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드릭 라마는 왜 그랬을까

상업성과 인종 자존심의 기로에 선 흑인 예술. 그 중심에 켄드릭 라마가 있다.

영화 <러시 아워>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성룡과 크리스 터커가 당구장에 들어간다. 크리스 터커가 안에 있던 흑인과 인사를 나누며 핸드 셰이크를 한다. 뒤따르던 성룡도 핸드 셰이크를 따라 하지만 흑인은 받아주지 않는다. 성룡은 영문을 알지 못한다. 얼마 후 성룡은 흑인 바텐더에게 인사를 건넨다. 아까 본 걸 따라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이렇게 외친다. “What’s up my nigga?” 그다음은 당연히 패싸움이다. 한때 유행하던 인터넷 밈(재미난 말을 적어 넣고 다시 포스팅한 그림이나 사진)이 있다. 첫 장면에서 한국인이 싸이의 ‘챔피언’을 따라 부른다. “챔피언, 소리 지르는 니가/ 챔피언, 음악에 미치는 니가.” 옆에는 흑인이 서 있다. 한국인은 도망가기 시작한다.

비슷한 사례가 얼마 전 켄드릭 라마의 무대에서도 있었다. 지난 5월, 미국 걸프 해안에서 열린 2018  행아웃 뮤직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던 켄드릭 라마가 팬을 무대 위로 초청해 자신의 노래를 부르게 했다. ‘M.A.A.D. City’가 흘렀고 팬은 랩을 했다. “Man down, where you from, nigga?/ Fuck who you know! Where you from, my nigga?” 그러자 켄드릭 라마는 음악을 멈추게 한 후 이렇게 말했다. “넌 한 단어는 입 밖으로 뱉지 말아야 했어.” 팬의 이름은 델라니, 그는 백인 여성이었다.

세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다. 흑인이 아닌 인종이 N 워드를 사용했고 그것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니가(nigga)는 흑인을 경멸하는 단어다. 블랙을 뜻하는 라틴어 ‘niger’와 스페인어 ‘negro’에서 파생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nigger’라고도 표기하는 이 단어는 노예제도가 있던 시절부터 아프리카 혈통의 흑인을 공격하고 모욕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Four Women’은 래퍼 탈립 콸리와 하이텍이 결성한 그룹 리플렉션 이터널의 노래다. 흑인 여성의 삶에 헌사를 보내는 이 노래에 이런 구절이 있다. “She lived from nigga to colored to negro to black/ To afro then african-american and right back to nigga.” ‘nigga’로부터 시작해 ‘African-American’이라는 호칭을 얻어내기까지, 이 구절은 흑인이 자신들을 향한 혐오에 맞서 존중을 얻어내기 위한 긴 역사적 사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단어에 대한 생각은 흑인 사이에서도 분분하다. 영화 <코치 카터>에서 농구부 감독(새뮤얼 잭슨)은 흑인 선수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Nigger’는 우리 조상을 모욕하는 단어였어. 백인 친구가 널 그렇게 부른다면 넌 싸울 준비를 해야 해. 그리고 네가 만약 그 단어를 쓴다면 백인 친구도 따라 쓰게 될 거야. 그 단어를 쓰는 게 쿨해 보이니?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 난 두 번 다시 그 단어를 듣고 싶지 않다.”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흑인의 인종적 각성을 외치는 흑인 저널리스트들은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렀어도 그 단어가 지닌 경멸적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흑인이 아닌 사람은 물론이고 흑인도 입에 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다른 많은 흑인은 그 단어를 인종 내부에서는 써도 되는 단어로 인식한다. 백인이 흑인에게 쓰면 안 되지만 흑인이 흑인에게 쓰는 것은 허용된다. 그리고 이럴 때 그 단어는 오히려 친밀감의 표현이자 결속력을 다지는 용도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래퍼 YG의 ‘My Nigga’는 서로를 위해 죽을 수도 있는 흑인 간의 의리에 대한 내용이다. 아마도 켄드릭 라마의 태도 역시 큰 틀에서는 이 선상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켄드릭 라마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이미 그는 몇 년 전에 자신의 노래 ‘i’에서 ‘negus’라는 단어를 등장시킨 바 있다. “N-E-G-U-S의 정의: 왕족/ N-E-G-U-S는 흑인 황제, 왕, 통치자/ 역사책은 이 단어를 숨겼지/ 미국은 사람들을 분열시켰지/ 우리는 단어를 잘못 써왔어.” 이렇듯 켄드릭 라마는 에티오피아에서 쓰이던 단어를 이용해 흑인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negus’라는 더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단어가 있으니 앞으로는 이 단어를 쓰자고 말이다. 이런 그가 델라니에게 발끈한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N 워드에 관한 입장 차이와 별개로 엄연한 사실이 하나 있다. 힙합의 인기와 득세가 이 단어를 흑인 외의 인종에게 광범위하게 퍼 날랐다는 점이다. 이제 이 단어는 세계화됐고, 누군가는 이 단어의 역사적 맥락 따위는 전혀 모른 채 알파벳 다섯 개를 입에 올린다. 조금 더 체계적으로 말해보자. 뮤지션은 이제 앨범이 아니라 공연으로 돈을 번다 → 스트리밍 서비스는 음악 장르 중에서도 특히 힙합의 인기를 높였다 → 뮤직 페스티벌은 성행하고 라인업의 상당수는 (흑인) 래퍼들로 채워진다 → 닐슨의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뮤직 페스티벌 관객의 (무려) 75%는 백인이다 → 델라니 사태가 벌어진다 → 제2의 델라니 사태가 벌어진다 → 제3의 델라니 사태가 벌어진다

