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이겼다

미국 중간선거는 사실상 트럼프의 승리다. 변곡점을 지난 대북 정책은 어떤 변화를 맞을까.

#트럼프, 사실상 승리

지난 11월 6일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상원을, 민주당은 하원을 차지했다. 공화당이 상ㆍ하원 모두를 장악했던 선거 전 상황을 감안한다면 공화당의 ‘상원 수성’, 민주당의 ‘하원 탈환’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각각 절반의 성공이다. 나란히 웃는 배경이다.

미국 선거에서 핵심은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대표적으로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주 등)의 선택이다. 선거 때마다 공화당과 민주당을 번갈아가며 선택해 후보들을 가장 긴장시키는 지역을 말한다.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에게 큰 승리를 안겨다 준 오하이오주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상원 의원 자리 한 곳을 민주당에, 주지사 자리는 공화당에 안겨주었다. 역시 다수의 선거인단으로 대선에 결정적 역할을 해온 플로리다주의 경우 지난 대선에서는 트럼프를 선택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근소한 득표율 차이로 재검표 실시가 확정되면서 2000년 대선 당시 재검토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11월 10일 기준).

2년 전 트럼프에게 박빙의 승리를 안겨다 준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주는 이번에 민주당 소속의 주지사와 상원 의원에게 표를 던졌다. (*이른바 ‘러스트 벨트’라 불리는 쇠락한 공업 지대는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미시간, 위스콘신주 등을 지칭한다. 스윙 스테이트와 러스트 벨트 지역은 상당 부분 겹치기도 한다.) 이번 선거에서 하원 223석을 확보하면서 다수당에 필요한 218석을 안정되게 넘긴 민주당 입장에서는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주요 지역 일부를 탈환했다는 점에서 더욱 자축하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공화-민주당 구도에서 벗어나 오로지 트럼프 입장에서만 본다면 어떨까. 트럼프의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년마다 치르는 미국 중간선거는 ‘집권당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그동안 43차례의 중간선거 결과 집권당이 승리한 것은 단 3차례에 불과하다. 1934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1998년 빌 클린턴,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임 당시 여당이 승리한 것이 전부다. 클린턴 때는 유례없는 경제 호황, 부시 때는 9ㆍ11테러라는 이례적 상황 등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이런 무지막지한 중간선거에서 상원을 지켜냈다는 것, 그리고 하원 의석 수를 그렇게 많이 빼앗기지 않았다는 것은 트럼프에게 희망을 주는 대목이다.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0년 상원에서 6석, 하원에서 무려 63석을 잃은 점을 상기하면 이번에 하원에서 빼앗긴 26석 정도는 나쁘지 않은 성적인 것이다. 모든 사안을 자기중심적으로 파악하고 스스로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운 트럼프가 중간선거 당일인 6일 밤 (다소 성급하게) 트위터에 올린 ‘엄청난 승리’ 메시지는 이런 결과를 미리 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 미국 중간선거와 김정은

미국 중간선거가 중요한 것은 의회의 권력 구도가 미국 내 문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동시에 북핵 협상 같은 국제 이슈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의회의 입장에 따라 한반도 운명이 좌지우지됐던 과거를 경험한 우리, 지난 6월 역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본 우리에게는 이번 선거가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집권당의 중간선거 결과가 대북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는 크게 두 번 있었다. 1994년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과 맺은 ‘제네바 합의’는 그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하면서 지켜지지 않았다. 또 한 번의 사례는 아들 부시 때다.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비난하며 양자 대화마저 거부했던 부시 행정부는 2006년 중간선거 패배 이후 네오콘이 물러나면서 북미 대화를 의욕적으로 추진하기도 했다.

이번 중간선거를 앞두고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왔다. 우리 입장에서 가장 큰 이슈는 중간선거 패배 이후 트럼프의 대북 정책이 달라지지 않을까, 트럼프의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가능하면 ‘무덤’이라는 중간선거 이전에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이유다. 다행히 이번 선거는 트럼프에게 큰 상처를 주진 않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입장에서는 큰 행운이다.

대북 정책이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는 근거는 대략 네 가지 정도다. 첫째, 앞서 언급했듯 상원을 지켜내면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점, 둘째, 트럼프가 연일 반복하듯 과거 행정부가 수십 년간 해오지 못한 일을 자신이 하고 있다는 자신감, 셋째, 가장 큰 콤플렉스를 느끼는 전임자, 즉 오바마 대통령조차 건들지 못한 ‘핫 아이템’이라는 점, 넷째, 미국 본토까지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위협이 실제 (당장은) 사라졌다는 점 등이다. 협상의 동력을 이어가야 하는 이유이자 배경이다.

