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버노가 민주주의를 망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지명한 브렛 캐버노가 성폭행 의혹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법관이 되었다.

에스콰이어 - 브레 캐버노, 미국, 트럼프

몇 달 전 미국의 대법관 앤서니 케네디의 은퇴에 관한 글을 쓰면서 차기 대법관 후보로 유력한 브렛 캐버노에 대해 짧게 언급했다. 보수 성향의 인물로 후임 대법관이 된다면 미국의 낙태권, 수형자 인권, LGBTQ 인권 등을 후퇴시킬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라는 내용이었다.

글을 쓸 당시에는 진보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탐탁지 않은 인물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캐버노가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서 기본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캐버노는 여러 가지 논란 끝에 미국의 114번째 대법관이 됐고, 대법관이 되는 과정에서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 적합한 사람인가’라는 의문을 던지게 했다.

이미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는 미국이다 보니 대법관 한 명이 자격 미달이라 하더라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인물이 동료 시민으로 신뢰하기 힘든 인물이라면 놀랄 일은 아닐지언정 우울한 일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논란의 사건이 있었던 때는 1980년대로, 캐버노가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팔로알토 대학교 임상심리학과 교수인 크리스틴 블레이지 포드는 캐버노가 당시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고발했다. 포드는 파티에서 캐버노가 화장실에 가려던 자신을 붙잡고 방으로 밀어 넣은 후 옷을 벗기려 했고, 소리를 지르려고 하자 손으로 입을 막았다고 했다. 다행히 포드는 달아날 수 있었지만 그 일은 평생 트라우마로 남았다.

포드는 2012년 남편과 심리 치료를 받기 전까지 그 누구에게도 이 일을 얘기하지 않았다. <워싱턴 포스트>가 확인한 심리 치료사의 노트에 따르면, 캐버노의 이름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명문 사립 남자 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생이 저지른 일이라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캐버노 혼자 저지른 일도 아니었다. 캐버노가 자신의 친구와 함께 벌인 일이었다.

포드 교수는 캐버노의 대법관 임명이 언급될 때 이 일을 안나 에슈 하원 의원과 미국 상원 사법위원회의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 의원에게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이 사건이 익명으로 언론에 보도되었으나 익명 보도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포드는 논란의 전면에 실명으로 나서기로 결심했다. 포드는 “이제 저는 저의 시민으로서의 책임이 보복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캐버노는 즉각 이 일을 전면 부인했다. “저는 단정적으로, 그리고 명확하게 이 혐의를 부인합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도 그렇고 그 어떤 때에도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백악관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캐버노는 그런 일이 없다고 말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상원의 사법위원회에 속한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인준을 연기해야 한다고 말했고, 캐버노의 인준에 키를 잡고 있던 몇몇 공화당 의원들도 연기에 동의했다.

결국 사법위원회에서 인준안은 통과되었지만 제프 블레이크 공화당 의원이 FBI에서 사건을 조사할 시간을 갖자고 했고 전체 표결은 일주일 연기됐다. 처음에는 포드 교수의 기억이 부정확하다며, 피해자를 조롱했던 트럼프 대통령도 FBI에 조사를 지시했다. 일주일 후 FBI의 수사는 시간이 부족했고 수사 자체도 제한적이었다는 평을 받으며 별 성과 없이 종결했다. 브렛 캐버노는 결국 미국 대법관이 되었다.

캐버노처럼 대법관 인준 전에 성추행 혐의가 있었던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현재 9명의 대법관 구성원 중 한 명인 클라렌스 토머스도 1991년 인준을 받을 때 비슷한 일이 있었다. 토머스의 부하 직원으로 일했던 아니타 힐은 토머스가 자신을 성희롱했다고 인사 청문회에서 고발했다. 하지만 캐버노와 비슷하게 당시 토머스도 완강하게 그런 일이 없었다고 부인했고, 그는 청문회를 통과해 대법관이 되었다. 17년이 지난 지금, 1991년과 2018년은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결국 둘 다 대법관이 됐다는 결과만 놓고 보면 그리 많은 것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캐버노가 과거에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30년이 넘게 지난 일이라 누구도 그날의 일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캐버노가 파티에 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사실일 수도 있고, 캐버노를 아는 여성들이 캐버노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캐버노가 여성을 존중해왔다고 증언한 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 반면 평소 술을 즐겨 마시고 술만 마시면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낸다는 증언들도 있다. 물증이 없이 증언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이 사안의 어려움이다.

