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시민들은 왜 노란 조끼를 입었을까?

유류세 인상 반대를 외치는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대의 불이 삶의 질 향상 촉구로 옮겨 붙었다.

프랑스에서 노란 조끼를 입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정부의 유류세 인상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이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노란 조끼 시위에 관한 이야기다. 프랑스어로는 질레 존이라고 한다. 프랑스에서 의무적으로 차량 내에 비치해야 하는 노란 형광 조끼를 일컫는 단어다.

혁명의 나라답게 시위도 매우 격해서 노란 조끼 운동으로 꽤 많은 사람이 다쳤다.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의 보도에 따르면 시위가 시작된 11월 17일 이후 단 4일 만에 585명의 시민과 115명의 경찰이 부상을 당했다. 2주 차에 노란 조끼 시위로 파리에서 발생한 피해액만 약 150만 유로이고 사망자도 4명이나 발생했다.

격한 시위 때문에 에펠탑이나 루브르 박물관이 문을 닫는 일도 있었다. 시위대는 파리 내 상점이나 주요 건물을 파손하고 차를 불태웠다. 4주 차에만 12만5000명의 시위대가 시위를 벌였고 시위대 인원이 가장 많았을 때는 28만7710명이었다고 한다.

무엇이 시위대를 이렇게까지 화나게 한 것일까? 이들이 시위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단순히 유류세 인상만이 원인은 아니다. 유류세 인상은 직접적인 계기였을 뿐 이들이 분노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프랑스 정부의 유류세 인상은 사실 마크롱이 대통령 자리에 앉기 전부터 계획되어온 일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정기적으로 화석연료에 붙이는 세금을 올리기로 한 건 2014년부터 시작된 일이다. 탄소세라는 것으로, 화석연료를 적게 사용하고 대체에너지 사용을 권장하기 위한 정책이다.

프랑스만의 얘기도 아니다. 한국도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때부터 탄소세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전 세계적으로 여러 나라에서 탄소세를 부과하고 있다. 프랑스는 여러 나라 중에서도 그동안 비교적 높은 유류세를 잘 견뎌온 나라였다. 프랑스의 유류세는 경유 1갤런에 6달러 정도로, 유류비의 60% 정도가 세금이었다. 1갤런에 약 3달러의 세금을 내는 미국의 2배 정도나 되는 금액이다.

마크롱 정부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대체에너지에 펀딩하기 위한 예산 마련을 위해 경유에 부과되는 세금을 16% 정도 올리려 했고 2019년에도 유류세를 올려 경유를 휘발유만큼이나 비싸게 만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미세먼지와 기후변화로 고통받는 한국인이 보기에는 박수를 쳐줄 만한 계획이지만 프랑스인들은 늘어만 가는 유류세로 한계에 봉착했다. 오르기만 하는 세금이 낮은 경제성장률과 겹쳐 가계소득이 유류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된 것이다. 특히 교외에서 대도시로 출퇴근해야 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줘야 하는, 유류비를 줄일 수 없는 사람들이 그랬다.

<뉴욕 타임스>와 인터뷰한 한 프랑스 시민은 자신이 ‘호전적인 환경주의자’이지만 노란 조끼 시위대가 거리로 나왔을 때 그 대열에 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저는 우리가 화석연료 시대의 끝자락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동안의 습관을 바꿔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생계를 이어나가야만 합니다.” 노란 조끼 시위가 환경 문제 이전에 프랑스의 경제 상황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터뷰다.

<뉴욕 타임스>는 노란 조끼 시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숫자를 알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먼저 1700유로. 프랑스의 임금 소득 중위 값이다. 프랑스도 다른 나라와 비슷하게 소득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의 격차가 매우 크다. 프랑스 부의 20%를 소득 상위 1%가 차지하고 있는 반면 소득 중위 값은 1700유로(약 217만원)이다. 바꿔 말해서 프랑스 노동자의 절반은 한 달에 217만원보다 적은 돈을 번다.

그런데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임금 상승 폭을 억제하는 최근의 정부 정책으로 저소득층 혹은 중위 소득 계층의 소득 증가율은 매년 1% 미만에 그치고 있다. 더는 줄이기 어려운 유류비를 인상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생계를 위협하는 것이다.

