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 혹은 지하

지하 바와 루프톱 바, 점점 양극화되는 국내의 바 문화.

바는 참 극단적이다. 땅 밑으로 숨어드는가 하면, 하늘 위로 솟구치기도 한다. 물론 차분히 지상에 발을 딛고 있는 바도 있지만 탁 트인 하늘을 향하는 것이 요즘 바의 추세다. 하지만 대부분의 바가 지하에 똬리를 틀고 있는 만큼 바는 태초에 지하에 있었을 듯한데, 과연 그럴까. 바 문화가 가장 화려하게 꽃핀 뉴욕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바는 대부분 1층에 위치한다. 오히려 지하 바보다 루프톱 바의 역사가 더 앞선 듯하다. 뉴욕에서 옥상에 올라 탁 트인 뷰를 감상하며 음료를 마신 건 1890년부터다. 브로드웨이에 있는 전설의 극장, 카지노 시어터는 뉴욕에서 처음으로 옥상에 정원을 꾸미고 편히 앉을 수 있는 자리와 음료를 내주는 바를 마련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무알코올 음료로 이뤄진 메뉴를 샴페인, 맥주, 위스키 등의 주류까지 포함하도록 대폭 수정했다. 당시 카지노 시어터에 와인을 납품한 사람은 자기 생애에서 일주일 동안 그렇게 많은 샴페인을 팔아본 적이 없다며, 아마 전 세계에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라고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고 한다. 

카지노 시어터의 옥상 정원이 큰 성공을 거두자 뉴욕의 건물주와 사업가들은 옥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건물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 인구 과밀을 해결한 뉴욕에 옥상은 넘쳐났다. 그들은 앞다퉈 야외에서 맥주를 마시는 독일의 비어 가든을 모방해 옥상에 정원을 조성하고 바를 만들었다. 공사가 한창이던 매디슨 스퀘어 가든은 설계도를 부랴부랴 수정해 옥상 정원을 추가했다. 800명을 수용하는 이 옥상 정원이 문을 여는 날, 5000명이 몰려들며 일대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들이 옥상에 오르기 위해 서로를 밀고 당기는 모습은 흡사 천국에 오르려고 안간힘을 쓰는 망자들 같았다. 그 난장에 라이브 음악을 연주하기로 예정된 밴드가 옥상에 오르지 못한 이야기는 지금 들어도 흥미롭다. 독일의 투박한 비어 가든으로 시작한 루프톱 바가 제법 세련된 바의 형태를 갖춘 건 1900년 즈음이었다. 뉴요커들은 한여름의 지긋지긋한 더위와 도시의 번잡함, 지저분함을 피해 옥상으로 숨어들어 당시 유행하던 칵테일을 홀짝였다. 영원할 것 같던 한여름의 파라다이스는 1920년대 들어 시들해졌다. 에어컨이 급속도로 보급되며 더 이상 옥상에 오를 이유를 찾지 못했고, 금주법이 발효되어 탁 트인 옥상에서 술을 찾는 건 자살행위가 됐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음침하고 서늘한 밀폐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비로소 스피크이지 바의 시대가 도래했다. 

애주가들에게 흑마술 같았을 금주법이 1933년 폐지되며 자연스럽게 스피크이지 바도 사라졌다. 그중 경찰 간부들이 몰래 드나들 정도로 잘나가던 바들은 살아남아 여전한 인기를 누렸으며, 2000년대에는 모던 스피크이지 바 열풍이 불기도 했다. 금주법이 부활하지 않았음에도 스피크이지 시대가 다시 열린 배경에는 사샤 페트라스케라는 바텐더가 있다. 칵테일 재료로 신선한 과일과 채소, 허브를 도입한 페트라스케는 모던 칵테일을 개발하는 동시에 클래식 칵테일을 재정립해 부활시켰다. 그의 전성기가 펼쳐진 ‘밀크 앤드 허니’ 바는 비교적 외진 주택가의 지하에 위치했다. 그는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두려워해 주소를 알려주지 않을뿐더러 전화번호도 비밀에 부쳐 알음알음 찾아가야 했다. 특히 그때만 해도 바는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미덕이었으며, 목소리 큰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페트라스케는 민원을 신경 쓰는 한편 실추된 바의 위상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자신만의 룰을 만들어 큰 소리로 떠들거나 웃는 일, 싸우는 일, 모르는 이성에게 말 거는 일 등을 일체 금기했다. 손님들이 주인 눈치를 봐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폐쇄성이 오히려 매력으로 작용해 밀크 앤드 허니는 명소로 변했고, 그 영향으로 입구를 도통 찾기 힘든 지하의 스피크이지 바가 한둘 부활하기 시작했다. 

