 두고 정말 비열한 악의 세력을 마지막 막다른 골목으로 살살 몰아가는 그런 전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금 부동산 상황은 2003년과는 완전히 다르다. 당시 주택 보급률은 80%대였던 반면 2017년 현재는 이미 110%대에 육박한다. 여기에 올 하반기부터 2019년 초까지 공급 폭탄이 쏟아진다(박근혜 정부의 책임이다). 누가 봐도 현재 부동산 문제에서 갑은 문재인 정부이지 부동산 투기 세력이 아니다. 그래서 과거 노무현 정부가 버블에 대한 책임을 덮어썼듯 이번엔 문재인 정부가 급락의 독박을 쓸 수 있다. 이번엔 냉철하고 차갑게 그리고 여유 있게 부동산을 드리블했으면 한다.

고용과 일자리, 결국 ‘노동 개혁’을 만나게 된다

문재인 정부가 선봉에 두고 있는 경제정책은 고용과 일자리 창출이다. 제대로 짚었다. 현재 대한민국 경제의 딜레마를 푸는 핵심은 고용이 맞다. 고용이 터져야 내수가 풀리고, 이분들이 세금을 내야 재정이 확보된다. 빈부 격차, 양극화 같은 사회문제도 고용이 안정되면 실마리가 풀릴 수 있고 국민소득 3만 달러도 충분히 이뤄낼 수 있다.

그런데 공공 부문 81만 개 일자리 창출, 좀 더 구체적으로 임기 5년간 공무원 17만 4000명을 늘린다는 부분은 좀 생각해볼 대목이다. 세간에서 지적하듯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든다는 비난이 아니다. 분명 공공 부문의 일자리를 늘린다는 건 충분히 의미가 있다. 문제는 공공 부문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반면 사적 영역의 고용 문제에 대해서는 뭔가 모른 척하고 있다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바로 노동 개혁에 대한 이슈이다. 공공 부문뿐 아니라 사적 부문에서도 고용의 안정성과 양질의 일자리 문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사적 영역은 공공 영역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단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 과다 기업에 불이익을 주고 노동시간 감소와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원대로 올리겠다는 정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분명 노동시장의 유연성 문제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 사회의 실질적인 실업자는 약 300만 명. 이 중 절반인 130만 명 정도가 30세 미만의 청년 실업자이다. 누구는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을 권유하지만 이것도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중소기업 일자리 역시 탈탈 털어도 30만 개가 안 된다. 창업 주도, 벤처 주도 패러다임을 세운다고 해도 그게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하나. 결국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노동 개혁이 필요하다. 쉬운 해고를 전면에 앞세운 박근혜표 노동 개혁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문재인 정부도 강성 노조 문제와 과도한 정규직 보호에 대해 언급하고 입장을 밝혀야만 한다. 그래야 기업도 움직인다. 아마 집권 초기에 재벌 개혁 드라이브를 걸면 반작용이 나올 텐데 재벌들은 고용을 볼모로 잡고 반항할 가능성이 높다. 보수 성향 국민도 이즈음 반기를 들 것이다. 문재인표 일자리 정책, 어떻게 해서든 문재인표 노동 개혁 카드를 내밀어야 한다. 그래야 81만 개 공공 부문 일자리 창출도 성공할 수 있다.

증세에 대해서도 짧게 살펴보자. 문재인 정부는 법인세에 관해서는 우선 실효세율을 높이는 데까지 높이고 그다음 법인세 인상을 한다고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굳이 법인세 명목 세율을 공식적으로 올리는 그런 모습을 돋보이게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소득세 최고 세율 과세표준 구간 확대 부분은 생각할 여지가 있다. 혹시 아직도 부자가 세금을 많이 낸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물론 세금 액수는 많을 수 있지만 소득 대비 비중으로 보면 체감 부담률은 중산층이 최고다. 특히 우리의 세금은 주로 재산이 아니라 소득에 매겨진다는 점도 왜곡과 모순을 키워왔다. 가령 죽도록 일해 연봉 3억원을 받는 샐러리맨이 부모님께 유산 100억원을 받아 빈둥빈둥 노는 무직자보다 세금을 더 낸다. 이렇게 되면 개천에서 용 난 경우 세금 내다가 허리가 휜다. 그렇다면 먼저 상속세와 증여세를 파격적으로 올리고 그다음 재산세, 마지막에 소득에 매겨지는 세금 인상으로 가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자주 언급되는 공동체의 미덕에 대한 딜레마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국가가 100억원에 달하는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걸 분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에 대한 사용권을 누구에게 줘야 할까. 개인적으론 문재인 정부가 미덕과 정의를 앞세워 음악을 사랑하는 국민이 하루씩 돌아가며 사용하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한다. 솔직히 말해 이런 해법은 어설픈 공동체주의일 뿐이다. 오히려 최고의 실력을 갖춘 국민이 사용하는 게 현명하다. 대신 그 선발을 정부가 공정하게 진행하면 된다. 우리가 박근혜 정부를 경멸한 건 그 선발 대회를 조작하고 사기를 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굳이 진보의 진정성을 위해 과도한 공동체주의에 빠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경제 부문만큼은 차가우면 차가울수록 좋다. 가슴이 뜨거워야지 머리나 손이 뜨거우면 노무현 정부에서처럼 되치기를 당할 수 있다. 여기서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미 우리 국민의 수준도 이 정도까지는 올라왔다는 것이다. 새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꼭 알아야 한다.

  • Kakao Talk
  • Kakao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