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왜 미국 시민권의 허들을 높이려는가

트럼프가 생득적 시민권에 거는 딴지는 외국인 공포와 맞닿아 있다.

1868년 제정된 미국의 수정헌법 제14조는 다음과 같이 미국의 시민권을 규정하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귀화한 자 및 그 사법권에 속하게 된 사람 모두가 미국 시민이며 거주하는 주의 시민이다. 어떤 주도 미국 시민의 특권 또는 면책 권한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거나 강제해서는 안 된다. 또한 어떤 주도 법의 적정 절차 없이 개인의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빼앗아서는 안 되며, 그 사법권 범위에서 개인에 대한 법의 동등한 보호를 거부하지 못한다.”

쉽게 말해, 미국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미국 시민이라는 얘기다. 한국은 부모 중 한 명이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 자녀도 한국 국적을 갖게 되지만, 미국은 부모의 국적보다 어디서 태어났느냐를 중요하게 본다. 이처럼 자국 영토에서 태어나면 시민권을 주는 출생지주의를 택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이외에도 캐나다 등 약 30개국이 있다.

한국에서 미국이나 캐나다로 가서 출산하는 이른바 원정 출산으로 자녀에게 제2의 국적을 마련해줄 수 있는 것도 이들 국가가 출생지주의를 고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헌법으로 규정된 미국의 시민권에 트럼프가 딴지를 걸었다. 행정명령을 내려 아무나 미국 시민이 될 수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발언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나온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미국 정치 전문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의 기자 조너선 스완과 인터뷰를 하며 자신이 구상 중인 여러 가지 정책을 간략하게 언급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생득적 시민권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에 관한 것이었다.

트럼프는 미국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출생지주의로 생득적 시민권을 부여하는 국가인데, 이를 뒤집을 수 있는 행정명령을 계획 중이라고 얘기했고, 행정명령으로 생득적 시민권을 쉽게 뒤집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얘기했듯, 미국이 유일하게 출생지주의를 채택한 나라라는 건 사실이 아니고, 트럼프가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 행정명령이 구체적인 정책 수립 중에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또한 행정명령을 통해 헌법으로 규정된 것을 쉽게 뒤집을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생득적 시민권을 뒤집어엎겠다는 얘기는 트럼프가 2016년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에도 간혹 했던 말이니 새로울 것은 없지만, 새삼스레 이슈가 된 것은 미국의 중간선거를 앞두고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싶은 <액시오스>와 트럼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고 할까.

생득적 시민권을 두고 정치적인 논의가 오가는 것은 생득적 시민권을 규정하는 수정헌법 제14조가 생긴 연원에 기인한다. 1868년 수정헌법 제14조가 인준된 것은 1857년 미국 대법원 최악의 판결이라고 일컬어지는 드레드 스콧 v. 샌드포드 판례를 무효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드레드 스콧 v. 샌드포드는 노예로 미국에 들어온 흑인과 그 후손은 그가 노예이든 노예가 아니든 미국 헌법 아래 보호되지 않으며, 미국 시민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연방 법원에 제소할 권리가 없다고 판결한 사례다. 즉 흑인은 미국 시민이 될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후 1861년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났고, 남북전쟁 이후 흑인을 시민에서 배제하는 판례를 무효로 만들기 위해 수정헌법 제14조가 국회에서 인준됐다. 흑인을 배제하지 않기 위함이 애초의 목적이었기 때문인지 초창기 미국 대법원은 시민권에 대한 헌법의 규정을 좁게 해석했다.

1873년만 해도 대법원은 시민권이 외국 국민의 후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는 이민에 대한 제한이 거의 없던 때였기에 시민과 비시민의 구분이 크게 의미가 없었다. 그랬던 것이 1880년대 중국인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고, 미국 시민에서 중국인을 완전히 배제한 중국인 배척법으로 다시 한번 주목을 받게 된다.

1894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웡 킴 아크가 중국을 방문했다가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이민국은 그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미국 시민이라고 항변했지만, 연방 정부는 중국인 배척법을 근거로 그가 미국 시민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이 사안은 결국 대법원까지 갔고, 대법원은 6 대 2로 웡의 손을 들어준다. 이 판례로 수정헌법 제14조를 해석할 때는 출생지를 기준으로 하게 됐다.

역사적인 맥락을 보면, 시민권을 규정하는 수정헌법 제14조에 대한 해석은 이미 명백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왜 트럼프를 비롯한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헌법이 규정하는 생득적 시민권에 딴지를 거는 것일까?