# 미 주류 언론의 트럼프 흔들기

다만 걱정은 하원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의 태도다. 다른 하나는 트럼프와 연일 삿대질하면서 싸우는 미 주류 언론들이다.

먼저 의회를 보자. 하원을 장악했다는 것은 곧 예산을 좌지우지할수 있다는 의미다. 예산에 관한 한 상원보다 하원에 절대적 권한을 주기 때문이다. 향후 북한과 협상 과정에서 일종의 보상을 하게 된다면 당연히 예산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하원에서 예산이 통과돼야 한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민주당은 트럼프와 대척점에 있다. 대북 문제에서 공화당보다 다소 유화적이었다고 평가되는 민주당이라고 하지만 권력 투쟁 과정에서 북한은 하나의 변수일 뿐이다. 결국 ‘트럼프가 추진하기 때문에 반대해야 하는’ 많은 정책 가운데 북한 이슈가 포함되었다는 점은 우리로서는 불행한 일이다.

당장 미 하원 차기 외교위원장으로 유력한 엘리엇 엥겔 하원 의원(민주당)은 지난 11월 1일 트럼프에게 서한을 보내 “미국 국가 안보와 미국인의 이익에 대한 이슈에서는 하원 외교위원회가 정기적으로 협의하는게 필수적”이라 지적하고 “이산가족 재상봉 같은 인권 진전, 북미 협상 상황에 대해 정기적으로 (하원에) 보고하도록 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미 협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미 주류 언론은 북한만큼이나 트럼프를 증오한다. 대표적으로 CNN, <뉴욕타임스> 등이다. 주류 언론의 지적이 옳을 때도 있지만 트럼프를 공격하기 위해 북한 문제를 왜곡하거나 과장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대표적인 게 11월 12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에 실린 ‘In North Korea, Missile Bases Suggest a Great Deception’ 기사다.

<뉴욕타임스>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공개한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트럼프가 북핵 위협은 더 이상 없다고 말했지만 북한은 미사일 기지를 운영하고 있다며, 북한이 큰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미국의 싱크 탱크인 CSIS는 ‘미신고된 북한(Undeclared North Korea): 삭간몰미사일 운용 기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북한이 이른바 미신고 미사일 기지 중 최소 13곳의 위치를 파악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보고서뿐만 아니라 이를 보도하고 해석하는 <뉴욕타임스> 기사 역시 과장 내지 왜곡되었다는 주장이 미국 내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북한 전문 사이트인 38노스는 11월 13일(현지 시간) 논평을 내고 “편향되고 과장된 내용은 편집자가 기사를 1면에 배치하는 데 확신을 줄지는 모르겠으나 독자에게는 해로운 것”이라고 해당 기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특히 ‘미신고’라는 표현과 관련, 38노스는 “미국과 북한은 북한의 미사일 배치를 금지하는 합의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면서 의도적인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합의나 협정이 없는 상황에서 ‘미신고’라는 표현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보도 다음 날인 13일, 그는 트위터에 “새로운 것은 없다. 또 가짜 뉴스가 나왔다”고 비판했다. 한미 정보 당국이 이미 인지하고 있는 장소인데 새로운 것인 양 보도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트럼프는 이어 “만약 일이 잘 안 풀리면 내가 가장 먼저 알려주겠다”고 맞받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발 더 나아갔다. 트럼프가 트위터에 글을 올린 바로 그날 싱가포르를 방문 중이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두 번째 정상회담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단번에 무시하는 듯한 타이밍이다. 더군다나 매파 중 매파인 볼턴의 입에서 정상회담 소식이 전해졌다는 점은 더욱 흥미로운 대목이기도 하다.

#갈 길 먼 비핵화 협상

지난 11월 8일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간 고위급 회담이 불발되면서 또다시 긴 여정을 예고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회담 연기와 관련 “북측으로부터 연기하자는 통보를 받았다고 미국이 우리에게 설명해줬다”고 밝혔다.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해온 북한이 일종의 극약 처방을 내린 것이다.

고위급 회담 연기 소식이 전해진 날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에 비공개 회의를 제안했다. 실제 러시아가 요청한 8일(현지 시간), 유엔에서는 회의가 열렸고 미국과 러시아는 또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러시아는 대북 제재로 악화되고 있는 북한의 인도주의 상황을 개선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러시아가 실제로는 (대북) 은행 분야 제재 해제를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줬다”면서 설전을 이어갔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동창리 엔진 시험장 폐기 수순 등을 근거로 미국의 대북 제재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종전 선언을 통해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는 대북 제재 유지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비핵화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간선거라는 큰 장애물을 넘기는 했지만 여전히 북미 간 협상이 어디로 흘러갈지 예측할 수 없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다만 희망한다. 트럼프의 마음이 변하지 않기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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