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의 포용력

미국 알앤비 거장들이 케이팝 둥지 위로 날아든다.

 

케이팝은 다국적 혹은 무국적의 결과물로 탄생한 후 뮤직비디오와 안무 및 패션을 얹어 토털 패키지로 완성된다. 미국 알앤비 작곡가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얻고, 케이팝은 그들의 장점을 취해 자신의 스타일로 마무리하는 훌륭한 공생 모델인 셈이다.

 

케이팝의 발전과 강세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조금 과장하면 세계는 케이팝 월드에 살고 있다. 만약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케이팝을 의심하거나 폄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해줄 말은 하나, 올해는 2018년이고 머지않아 2019년이 온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말하는 케이팝은 한국의 대중음악이라는 넓은 정의는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아이돌 그룹이 국내외에서 거둔 큰 성공으로부터 연결되는 흐름 정도가 적당하겠다.

케이팝을 대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즐기고, 누군가는 무조건 열광한다. 또 케이팝을 즐기지는 않지만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공연장 뒤에서 몰래 지켜보며 미소 짓는 것으로 케이팝을 서포트한다. 이 글을 쓰는 김봉현 씨의 경우, 그에게 케이팝이란 선택적 즐거움이었다. 그는 모든 케이팝을 즐기지는 않는다. 그에게는 분명한 기준이 있다. 그가 오랫동안 탐닉해온 블랙 뮤직과 접점이 있는 케이팝을 선택적으로 즐긴다. 힙합이나 알앤비, 소울 등의 요소가 있는 케이팝을 즐긴다는 말이다. 33만원 주고 산 그의 아이팟 클래식에는 이런 노래가 담겨 있다. 샤이니 ‘닫아줘’, 태민 ‘ACE’, 태양 ‘나만 바라봐’, 레드벨벳 ‘Kingdom Come’

그런 맥락에서 미국 알앤비 프로듀서들의 케이팝 진출은 나에게 반가운 충격이었다. 미국 알앤비 음악에서 느끼고 흡수했던 선율과 감성을 케이팝을 통해서도 즐길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크리스 브라운의 ‘Take You Down’으로 20대의 김봉현 씨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알앤비 프로듀싱 팀 언더독스(The Underdogs)는 샤이니의 ‘상사병’으로 다시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뉴 잭 스윙(new jack swing) 장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테디 라일리는 박재범의 ‘Demon’을 비롯해 소녀시대, 태민의 앨범에서 자신의 리듬 감각과 멜로디 감각을 발휘했다.

케이팝의 발전과 강세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 것처럼 미국 알앤비와 케이팝의 만남 역시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테디 라일리가 케이팝 진출을 위해 한국에 온 것이 2009년이니 이때를 시작점으로 잡는다면 거의 10년이 됐다. 이 글을 지금 쓰는 이유는 따로 있다. 5월 초 매거진 <롤링 스톤>에 올라온 기사 때문이다. ‘미국 알앤비 작곡가들은 어떻게 케이팝에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되었나’라는 제목의 기사는 단번에 내 이목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지금에야 비로소 나올 수 있는 기사로 보이기도 했다. 제목이 던진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지난 10년의 세월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금은 먼 거리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미국 팝 시장에서 알앤비 그룹이 사라진 지는 오래됐다. 보이즈 투 멘, 블랙스트리트, 드루 힐이 언제 적 이야기란 말인가. 하지만 알앤비는 그룹의 쇠락 후에도 개인을 통해 계속 이어졌다. 실제로 우리는 2000년대 이후에도 조, 니요, 뮤지크 소울차일드 같은 알앤비 뮤지션과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더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는 알앤비 자체가 위기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브루노 마스, 알 켈리 등의 앨범에 작곡으로 참여한 클라우드 켈리는 2000년대 후반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한다. “알앤비는 힙합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빠르게 해체되고 있었다. 복잡한 멜로디는 거절당했고 곡 구성은 최대한 간결해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곡의 브리지를 작곡할 필요가 없게 됐다.”

