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앤드 스페이스

시계와 자동차는 20세기 이후 수 세대의 남자들을 경쟁적으로 매혹시켜왔다. 시계와 자동차가 '에스콰이어'를 관통하는 두 개의 분야인 건 필연이다. 시계와 자동차는 나란히 20세기의 제조업을 대표한다. 서로 닮은 듯 다르게 진화해왔고 다른 듯 나란히 21세기를 겪어내고 있다. 김태영과 박찬용 에디터는 나란히 '에스콰이어'의 자동차와 시계를 대표한다. '에스콰이어'의 지면과 라디오을 통해 두 에디터가 만났다. 자동차와 시계가 충돌했다. 20세기와 21세기가 조우했다.

자동차 브랜드와의 관계를 강조하는 대표적인 시계 브랜드가 태그호이어다

신기주(이하Esquire) 드디어 자동차와 시계 분야의 공통점을 찾는 자리가 마련됐군요.

박찬용(이하Watch) 아주 오래전부터 이 주제로 김태영 에디터와 이야기를 했어요. 처음에는 서로의 분야를 빗대어 이해하기 쉽게 비유한 거였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자동차와 시계 사이에 공통점이 대단히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거죠.

김태영(이하Car) 우리가 발견한 모든 공통점을 여기서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죠.

Watch 분명 우리가 펼칠 이야기에는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부분도 있어요. 그래서 배경이 중요하고요. 저 같은 경우 시계 전문지에서 일하기 전에는 시계라는 분야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좋아서 뛰어든 게 아니라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 경우죠. 당연히 처음에는 시계라는 물건이 왜 그렇게 가치가 있는지도 몰랐고요. 근데 이해하려는 노력이 쌓이면서 지금 같은 관점이 생긴 거죠.

Car 저는 반대예요. 어릴 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현대식 양산 제품 외에 역사나 배경지식에도 관심이 많았죠. 단순 기계 이상의 가치는 사실 그런 곳에서 발견되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이 산업이 발전하는 걸 보면서 내 경험을 결합시킨 거예요. 그런데 박찬용 기자의 시계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동차와 시계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가깝다는 걸 알게 됐죠.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콘텐츠로 기획한 거고요.

구조는 엔진이 복잡할까, 시계가 복잡할까? 쉽게 답을 내기 어렵다.

다른 이유에서 발견한 공통점

Esquire 좋아요. 자동차와 시계의 공통점은 뭐예요? 비싸고 갖고 싶다는 것은 알겠는데.

Car 일단 시간이란 개념에서 시작해야겠죠. 인류가 시간이란 개념에 접근한 건 태양이나 별의 움직임을 기록한 것에서부터예요. 기원전 1500년대에 이집트에 해시계가 있었다고 해요. 그만큼 오래된 개념이죠. 근데 인류가 기계식 시계를 들고 다닌 건 14세기부터예요. 왜 갑자기 시계가 필요했을까요? 목적이 있어서였겠죠.

Watch 시대적 배경에서 사람들한테 시계가 필요해진 계기가 있어요. 철도 보급이 대표적이에요. 철도가 생기면서 시간표라는 게 생겼거든요. 오전 10시 30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려면 이동하면서도 시간을 알아야 하는 거죠. 이게 산업혁명 이후에 사람들이 시계를 갖게 된 이유예요. 전쟁터에서도 손목시계는 중요했어요. 정확한 스케줄에 맞춰서 작전대로 움직여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전 유럽이 전쟁 중일 때 스위스는 중립국을 유지하며 시계를 신나게 팔았죠. 단숨에 시계 시장의 규모가 커진 계기가 됐고요.