두 번째 숫자는 경제성장률이다. 프랑스의 경제성장률은 1.8%로 지난 10년 동안 거의 정체돼 있는 수준이다.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고 시골과 과거 공업 지역이었던 곳은 더욱 그랬다.

세 번째는 실업률 9.1%. 마크롱 취임 당시의 10.1%에 비해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독일보다 두 배 이상 높다. 마크롱은 2022년에는 7%까지 실업률을 줄이겠다고 공약했지만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네 번째 숫자는, 부자들을 위한 세금 감면 액수 32억 유로다. 마크롱은 경제성장을 위해 프랑스의 가장 부유한 납세자들의 자본 소득에 단일 세율을 적용해 실질적으로 세금을 감면해줬다. 부자들의 다양한 자산에 부과하던 부유세를 폐지한 것도 컸다.

실질적으로 부자들에 대한 세금 감면 조치가 경제를 자극하는 데 일조했는지는 다소 불명확하지만 마크롱은 이런 정책으로 부자들에게 친화적인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이는 노란 조끼 시위대가 특히 분노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프랑스는 사회 안전망에 7150억 유로를 투자할 정도로 복지 혜택이 잘되어 있는 나라인데 이는 곧 세금을 많이 내는 나라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부가가치세는 대부분의 재화에 20%나 부과된다. 유류세까지 올라간다면 저소득 계층이 실질적으로 느낄 부담감은 자명하다. 유류비는 더는 줄이기 어려운 생활필수품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부자들이 느끼는 부담은 거의 없는 반면 저소득 계층이 느끼는 부담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시위가 경제적 부담을 견디지 못한 소득 하위 계층에서 시작된 만큼 시위대가 요구하는 것에는 유류세 인상 철회 외에 다른 것들도 있다. 시위대는 경제적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길 원하고 최저임금 인상, 긴축재정 정책 철회, 정부의 투명성 확보를 요구한다. 마크롱 대통령의 퇴진 또한 이들이 요구하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노란 조끼 시위가 계층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을 정교하게 수립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이번 프랑스 사태가 알려준다는 기사를 썼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단순히 탄소세를 올리고 태양광 패널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환경을 고려한 투자 정책을 연구하는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본다 브룬스팅은 “모두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목표와 환경을 보호하는 것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누구도 현재에 관해서는 얘기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어떤 정부는 파리 기후 협약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야심 찬 계획을 세우지만 그보다도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치적으로 충분히 오랜 기간 살아남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지적은 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조차 노란 조끼 시위대에 심정적으로 공감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12월 10일 월요일 마크롱 대통령은 시위대를 달래기 위해 TV 연설을 통해 내년부터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이 월 100유로 인상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은퇴자가 내는 사회보장세를 인상하기로 한 계획을 철회하고 초과 근무 수당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노란 조끼 시위를 촉발했던 유류세 인상은 진작에 철회했다. 마크롱의 대책이 사소한 생색 내기식은 분명 아니다. 이번 대책으로 프랑스 정부는 대략 113억 달러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시위대의 반응은 차갑다. 이번 대책이 최저임금 이상을 벌고 있는 저소득 계층에는 즉각 와닿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고, 최저임금의 베이스라인을 올려 기업의 비용 지출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저소득자에게 보조금을 주는 정부 계획을 앞당긴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시위대에는 은행가 출신의 엘리트 정치인인 마크롱에게 속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그나마 마크롱에게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TV 연설 이전에 노란 조끼 시위에 대한 지지율이 이미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폭력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과 폭력에 대한 시민들의 두려움은 노란 조끼 시위 지지율을 70~80% 근방에서 60%대까지 떨어뜨렸다. TV 연설 이후에는 절반 이상의 응답자들이 시위가 멈추길 바란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비록 비슷한 비율의 사람들이 시위대에 공감한다고 대답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전통적인 정당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도시 지역의 시민들이 뽑은 대통령이 마크롱이다. 마크롱은 대통령 당선 당시나 지금이나 그를 지지하는 정치 기반이 약한 편이다. 아직 좌파 진영의 장뤼크 멜랑숑이나 극우 정치인 마린 르 펜이 노란 조끼 시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마크롱의 정치 라이벌들이 이번 일을 기회 삼아 마크롱을 대신하려고 할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 현재가 이미 그렇지만 프랑스의 미래 또한 평탄치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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