이러한 미국 팝 시장의 변화를 굳이 이분법으로 말하면 ‘웰메이드(wellmade)’ 시장에서 ‘프레시니스(freshness)’ 시장으로 옮겨갔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완성도가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된 대신 누가 먼저 세상에 없는 신선한 것을 내놓느냐가 관건이 됐다. 그 때문에 다채로운 코드 활용을 중시하고 복잡한 멜로디와 화성을 만드는 데에 강점이 있는 알앤비 작곡가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와 비슷한 시기에 케이팝이 부상하며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실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케이팝이 미국 알앤비 작곡가들을 포용할 수 있는 웰메이드 시장이었다는 점이다.

리애나의 노래를 작곡하고 소녀시대의 앨범에도 참여한 프리실라 리네아(Priscilla Renea)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때는 자주 좌절하게 된다. 작업이 진행될수록 코드가 단조로워지고 비트는 뻔해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우리는 최대한 단순한 걸 만들어내야 한다. 같은 멜로디를 반복하면서.” 다음은 엑소, 샤이니, 태연의 노래를 작곡한 로드니 벨(Rodnae Bell)의 말이다. “케이팝은 역동성과 변화를 좋아한다. 미국 노래가 평균 4~5개의 멜로디를 사용하는 반면 케이팝은 평균 8~10개의 멜로디를 사용한다. 또 케이팝은 화성의 활용에도 적극적이다.” 제레미의 음악감독 출신이자 NCT127의 ‘Limitless’ 작곡에 참여한 케빈 랜돌프(Kevin Randolph) 역시 거든다. “단순히 한마디만 반복하는 구성은 케이팝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케이팝은 다른 어떤 장르의 음악보다 한 곡 안에 다채로운 요소를 지니고 있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미국 정통 알앤비가 케이팝에 그대로 옮겨왔다는 말이 아니다. 물론 그렇게 조명할 수 있는 노래가 일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고, 앞서 말했듯 나는 그런 노래를 즐겨왔다. 하지만 그게 핵심은 아니다. 핵심은 미국 알앤비 작곡가들의 재능이 케이팝의 니즈와 맞아떨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선봉은 역시 SM엔터테인먼트였다. 미국 알앤비 작곡가들과의 작업은 국내에서는 차별성을 만들어냈고 국외에서는 보편성을 만들어냈다. 또 여전히 리듬보다 선율이 중요한 한국에서 미국 알앤비 작곡가들과의 작업은 세련되고 탄탄한 멜로디와 화성을 끊임없이 생산해낼 수 있는 일종의 화수분이었다. 멤버 수가 많고 각자 고유의 매력을 부여해야 하는 아이돌 그룹의 특성 역시 그들과의 좋은 접점이었다.

그러나 하나의 노래를 만들 때 외국 작곡가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지 않는 건 SM엔터테인먼트의 전략이었다. 크레디트에 적혀 있는 국적 불문의 여러 작곡가 중에서 유영진이나 켄지 같은 한국 작곡가의 존재는 아마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나 균형 감각의 발로였으리라. 그렇게 케이팝은 다국적 혹은 무국적의 결과물로 탄생한 후 뮤직비디오와 안무 및 패션을 얹어 토털 패키지로 완성된다. 미국 알앤비 작곡가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얻고, 케이팝은 그들의 장점을 취해 자신의 스타일로 마무리하는 훌륭한 공생 모델인 셈이다.

그렇다고 미국 알앤비 작곡가들이 케이팝을 돈 버는 수단으로만 여기는 것은 아니다. 다음은 클라우드 켈리의 말이다. “미국 전통 알앤비의 미덕을 흡수하며 성장하는 케이팝을 지켜보는 것이 행복하다. 그들은 미국의 팝이나 힙합보다 우리를 더 존중해준다.” 한편 프로듀싱 팀 스테레오타입스의 멤버 조나단 입은 이렇게 말했다. 참고로 스테레오타입스가 참여한 브루노 마스의 알앤비 트랙 ‘That’s What I Like’는 올해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노래로 선정됐고, 그로부터 불과 몇 시간 후 한국에서는 그들이 참여한 레드벨벳의 ‘Bad Boy’가 발매됐다. “미국 음악보다 케이팝이 더 음악적이라고 생각한다. 케이팝은 노래 속의 크고 역동적인 변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수많은 케이팝 아티스트는 모든 면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BTS가 미국 팝 시장에서 거둔 성과를 필두로 더 많은 케이팝 아티스트가 새로운 역사를 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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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김봉현(음악 칼럼니스트)
일러스트기마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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