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선언, 한반도의 봄은 오는가

종전 선언의 가능성이 보인다. 평화로 가는 길이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에스콰이어 - 남북관계, 종전선언

문재인 대통령 – 김정은 국무위원장

“한반도에서 비정상적인 현재의 정전 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 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이다. (중략) ③ 남과 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나가기로 하였다.”-판문점 선언 3조 3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 김정은 국무위원장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것에 함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6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 2조

# 종전 선언이란 무엇인가

올해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는 ‘핵’에 이어 ‘종전 선언’이다. 그렇다면 종전 선언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교전 당사국 간에 전쟁을 끝내자는 의사표시를 하는 선언이다. 현재 남과 북은 법적으로 전쟁을 중단 혹은 쉬고 있는 ‘정전’, ‘휴전’ 상황이다. 따라서 종전 선언은 이 같은 상황을 실질적으로 종료하고 적대 관계를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정치적 선언이다.

남과 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이후 무려 65년 동안 ‘전쟁을 중단’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분단국가이자 1990년 전후로 끝난 냉전 체제를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는 마지막 영토이기도 하다. 지난 65년간의 분단과 냉전 체제의 후과는 상상을 초월했고 그 비정상성은 2018년 현재까지 공고하게 이어지고 있다. ‘빨갱이’, ‘종북’으로 대변되는 무의미하고 출혈적인 논쟁은 정치적으로 보면 과거 독재 정권과 보수 정권의 창이자 방패로 활용돼왔고 동시에 엄청난 사회적경제적 비용을 초래했다.

종전 선언이 비핵화 과정에서 강조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앞서 서술한 비정상적 상황을 바로잡고 실질적으로 전쟁을 종식시키자는 정치적 의지를 당사국들이 국제사회에 공표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법적인 종전, 즉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에 거쳐야 하는 길목과 같다.

둘째, 종전 선언은 적대국 간 신뢰 구축 조치 가운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쉽게 말해 총부리를 겨누고 수십 년을 지내온 적대국 간(남한-북한, 미국-북한 간 적대 관계)에 존재하기 어려운 신뢰를 서로 확인하는 첫걸음이다. 실질적 당사자인 북미 양국이 비핵화를 위한 협상장의 문을 열면서 양쪽 모두 총을 내려놓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종전 선언은 본격적인 비핵화 과정을 촉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 입구 ‘종전 선언’ → 출구 ‘평화협정’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월 12일 영국 BBC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북한이 일정한 조치를 취할 경우 ‘오랜 북미 간의 적대 관계를 종식시키겠다는 하나의 정치적 선언으로서 종전 선언이 바람직하다’, ‘가급적 조기에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에 한미 간에 공감대가 있었다. 그래서 종전 선언은 시기의 문제일 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이어 “그렇게 되면 앞으로 북한의 비핵화 진전에 따라서 평화 협상이 시작되고, 종국에는 비핵화의 완성과 동시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게 될 것이다. 그런 과정으로 나아가는 것이 미국이 취해야 할 상응하는 조치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상응 조치는 곧 종전 선언을 말한다. 지난 9월 19일 발표한 제3차 남북 정상회담 ‘평양 공동선언’에서 “북측은 미국이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 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 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했다”는 합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같은 날 워싱턴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 감사에서 조윤제 주미대사는 “미국 측에서도 비핵화 과정의 제재 국면에서 종전 선언을 하나의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있으며, 종전 선언이 정치적 선언으로 법적 효과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상당히 열린 입장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 몸값 치솟은 종전 선언… 미국의 ‘골대 옮기기’

