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힙합 총정리

사이먼 도미닉은 왜. 루피와 나플라는 어쩌다. 지금 한국 힙합을 논하는 데 놓칠 수 없는 것들.

루피, 나플라

루피와 나플라는 <쇼미더머니>와 영원히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두가 <쇼미더머니> 출연을 끝까지 거부할 것 같은 래퍼들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우린 미국에서 왔어. 우린 힙합의 멋을 알아. 우린 진짜야. <쇼미더머니>처럼 구린 거랑 엮일 순 없어.”

하지만 둘은 <쇼미더머니777>에 출연했고 (계획대로)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됐다. 노파심에 말하자면 이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그들이 내세운 변화의 근거는 꽤 강렬하고 진솔했다. “이 긴장감을 이겨내고 원하는 것을 가져가는 많은 참가자에게 리스펙트가 생겼어요.” “돈 벌려고요.”

하지만 내가 지금 말하려는 건 개인 차원의 성공과 행복이 아니다. <에스콰이어> 1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루피는 미국과 한국을 대비시키며 자신의 태도 변화를 설명한다. 그러곤 자신이 오만했다고 말한다.

<쇼미더머니>의 주인공이 되어 잡지 화보를 찍고 라디오에 출연하는 루피와 나플라를 보며 생각한다. 그들의 현재는 아쉬워해야 하는 타협일까, 아니면 이제라도 바뀌어서 다행인 태도로 쟁취한 영광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저 삶의 한 여정일 뿐일까.

또 <쇼미더머니>라는 경로를 거쳐 나아가는 이들의 미래는 그러지 않았을 경우의 미래와 어떻게 달라질 것이며, 그들의 행보를 미국에서 온 힙합이 한국에서 어떠한 형태와 정체성으로 안착하는가에 관한 바로미터쯤으로 바라보아도 될까. 결국 한국과 힙합에 관한 이야기다.

 

더 콰이엇

올해의 형님. 외모를 보면 상상이 잘 안되지만 그가 랩 게임에 뛰어든 지도 벌써 15년이 훌쩍 넘었다.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래퍼 중에서 그보다 연차가 오래된 인물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2018년은 더 콰이엇이 한국 힙합의 ‘형님’으로 부각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신인 뮤지션을 대거 끌어들여 작업한 새 앨범 <Glow Forever>를 두고 그는 ‘컴필레이션 앨범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 후 더 콰이엇은 그들을 자신이 만든 언더그라운드 공연 브랜드 ‘랩하우스’ 무대 위에 올렸다. 여전히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그가 쉬지 않고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올라오는데, 대부분이 그의 음악에 신인을 참여시킨 것이거나 반대로 그가 신인의 음악에 참여한 것이다.

더 콰이엇은 뒷짐 지지 않는다. 스무 살에게 진짜 힙합에 관해 설교하지도 않는다. 대신에 콰 형은 모든 건 진화하기 마련이고 적응하지 못하면 사라진다고 말한다. 마침 며칠 전 그는 퓨처리스틱스웨버, 라콘, 브래디스트리트, 릴러말즈, 제네 더 질라, 배드애스개츠비, 언에듀케이티드 키드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사진의 제목은 ‘Lil’ Quiett with the future’였다.

 

‘119 REMIX’

다이나믹 듀오의 ‘동전 한 닢 Remix’는 2007년에 나온 노래다. 31명의 래퍼가 참여한 거대하고 긴 트랙이었다. 이 노래에 대해 나는 재작년에 출간한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한국 힙합에 다시 나올 수 없는 광경일지도 모르겠다.”

개코의 가사를 빌리자면 그 당시 한국 힙합은 아직 조그만 국가에 불과했고 그렇기에 가능한 노래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에 비하면 최근 몇 년간의 한국 힙합은 마치 거대한 국가 같다. 몸집이 커졌고, 큰돈이 돌고, 레이블이 저마다 각개약진하고, 때때로 비즈니스가 음악적 공감보다 우선하는 세계 말이다.

하지만 ‘119 REMIX’는 나로 하여금 세상 그 어떤 것도 절대 단언해선 안 된다던 엄마의 말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2018년에 무려 51명의 래퍼가 참여한 트랙이 나오다니! 게다가 이건 한국 힙합 신기록이지 않나. 이 노래를 작년 한국 힙합의 무드를 상징하는 노래로 봐도 될까. <쇼미더머니>의 끝자락에서 피어나는 어떤 전환의 전조 말이다.

 

도끼

도끼의 2018년은 마치 안식년 같았다. 끊임없이 결과물을 생산해내던 지난 몇 년간의 속도에 비하면 그는 작년 한 해를 조금은 여유롭게 살았던 것 같다.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이야기일 뿐 도끼는 작년에도 여느 래퍼들보다 많은 노래를 발표했다는 사실은 함정이다.