Car 자동차의 경우는 시계보다 늦게 등장했어요. 내연기관 자동차가 18세기 말에 발명됐거든요. 그런데 자동차 기술의 발전 속도는 시계 산업 발전 속도보다 빨랐어요. 특히 모터스포츠가 시작되면서 시계 기술을 단숨에 추월했죠. 1950년대 유럽에서는 이미 포뮬러원 레이스카가 등장해요. 당시에는 엄청나게 빠른 차들이었죠. 경쟁이 치열했어요. 남보다 빠른 자동차를 만들려면 랩 타임 단축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이때도 여전히 시간을 재는 방법은 기계식 시계가 전부였어요.

Watch 시간을 재는 시계를 ‘크로노그래프’라고 해요. 스톱워치죠. 현재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 외에 별도로 시간을 재는 기능이 생긴 거예요. 그게 소형화를 거쳐 손목 크로노그래프로 발전한 거고요. 초기 크로노그래프는 5분의 1초 정도로 계측이 가능했어요.

Car 0.2초 단위로 계측이 가능한 거였네요? 근데 1970년대에는 이미 포뮬러원 레이스카들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높아졌어요. 상위 1위에서 5위까지 드라이버의 차이가 0.061초 안에서 결정된 경기도 있었죠. 그러니까 순식간에 100분의 1초가 아니라 1000분의 1초까지 정밀하게 기록하는 시계가 필요해졌어요. 그런 시계가 없는 상황에서 자동차 기술이 더 빨리 발전한 거죠.

Watch 비슷한 시기에 자동차 레이스에 사용한 태그호이어의 유명한 타임키퍼의 별명이 ‘피아니스트’였어요. 빨리 눌러서 생긴 별명이에요. 차 다섯 대가 지나갈 때 차의 랩을 기록하는 방법에서 버튼을 ‘다다다다닥’ 빠르게 치는 게 최선이었던 거죠. 물론 지금 우리가 말하는 건 기계식 시계예요. 사실 손목시계 역사에서는 1960년대에 혁신적인 신기술이 생겨요. 쿼츠라는 시계예요. 기존의 기계식 시계는 태엽이 풀리면서 발생하는 힘을 진동에너지로 변환해서 시계가 작동하도록 한 것이거든요. 태엽이 풀리면서 내는 힘을 받아 진동에너지로 변환하는 스프링은 중력이나 여러 요소의 영향을 받으니 수학적으로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었어요. 그 오차를 거의 없앤 게 쿼츠 시계예요. 진동을 스프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수정에 전기를 가해서 만드는 거예요. 쿼츠 덕분에 시간 기록이 압도적으로 정확해졌죠. 게다가 가격도 합리적이었고요. 쿼츠 등장 후 스위스 시계 브랜드 대부분이 멸종하다시피 했어요.

피랠리 타이어의 고무를 스트랩에 쓴 로저드뷔 시계.

Car 쿼츠 시계의 등장은 꽤 의미가 있네요. 그런데 아무리 동력원의 기술 발전이 있었다 해도 여전히 1000분의 1초의 시간을 기록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요?

Watch 쿼츠 등장 이후 시간 계측 기술은 디지털화를 받아들여 굉장히 빨리 변했고요. 이때 시간 계측에서 가장 앞서나간 회사가 스와치그룹과 세이코였어요. 우리는 올림픽 타임키퍼로 오메가의 이름을 기억하지만 사실 스와치그룹 안에는 시간 측정을 전문으로 하는 스위스 타이밍이라는 회사가 있어요. 여기 직원들이 올림픽 때는 오메가의 이름으로, 아시안게임에는 티쏘의 이름으로 나가는 식이었어요. 세이코도 타임키퍼의 전통이 있어서 아직도 국제육상경기연맹의 공식 타임키핑 파트너는 세이코예요. 아무튼 타임키핑을 하려면 결승선을 통과할 때 가장 정확한 기록을 가장 빨리 집계에서 전 세계로 뿌리는 기술이 필요해요. 사실 기계식 시계 기술과는 상관없는 기술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시간을 기록한다고 모두 같은 시계는 아니니까요. 정밀하게 시간을 계측하는 기술과 우리가 지금 주로 다루는 명품, 고가 시계의 기술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기술이라고 봐야 돼요.

