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이 지배하는 한국 스포츠

오랫동안 폭력에 신음해온 스포츠 강국의 민낯이 드러났다.

불편한 진실. 모두 예상했으나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까지 묵인했던 스포츠계의 상습적 선수 폭행. 이 사태의 한가운데 선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는 법정에서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는 말로 자신의 상황을 단적으로 설명했다.

심석희를 상습적으로 구타하고 미성년자 시절부터 성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진 코치 조재범은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진행 중이다. ‘제2의 조재범’을 막을 강력한 자정 작용의 시발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스포츠 분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학연, 지연을 바탕으로 한, 전형적인 인맥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인맥이 곧 커리어의 미래로 이어지기 때문에 수직적 위계질서 아래서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은 절대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또한 선수촌이라는 격리된 폐쇄적 환경에서 훈련을 진행하기에 그 안에서 발생하는 불합리한 일도 그들만의 비밀로 덮어버리기 쉽다. 즉 예전부터 피해자는 있었으나 가해자는 불분명했던 비정상적 구조다. 늦었지만 시스템의 대폭적인 개선과 인적 자원의 교체가 시급하다. 먼저 선수들이 용기를 냈을 때 커리어상의 보복과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심석희 선수의 경우도 대한체육협회에서 선수 권익부, 공정 체육부, 클린 스포츠 센터 등으로 이름이 바뀌는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다섯 번 넘게 담당자가 바뀌며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한 해에 4000억원 가까운 예산을 쓰는 대한체육협회가 과연 적극적으로 선수를 보호하려는 의지가 있었던가 의문스럽다.

또한 코치, 감독 등 지도부의 폭력이 용인되면 함께 훈련받고 생활하는 팀 내 선후배 간의 폭행도 자연히 묵인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조직 안에서 불합리한 일이 발생하면 그에 맞는 조치가 취해진다는 신뢰가 형성되지 못했다. 승부 조작 전적까지 있는 조재범은 대한빙상연맹에서 영구 제명되었지만 중국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를 맡으려고 시도했다.

2007년 해외 전지훈련 중 소속 팀 선수를 성추행한 여자 프로농구 감독은 중국으로 건너가 유소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성폭행 의혹이 있어 퇴출됐던 또 다른 빙상 코치도 한국체육대학 교수로 복귀했다.

“심 선수의 폭행 피해 고백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나설지 모르니 정신병에 걸릴 정도로 겁을 줘서 동조하지 못하게 하라.” 손혜원 국회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전명규 전 대한빙상연맹 부회장의 발언이다.

누구보다 건강한 신체와 정신으로 공정한 승부를 펼쳐야 할 스포츠 선수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폭력적인 방법으로 고통받았다. 정부가 앞장서고 제도적 차원의 개선 움직임이 없는 한 선수의 희생과 용기만으로 스포츠업계의 자정 작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2017년 아동 포르노물 소지와 여자 체조 선수 성폭행 혐의로 최고 360년 형을 선고받은 미국 체조 국가대표팀 주치의 래리 나사르와 같은 강력한 판결이 우리나라에서 나올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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