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김정은 브로맨스? 일단 정지

실패하는 정상회담은 없다는 외교가의 불문율을 깨고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됐다. 대체 왜?

기대가 컸다. 그래서 실망은 그 이상이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어렵게 성사된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사람들의 반응은 “헐…(황당과 당황 사이)” 혹은 “하…(안타까운 탄식)” 그 어디쯤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거래의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아’ 회담장을 걸어 나왔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거래의 방식에 ‘굉장히 의아함’을 느끼며 평양으로 가는 편도 60시간 열차에 다시 몸을 실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 점심도 안 먹고 헤어지다

‘김정은을 사랑한다’던 트럼프와 김정은의 브로맨스는 하노이에서 일단 멈춰 섰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지난 2월 28일 예정됐던 오찬은 물론 합의문 서명식도 없이 갈라섰다. ‘실패하는 정상회담은 없다’는 외교가의 속설(정상회담 전 충분한 협상과 잠정 합의문까지 만들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는다는 의미)이 완벽하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트럼프는 지난해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때처럼 ‘나 홀로 기자회견’을 열었고, 김정은 역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기자회견과 무관한 일정을 소화했다.

언제라도 회담장을 박차고 나올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오늘은 내가 합의문에 서명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언론의 비판이 있어도 합의문에 서명할 수 있었다. 실제 합의문도 마련됐었다. 내가 원했으면 100% 합의문에 서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합의문에 서명하기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트럼프가 회담 결렬 이후 가진 기자회견의 일부 발언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두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 첫 번째 추론: 처음부터 합의할 생각이 없었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다소 추상적이지만 중요한 합의문에 서명했다. 싱가포르 합의문은 ① 신뢰 구축을 통한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② 평화 체제 구축, ③ 비핵화 등의 순서로 구성됐다(순서가 중요하다). 그러자 당시 한미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크게 양보했다며 비난을 쏟아냈다. ‘마이 웨이’ 트럼프는 겉으로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지만 내심 이 부분을 가장 아파했을 거라는 관측이 나왔다. 과거 자신이 서명한 합의문이 ‘실수’라고 판단된다면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뒤집기다.

‘하노이 결투’에 임하면서 트럼프는 애초부터 이를 되돌리려고 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모든 대량 살상 무기(WMD)의 동결과 폐기 약속’ 등 북한 입장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을 하면서 결렬을 유도하고 결과적으로 싱가포르 합의 이전 상황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뒤집기가 협상가를 자처하는 트럼프의 유일한 목표는 아니었을 것이다. 기존 합의를 흔드는 과정에서 나온 전략이 ‘빅딜(big deal) 아니면 노딜(no deal)’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받기 어려운 빅딜을 제안했을 때 김정은이 덜컥 받아버리면 미국 입장에서는 완벽한 승리다. 싱가포르 합의 이후 터져 나온 모든 비판을 일거에 날려버릴 수 있다. 반대로 김정은이 거부했을 때는 ‘북한이 빅딜을 받아들이지 않아 노딜을 선택했다’는 든든한 명분을 얻게 된다. 트럼프는 ‘싱가포르 합의 정신’을 뒤집었다는 비판을 적당히 차단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싱가포르 합의 정신이란 북미 양측이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상호 신뢰를 쌓는 과정에서 비핵화를 진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금은 여전히 북미 간 신뢰 관계가 전혀 형성되지 않은 상태다. 북한은 일부 제재 완화를 신뢰 조치의 시작으로 인식하는 반면, 미국은 실질적 비핵화 조치(규정하기 어려운 영역이다)를 신뢰 조치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 두 번째 추론: 트럼프의 마음이 돌변했다

두 번째 추론, 즉 ‘당초 합의할 생각이 있었지만 트럼프 마음이 변했다’는 분석은 트럼프가 처한 국내 정치 상황에 기반한다. 여러 가지 비판 속에서 어렵게 성사된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나서면서 ‘아무리 트럼프라도’ 설마 무합의를 목표로 했겠느냐는 반론이다. 이 같은 주장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건 다름 아닌 ‘마이클 코언 청문회’였다. 코언은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로 12년간 활동했던 최측근으로 정상회담 일정이 시작된 바로 그 시각, 지구 반대편 워싱턴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러시아 스캔들’ 관련 발언과 트럼프와의 성관계를 폭로한 여성에게 돈을 건넸다는 증언 등 폭탄 발언을 하고 있었다.

트럼프와 사이가 안 좋은 상당수의 미 주류 언론은 동 시간대에 열린 정상회담보다 코언 청문회를 더 비중 있게 보도했다. 2월 27일, 정상회담 첫날에도 CNN은 코언 청문회 D-데이 시계까지 화면 한쪽에 배치하면서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정상회담은 뒷전이었다는 뜻이다.