Esquire 정리 한번 하죠. 자동차의 등장으로 인간이나 동물의 능력을 넘어선 속도가 가능해진 거잖아요? 이전에는 100분의 1초 단위의 속도를 잴 필요가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시간은 상대성이 있어요. 그러니까 자동차가 인간이 느끼는 상대적 시간을 변화시키면서 시계의 정밀도 증가가 필요해진 거죠. 그래서 그런 정밀도를 구현할 수 있는 호이어나 롤렉스 같은 시계 브랜드가 각광받은 거고요. 분명 20세기에는 시계 산업보다는 자동차 제조 산업이 컸을 거예요. 그러니까 자동차 산업의 파생 효과 혹은 후광 효과가 시계 산업의 정밀도 증가로 연결된 거 같네요.

시계 회사가 대회 이름을 제품에 빌릴 만큼 유명한 자동차 레이스가 많았다. 1938년 밀레밀리아 경기에 참가한 알파로메오 8C2900의 디자인을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마케팅을 통한 이미지 개선

Car 모터스포츠와 시계는 속도와 시간이라는 분리할 수 없는 연결 고리를 바탕으로 발전했어요. 그리고 점점 더 접점이 많아진 거죠. 실제로 호이어 같은 회사가 1960~1970년대에 페라리, 로터스, 란치아 같은 명문 레이스 팀에 기계식 크로노그래프를 제공하기도 했어요. 롤렉스도 1960년대에 미국 데이토나 레이스에 출전하는 카레이서의 요구에 맞춰서 시계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롤렉스 코스모그래프 데이토나’라고 쓰죠. 태그호이어도 카레라, 모나코, 포뮬러1 같은 모터스포츠 시리즈를 여전히 내놓고 있고요. 카레라는 1950년대에 몇 번 열렸다가 최근 다시 부활한 ‘카레라 팬 아메리카나’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Watch 시계 회사가 제품에 멋있는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서 쓰는 대표적인 방법이에요. 시계가 쓰인 장소나 유명한 대회에 이름을 따서 붙인 거죠. 태그호이어는 영국 실버스톤 서킷의 이름을 따서 ‘실버스톤’ 시계를 만든 적이 있어요. 쇼파드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빈티지 카 랠리인 밀레밀리아의 후원사인데, 그래서 밀레밀리아 시계를 만들기도 해요. 저는 모터스포츠와 시계가 서로의 이미지를 합작해왔다고 생각해요. 시계는 기본적으로 작은 물건이고, 이 물건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알려면 공부가 필요해요. 예컨대 ‘스리 핸즈 크로노그래프’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기능을 단번에 모르잖아요. 근데 여기다 ‘데이토나’ 같은 유명한 대회 이름을 붙이면 좀 더 이해가 쉬운 거죠. 기능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장치로 브랜딩하는 거죠.

Esquire 로저드뷔라는 브랜드가 시계와 타이어를 접목시키지 않았나요?

Watch 그렇죠. 로저드뷔가 자동차를 마케팅 방법으로 굉장히 잘 이용하죠. 로저드뷔는 리치몬드그룹에 소속된 신생 고급 시계 브랜드인데요, 이탈리아 타이어 회사인 피랠리랑 합작했어요. 피랠리가 현재 포뮬러원의 타이어 공식 공급업체잖아요. 그래서 챔피언 레이스카의 타이어 조각 일부로 시곗줄을 만들기도 하고요.

Car 자동차업계에도 그런 사례가 여럿 있어요. 2011년에 메르세데스-벤츠가 SLR 맥라렌이라는 슈퍼카를 만들면서 태그호이어와 합작했어요. 그리고 SLR맥라렌 크로노그래프라는 시계를 만들었죠. SLR 맥라렌 오너에게 주거나 추가로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죠.

