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평양냉면은 없다

평양냉면 맛은 평양에서도 변한 지 오래다.

지금 이 시각, 김정은과 트럼프는 어쨌든 악수를 했다. 악수(惡手)를 두지는 않은 것이다. 그런데 만약 두 사람이 함께 냉면을 먹었다면 어땠을까. 평양에서 회담했다면 트럼프는 곤욕스러웠을 것 같다. 외국인, 특히 이른바 백인들의 혐오 음식 중에 냉면이 포함돼 있으니까. 차가운 국물은 디저트가 아니면 먹지 않는 그들이니까. 가스파초? 그건 아주 예외적인 음식이다. 게다가 가스파초는 살얼음이 끼도록 내지도 않는다. 더러 한국의 이탈리아 식당에서 냉파스타를 파니까 이탈리아에도 있는 줄 아는 이들도 있지만. 뜨겁지 않은 파스타가 있긴 하다. 그건 샐러드다. 이탈리아 요리의 바이블 <실버 스푼>에서는 파스타 샐러드 레시피에 이렇게 써놓았다. “절대 냉장고에 넣었다 내지 말 것!” 그런데 중국집에서도 냉면을 내지 않느냐고? 뭐, 그렇기는 하다. 한국 화교가 만들었다는 게 진실이기는 하지만.

물론 트럼프가 냉면 때문에 평양을 기피한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냉면은 정말 한국인의 음식이다. 요즘에는 일본인 냉면 마니아도 꽤 늘었다. 야마토 아무개라는 분은 최근 일본 고베에서 유료로 진행하는 ‘냉면 포럼’까지 열었다. 그는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의 냉면 거의 대부분을 먹어본 이다. 그만큼 다양한 북한 냉면을 먹어본 이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평양 말고도 함흥, 원산, 해주 같은 지역의 냉면까지 다 먹어봤다. 일본인은 북한을 드나드는 데 어려움이 없으니까.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가 일본인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라. 그러나 그도 북한의 평양냉면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나서 냉면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 하나를 놓쳤다. 어떤 언론도 이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바로 북한 냉면이 변했다는 점이다. 모든 음식은 변한다. 카르보나라도 무지하게 변한 음식이다. 옛날에는 짜디짠 기름 덩어리를 한 주먹쯤 넣었다. 하지만 요즘 이탈리아인들은 그때에 비하면 아주 심심한 카르보나라를 먹는다. 그러니 냉면이라고 왜 안 변할까. 요는, 변한 이유다.

1990년대에 그들은 자칭 고난의 행군을 했다. 식량 위기와 무역 봉쇄로 거대한 식량난의 쓰나미를 연속적으로 맞았다. 알다시피 북한은 농토가 충분한 지역이 아니다. 인민의 수요를 맞추자면 중국의 밀가루와 쌀의 지원, 국제사회의 여러 지원, 풍작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 고난의 시기에 중국의 일부 지원을 빼면 외국으로부터 들어오는 식량이 거의 없었다. 메밀은 북한에서 중요한 식량이다. 냉면이야말로 유일 영도 체제를 이끄는 통치 세력의 애호 음식이기도 하다. 평양은 곧 북한 전체다. 서울이 남한의 절반쯤 되는 건 ‘쨉’도 안 된다. 그 도시에 냉면이 떨어진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판문점 회담에 냉면을 배달하는 일은 북한으로서는 단순히 음식을 나르는 일이 아니었다. 유일 영도 체제의 증인, 즉 김정은 위원장이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턱 내는 음식이었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그 냉면이, 고난의 시기를 거치면서 많이 달라져버렸다. 나는 그것을 우연히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은 모든 간행물이 정치 행위의 일부다. 예술조차 전형적인 정치 행위의 일부다. 그런 북한에서 낸 <통일문학>이란 잡지를 보게 되었다. 물론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서였다. 거기에 놀랍게도 ‘반성문’ 한 장이 실려 있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냉면이 변했으며, 이는 ‘우리(인민들)’의 잘못이라는 내용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이 옥류관 냉면 맛이 변했다고 현지 지도를 했으며, 그런 지도에 대한 반성의 글을 실은 것이었다. 그 내용은 이랬다. “고난의 시기에 메밀이 부족해서 농마를 많이 섞는 바람에 함흥식도 평양식도 아닌 범벅국수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랬다. 메밀 작황이 나빠지자 옥류관에서조차 슬쩍슬쩍 고구마 전분을 많이 섞어버린 것이었다. 옥류관에서 전통적으로 메밀과 고구마 전분을 배합하는 비율은 7:3이었다. 그런데 식량난을 겪으면서 4:6 정도로 배합이 달라져버린 것이다. 메밀은 동일한 토지에서의 수확량이 고구마보다 훨씬 적다. 메밀은 비교적 악천후에 강하지만 고구마보다는 잘 견디지 못한다. 국제 가격도 고구마 전분보다 서너 배 이상 비싸다. 메밀보다 고구마 전분을 더 많이 넣게 된 사정을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지금의 평양냉면 논쟁은 이런 북한의 사정을 모르면 눈 감고 문고리 잡는 소리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냉면집은 메밀을 많이 쓸까? 지금 수입산 메밀은 주로 두 지역에서 온다. 중국 내몽골, 미국 워싱턴주. 가격은 미국산이 조금 싸지만 품질은 비슷하다. 그리고 오히려 국산 메밀의 품질이 더 좋지 않다. 그저 국산이라 더 대우받을 뿐이다. 국산 메밀의 가격이 1이라면 수입산은 절반 이하다. 고구마 전분은 0.25, 밀가루는 0.1 이하 수준이다. 메밀은 비싸다. 어디라고 말은 못하지만 메밀을 5할도 넣지 않으면서 평양냉면집이라며 냉면을 파는 집이 허다하다. 전분도 비싸다고 밀가루를 넣는다. 밀가루를 넣으면 쫄깃함이 떨어지고 비린 느낌이 있으니 소다를 더 넣는다. 소다 향이 훅 올라오는 집도 있다. 어떤 이들은 그게 메밀 향이라고 착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적게 메밀을 넣고도 1만원 이상 값을 받는다. ‘예끼, 이보쇼’ 이런 말을 해주고 싶은, 이른바 정통 평양냉면집들이 널렸다. 그러나 뭐가 대수랴. 원조 중의 원조라는 북한도 전분이 5할 넘게 들어가는 바에는. 그러니 다들 면스플레인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들 드시는 게 어떨까. 물론 그래도 가위는 절대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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