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의 맛

세계적인 미식의 강자로 떠오른 타이 음식이 한국에도 연착륙하고 있다.

지난해 <CNN 트래블>은 페이스북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50선’을 공개 투표에 붙였다. 3만5000명이 참여한 이 투표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깬 결과에 한동안 큰 이슈를 모았다. 전반적으로 아시아 음식이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서양 음식 중에서 가장 높은 순위에 오른 것은 이탈리아의 라사냐로 11위에 그쳤다. 미식의 강국이라고 일컫는 프랑스 음식 중 순위에 오른 것은 18위의 크루아상이 유일했다. 그렇다면 가장 많은 음식이 순위에 오른 나라는 어디일까. 길거리 음식의 천국 타이였다. 무려 7종에 달하는 음식이 순위에 올랐으며, 그중 넷은 상위권에 랭크됐다. 그 음식을 나열하자면 4위 얌꿍, 5위 팟타이, 6위 쏨땀, 10위 마싸만 커리, 19위 그린 커리, 24위 카오팟, 36위 무남톡이다. 아무래도 불특정 다수가 참여한 투표이다 보니 결과가 특별한 요리보다 일상식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이 투표 결과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타이 음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확실해졌다. 

타이는 식재료의 보고다. 식재료가 얼마나 풍부한지는 타이의 재래시장을 가봤다면 알 터. 정말 다양한 채소와 과일, 곡류, 견과류, 향신료 등이 넘쳐나며 모두가 하나같이 고급 식료품점에서 엄선한 제품처럼 품질이 뛰어나다. 방콕의 한 시장에서 바질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눈으로 확인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타이는 기후가 농사에 적합해 마음만 먹으면 3모작도 가능해요. 오죽하면 ‘손 뻗을 힘만 있으면 굶어 죽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겠어요. 혼자 농사지어도 본인이 먹고 남을 정도로 기후나 토양이 받쳐주니 두레나 품앗이 같은 개념은 아예 없어요. 그야말로 먹을거리가 지천에 널렸죠.” 하정석 PD의 설명이다. <마스터셰프 코리아> <한식대첩> 등을 연출한 하 PD는 현재 타이 방송국과 공동 제작한 JTBC의 <팀셰프>를 연출하고 있다. 해산물과 육류도 풍부하다. 세계 4위의 닭 수출국인 타이가 닭 8000만 마리로 최신형 전투기를 산 일은 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 항상 비교선상에 있는 베트남이 소시지나 파테 등 가공육을 즐겨 쓰는 반면 타이 음식에서는 신선육이나 신선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식재료가 풍부하다는 사실은 타이 음식의 세계화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여행길에 타이 음식의 매력에 눈뜬 사람들은 고국으로 돌아가 타이 음식점을 찾았다가 실망하고 만다. 국적을 막론하고 말이다. 타이 음식이 맛있는 가장 큰 이유는 신선한 재료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재료가 풍부하니 인공 조미료에 기댈 필요가 없다. 실제로 얌꿍을 조리할 때 특유의 신맛은 식초 등의 조미료가 아닌 레몬그라스 줄기와 카피르라임잎으로 낸다. 울금, 생강, 강황 등도 가루가 아닌 생것을 쓴다.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50선’에서 19위를 차지한 그린 커리의 페이스트를 만드는 데만 해도 열 가지가 넘는 향신채가 들어간다. 천연 조미료 역할을 하는 이들 향신채를 구하지 못해 한둘씩 다른 것으로 대체하다 보면 맛은 점점 본질에서 멀어진다. 특히 우리나라는 농업이 철저히 자본의 흐름을 따라가기 때문에 이국의 향신채를 구하기가 더욱 어렵다. 물론 기후나 토양의 한계도 있다. 우리네 음식의 파처럼 타이 음식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고수조차 구하기 힘들뿐더러 터무니없이 비싸다. 재료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인공 감미료나 향신료, 양념을 활용하는 일. 시판용 소스로 조립하다시피 완성한 요리에서 본연의 맛을 기대하기란 힘들다. 

어설픈 현지화도 문제다. 여행 경험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점점 현지 맛을 추구하지만, 프랜차이즈 식당을 중심으로 정착한 타이 음식은 그것과 거리가 멀다. 베트남 음식과 경계를 나누지 않는 것도 아쉬운 지점이다. 타이 음식점에서 베트남 쌀국수를, 베트남 음식점에서 얌 국수와 카오팟을 아무렇지 않게 판매한다. 물론 타이에도 뜨끈한 고기 국물에 만 쌀국수가 있다. 하지만 둘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베트남이 주로 쇠고기로 육수를 낸다면 타이는 돼지고기를 많이 쓴다. 재료가 다르니 국물의 풍미나 농도가 전혀 다르며, 타이 쌀국수가 베트남 쌀국수보다 간이나 양념이 좀 더 센 편이다. 이는 아무래도 타이가 우리처럼 밥이 주식이고 국수를 별미로 먹기 때문일 테다. 타이 음식은 밥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타이에서 안부를 묻는 인사말이 우리처럼 “밥 먹었니?”라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대부분의 음식이 밥에 곁들여지니 간이 세고 양념이 짙다. 우리가 타이 면 요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팟타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된 수출품인 쌀이 부족해지자 정부가 내국인을 상대로 국수를 먹도록 권장하면서 탄생했다. 그리하여 이름에 국가명이 붙은 것이다. 한편 베트남은 국수를 주식으로 한다. 심지어 밥에도 국수가 딸려 나올 정도다. 아무래도 간이 세거나 자극적이면 자주 먹기 힘들고 쇠고기를 재료로 하기 때문에 육수가 맑을 수밖에 없다. 이는 베트남 음식점에서 각자 맛을 가미할 수 있도록 식탁마다 각종 향신채와 양념을 꺼내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정도 차이도 인식하지 않은 채 국적 없이 음식을 파는 일은 그 나라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와 존중이 결여된 결과로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50선’에 선정된 타이 음식 모두 길거리는 물론 고급 레스토랑에서 취급하는 메뉴다. 길거리 음식 위주로 타이 음식을 경험한 여행객들이 자기 문화권의 관점에 비추어 타이 음식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