델라니 사태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래퍼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트래비스 스콧은 백인 청소년 팬이 자신의 가사에 포함된 N 워드를 그대로 따라 부르게 놔두었고, 스쿨보이 큐는 한술 더 떠 이렇게 말했다. “백인 팬은 내가 이 죽여주는 옷을 입게 해주는 사람들이야. 또 그들은 내 딸이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게 해주는 존재지. 그러니까 그들은 내 공연에서 그 단어를 따라 부를 수 있어.” 릴 허브 역시 이렇게 말했다. “백인 팬이 그 단어를 입에 올린다고 해도 그건 그냥 내 가사일 뿐이잖아.” 그러나 앞선 래퍼들과는 달리 아미네는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백인 관객에게 N 워드를 따라 부르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켄드릭 라마 역시 앞서 말했듯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델라니 사태와 관련해 중요한 것이 있다. 힙합을 선봉으로 한 주류 흑인 예술이 상업성, 인종 자존심, 문화 정체성 사이 어딘가의 미묘하고도 불편한 지점에 들어서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델라니 사태와 관련해 켄드릭 라마를 비판할 수도, 델라니를 비판할 수도 있다. 켄드릭 라마가 유명인으로서 일반인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고 지적할 수도 있고, 델라니가 사려 깊지 못했다며 아쉬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개인 차원의 왈가왈부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힙합을 선봉으로 한 주류 흑인 예술이 상업성, 인종 자존심, 문화 정체성 사이 어딘가의 미묘하고도 불편한 지점에 들어서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켄드릭 라마가 있다. 실제로 그는 보수 백인 색채가 강한 그래미 어워드를 보이콧하지는 않았지만 시상식 무대에서 흑인 노예에 관한 랩을 했다. 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마블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해서는 내내 흑인 투쟁을 강조했다. 한편 뮤직 페스티벌 무대에서는 자신의 활동을 지탱하는 백인 팬들을 즐겁게 해주다가도 그들이 인종 경계를 침범해오면 냉정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무언가 고단하다.

켄드릭 라마는 얼마 전 퓰리처상을 받은 최초의 힙합 아티스트가 되었다. 다음은 선정의 변이다. “<DAMN.>은 진실한 흑인 언어와 역동적인 리듬으로 미국 흑인의 삶이 지닌 복잡성을 훌륭하게 포착했다.” 맞다. <DAMN.> 속의 켄드릭 라마는 마틴 루서 킹의 환생으로 분전하다가도 이내 시스템 속 무력한 흑인 청년으로 전락하고, 랩 스타로서 백인보다 더 큰 부와 명예를 누리면서도 마치 버락 오바마의 예술가 버전처럼 행동한다. 그런데 이 복잡성이란 비단 앨범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켄드릭 라마는 지금 현실에서 복잡성의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그리고 이 문장에서 켄드릭 라마를 힙합으로 바꾸어도 달라지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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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봉현(음악 칼럼니스트)
일러스트수이코
출처
36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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