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A가 거기서 왜 나와

현대자동차와 피아트-크라이슬러 그룹의 인수·합병설이 돈 이유.

지난 5월 말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 구조 개편 시도가 무산됐다. 정확하게는 순환 출자 구조 개선과 함께 현대모비스를 지배회사로 세우고 정의선 부회장 체제를 출범시키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한 달 뒤, 홍콩을 기반으로 하는 필리핀 영자 신문 <아시아 타임스>가 현대차그룹의 인수·합병 가능성을 제기했다. 인수·합병의 상대는 다름 아닌 FCA였다. 세간을 들끓게 한 이 이슈는 현대자동차 미국 법인이 미국 와의 인터뷰에서 ‘전적으로 사실 무근’이라고 밝히면서 잠잠해졌다. 하지만 정말 완전하게 근거 없는 헛소문이었을까? 상대가 FCA였던 까닭은 뭐고? 그리고 왜 하필이면 지배 구조 재편이 무산된 시점에 이런 얘기가 떠돌았을까?

경영 실적 악화의 원인

2012년 현대자동차는 8조436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영업이익률은 무려 10%나 됐다. 그해 기아자동차까지 포함해 현대차그룹은 전 세계 판매 700만 대를 돌파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올 성과였다. 하지만 콧노래를 내내 흥얼거릴 순 없었다. 지난해 현대자동차는 96조3761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역대 최고치였지만 영업이익률은 5년 전의 절반도 안 되는 4.7%였다. 영업이익 4조5747억원은 5년 전의 그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그룹 전체 판매량은 725만여 대였다. 5년 전보다 크게 늘어난 숫자가 아니었다. 현대차그룹 내에 위기감이 감돌았다. 700만 대 이상의 판매량으로 글로벌 완성 차 판매 5위에 올라 있는 회사에 위기가 웬 말인가 할 거다. 2014~2015년 2년 연속 세계 판매 800만 대를 기록했고 호기롭게 ‘연간 1000만 대 판매’를 목표 삼았던 회사인 까닭이다. 공교롭게도 현대차그룹은 그 무렵부터 판매량과 영업이익이 떨어지는 이상 징후를 보였다.

경영 실적 악화의 원인은 여럿이다. 현대자동차가 밝힌 이유는 지난해의 경우 미국·중국 시장에서의 판매 부진, 원화 강세, 영업 부문 비용과 고정비 부담 증가 등이다. 이를 하나씩 뜯어보면 미국 시장에서는 판매 부진으로 승용 모델 재고가 쌓여갔고 이를 처분하기 위한 인센티브 비용도 덩달아 증가했다. 반면 SUV 라인업은 부실했다. 최근 미국은 SUV·트럭 시장이 활황이다. 크라이슬러, 포드는 아예 크로스오버와 SUV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일부 승용 모델을 단종하거나 후속 모델 개발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지난해까지의 현대자동차는 미국 시장의 흐름을 전혀 좇지 못한 셈이다. 중국의 경우 사드 배치로 악화된 한중 관계가 정권 교체 이후 어느 정도 개선됐지만 판매량 회복세는 시원찮다. 영업 부문 비용 증가는 제네시스, 현대 N 등 신규 브랜드 론칭에 따른 결과였고 고정비 증가와 연결되는 내용이다.

앞서 언급한 내용은 첫째 시장 외적 요인(정치·외교, 환율)의 변화, 둘째 시장 예측 실패, 셋째 신규 사업 투자비 증가, 넷째 유연하지 못한 경영 환경 등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중 첫 번째는 기업이 직접 해결하기 힘든 일이다. 두 번째의 경우 지난해부터 SUV 신모델을 잇따라 내놓으며 개선해가는 중이며 세 번째는 미래 먹거리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지출 비용이다. 시간이 해결해주기를 기다리거나 머잖아 해결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네 번째 문제, 즉 경직된 조직은 앞선 세 가지와는 성질이 다르다. 당장의 실적 악화 원인일 뿐 아니라 기업의 미래 경쟁력 확보에도 큰 장애가 된다.

