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시대

혐오의 시대의 동의어는 편견과 차별의 범람이다.

인터넷 뉴스 댓글창을 두어 번만 쓱 훑어도 눈에 채이는 단어들이 있다. 메갈, 한남, 틀딱각각 여성 혐오, 남성 혐오, 노인 혐오가 담긴 단어다. 언제부터였을까? 편을 가르고 선을 긋고 만인을 향한 혐오가 무분별해진 것이. 혐오의 시대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요즘이다. 그 저변을 들여다보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정의가 있다. 편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차별이다.

혐오, 편견, 차별

먼저 고정관념은 특정 대상이나 집단에 대한 정형화된 사고방식을 이른다. 부정적 감정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긍정적 고정관념’이라는 개념이 성립한다. 가령 ‘아시아권 학생들은 수학 실력이 뛰어나다’,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이라 일컬을 정도로 사람들이 예의바르다’와 같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듣기에 썩 기분 나쁘지 않은 고정관념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정관념에 부정적 감정이나 악의적인 의도가 가미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편견이다. 편견이란 특정 대상이나 집단에 대해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부정적 감정을 뜻한다. 편견은 객관적 근거 없이도 상대방의 가치와 인격을 깎아내리는 구실로 작동한다. 본래 편견은 우리 마음속에서 움직이는, 실체가 없는 대상이다. 실체 없던 편견이 외부로 표출되며 우리의 행동과 습관을 지배할 때가 있는데, 그 시점에 도달한 상황을 두고 심리학자들은 차별이라 부른다. ‘혐오의 시대’의 동의어는 ‘편견과 차별의 범람’인 셈이다.

그렇다면 누가 편견의 희생양이 되는가? 다문화 가정 자녀에 대한 편견, 인종에 대한 편견 등을 먼저 떠올린다면, 한국인 부모를 두었으며 한국에 거주하는 황인종인 ‘나’에게는 관계없는 문제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편견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집단과 소속이 구분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말이다.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에는 인종, 국적, 문화, 외모, 성별, 연령, 학력, 경력, 배경, 능력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기준에 따른 차이가 발생하는 순간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합집산에 나서기 시작한다. 왜? ‘내 편’을 찾아야 하니까. 저 사람은 나와 비슷한가? 그럼 우리 편. 비슷하지 않은가? 그럼 나와 다른 편.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내집단(in-group)과 외집단(out-group)이다. 내집단 대 외집단의 구도는 그 자체로 다양한 편견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내집단을 선호하고 외집단을 배척하려는 목적이다. 단지 비슷하거나 다르다는 이유로 편을 가르고, 내집단이니 외집단이니 하는 단어마저 존재한다는 사실이 유치한가?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 유치함이야말로 인간의 본능인 것을. 이 지점을 가장 날카롭게 꿰뚫어 본 이가 사회심리학자 헨리 타즈펠과 존 터너다. 이들은 사회 정체성 이론을 통해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가르고 서로 배척하고자 하는 심리가 인간의 본능임을 역설했다.

편견은 악인가?

흔히 편견을 나쁜 것, 사라져야 할 것, 없애야 할 것으로 여긴다. 편견을 갖는 것은 잘못이며 편견이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우리는 배워왔다. 그러나 한번 고민해볼 일이다. 편견이 그저 없애야 할 대상이라면 도대체 그것이 왜 애초부터 우리 마음속에 본능처럼 존재하게 된 것일까?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살펴보면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가진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생존에 유리한 이점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살아남은 인류의 후손인 우리가 편견의 메커니즘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진화심리학을 배경에 두고 살펴보면 편견이란 이렇다. 첫째, 편견은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로서의 인간이 보유한, 정신적 에너지의 보존 전략 중 하나다. 고정관념이나 편견 없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개인적, 사회적 사건을 이성적 판단으로 해석해야 했다면 기타 생존 활동에 필요한 정신적 에너지를 비축해둘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덧붙여 기억해야 할 점은,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사실과 다른 경우도 많지만 일정 부분 진실인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고정관념이나 편견의 상당수는 직접적, 간접적 경험에서 만들어진다. 비록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등으로 왜곡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사실 고정관념이나 편견의 다른 말은 연륜, 혹은 경험에서 우러나는 지혜다.