연중 무더운 타이는 길거리 문화가 발달했다. 그중에서도 방콕이 길거리 음식의 천국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이촌향도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타 지역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도시로 대거 유입된 뒤 생계를 위해 길거리에서 음식을 팔았고, 이 저렴하고 간편한 음식은 도시 노동자들의 요구에 부합했다. 길거리 음식이 저렴한 이유는 단순히 음식의 가치가 낮기 때문은 아니다. 자릿값이 적으며 각종 유지비가 덜 드는 이유도 있다. 길거리 노점상 중에는 훌륭한 전통 음식을 판매하는 곳도 많다. 이들 덕분에 길거리 음식이 타이 식문화를 대변한다는 말이 나왔을 터. “우리가 흔히 아는 길거리 음식은 떡볶이, 김밥, 순대 등 메뉴가 한정적이면서 허기를 때우는 수준에 그쳐요. 하지만 타이에서 길거리 음식은 단순히 ‘길에서 먹는 음식’을 의미해요. 거기에는 우리로 치면 요리에 속하는 생선튀김이나 찜이 있고, 무끄럽처럼 하루 전에 밑작업을 해야 하는 요리도 포함돼요. 오랜 시간 숙성해야 먹을 수 있는 소스를 곁들인 음식도 부지기수고요. 우리의 길거리 음식처럼 길에서 단시간 조리하는 음식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어요.” 하 PD의 말이다. 우리나라는 길거리 음식에 속하는 음식을 따로 분류한다. 반면 타이는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을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판매한다.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50선’에 선정된 타이 음식 모두 길거리는 물론 고급 레스토랑에서 취급하는 메뉴다. 하 PD는 길거리 음식 위주로 타이 음식을 경험한 여행객들이 자기 문화권의 관점에 비추어 타이 음식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일련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타이 음식의 위상은 수직 상승하고 있다. 2001년에는 타이 레스토랑이 세계 최초로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을 획득하기도 했다. 타이 음식을 바라보는 시선을 환기시킨 이 파격적인 사건의 주역은 호주인 셰프 데이비드 톰슨이었다. 타이에서 수년간 요리를 배운 톰슨은 시드니를 거쳐 2001년 런던에 ‘남(Nahm)’이라는 타이 음식점을 차렸는데 개장 6개월 만에 미슐랭 별을 받았다. 2010년 방콕에 문을 연 남은 2014년 <레스토랑>지로부터 아시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 PD는 남 방콕을 방문했을 때가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한다. “모던한 인테리어에 조도는 낮고 프로그레시브한 하우스 음악이 흘러나왔어요. 스태프들은 배기팬츠에 아방가르드한 느낌의 옷을 입고 있었고요. 그런 분위기에서 제법 알코올 도수가 있는 칵테일을 식전주로 곁들이면 그때부터 식사는 훨씬 더 드라마틱해지죠. 메뉴는 대부분 길거리에서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맛은 길거리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강렬했어요. 마치 길거리에서 버스킹하던 가수가 음향 시설을 완벽하게 갖춘 무대에서 노래하는 걸 듣는 느낌이었죠. 무엇보다도 타이 음식을 대하는 셰프의 태도에서 그 나라를 존중하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올봄 문을 연 메리어트 계열의 부티크 호텔 ‘라이즈 오토그래프 컬렉션’(이하 라이즈 호텔)은 국내 최초로 호텔 내 타이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데이비드 톰슨 셰프가 타이 길거리 음식을 재해석한 레스토랑 ‘롱침’이다. 싱가포르와 호주에 이어 서울에 문을 연 롱침은 라이즈 호텔의 유일한 레스토랑이라는 점에서 더 이목을 끈다. 라이즈 호텔이 이처럼 파격에 가까운 결정을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라이즈 호텔이 힙합, 스케이트보드 문화로 대변되는 홍대의 거리 문화를 반영하는 점과 롱침이 방콕의 길거리 음식과 로컬 마켓에 기반을 둔 점이 일맥상통한다고 여겼습니다.” 라이즈 호텔의 마케팅홍보 담당자 김문지 씨의 설명이다. 모던하고 화려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세계적 명성의 셰프가 고안한 타이 음식을 맛보는 경험은 타이 음식의 진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한편 국내에서 가장 현지 맛을 잘 구현한다는 평을 받는 툭툭누들타이는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며 분위기가 훨씬 더 쾌적해졌으며, 메뉴에도 신선한 변화를 주었다. 특히 최근에는 트렌드로 자리매김한 내추럴 와인을 음식과 매칭하며 타이 음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인이 사랑하는 음식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순간, 경험할 수 있는 미식의 범주는 한층 더 넓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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