문제는 한국 정부 그리고 궁극적으로 북한의 입장과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종전 선언의 몸값을 지나치게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핵 및 미사일 실험 발사 중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미군 유해 송환 등 진정성 있는 신뢰 조치를 취했고 이에 대해 미국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실제 (트럼프 본인의 반복된 발언처럼) 한미 군사훈련 중단 이외에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북한의 유일한 핵실험장 폐쇄 등은 이른바 불가역적인 조치인 데 반해 군사훈련 등은 당장 내일이라도 재개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 때문에 북한은 상호 간 신뢰 조치에 등가성이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 선언이자 법적인 부담도 없는 종전 선언조차 합의하지 않는다면 미국을 도저히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종전 선언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이 우세했다. 6월 1일 트럼프는 김정은의 (엄청나게 큰) 친서를 들고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면담 직후 기자들에게 “우리는 한국전쟁의 종료에 대해 얘기했다. 한국전 종전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는 게 믿어지나? 대략 70년이나 걸렸다”고 말했다.

이어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두 정상은 구두 약속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8월 29일 미국 인터넷 매체 <복스>에 따르면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곧 한국전쟁 종전 선언에 서명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실제 트럼프는 김정은과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평화협정도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오늘 우리가 서명한 것에는 많은 것이 포함돼 있다서명 후 합의한 것들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답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트럼프 행정부에서 종전 선언의 몸값을 올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른바 미국의 ‘골대 옮기기’다.

<복스>는 특히 존 볼턴 백악관 NSC 보좌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장관을 지목한다. 이들의 반대로 종전 선언이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달리 볼턴과 매티스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신뢰할 수 없고, 종전 선언 뒤 북한은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할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에 주한 미군 주둔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해왔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북한이 분노한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첫 후속 협상이었던 7월 6~7일 폼페이오 국무장관 방북 직후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즉각 발표한다. 미국을 강력히 성토하는 내용이었다. 미국이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며 “이미 합의된 종전 선언 문제까지 이러저러한 조건과 구실을 대면서 멀리 뒤로 미루어놓으려는 입장을 취하였다종전 선언은) 북미 수뇌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더 열의를 보였던 문제”라는 주장이었다. 김정은이 트럼프의 ‘종전 선언 서명’ 구두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배신을 당했다는 의미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비난 와중에도 북한은 트럼프를 ‘제외한’ 주변 관료들을 비난했다는 점이다. 외무성은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아직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며 우호적인 입장을 드러내는 걸 잊지 않았다. 공개 서한 하나로 정상회담마저 취소하려고 했던 트럼프의 성격과 기질을 매우 잘 알고 있다는 의미다.)

# 사실 새롭지 않은 종전 선언… 부시도 말했다

종전 선언은 대북 강경파로 분류됐던 공화당 소속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10여 년 전 언급한 내용이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명명하고, 북한과 직접 마주 앉는 양자 회담은 결코 하지 않겠다며 6자 회담을 밀어붙인 그였다.

하지만 두 번째 임기 한가운데 있던 2006년 중간선거에서 완패(민주당이 상·하원 장악)한 뒤 부시는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다. 북한에 대한 유화 노선으로 방향을 틀면서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까지 언급한 ‘사건’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2006년 11월 18일 하노이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부시는 당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종전 선언과 평화조약을 체결할 용의가 있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다음 해에도 마찬가지였다. 2007년 9월 7일 시드니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다시 열렸고, 부시는 회담에서 “한국전쟁을 종결해야 한다. 김정일과 평화협정 체결도 가능하다. 그런데 먼저 검증 가능하게 핵 프로그램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비핵화에 방점이 찍힌 발언이었지만 상당히 진전된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0월 2일 논평을 통해 “조미(북미)가조미 공동성명에 따라 새로운 관계 수립을 지향해나가는 때에 조미 사이의 교전 관계에 종지부를 찍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미국이 종전을 바라지 않는다면 우리도 구태여 이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국을 압박한 바 있다. 이후 폼페이오의 4차 방북(10월 7일)은 성공적인 회담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낙관은 이르다. 언제든 종전 선언의 몸값을 올리려는 미국과 최대한 버티려는 북한의 이해관계가 늘 불씨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남북이 합의한 대로 종전 선언이 올해 안에 이루어진다면 남북 관계 그리고 북미 관계에서 65년 만에 새로운 이정표가 생기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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