청담동에 위치한 바, 르챔버는 영국의 저명한 식음료 전문지 <레스토랑>이 올해 발표한 ‘아시아 베스트 바 50’에서 국내 바 중 가장 높은 등수를 차지했다. 국내를 대표하는 바 르챔버는 비밀스러운 입구, 아늑하고 고풍스러운 지하 공간, 실력 있는 바텐더 등 모던 스피크이지 바로서 모든 덕목을 갖췄다. 좁은 계단을 통해 빨려 들어가듯 내려가면 책장으로 막힌 좁은 공간과 마주하게 된다. 그 책장의 어느 구석을 누르면 책장이 서서히 물러서며 층고가 높은 바가 등장한다. 대표 세 명의 뒤를 이어 지난해 세계 최대의 바텐더 대회인 월드 클래스 국내 대회에서 우승한 홍두의 매니저는 ‘바는 해외에서 온 문화’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미국에 금주령이 시행되자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많은 바텐더들이 다른 대륙으로 건너갔습니다. 금주령이 풀린 후 그들은 더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훨씬 더 다채로운 맛과 사연을 품은 칵테일들이 탄생했고, 이는 칵테일 산업을 이끄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홍 매니저는 이렇듯 다양한 색을 흡수하며 발전한 바 문화가 국내에도 영향을 미쳤고, 지하에 바가 위치한 이유도 그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귀띔한다. “단순히 임대료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를 프라이빗한 분위기에서 술을 마시는 공간으로 인식합니다. 지하는 외부 소음을 차단하기 쉬우며, 밀실과 같은 프라이빗한 공간에 있다는 기분을 안겨줍니다. 이런 연유로 일부러 지하 공간을 찾아다니는 바텐더들도 있습니다.” 

홍 매니저는 바가 지하에 위치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으로 ‘자연과의 단절’을 지목했다. “저희 바텐더들은 한결같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희도 인간이기에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주방에 숨을 수 있는 직업이 아니기에 바텐더로서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있는 침착성을 갖춰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자연과 단절된 지하 공간은 항상 같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의 기본 개념에 충실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홍 매니저는 한결같은 분위기와 서비스를 바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눈치다. “물론 자연과 단절된 만큼 공기가 정체되어 답답하거나 퀴퀴한 냄새가 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일 꼼꼼히 청소하고 충분히 환기를 시킵니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노력이 쌓였을 때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1920년대 뉴욕에서 사라진 루프톱 바가 최근 서울에서 왕왕 발견된다. 물론 루프톱 바의 부활 또한 뉴욕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그 시절 냉방 시설이 발달하며 사람들이 쾌적한 실내로 숨어들었다면, 이제는 반대로 밖으로 나가고자 한다. 누구나 테라스석을 선호하며 도시에 살면서 아이러니하게 최대한 자연과 맞닿기를 바란다. 또한 상징적인 도시로 성장한 뉴욕을 발밑에 둔 채 이를 내려다보고 싶은 심리도 작용했다. 특히 새로 짓거나 레노베이션한 호텔이 마케팅 수단으로 루프톱 바를 활용하며 이러한 현상은 가속화됐다. 그리하여 뉴욕은 루프톱 바의 성지로서의 명성을 되찾았다. 혹자는 여름을 맞은 맨해튼을 ‘루프톱 바 국립공원’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제가 처음 루프톱 바 기획을 의뢰받았을 때만 해도 국내에 ‘루프톱 바’라는 용어가 통용되지 않았습니다. 스카이라운지가 있었을 뿐이죠.” 어반딜라이트 박형진 대표의 말이다. 어반딜라이트는 국내에서 루프톱 바를 기획, 운영하는 전문 컨설팅 회사다. 애초에 안경 사업을 하던 박 대표가 루프톱 바로 사업 아이템을 전향한 것은 우연한 일이다. “2013년 말에 머큐러 앰배서더 호텔 관계자를 만났는데, 그가 호텔 옥상에 좋은 공간이 있는데 활용이 되지 않는다며 혹시 주변에 루프톱 바를 기획해줄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때마침 뉴욕에 출장을 갔다가 루프톱 바를 인상적으로 보고 온 이후였는지라 덜컥 제가 해보겠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이듬해 머큐어 앰배서더 강남 쏘도베 호텔 옥상에 ‘클라우드’라는 바를 열며 박 대표는 국내에서 전무후무한 루프톱 바 전문가가 됐다. 