하지만 도끼의 2018년을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은 그의 음악보다는 그가 휘말린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도끼의 개인 차원을 떠나 한국과 힙합이 충돌한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그 사건 이후 도끼는 ‘말조심’이라는 싱글을 발표했다. 누군가는 여전히 이 노래를 가리켜 무모하다거나 아집의 결과물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이 노래는 타 죽을 줄 알면서도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나 역시 도끼가 다른 단어를 선택했다면 소란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한 모든 상황은 한국 사회가 타인, 혹은 유명인을 대하는 방식이 얼마나 환멸스러운지 드러낼 뿐이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 놓인 연예인은 억울하거나 부당해도 대중에게 머리를 숙인다. 대중은 연예인을 우러러보면서도 동시에 그가 고분고분한 예쁜이가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끼는 1000명 중 999명은 할 수 없는 선택을 했고 ‘연예인’이 아닌 ‘랩스타’로 남았다.

 

사이먼 도미닉

사이먼 도미닉을 떠올리면 늘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꽤 오래전에 데뷔했지만 그에 비해 결과물은 그리 많지 않은 래퍼이기 때문이다. 한편 박재범은 그 정반대에 가깝다. 한국의 그 어떤 래퍼보다 부지런하게 결과물을 발표한다. 그래서일까, AOMG의 또 다른 대표가 보여주는 쉼 없는 행보가 사이먼 도미닉에게는 오랫동안 부담으로 쌓였던 것 같다.

결국 그는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노래로 만든 사직서도 공개했다. 제목은 ‘Me No Jay Park’. 난 박재범이 아냐. 난 박재범이 될 수 없어. 사이먼 도미닉은 이 노래 속에서 자신의 모든 걸 내려놨고 그 덕분에 모든 걸 얻었다. 2018년 한국 힙합의 가장 진실한 순간이었다.

 

디보

디보가 정확히 뭘 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가 구사하는 것이 랩인지 아닌지 여전히 헷갈린다. 디보는 모든 전통의 파괴자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디보의 존재 의의를 말해주기도 한다. <쇼미더머니777>에서 딥플로우는 디보의 랩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디보의 무대를 사람들이 더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저게 맞는지 아닌지 사람들이 더 토론하면 좋겠어요.”

디보는 어쩌면 리트머스 시험지다. 디보의 랩과 음악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세대가 갈릴 수 있다. 동시에 디보의 랩과 음악 자체가 한국 힙합 세대교체의 상징이다. 더 나아가 이건 정말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 우리는 디보를 통해 예술과 예술가의 정의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18년에 디보가 있었다.

 

허클베리피

허클베리피는 작년에도 어김없이 <쇼미더머니>에 출연하지 않았다. 동시에 작년에도 어김없이 ‘분신’ 공연을 열었다. 11월에 열린 ‘분신 8’은 예상대로 1분 만에 2000석이 모두 매진되었다. 박상혁의 가사가 다시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내가 실력이 안 돼서 언더에 남아 있는 거래 / 그 말을 악스홀에서 2000명과 의논해볼게.”

분신이라는 공연 브랜드는 당연히 허클베리피의 것이다. 분신에 가면 허클베리피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눈앞에서 영접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분신은 한국 힙합의 것이기도 하다. 분신에는 매번 당대의 뜨거운 래퍼들이 게스트로 출연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분신에 가면 언제나 현재진행형 한국 힙합이 가장 뜨겁게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낀다. 고로 분신은 허클베리피의 개인 콘서트라기보다는 한국 힙합의 축제에 가깝다. 이제 분신은 한국 힙합의 팬이라면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유대의 장이자 한국 힙합을 상징하는 공연 브랜드가 됐다. 아마 2019년에도 그럴 것이다.

 

마미손

매드클라운이 복면을 뒤집어쓰고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마미손이 이렇게까지 위용(?)을 떨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미손은 작년 대한민국의 모든 대중문화, 인터넷을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캐릭터이자 현상이었으니 말이다.

‘소년점프’는 노래가 아니었다. ‘소년점프’는 음악, 영상, 서사, 태도, 유행어, 마케팅이었고 이는 대중이 원하는 엔터테인먼트의 집합체였다.

힙합 관점으로 본다면 마미손은 래퍼들의 ‘얼터 이고’ 전통을 잇는다고도 조명할 수 있다. 에미넴이 슬림셰이디로 분했듯 매드클라운은 마미손으로 분했다. 물론 그동안 얼터 이고를 설정한 한국 래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매드클라운이야말로 역사에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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