Watch 브라이틀링도 꽤 오래전부터 벤틀리와 합작하고 있어요. 메르세데스-벤츠는 최근에 IWC랑 협업도 했고요. 이런 식으로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와 프리미엄 시계 브랜드가 협업하는 건 요즘 마케팅에서 중요한 경향이에요.

Car 유명 레이서가 차던 시계를 브랜딩에 쓰는 경우도 많죠? 아이톤 세나라는 유명한 포뮬러원 드라이버의 경우 1994년 경기 도중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후 지금까지 몇 번이나 태그호이어가 세나 에디션을 만들었거든요. 실제로 손목시계는 모터스포츠 중에 차기에는 위험한 물건이에요. 금속 덩어리니까요. 그래서 요즘 포뮬러원 드라이버를 보면 마케팅을 위해 글러브 위에 시계를 그림으로 그려 넣기도 하지요.

Esquire 재미있네요. 사실 이런 마케팅이 일상화된다는 건 시계 산업과 자동차 산업이 20세기에 걸쳐 상호 보완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이겠죠? 처음부터 어울린 게 아니라 이런 꾸준한 관계를 통해 이제는 누가 봐도 어울리는 거예요. 시간과 속도를 별개로 볼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컴퓨터 기술의 발전이 자동차의 아름다움의 기준을 바꿔놨다.

두 분야는 협업이 중요했다. 자동차는 시계의 정밀한 이미지를, 시계는 자동차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으니까.

역사적으로는 고성능 자동차와 시계 회사의 협업이 많았다.

본질의 변화와 새로운 가치

Car 재미있는 건 기술의 발전이 두 세계를 갈라놓은 시기도 있었다는 거예요. 손목시계의 경우 본질이 더 이상 정확도가 목표인 게 아닌 상황으로 바뀌죠. 경주 차가 너무 빨라지면서 더 이상 인간이 물리적으로 시간을 잴 수 없어진 거예요. 이게 3차 산업혁명 이후 시계와 자동차 산업의 변화예요. 컴퓨터가 손목시계를 대신해 정밀 기록을 담당한 거죠.

Watch 앞에서 말한 것처럼 기계식 시계는 동력원이 기계에서 전자로 넘어가면서 정확성의 혁명을 얻었어요. 무어의 법칙처럼 전자화 기술은 계속해서 좋아지는데 개별 가격은 더 떨어지고 보급화가 가능해졌죠. 그사이 스위스 시계 회사들이 다 망했고요. 이제 시계의 가치가 변해야 했어요. 그래서 남은 사람들이 절치부심해서 시계 산업의 구도를 완전히 바꿔버린 거예요. 고가품 혹은 귀금속으로 말이죠.

Car 이 부분이 흥미로워요. 미래 자동차 산업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것 같거든요. 100년이라는 세월 동안 내연기관 자동차를 만들어오면서 역사가 있는 일부 기업들이 자동차 기술을 선도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내연기관 엔진 제작 노하우가 필요하지 않은 전기차나 운전자가 필요 없는 자율주행차가 보급된 후에는 어떨까요? 시계 산업처럼 본질이 변할 수밖에 없어요. 자동차가 셰어링을 통해 공유 경제의 일부분이 되고, 아주 일부는 이동 수단이 아니라 사치품으로 가치가 전환돼 살아남는 거죠. 지금의 기술 발전 속도로 볼 때 그리 멀지 않은 이야기예요.

Esquire 손목시계와 자동차의 미래에 사치품이라는 개념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는 소리군요. 그럼 시계 테크, 카 테크가 가능하다는 것도 양쪽 산업의 공통점이겠네요.

Car 그렇죠. 지금도 시계와 자동차의 가치로 돈을 버는 기술은 존재하니까요. 공통점을 이야기하다 보면 두 산업이 어떤 시점에서 발전했는지도 짚고 넘어가야 할 거 같아요. 특히 중국 시장이 두 업계에 끼친 영향력을 빼놓을 수 없겠죠.