박 대표는 루프톱 바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으로 ‘자연에 노출된 점’을 든다. 이는 르챔버 홍두의 매니저가 꼽은 지하 바의 장단점과 정확히 상반된다. “자연 속에 있다는 안도감, 머리 위와 사방이 탁 트였을 때 밀려오는 개방감이 가장 큽니다. 실제로 천장이 뚫린 루프톱 바에 발을 디디는 순간 사람들의 감정이 즉각적으로 변하는 게 표정으로 다 읽힐 정도입니다. 이렇듯 드라마틱한 기분 전환은 사실 교외로 나가야 가능한 일이나, 도심에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도 실현되니 그 편이성이 혁명과 같죠. 물론 극적인 뷰는 기본이고요.” 박 대표는 우리 일상에서 테라스 문화가 자리 잡는 동시에 캠핑, 서핑 등의 아웃도어 액티비티가 꾸준히 인기를 끄는 경향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루프톱 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닌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굳건히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초창기에는 어떻게 하면 개방감을 극대화할 것인가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하면 날씨 변화에 대한 체감 정도를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뷰를 확보할 것인지를 먼저 고려합니다. 점차 야외를 줄이고 실내 공간을 늘리되, 실내에서도 똑같은 개방감을 구현해 두 공간을 오가도록 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입니다.” 박 대표는 루프톱 바를 운영하는 일을 농업에 비유한다. 그만큼 자연의 변화에 흥망성쇠가 달렸다는 이야기다. 특히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겨울은 혹독하다고 할 만큼 춥고 길다. 한참 겨울철 운영의 애로 사항을 털어놓기에 겨울에 잠시 휴업하는 것도 방법이 아니냐고 묻자, 박 대표는 단호한 어조로 잘라 말했다. “실제로 특급 호텔들이 테라스에 루프톱 바라는 이름을 붙인 채 운영하면서 비 오거나 날씨가 궂은 날에는 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루프톱 바를 부속 시설로 인식하게끔 하는 그릇된 경우입니다. 저는 루프톱 바가 국내에서 독립된 업장이자 사업으로 이해되기를 바랍니다.” 

루프톱 바는 바의 일종이지만 지하에 위치한 바와는 분위기며 손님층, 메뉴 등이 천지 차이다. 실제로 위치도 천지 차이고. 지하의 폐쇄된 바에서 위스키 등 고도수의 술 혹은 이를 활용한 칵테일을 주로 마신다면, 루프톱 바에서는 샴페인의 위세가 드높다. 그리하여 루프톱 바는 바 테이블을 생략하거나 한구석으로 밀어두는 추세다. 실제로 어반딜라이트가 오는 10월 문 여는 루프톱 바, 르 카바레 도산은 바 테이블을 없앴다. “클라우드 실내에 바를 근사하게 만들었으나 아무도 이용하지 않더라고요. 방콕처럼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곳의 루프톱 바는 칵테일 한잔 마시며 야경을 구경하고 금방 자리를 뜨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바가 한가운데 위치하고, 엄청나게 많은 칵테일 주문이 쏟아질 수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술을 병째 주문해 느긋하게 앉아서 일행과 술에 집중하는 문화에 더 가깝습니다.” 바의 부재는 바텐더의 입지, 역할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존에 어반딜라이트에 바텐더밖에 없었다면, 최근에는 소믈리에의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 스피크이지풍의 지하 바와 루프톱 바가 서로 더욱더 상반되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뭐, 그렇다고 한들 상관없다. 아늑한 분위기에서 바텐더와 서로 안부를 물으며 조용하게 한잔하고 싶은 날에는 지하 바를 찾아 칵테일을, 어쩐지 기쁨에 들뜨는 날에는 옥상으로 올라가 기포가 보글보글 오르는 샴페인을 마시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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