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를 허하라

그 많은 여성들은 왜 자진해서 주머니를 터는 걸까, 이건 21세기 여성들의 여권 신장 운동이다.

“김희애는 얼마나 무서울까. <허스토리> GV 때 봤던 친구들이 부국제에도 있어, 서울에서 본 사람을 부산에서도 보고.” (트위터 ‘[부산디페B24] 마녀’ @4youMyB. 2018년 9월 11일)

웃다가 지쳐 눈물을 찔끔 흘리며 리트윗을 하고 나니 문득 내가 정말 웃겨서 눈물을 흘린 건지 서글퍼서 흘린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허스토리>가 극장에서 내려가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춰보려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단체 관람(이하 단관)을 했던가. 한 번이라도 더 큰 화면에서 <허스토리>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한 명이라도 더 <허스토리>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우리의 통장 잔고가 얼마나 잘게 잘게 쪼개져나갔는가.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 단관 때 보았던 사람을 노원 더숲시네마 단관 때 마주치고, 노원에서 보았던 사람을 다시 대한극장 단관에서 만나 목례를 하고, 그러다 보니 민규동 감독은 슬슬 질릴 정도로 자주 보게 되었던 지난여름을 생각해보니 마음속 한구석,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찾아들었다.

시장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이유로 스크린에서 내려갈 위기에 처한 영화를 사랑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오늘날 영화는 너무 빨리 추락한다. 목요일에 개봉해 첫 주 금토일요일의 스코어가 시원치 않으면 당장 월요일부터 개봉관 숫자가 쭉쭉 떨어진다. 세 자릿수 스크린으로 시작했다가 일주일 만에 한 자릿수 스크린으로 급락하는 경우도 흔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영화관도 징검다리 상영이라 상영 시작 시간이 오전 11시나 새벽 1시 15분처럼, 사회생활 하는 사람들이 찾아가서 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시간표이기 십상이다. 주변에 이 영화 좋다고 꼭 보라고, 내가 예매권 사주겠다고 말하면 뭐 하나. 당장에 볼 수 있는 극장이 없으니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니 비평적으로 음미될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도 없게 된다. 극장에 걸려 있어야 비평적 논쟁을 하든 말든 할 것 아닌가. 그러니 첫 주말을 놓치는 순간 영화는 자연스레 “그런 영화도 있었나?”의 영역으로 추락한다. 한국의 영화 산업 현실에 대해 별생각이 없던 사람들도 이런 일을 몇 차례 겪고 나면 자연스레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두고 몇 시간은 열변을 토할 수 있는 투사가 된다.

그러다 온라인에서 누가 “OOOO 영화 단체 관람 추진합니다”라며 수요 조사 글이라도 올리면 냉큼 달려가 신청하고, 혹시라도 제한된 좌석 수 때문에 티켓을 놓칠까 두려워 선착순 입금 개시 시간만 초조하게 기다리는 오금 저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2016년 <아수라>와 <고스트버스터즈>가 그랬고, 2017년 <불한당>이 그랬으며, 2018년 <당갈>과 <허스토리>가 그랬다. 본디 모든 감정은 억눌린 만큼 더 증폭되는 법.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극장을 찾을 수 없었던 서러움에 이를 악물고 단관을 이어간 관객들은 GV에 온 관계자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쏟아부었다. <아수라>의 김성수 감독은 자신이 타깃 관객이라 생각해본 적 없었던 20대 초중반의 여성 관객들과 팬미팅을 하기에 이르렀고 <불한당>의 설경구는 데뷔 이래 처음으로 자신을 열정적으로 지지해주는 열성적인 팬덤을 얻으며 성격파 배우에서 ‘지천명 아이돌’로 거듭났다. GV마다 소녀 떼의 압도적인 환호를 받는 <허스토리>의 김희애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이런 운동이 전에 없던 새로운 일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나비> <고양이를 부탁해> 4편을 묶어 공동의 전선을 구축, ‘와라나고’ 관람 독려 운동을 펼쳤던 2001년이나, 장준환의 저주받은 걸작 <지구를 지켜라>를 살리기 위해 팬 카페 ‘지구수호대’가 재개봉 운동에 앞장섰던 2003년, <디워>와 <화려한 휴가>에 치여 급속도로 개봉관을 잃어버린 <기담>을 살리기 위해 팬들이 서명운동에 돌입했던 2007년의 사례는 오늘날 단관 운동의 직계 선배다. 단지 더 이상 ‘캠페인을 벌이면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도 느끼는 바가 있어서 자정 노력을 기울이겠지’ 같은 희망이 유효하지 않을 뿐이다. 이제 한국 관객들은 자연스레 자본에 대한 기대를 비우고, 뜻 있는 관객들이 주머니를 털어 구매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믿음 하나로 돌파구를 만든다. 서울에서 본 사람을 부산에서도 보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로 해서는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이 알아듣지 못하니, 자본의 언어로라도 설득하기 위해 NN차 관람을 강행하는 나 같은 사람들이 끝내 서울과 부산을 오가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 관객들은 자연스레 자본에 대한 기대를 비우고, 뜻 있는 관객들이 주머니를 털어 구매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믿음 하나로 돌파구를 만든다. 서울에서 본 사람을 부산에서도 보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전의 운동과 오늘날의 단관 운동 사이의 유의미한 차이점을 한 가지 더 꼽자면, 운동을 주도하는 이들의 정체성이다. 관객 성비의 편중이 비교적 덜했던 과거의 운동과 달리 <아수라>를 시작으로 <허스토리>까지 이어지는 최근의 단관 운동은 젊은 여성 관객들이 주도하고 있다. 어쩌면 이와 같은 현상은 자연스러운 결과인지도 모른다. 오늘날의 20대 여성은 팬덤 문화가 더 이상 일부 계층의 일탈인 양 매도되지 않는 시대에 유소년기를 보냈고, 인터넷을 통한 공동 구매 문화에 익숙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콘텐츠에 대한 지지 의사를 소비를 통해 드러내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를 살아간다. 게다가 단관의 대상이 된 작품은 대체로 여성 관객들에게 직간접적인 구애 인사를 보내는 작품들이다. 남자 4명이 뉴욕에 출몰한 유령들과 싸운다는 내용의 원작을 여자 4명으로 개작해 리메이크한 <고스트버스터즈>나,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한 인도에서 아버지로부터 지옥 훈련을 받은 여자 레슬러가 메달을 따면서 제 자신을 증명한다는 내용의 <당갈>, 국가와 사회,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이 연대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법정 투쟁에 나선 실화를 영화화한 <허스토리>까지, 단관 운동을 거쳐간 작품 중 상당수는 여성 관객에게 임파워링의 경험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남자들이 득시글거리는 <아수라>나 <불한당> 또한 여성 관객들의 적극적인 재해석과 의미의 재전유를 통해 비평적으로 재발견됐다. 뻔한 ‘알탕 영화’라는 평을 받았던 <아수라>는 단관을 거치는 동안 한국형 누아르의 공식을 해체해 철저하게 조롱하고 끝내 스스로 장르 자체의 관 뚜껑에 못질을 한 자기 성찰적 파괴라는 평을 받았다. CJ가 만든 명절용 조폭 영화라는 평을 들었던 <불한당>은 영화 속에 깔린 노골적인 BL 문학의 전통과 멜로적 미장센을 발견한 여성 관객들의 손에 되살아났다. 이런 재해석을 두고 작품의 흠을 애써 감싸주는 정신의 승리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제 손으로 영화를 수렁에서 꺼내 살려낸 여성 관객들은 그렇게 수동적인 자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설경구의 팬들은 설경구와 <불한당>을 지지하면서도 <불한당> 속 나타샤 캐릭터의 소모적 활용을 비판하고 오달수의 성추행 사건으로 개봉이 무기한 연기된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의 재촬영 없는 개봉에 반대한다. 작품을 되살릴 수 있는 권능을 확인했으니 산업을 향해 더 좋은 작품을 만들라는 요구를 하는 데에도 거침이 없는 것이다.