계열 부품 회사들의 경쟁력

현대차그룹의 경직된 환경은 단순히 오너 일가에 의한 경영이나 높은 임금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그룹 내 모든 계열사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소위 ‘수직 계열화’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실제로 현대모비스, 현대파워텍, 현대위아 등 현대차그룹이 거느리고 있는 부품업체들의 경영 실적은 매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경영 실적과 고스란히 연동된다. 미국 <오토모티브 뉴스>가 발표한 ‘2017 세계 100대 자동차 부품업체’ 조사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현대모비스는 7위를 기록했지만 매출액이 272억 달러에서 250억 달러로 줄었다. 현대위아는 순위가 34위에서 38위로 내려갔으며 현대파워텍은 49위에서 57위로 밀려났다. 전년도 57위에 올랐던 현대다이모스도 지난해 매출 기준 59위로 2계단 하락했다. 기술 수준의 높고 낮음 문제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벨로스터 N의 터보 엔진이, K3 세단의 무단변속기가, G70과 스팅어의 견고한 섀시가 이미 세계적 수준에 올라 있는 그들의 실력을 입증하고 있다. 핵심은 울타리 밖으로 나가서도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느냐에 있다.

경직된 경영 환경 개선이라는 목적이 아니어도 계열 부품 회사들의 경쟁력 제고는 반드시 이뤄져야 할 일이다. 자율 주행, 커넥티드 카, 공유 경제의 바람이 거세어지면서 자동차 산업에서 부품 전문 기업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하만인터내셔널을 인수해 스마트카를 위한 콕핏 플랫폼을 선보인 것처럼, 구글이 무인 자동차 테스트를 마무리하고 시범 운영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처럼 자동차 제조업 바깥에 있던 기업들이 자동차 산업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일도 잦아졌다. 현대모비스의 전동화 섀시 모듈, 현대파워텍의 파워트레인 패키지, 현대다이모스의 AWD 액슬을 원하는 신생 자동차 회사가 점점 늘어날 거란 얘기다.

올해 상반기의 그룹 지배 구조 개선 시도도 바로 이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움직임이었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를 분할한 뒤 합병하는 아이디어는 결국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일이었다. 한국 재벌의 오랜 병폐인 순환 출자 구조를 개선해 경영 투명성을 높이라는 새 정부의 요구를 따르는 일이기도 했다. 계획대로라면 새 지배회사 출범과 함께 정몽구 회장에서 정의선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도 자연스럽게 이뤄졌을 터였다. 하지만 해당 임시 주주총회는 결국 열리지 않았다.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의 반발 이후 해외 투자자들의 반응이 싸늘해지자 현대차그룹이 암중모색을 다짐하며 스스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현대와 FCA의 합병설이 구설에 오른 이유

그룹 CEO인 세르조 마르키온네는 수년째 피아트-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Fiat Chrysler Automobiles, FCA)의 매각 의지를 보여왔다. 독일 폭스바겐, 일본 토요타, 미국 GM, 중국 지리와 장성기차 등 숱한 자동차 회사가 FCA의 추파를 받고 거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GM이나 토요타를 제외하면 인수 제안을 받은 기업들에 FCA를 탐낼 만한 이유가 적어도 하나쯤은 있었다는 것이다. 과거 폭스바겐그룹을 이끌었던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알파로메오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고, 중국 지리와 장성기차는 지프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현대차그룹도 탐낼 만한 아이템이 있다. 닷지, 지프의 미국 픽업 트럭과 정통 SUV 시장, 고수익 창출이 가능한 럭셔리 브랜드 마세라티, 자동차 애호가들의 사랑이 깊은 스포츠 브랜드 알파로메오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브랜드가 실제로 현대차그룹에 얼마나 보탬이 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저마다 다른 성격과 제조 속성을 감안하면 오히려 처치 곤란한 숙제를 끌어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시아 타임스> 보도로 촉발된 FCA 인수·합병설은 보다 현실적인 이점을 다루었다.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말이다. 기사에서는 현대차그룹-FCA 인수·합병 움직임의 배후로 폴 싱어를 지목했다. 그는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회장이다. 모비스 분할·합병안 무산에 혁혁한 공을 세운 바로 그 헤지펀드 엘리엇 말이다. 폴 싱어는 지난봄 이탈리아 최대 통신사인 텔레콤 이탈리아의 2대 주주가 됐다. 이후 FCA 유럽 지사장인 알프레도 알타비야를 텔레콤 이탈리아 이사회 이사로 임명했다. 이를 통해 FCA와 소통할 길을 열었다는 게 <아시아 타임스>의 해석이었다.