미국 온라인 매체 <복스>는 트럼프 대선 때와 비교해볼 법하다는 얘기도 한다. 트럼프도 대선 과정에서 대통령으로서 얼마나 적합한 인물인지보다, 과거의 부적절한 언행이 문제가 됐으니 말이다. 캐버노가 트럼프의 다이어트 콜라 버전이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왔다. 이번 일이 망가뜨린 것은 너무 많다.

하지만 성추행 고발이 있기 전에도 캐버노가 대법관이 되는 건 부적절하다고 하는 이들이 있었다. <뉴욕 타임스>는 9월 7일 ‘브렛 캐버노는 믿을 수 없다’는 제목의 사설을 올렸다. 캐버노가 과거에 했던 말들과 인사 청문회에서 했던 말들이 모호하게 사실관계를 호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그는 청문회에서 낙태권을 보장했던 로 대 웨이드 판례가 ‘대법원에 의해 선례로 확립됐다’고 증언했지만 2003년에 쓴 이메일에서는 “모든 법학자가 로 대 웨이드 판례가 선례 구속력이 있다고 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법원은 선례를 뒤집은 적이 있고 현재 대법관 중 3명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어느 쪽이 진심이든 앞뒤가 다른 얘기를 하고 있고, 만약 청문회에서 한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청문회에서 사실만을 얘기하겠다는 선서를 뒤집은 것이니 이 또한 대법관으로서 결격 사유가 된다.

상원에서 캐버노의 인준에 대한 토론 종결을 선언한 10월 5일로부터 정확히 1년 전 <뉴욕 타임스>의 조디 칸토르와 메간 투헤이 기자는 할리우드의 거물급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 사건을 보도했고 그때 이후로 세상은 많은 것이 변했다. 여성의 목소리가 더 커졌고 여성의 말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미투 운동은 과거에 용인됐던 남성의 부적절한 행동이 사실은 완전히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것을 사회 전반에 각인시켰다. 평소에 좋은 남자처럼 보이는 이도 부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됐고,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가 얼마나 무의미한 변명인지도 알게 됐다.

1년이 지난 지금 캐버노의 인준 과정을 보면 비록 캐버노가 대법관이 됐다 하더라도 미투 운동이 무의미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캐버노를 지지하는 공화당 의원들은 포드 교수의 이야기를 적어도 공개적으로 의심하지는 않았다. 미투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존중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캐버노의 인준 통과에 투표한 수잔 콜린스 공화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포드 교수가 성폭력의 생존자이고 그 트라우마가 그녀의 삶을 뒤집어놨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지명한 4명의 목격자는 그녀가 성폭력이 일어났다고 말했던 그때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확증하지 못했습니다.” 콜린스 의원이 한 말은 여성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듯하지만 결국 그동안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해온 얘기의 반복이라 할 수 있다.

인준 과정의 논란이야 어찌 됐든 미국 사회는 캐버노를 대법관에 임명했다. 대법관이 종신직인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캐버노가 미국 사회에 끼칠 영향은 꽤 클 것으로 예상된다. 몇 가지 예상되는 것을 나열해보자.

먼저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어서 주 정부가 낙태를 금지하는 것을 허용할 가능성이 높다. 사형제나 독방 수감에 반대하는 시도를 못 하게 할 가능성이 높고,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종교적인 이의 제기에 우호적인 판결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극단적으로 가자면, 게이 인권에 대한 과거의 대법원 판례들을 뒤집으려 할 수도 있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적극적 우대 조치 또한 상당 부분 약화될 것이다.

대통령의 권력이 더 강해야 한다고 보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대통령의 행정권을 강화하자는 캐버노의 관점은 현재 로버트 뮬러가 진행 중인 특검의 근간을 허물고, 궁극적으로는 트럼프를 형사 사건의 조사에서 감싸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서 캐버노는 트럼프가 뮬러의 특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헌법상의 특권을 갖게 해 줄 수 있다.

이쯤 되면 민주당에서 왜 캐버노의 인준을 반대했는지 알 법하다. 인준이 가져온 결과가 두렵기도 하지만, 인준 과정 자체도 캐버노라는 인물의 법리학적 관점에 대한 질문보다도 성폭력이 정말 있었느냐에 대한 논란이 더 컸다. 미국 온라인 매체 <복스>는 트럼프 대선 때와 비교해볼 법하다는 얘기도 한다. 트럼프도 대선 과정에서 대통령으로서 얼마나 적합한 인물인지보다, 과거의 부적절한 언행이 문제가 됐으니 말이다. 캐버노가 트럼프의 다이어트 콜라 버전이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왔다.

이번 일이 망가뜨린 것은 너무 많다. 미투 운동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독립된 줄 알았던 사법권이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준 것이 대표적이다.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 은퇴할 때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했던 것이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현실은 예상보다 조금 더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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