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는 웃지 못했고 박근혜는 울지 못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2017년 3월 31일과 2011년 12월 9일은 냉혹한 대구를 이룬다.

박근혜는 제대로 울지 못했고 홍준표는 제대로 웃지 못했다.

지난 3월 31일이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자유한국당의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3월 31일은 스무날 전 청와대에서 내쫓긴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 수감된 날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침 무렵 독방에 수감되기 직전에야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던 걸로 알려졌다.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확정되는 순간 전당대회가 열린 장충체육관에선 의례적인 축포가 터졌다. 정작 홍준표 지사 본인은 웃지도 않았고 손을 흔들지도 않았다.

17대와 18대 대통령을 배출했고 한때는 무소불위의 거대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은 그렇게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처지로 전락해있었다. 울지 못하는 박근혜와 웃지 못하는 홍준표의 정치적 운명이 그날 그렇게 엇갈리고 있었다.

홍준표와 박근혜의 정치적 운명이 엇갈린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11년 12월 9일 한나라당의 홍준표 체제를 붕괴시킨 건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사실상 한나라당 소속 계파 모두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위기감이 팽배해있던 한나라당은 애타게 선거의 여왕을 원하고 있었다. 전국적 바람몰이를 해줄 수 없는 이름뿐인 모래시계 검사로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단 입장이었다.

한나라당은 선거의 여왕을 비대위원장으로 옹립할 작정이었다. 그러자면 홍준표 체제를 붕괴시켜야만 했다. 홍준표한텐 정치적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전 대표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다만 한나라당 의원들이 불과 6개월 전에 직접 선출한 당대표를 자발적으로 탄핵하고 자신에게 달려와서 살려달라고 애원해주길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못 이기는 척 당권을 쥘 작정이었다. 그렇게 대권행보의 대장정을 시작할 작정이었다. 홍준표의 정치적 생명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결국 홍준표는 2011년 12월 9일 오후 3시 한나라당 당대표직에서 쫓겨난다. 한나라당은 3일 뒤인 12월 12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의 권한을 모두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일임하기로 의결한다.

박근혜 비대위의 위상과 권한은 1960년 5.16 쿠데타 직후 만들어졌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가재건 최고회의를 방불케 할 만큼 초법적이었다. 당권과 공천권이 모조리 박근혜 비대위원장 한 사람에게 집중됐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사실상 박근혜 1인 정당으로 재편됐다.

홍준표 대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박근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홍대표의 측근들 사이에선 박 전 대표가 전화 한 통화만 해줬어도 의원들의 반란을 잠재울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모르는 소리였다. 박근혜는 조용히 홍준표 체제가 붕괴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신의 정치였다.

박근혜가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홍준표 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었던 건 유승민과 남경필과 원희룡 덕분이었다.

개혁소장파 3인방이었던 세 의원은 12월 7일 아침 전격적으로 한나라당 최고위원직에서 동반 사퇴한다. 결정타였다. 홍준표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가까스로 재신임을 받아냈지만 미봉책이었을 뿐이었다.

친박계는 때를 놓치지 않고 홍준표 흔들기를 멈추지 않는다. 2011년 12월 홍준표 탄핵은 한나라당 친박계와 개혁소장파의 합작품이었단 말이다. 보수 여권의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는 홍준표 당대표 죽이기에서 시작됐다.

보수 여권의 정치 구도 안에서 2017년 3월 31일은 2011년 12월 9일과 정치적 대구를 이룬다.

2011년의 승자였던 박근혜는 2017년 정치적 사형 선고를 받았다. 2011년 패자였던 홍준표는 2017년 자유한국당의 대선주자로 등극했다. 홍준표 흔들기와 박근혜 세우기에 협력했던 개혁 3인방은 바른정당을 창당했고 결국 유승민 의원을 대선주자로 내세웠다.

이렇게 각 진영의 엇갈린 선택은 한국 정치의 변곡점마다 대한민국 보수의 진화 경로를 결정했다.

2011년엔 수구보수의 대주주인 박근혜와 아직 간판 주자를 내세울 만큼 힘을 키우지 못했던 개혁보수가 결합해서 바지사장 홍준표를 밀어내고 새누리당 정권을 잉태했다.

2017년엔 수구보수의 대주주가 사라진 상황에서 그 빈자리를 노리는 홍준표와 마침내 유승민이라는 간판을 키워낸 개혁보수가 서로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

박근혜와 홍준표의 정쟁은 아직 끝난 건 아니다. 끝난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홍준표는 웃지 못했고 박근혜는 울지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전히 정치적 부활을 꿈꾸고 있다. 자신을 맹신하는 60대 이상 종교 보수주의자들만이 감옥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호해줄 수 있다. 억울하다. 엮였다. 그렇게 의연해야만 겨우겨우 지킬 수 있는 실낱 같은 지지층이다.

끝내 유죄판결을 받더라도 정치생명만큼은 유지할 수 있다. 어쩌면 다시 정치적 생환의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홍준표가 2012년 12월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면서 부활한 것처럼 말이다.

한나라당 당대표에서 쫓겨난 지 꼭 1년 만이었다. 그래서 홍준표도 결코 웃어서는 안 되었다. 포스트 박근혜로서 보수의 적통을 노려야 한다. 그러자면 박근혜의 지지층을 최대한 흡수해야 한다.

“이제 국민 도박 전 대통령을 용서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는 발언은 그래서 나왔다. “바른정당은 어린애도 아닌데 응석부리지 말고 돌아오라”는 발언도 마찬가지다. 2011년 12월 자신을 축출했던 정적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원래부터 아무도 믿지 않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신이 직접 등에 칼을 꽂았던 홍준표를 믿을 리가 없다. 유승민과 홍준표로 대표되는 시장 보수와 수구보수 모두 집권을 위해선 서로가 필요하지만 양측은 필요한 만큼 불편한 사이다.

2017년 5월 9일 대선은 보수진영이 철저하게 분열된 상태에서 치러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 분열의 씨앗은 2011년 12월에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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