여성 콘텐츠 소비자들이 되살려낸 작품은 영화뿐이 아니다. 넷플릭스와 캐나다 CBC가 공동 제작하는 드라마 <빨간 머리 앤>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원작을 과감하게 재해석해 21세기의 감수성에 맞는 작품으로 개작해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고아 소녀 앤을 가족으로 받아들인 커스버트 남매의 정신은 드라마 판에서 더 많은 타자를 향해 관용을 표하는 태도로 확장되었고, 이제 프린스에드워드섬에는 성 소수자와 자유 신분의 흑인, 코르셋 대신 바지를 입고 모터사이클을 타는 독신 여성이 함께 살아간다. 문제는 이와 같은 과감한 재해석을 불편하게 여긴 이들도 제법 있었다는 것이다. 2시즌의 반응이 1시즌만큼 폭발적이지 않자 넷플릭스가 3시즌을 취소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프로듀서 모이라 월리베킷이 다음 시즌 제작 여부를 놓고 넷플릭스와 미팅을 가진다는 사실을 알리자 팬들은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 무렵 SNS가 #WakeUpAndWatchAnneWithAnE(잠에서 깨어나 <빨간 머리 앤>을 봐) 해시태그 운동으로 도배가 된 건 그 때문이었다.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젊은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선 드라마가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21세기 기준에 맞춰 고전을 재해석하는 과감한 시도가 꺾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여성 콘텐츠 소비자들의 절박한 마음이 온 SNS를 뒤덮었다. 넷플릭스는 공식 SNS 계정을 통해 ‘알겠으니까 진정하라’는 메시지로 화답하고는 8월 15일 3시즌 제작 확정을 발표했다.

첫 주말 관객 동원에서 성적이 저조한 작품들이 시장에서 밀려나는 건 시대 전반의 문제일 것이다. TV 시장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전통적인 TV 플랫폼에서의 승부는 이제 방영 첫 주에 갈리고, 시즌을 통으로 공개하는 배급 전략을 고수하는 넷플릭스는 완주율(사용자가 첫 에피소드부터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얼마나 빨리 보는가)이 낮으면 아무리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가차 없이 삭제한다. 그러나 이제 막 시장을 개척하고 다져가는 중인 여성 주도 장편 상업 영화와 드라마의 경우는 다른 작품들보다 더 빨리 시장에서 퇴출된다. 애초에 기반이 약하니 조금만 성과가 안 나와도 ‘역시 여성이 주도하는 작품은 시기상조’라는 매도를 당하며 다음 기회를 잃는 것이다(아직 방영을 시작하지도 않은 BBC <닥터 후> 새 시즌이 ‘여자 닥터를 기용해서 망했다’는 루머에 시달리는 것을 보라. 여성이 주도하는 작품을 폄하하려는 움직임은 상상보다 더 강하고 저열하다).

그런 의미에서 곱씹어보면, 단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는 여성 콘텐츠 소비자들은 단순히 작품에 대한 사랑만으로 그 일을 이어가는 건 아닌 것 같다. 의미 있는 수작 한 편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보여줌으로써 시장의 격랑에 그와 같은 시도가 꺼지지 않도록 불씨를 살려내야 한다는 무의식의 부름이 있는 게 아닐까? 자본의 시대, 여성 콘텐츠 소비자들은 불씨를 들고 이어달리기를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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