FCA 그룹과의 합병은 현대차그룹이 충분히 검토해볼 만한 일이었다. 현대모비스를 위해서였다. 현대모비스의 미국 오하이오 공장은 2006년부터 지프 랭글러에 필요한 섀시 모듈 일체를 생산해왔다. 미시간 공장은 지프 그랜드 체로키와 닷지 듀랑고 SUV용 앞뒤 섀시도 공급한다. 따라서 FCA와의 합병으로 현대모비스의 해외 수주 물량이 확대되면 그룹 지주회사로서의 역량도 한층 강화될 터였다. 

배후에 엘리엇이 없다 해도 FCA와의 합병은 현대차그룹이 검토해볼 만한 일이었다. 현대모비스를 위해서였다. 현대모비스의 미국 오하이오 공장은 2006년부터 지프 랭글러에 필요한 섀시 모듈 일체를 생산해왔다. 10년간 지프에 공급한 누적 물량은 174만5000기에 달한다. 현대모비스 미시간 공장은 지프 그랜드 체로키와 닷지 듀랑고 SUV용 앞뒤 섀시를 공급한다. 2010년부터 6년간 누적 생산량이 188만 기에 이른다. FCA와의 합병으로 현대모비스의 해외 수주 물량이 확대되면 그룹 지주회사로서의 역량도 한층 강화될 터였다.

진위 여부나 당위에 상관없이 현대차그룹과 FCA의 합병설은 결국 구설로 막을 내렸다. 세르조 마르키온네 FCA CEO의 갑작스러운 사망이 마침표였다. 그는 지난 6월 어깨 수술을 받은 뒤 스위스 취리히 대학 병원에서 합병증으로 투병해오다 7월 말 세상을 떠났다. FCA는 지프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끈 마이크 맨리를 그의 후임으로 임명했다. 페라리 회장직엔 피아트 창업주 잔니 아리의 외손자 존 엘칸이 앉았다. 그리고 알프레도 알타비야는 마이크 맨리에게 FCA 유럽 지사장 자리를 넘기고 회사를 떠났다. 그를 텔레콤 이탈리아 이사회에 ‘꽂았던’ 폴 싱어 엘리엇 회장은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임시 주주총회 취소 이후 현대차그룹 내에 지배 구조 개편을 위한 추가 움직임이 없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의 움직임은 한층 분주해졌다. 메타웨이브, 오토톡스, 카 넥스트 도어, 메쉬코리아, 임모터. 지난 5월 이후 현대자동차가 투자 계획을 밝힌 회사들이다. 메타웨이브는 인공적으로 개발한 메타 물질로 초고속·고해상도 레이더를 구현하는 미국 스타트업이다. 오토톡스는 자동차용 통신 반도체 설계가 전매특허인 이스라엘 회사, 카 넥스트 도어는 P2P 방식의 차량 공유 비즈니스 모델을 보유한 호주 회사다. 메쉬코리아와 임모터는 라스트마일 물류 비즈니스를 다루는 한국과 중국의 스타트업이다. 나도, 이 글을 읽는 독자 대부분도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지만 이 회사들의 역량은 하나같이 자율 주행, 카셰어링과 헤일링, 커넥티드 카 등 미래 자동차 산업으로 귀결된다. 이들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결국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현대오트론 등 계열 부품 기업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과 같다.

이런 전방위 투자가 하루아침에 결정됐을 리 없다. 지주회사 출범과 경영권 승계가 무산되고 나서 악에 받쳐 달려든 일은 아니란 얘기다. 일련의 투자 계획이 공개되고 나서였다면 모비스 지배회사 출범이 한층 순조로웠을 거다. 정의선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도 훨씬 자연스러웠을 테고. 지금 돌이켜보면 지난 5월 28일 예정되었던 임시 주주총회는 너무 이른 감이 있었다. 기업의 미래는 서두른다고 단박에 해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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