Watch 시계 시장에서도 중국이 중요하죠. 이제 시계를 비롯한 모든 명품 시장이 중국 시장이 없으면 성립될 수 없는 구조예요.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시계의 특징 중 하나가 중고 가치가 높다는 거예요. 오래전에 만들어진 시계는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했잖아요?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에 50년 전 시계여도 상관없는 거예요. 시간을 볼 목적으로 사는 게 아니니까. 그러니까 유럽이나 미국 등의 구대륙은 장기적으로 고가 시계 시장의 성장률이 낮아질 확률이 높아요.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요. 살 사람은 다 산 거죠. 실제로 2000년대 초·중반부터 시계 산업은 중국 시장의 막대한 영향을 받아왔어요. 그즈음 중국의 자본주의 개념에 중산층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비싼 시계와 명품을 엄청나게 사들였거든요. 그때 시계 시장이 크게 부스트 효과를 얻었죠.

Car 1960년대에 컴퓨터 기술이 등장하면서 자동차 부품의 정밀 가공이 가능해졌어요. 수치만 입력하면 자동화된 기계가 mm 단위까지 정확한 부품을 만들게 된 거죠. 대량생산이면서도 자동차의 품질이 갑자기 확 좋아졌어요. 이때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죠. 그래서 중국같이 인건비가 싼 곳에 공장을 짓고 투자를 늘려갔죠. 이건 자동차뿐 아니라 많은 산업이 비슷했어요. 그런데 업계가 중국을 이용해 자신들의 자동차 산업을 발전시킨다고 생각할 때 중국은 외부 기술을 흡수해 스스로 자생력을 키웠어요. 그리고 자동차 소비국의 중심에 서게 됐죠. 단지 차가 많이 팔리는 게 아니라 프리미엄 브랜드 시장의 주요 시장이 됐어요. 지금은 페라리, 람보르기니, 롤스로이스, 파가니 같은 하이엔드 자동차 회사들이 중국 자동차 시장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고요. 중국 자동차 산업이 자체적으로 성장한다는 점은 아주 무서운 사실이기도 해요. 연간 3000만 대 판매가 가능한 중국 시장에는 공식 자동차 브랜드만 130여 개가 있다고 하거든요. 그뿐 아니라 배터리나 전동화 구동계 같은 부품 협력 업체의 기술도 대단히 빠르게 발전하고요.

Watch 이 부분에서 시계 산업이 자동차 산업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어요. 물론 하이엔드 자동차도 그렇지만 고가 시계는 중국에 공장을 만들지 않아요. 스위스 시계가 프리미엄 이미지를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가 ‘메이드 인 스위스’를 유지하기 때문이거든요. 이 기준을 충족시키려면 시계 부품에서 스위스산의 비중이 일정 부분을 넘어야 해요. 그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물론 알게 모르게 중국 자본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들어오고 있지만 스위스 명품 시계는 생산 면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자동차보다는 덜 받는다고 볼 수 있어요. 대신 저가의 기계식 시계 카테고리에서는 중국이 엄청나게 많은 제품을 만들며 시장의 파이를 점점 늘려가고 있죠.

Car 그럼 중국에는 왜 명품 시계 브랜드가 없죠? 정밀 부품을 만들어낼 기술이 없는 건가요?

Watch 스위스 시계 노동자들은 고숙련, 고임금 노동자잖아요. 근데 그런 노동자가 만든 물건을 팔려면 제품의 품질과 기술만큼이나 부가가치가 커야 돼요. 이런 부가가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 스토리가 있고 역사가 긴 회사에 유리할 수밖에 없죠.

Car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가 가치를 유지하는 것과 본질적으로는 비슷하군요.

시계와 달리 자동차의 기계적 발전 속도는 눈부시게 빨랐다. 이제는 전기차로 600마력 이상 모터 출력을 발휘하고 한 번 충전에 400km이상 달릴 수 있다.