“최대한 코언 변호사의 증언을 보려고 했는데 바빠서 다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가짜 청문회’라고 말하겠다. 이처럼 중요한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데 그런 발언을 했다는 게 적절하지 않다. 이틀 뒤나 다른 때에 청문회를 열 수 있었는데 이 중요한 시기에 열었다는 것이 옳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코언은 거짓말한 것이다. (중략) 대통령에게 이런 마녀사냥이 있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국익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여러분은 가짜 뉴스와 날조를 보고 있다.”

정상회담 결렬 이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이렇듯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렸다. 자신의 치부를 폭로하는 청문회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음을 시인한 것이다(그 어떤 강심장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이같이 코너로 몰린 트럼프의 정치 환경이 (홧김에) ‘노딜’에 영향을 미쳤다면 이는 두 가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회담에서 반드시 성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와 정반대로 일종의 충격요법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구축했다는 해석이다. 민주당을 향해서는 ‘북한 비핵화라는 중요한 기회가 있었는데, 당신들 때문에 회담이 결렬됐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 혹은 ‘당신들이 비판했던 것처럼 내가 합의를 대충 해주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질 수도 있다. 어떤 방향이든 트럼프로서는 노딜을 통해 좋은 명분을 얻은 것이다. 둘째, 다른 결의 해석은 정치 위기 타파용으로 (성과를 내기 위해) 급하게 추진했고, 정상 차원에서 타협을 시도했던 잠정 합의문의 빈 공간이 양측 간 깊은 인식 차이로 끝내 실패로 끝났다는 분석이다.

 

# 최선희, 다시 전면에 나서다

비핵화 협상을 주도하던 온건파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대신 회담 결렬 이후 전면에 등장한 사람은 다름 아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다. 그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를 압박하고 완벽한 비핵화 이전에 제재 해제는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급기야 지난 1월 31일 스탠퍼드 대학 강연에서 ‘동시적-병행적’ 이행을 강조했던 스티브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마저 3월 11일 핵 정책 회의 대담에서 “우리는 점진적 비핵화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 정부는 이 같은 입장에 일치단결하고 있다”고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결렬 이후 수습을 위한 미국식 대응 논리다.

‘꼴 보기 싫은 볼턴’ 때문이었을까.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을 최대한 자제해온 북한도 포문을 열었다. 가장 우려하던 장면이다. 3월 15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평양에서 외신을 상대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선희가 누구인가. 지난해 6·12 싱가포르 북미 회담 직전 펜스 부통령을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라고 비난했다가 트럼프로부터 ‘회담 연기’ 서한을 쓰게 한 장본인이다. 볼턴 대 최선희. 강 대 강으로 맞서겠다는 의미다.

최선희는 기자회견에서 비핵화 협상 중단을 고려하고 있다며 “우리는 미국의 요구에 어떤 형태로든 양보할 의사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은 미국과 협상을 지속할지, 그리고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중단을 유지할지 등을 곧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이 선전포고를 예고하자 워싱턴도 긴박하게 움직였다. 트럼프는 3월 15일 오전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을 직접 방문해 국가안보회의(NSC)를 소집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NSC 회의에 앞서 기자회견에서 “김정은은 하노이에서 핵·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했고 우리는 그 약속을 지킬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최선희의 발언을 봤는데 그녀는 협상을 계속할 가능성을 열어놨다”면서 “북한과 협상을 지속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회담 깨고 ‘대화하자’

정상회담 결렬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 (북한에 대한 호불호와 무관하게) 트럼프가 김정은을 가지고 놀았다는 평가가 우세했다(물론 대북 제재 완화를 무리하게 주장하는 김정은의 요구를 트럼프가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평가도 있다). 첫 번째 추론처럼 처음부터 판을 깨겠다는 의도였든, 두 번째 추론처럼 미국 내 정치적 요인이었든 처음부터 끝까지 트럼프의 모든 판단의 중심에는 ‘트럼프’만 존재했다. 탄핵을 운운하는 미국의 민주당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우려하는 미 국민들의 불안도, 한미 동맹도, 김정은도 그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트럼프에게 이번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 가장 요긴하게 쓰인 카드는 바로 매파 중의 매파 존 볼턴 보좌관이었다. 정상회담 한가운데 난데없이 나타난 그는 확대 정상회담에 배석해 테이블 맞은편에 북측 카운터파트도 없이 홀로 앉았고 그 장면은 누가 봐도 비대칭적, 비정상적으로 보였다. 그가 줄곧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던 A4 용지 크기의 노란 서류 봉투는 북측에 ‘빅딜’, 즉 핵무기부터 미사일, 생화학 무기, 핵 물질 등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북한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판 깨기용으로 제격인 셈이었고 볼턴은 늘 그렇듯 악역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트럼프와 폼페이오는 회담 결렬 직후부터 대화를 강조했다. 북한이 다시 도발할 것을 우려하며 대화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번 맞은 사람은 평생 기억한다. 다시 진지한 회담에 이르기까지 몇 배의 시간과 에너지가 요구되는 상황에, 불행하게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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