둘째, 집단 간 경쟁의 관점에서 편견을 키워 외집단을 배척하는 것은 역으로 내집단을 결속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내집단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차마 외집단에 마음을 줄 수는 없는 상황이라면 역설적으로 내집단에 대한 애착이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 현상을 잘 지적한 사람이 바로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적 불만과 욕구를 억누르는 과정에서, 도리어 불만과 욕구의 대상을 향한 동일시(identification)의 방어기제가 활용될 수 있다고 보았다. 결과적으로 외집단 편견으로 인해 강화된 내집단 결속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벌어지는 집단 간 경쟁에서 승리의 가능성을 높인다(이렇게 외부에 적을 만들어 내부의 결속을 도모하는 것은 근현대 사회에서도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냉전 시대, 소련이라는 외부의 적을 통해 인플레이션과 재정 적자 등 내부의 어려움을 다스리려 했던 미국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전략이나, 북한 핵무기로 인한 안보 위협을 내세워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고 유권자의 표심을 얻으려 했던 국내 보수 계열 정당들의 선거 전략이 이러한 사례에 속한다).

정리하자면 인간이 편견 생산 및 작동의 메커니즘을 보유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악한 존재여서도 아니다. 편견에 따른 의사결정은 언제나 옳을 수는 없어도 언제나 틀린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리스크를 감수하기만 한다면 편견은 정신적 에너지 소모를 줄이면서도 빠르고 효율적으로 세상을 이해하도록 돕는 인지적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 더구나 집단 간 경쟁 상황이 닥치고 거기서 승리해야 한다면 외집단을 향한 편견은 내집단을 결속시키고 집단이 가진 힘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문가 집단이 존재하고, 접근 가능한 정보의 양이 많아졌으며, 생존 자체를 걱정할 일이 드물어졌으므로 과거와 같이 편견을 수단으로 애용할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그렇기에 편견이 척박한 환경에서 기능으로 애용되는 것이 아니라, 문명 발전이 일정 수준에 오른 지금에 와서 무분별하게 남용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편견이 무서운 이유

현대인은 바쁘다.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다. 현대인은 항상 제한적으로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정보만을 취사 선택하며 산다. 이런 상황에서 고정관념이나 편견은 내가 모르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집단의 속성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무척 유용한 틀이 되어준다. 다시 말해 직접 일일이 고정관념이나 편견의 대상자를 만나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검증할 수 없으니 결국 우리가 현실적으로 택할 수 있는 방향은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을지 모르는 2차적 정보를 관찰하고 수용하는 일뿐이다. 누군가를 향한 악의적인 편견이 쉽사리 사라지지 못하고 계속해서 관찰되고 재생산되고 소비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그릇된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우리 사회에 만연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까운 예가 있다. A형은 소심하다. O형은 외향적이다. B형은 제멋대로다. AB형은 천재 아니면 멍청이다. 이렇듯 혈액형 유형이 곧 그 사람의 성격을 나타낸다는, 이른바 혈액형 성격설이 그것이다. 혈액형 성격설은 고정관념의 지속이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혈액형 성격설은 과학적으로 딱히 설득력이 없는, 허구에 가까운 설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최근 국내 한 리서치업체가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58%가 혈액형 성격설을 긍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혈액형 성격설 유행의 원조는 일본으로, 일본에서는 1970년대 즈음부터 혈액형 성격설 붐이 일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 사회 내 혈액형 성격설 인기가 최고조이던 1984년 무렵 사회심리학적으로 이상한 변화가 관찰되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1984년을 기점으로 실제로 사람들이 자신의 성격을 혈액형 성격설에 기반해 답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내용은 일본 심리학자 사카모토와 야마자키가 2004년에 발표한 ‘혈액형 성격설로 명명되는 고정관념과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 간 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에 잘 나타나 있다(자기 충족적 예언이란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기대나 관심이 앞으로의 행동 양상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근거 없는 잘못된 믿음일지라도 사회 구성원의 마음속에 고착되면 결국 실체를 가진 진실로 재탄생할 수 있음을, 특정 대상을 향한 족쇄로 작용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와 관련한 심리학 개념으로 고정관념 위협(stereotype threat)이 있다. 고정관념의 존재를 지각함으로써 고정관념 대상자의 수행 능력이 저하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다. 지금까지 심리학자들은 흑인, 히스패닉, 여성, 노인, 빈곤층 등에 대한 고정관념, 편견이 실제 대상의 수행 능력 저하에 영향을 미친다는 다수의 증거를 발견했다. 예를 들어 ‘백인에 비해 흑인의 지능이 더 낮다’는 편견에 노출된 흑인은 그렇지 않은 조건의 흑인에 비해 학업 성취도가 더 낮은 경향이 있다. 혹은 기억력 검사 시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급격히 감퇴한다’는 편견을 스스로 떠올린 노인은 평상시보다 더 낮은 수행 능력을 보인다. 고정관념과 편견이 당사자에게 위협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로 언급되는 원인은 ‘불안’과 ‘인지적 부하’다. 자신을 향한 편견에 노출된 개인은 불안을 느끼기 쉽다. 자신의 수행 결과로 말미암아 자신이 속한 집단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로 인해 편견이 사실로 입증되고 마는 것에 대한 염려’ 때문에 결과적으로 역량 발휘에 지장을 받게 된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견해다. 두 번째로, 고정관념이 머릿속에 한번 상기되면 대상자는 해당 고정관념에 대해 정보 처리 과정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정하든 억압하든 합리화하든, 머리에서는 자동적으로 정보 처리 과정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본래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할 주의(attention), 작업 기억 용량, 이성적 의사 결정 능력 등 정신적 에너지가 강제적으로 분리되는 결과가 초래되고, 결국 본래 해야 할 일에서 수행 능력이 저하되고 만다.