Watch 화제를 좀 바꿔보죠. 김태영 기자가 학술적으로 두 세계의 공통점을 생각했다면 전 좀 가볍게 접근해보고 싶네요. 남자가 차와 시계를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이유를 찾아보는 거예요. 제 생각에는 제품의 가치를 숫자로 환산할 수 있기에 가능한 것 같거든요. 흔히 ‘스펙’이 존재한다는 거예요. 반면 패션이나 명품 가방을 좋아하는 건 스펙 때문이 아니거든요. 가치를 스펙으로 환산할 수 없죠. 근데 자동차와 시계는 가치를 숫자로 환산할 수 있어요. 이 부분이 큰 공통점인 거죠. 마케팅 포인트라는 점에서는 둘 다 어느 정도 현실 가능한 부분도 있어요. 노력한다면 300만원짜리 시계나 5000만원짜리 자동차를 평범한 직장인도 (무리하면) 살 수는 있거든요. 아주 다른 차원의 소재는 아닌 거예요. 내가 손에 넣을 가능성이 있는, 그러면서도 환상이 존재한다는 게 공통점이죠.

Esquire 어쩌면 그건 두 사람의 공감대 아닐까요?어쩌면 우리 모두가 20세기 남자들이기 때문에 자동차와 시계에 매력을 더 느끼는 것 같은데요?

Watch 굉장히 일리가 있어요. 작년에 <에스콰이어>에서 부록으로 만든 ‘빅 워치 북’에 좋은 인터뷰가 실렸어요. 현 LVMH그룹 시계 부문 회장인 장 클로드 비버의 인터뷰였어요.

Esquire 시계 산업의 아버지?

Watch 현대 시계업계 최고의 마케터예요. 그 사람의 이야기 중에서 “지금 생긴 모든 문화는 20세기 기반이다”라는 말이 있었어요. 2001년에 태어난 밀레니엄 세대가 성인이 되는 시대에는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거예요. 근데 그게 고작 2년 남았거든요.

Esquire 지금 밀레니엄 세대라고 표현한 세대는 자동차가 주는 멋스러움과 속도감의 쾌감 같은 것을 이해할 수 없을지 몰라요. 시계가 주는 사회적 지위에 대한 표현도 공감할 수 없겠죠. 그들은 우리와 다른 가치에 투자하면서 자원을 소비하는 게 더 즐겁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이건 앞으로 <에스콰이어>가 고민할 숙제이기도 하죠. 본질적으로 이해가 다른 세대에게 예전의 가치를 이유로 자동차와 시계를 멋지다고 주장할 수는 없거든요. 말하자면 우리와 함께 20세기에 살았던, 현재 30~50대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할 것이냐, 아니면 근본적으로 관련이 없는 새로운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소통할 것이냐.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앞으로 우리도 시계나 자동차에 대한 접근 태도가 달라져야 할 것 같군요.

Car 자동차와 시계가 시대에 따라 계속해서 변하면서 본질적으로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것을 반복하는 것처럼 <에스콰이어> 같은 미디어가 두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도 계속 변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 같아요.

정해지지 않은 두 분야의 미래

Esquire 현재까지 두 세계의 공통점까지도 이야기한 거 같은데요, 자동차와 시계 산업의 미래는 비슷할까요, 아니면 전혀 다를까요? 전자 산업이라는 영역을 받아들이면서 두 산업 모두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Watch 여기서 자동차랑 시계의 큰 차이는 정부의 규제 같아요. 시계는 사람 목숨을 위협하거나 환경을 오염시키는 배기가스를 내뿜지 않거든요. 이해 단체가 시장의 움직임을 제재하거나 기업의 경쟁 구도가 갑자기 크게 변화할 확률도 높지는 않겠죠.

라이프스타일 분야로 확장해나갈 목적으로 자동차 회사들이 스스로 기획해서 만들어내는 시계도 많다. 사진은 포드 머스탱을 모티브로 한 손목시계.