이들의 요구는 기본적으로 외국인 공포와 맞닿아 있다. 이민자들의 자식이 미국 땅에서 미국 시민권을 얻게 되면 미국 문화를 급격히 바꾸고 미국다움을 잃게 만든다는 것이다. 역사적 맥락을 봐도 알 수 있겠지만, 보통 이들이 말하는 미국다움이란 백인 위주의 문화를 뜻한다. 생득적 시민권이 확대된 것도 처음엔 그 대상이 흑인이었고, 그다음이 아시안을 비롯한 다른 인종이었다.

실제로 미국에서 생득적 시민권에 대한 논의 중 인종을 빼놓고 얘기된 적은 없었다. 1898년 웡 킴 아크 판결이 이루어졌을 때, 미국 대법원은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대법원은 미국에서 태어난 독일이나 아일랜드 이민자 자식에게는 아무도 시민권에 관해 딴지를 걸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물론 현재의 보수주의자, 특히 그중에서도 더 적은 이민을 원하는 제한주의자들이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적 언급을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이민자를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법으로 이주해오는 이민자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법치주의 관점에서 불법 이민자를 막아야 하고, 불법 이민자가 미국을 찾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생득적 시민권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웡 킴 아크 판례를 뒤집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웡 킴 아크의 부모가 합법적인 이민자였기 때문이다.

이들이 수정헌법 제14조에서 딴지를 거는 부분은 ‘(미국의) 사법권에 속하게 된 자’에 관한 부분이다. 불법으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자들이 정말 사법권에 속해 있는 것이 맞는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복스>를 비롯한 여러 언론에서 지적하듯, 논리적으로는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미국에서 불법적으로 거주하고 있다는 얘기는 미국의 사법권을 거부하며 살고 있다는 얘기니 ‘사법권에 속한 자’가 아니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이들에게 강제 추방 같은 행위를 통해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들을 ‘사법권에 속한 자’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또한 이들은 미국 정부에 세금을 낸다.

미국 대법원은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낳은 아이가 생득적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웡 킴 아크의 판례를 폭넓게 적용해서 현재 불법 이민자들의 자녀는 미국의 시민권을 갖는다. 정확히 말해서 트럼프가 딴지를 거는 건 이 부분이다. 트럼프는 행정명령을 통해 이 부분을 뒤엎겠다고 얘기하지만, 보통은 그렇게까지 급진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제한주의자들이 생각하기에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생득적 시민권을 뒤엎고자 하는 이들도 보통은 현재의 헌법 조항에 대한 해석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이들은 새로운 헌법 조항으로 기존의 수정헌법 제14조를 덮어쓰고자 한다. 하지만 법안 통과가 지지부진한 현재의 미국 국회에서 그것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다른 방법으로는 트럼프가 주장하듯 연방 정부 차원에서 생득적 시민권의 정의 자체를 바꾸자고 하는 것인데, 이 방법은 소송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결국 대법원에서 헌법 조항이 정확히 어떤 정의인지 판결을 내리게 만들 것이다. 브렛 캐버노 대법관이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을 대신한 현재의 대법원이 보수적이기는 하지만, 100년 이상을 이어온 판례를 뒤엎기란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생득적 시민권을 트럼프가 원하는 대로 뒤집는다면 어떨까? 미국의 이민 제도를 시민권과 따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합법적인 이민자이니 시민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 중 한쪽이 불법 이민자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비자를 가지고 여행 중에 아이를 낳은 경우는 어떻게 될까? 혹은 영주권을 아직 발급받지 못했지만, 신청 중인 사람이 아이를 낳는다면? 생득적 시민권에 대한 해석이 바뀐다면, 과거에 시민권이 있었던 사람들은 시민권을 잃게 되는 것일까?

대법원이 판결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고려해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생득적 시민권에 대한 해석을 새롭게 하는 일이 정말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향하는 것을 줄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미국 민간 여론 조사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생득적 시민권과는 별개로 2014년 이후 미국에서 불법 이민자들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제한주의자들이 얘기하듯, 불법 이민자들이 시민권 때문에 미국으로 향한다는 얘기는 근거가 부족하다.

국적 취득권은 세계인권선언에 명시되어 있는 권리다. 누군가의 국적이 꼭 미국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미국의 시민권은 적어도 미국 내에서는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보장되는 권리로 보장 범위가 확장되어왔다.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선서하는 대통령이 헌법에 반하는 일을 하려는 것도 우습지만, 그 이유가 인종차별과 외국인 공포에 기인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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