편견이 척박한 환경에서 기능으로 애용되는 것이 아니라, 문명 발전이 일정 수준에 오른 지금에 와서 무분별하게 남용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편견의 한국사회심리학

그렇다면 사회 곳곳에 서로를 향한 편견과 차별이 꿈틀대고 있는 이 혐오의 시대를 심리학적으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회심리학자 레빈은 인간의 행동이란 개인의 내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 간 함수 관계로 설명된다는 공식 B=f (P, E)를 소개한 바 있다. 인간의 특정 행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행위자 개인도 봐야 하고, 그 행위자가 속한 사회문화적 배경도 봐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편견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는, 개인 대 개인의 싸움이나 집단 대 집단의 충돌로 단순화시킬 수 없다.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편견을 생산하고 활용하며 겨냥하고자 하는 대상은 편견이 적용되는 집단 그 너머의 보다 거대한 구조를 향한 불만이기 때문이다. 현실적 집단 갈등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이 외집단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내고 그들을 배척하는 데 몰두하는 중요한 이유는 결국 자원 경쟁 상황에서 오는 위기감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자원이란 여러 의미일 것이다. 소득, 지위, 교육 기회, 복지, 성공의 기회흥미로운 점은 ‘분배에 대한 불평등’이 반드시 객관적이고 통계적으로 검증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실제로는 불평등하지 않더라도 단지 내(우리)가 보기에 불평등하다고 인식되면 언제든 박탈감과 그에 따른 외집단 배척 및 편견이 생겨날 수 있다. 우리는 심리적으로 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을까?

최근 몇 년간 일본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와 작가 고가 후미타케가 아들러의 심리학을 다룬 책 <미움받을 용기>가 국내 베스트셀러였다. 아들러는 열등감 콤플렉스란 개념으로 유명하다. 이 책은 출간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역대 최장 기간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열등감이란 주제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반응한 것은 어떤 우월한 대상과의 비교에서 자존심에 상처 입은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사실의 방증인지도 모른다. OECD는 2011년부터 지금까지 한국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이어져왔다고 평한 바 있다. 체감 기간은 어쩌면 그보다 더 길지도 모른다. 사회 계층 간 이동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기는 한지 의문이다. 흙수저라는 신조어가 이를 비웃는다. 열등감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열등감을 해소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의 가치를 높여 상대방을 앞지르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렇다. 나보다 열등해 보이는 사람을 찾아 상대적인 우월감을 확인하는 것.

요즘 한국 사회에서 나보다 우월한 상대를 역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남는 것은 나보다 열등한 대상을 만들어 상대적 우위를 누리는 방법이다. 편견은 그에 손쉬운 수단이다. 앞서 언급했듯 집단 간 편견을 만들어내는 주요 원인에는 자원 경쟁에 대한 민감함이 있다. 그 자원이 국력이든 명예든 부, 일자리, 사회적 영향력, 자존심이든, 상대의 약진으로 말미암아 개인 혹은 내집단에 상대적 피해가 올 것을 사람들은 염려한다. 만약 자원이 한정된 상황이라 전제한다면 상호 견제와 감시, 비방은 필연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누가 그 전제에 대해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편견으로 뭉개고 차별하는 등의 방법으로 상대가 가진 것을 빼앗아 오겠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그보다는 서로 힘을 합친 후 나눠야 할 파이의 규모 자체를 키우는 방법이 없을지, 그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자원이 부족하다는 불안보다 함께 성장 가능성을 모색하는 희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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