Car 시계 산업의 흐름이 크게 변하지 않는 것에 비해 자동차 분야는 큰 변화를 앞두고 있어요. 5세대 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한 사물 인터넷, 인공지능, 차세대 동력원으로 지금보다 더 안전하고 깨끗한 미래로 탈바꿈을 준비하는 중이죠. 하지만 그래서 저는 회의가 들어요. 자율 주행 같은 첨단 기술이 현실화되면 자동차가 공유 경제에 속하게 된다는 걸 부정할 수 없어요. 더 이상 자동차를 소유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겠죠. 그럼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 자동차를 소유하고 가치를 누리는 상황이 될 거라고 봐요. 마치 승마처럼요. 말은 이전에는 흔했지만 지금은 쉽게 소유하거나 경험할 수 없잖아요. 이게 자동차 산업이 시계 산업의 흐름을 따라가는 점이라 생각해요.

Watch 저는 자동차 회사들이 과연 그런 미래를 원할까 싶기도 해요. 개인에게 차를 팔지 않는 시대를 스스로 만들려고 할까요?

Esquire 자동차 회사는 원하지 않겠죠. 하지만 소비 대상이 바뀌는 것이지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기업과 소비자가 아닌 기업과 기업, 혹은 기업과 정부죠.

Car 맞아요. 기업과 정부가 자동차의 주 고객이 되고, 개인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듯 비용을 내고 차를 렌트하는 방식이겠죠.

Watch 마치 승강기 회사처럼 변하는 거군요. 늘 승강기를 쓰지만 개인 돈으로 승강기를 사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죠.

Car 시계 회사처럼 일부 자동차 브랜드도 부가가치 창출로 살아남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대중 차를 양산하던 자동차 회사는 B2B로 정부나 지자체와 계약을 맺지 못하면 사라질 수 있고요. 그럼 자동차 산업에 큰 지각변동도 있을 것이고요.

Watch 제가 지금의 시계 회사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지난달 <에스콰이어> 유아인 커버스토리에 까르띠에 산토스가 나왔잖아요. 등장한 지 100년이 넘은 시계예요. 그런데도 갖고 싶은 거예요. 100년이 넘도록 원형을 유지해온 물건을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마법이 존재하는 거죠. 결국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거예요. 그건 광고일 수도 있고, 유아인 씨와 우리가 진행한 듀오 인터뷰일 수도 있겠죠.

Car 같은 관점에서 한국에도 이제 레트로나 앤티크, 영타이머 같은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어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아주 소수만 수면 아래에 존재하는 시장이었죠.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한, 의미 있는 자동차의 가치가 올라가는 거죠. 그런 자동차가 복원이 되고, 또 더 비싸게 거래도 돼요. 최신 차에 대한 거부감 혹은 부작용으로 생기는 시장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전자 산업이라는 영역을 완전히 받아들이기 직전의 자동차, 기계적 감성에 충실한 자동차이기에 가능한 겁니다. 앞으로 세상에 태어날 수 없는 제품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거죠.

Watch 맞아요. 자동차와 시계의 또 하나의 공통점이기도 해요. 특정 물건이 앞으로는 세상에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이전 제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거죠. 이런 소비층이 많아질수록 비즈니스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Esquire 그렇군요. ‘자동차와 시계의 공통점’이라는 주제로 14세기부터 시작해 미래의 전망까지 알아봤네요. 그리고 내린 결론은 ‘앞으로 자동차와 시계 산업의 미래는 닮았지만 다를 것’이라는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기대 반, 우려 반이라는 사실도 발견했고요. 분명한 것은 자동차든 시계든 지금 우리가 좋아하는 소재가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갈증을 느끼는 사람은 늘 있겠죠. 그런 사람들을 통해 앞으로 시계와 자동차산업이 꾸준히 지탱될 것이고요. 그래야 우리도 끊임없이 두 세계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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