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의 심리학

우리는 왜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낙인찍는가.

2018년 2월, 회사원 K 씨가 자신의 방에서 목매 숨져 있는 것을 K 씨의 부모가 발견했다. 지리멸렬한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경찰은 외부 침입 흔적이 없는 점, K 씨의 필체와 일치하는 유서가 발견된 점, 회사에서는 조용하지만 성실한 직원이었다는 주변 지인들의 진술 등을 고려해 단순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할 방침이었다. 그런데 경찰에 익명의 제보가 날아들었다. K 씨가 회사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자살일까, 타살일까?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13년째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2016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 25.6명. OECD 평균인 12.1명의 2배에 달한다.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는 2022년까지 자살 사망자 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자살 예방 국가 행동 계획을 추진 중이다. 그중 하나가 심리 부검이다. 심리 부검이란 자살자의 사망 전 심리 행동 양상과 변화를 검토하여 자살의 구체적 원인을 검증하는 방법을 말한다. 심리 부검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심리학자 에드윈 슈나이드먼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는 법의학자 문국진 교수가 소개했다. 세계적으로 195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한 심리 부검을 국내에서는 2009년경 처음 시도했다. 이후 2014년 4월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심리 부검센터를 정식 개소하며 현재까지 관련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는 중이다. 그런데 어떻게, 왜 죽은 자의 심리를 파헤친다는 것일까?

앞서 단순 자살로 마무리될 뻔한 K 씨 사건은 익명의 제보를 통해 새 국면을 맞았다. 집단 괴롭힘의 유무와 사건의 연관성, 자살 예측 가능성과 회사의 대처 등 여러 면에서 보강 수사가 이뤄져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K 씨 사건은 공식적인 심리 부검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심리 부검은 크게 세 가지 목적으로 실시한다. 첫째는 법의학적 목적에 따라 변사 사건 발생 시 자살 혹은 타살 여부를 가려내기 위해서다. K 씨 사건이 이에 가깝다. 둘째는 정신보건학적 목적이다. 자살자들의 동기 파악뿐 아니라 경제 상황, 고용 및 혼인 상태, 질병 유무, 자살 방법, 장소·지역별 특성 등을 분석해 근거 기반 자살 예방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다. 현재 정부가 자살 예방 국가 행동의 일환으로 지난 5년간 발생한 자살 사망자 7만 명을 전수 조사하려는 계획이 좋은 예다. 복지부 관계자는 자살 사망자 전수 조사 계획을 알리며 “핀란드는 심리 부검을 대대적으로 실시해 국가 자살 예방 전략을 만들어 시행한 결과 14년 만에 자살률이 절반가량 낮아졌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심리 부검의 또 다른 목적은 살아 있는 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본디 자살로 인한 피해는 자살 당사자 한 명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살자와 직간접적으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던 가족과 친구, 지인들의 정신 건강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자살과 심리 부검에 대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자살 시도를 예측하는 주요 변인 가운데 하나가 자살에 대한 간접경험이다. 가까운 관계 중에 자살(시도)자가 있거나 ‘자살 가족력’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향후 자살을 시도할 확률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미 유명인의 자살 소식이 보도된 직후 모방 자살이나 동조 자살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음을,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가 실존함을 여러 차례 통계적으로 입증했다. 그렇기에 자살자의 지인들로부터 자살자에 대한 진술을 청취하는 한편 이들이 자살자를 향해 짊어진 죄책감을 내려놓도록 하는 것이 심리 부검의 또 다른 역할이다.

한국에는 한국형 심리 부검 체크리스트(Korea-Psychological Autopsy Checklist)가 있다. 중앙심리부검센터가 한국 실정에 맞는 심리 부검을 진행하기 위해 개발한 항목이다. 비밀 보장의 원칙상 면담 항목을 자세히 공개할 수는 없으나 자살 대상자에 대해 파악하는 대상자 영역(자살 행동과 사망 정보, 직업, 경제 상태, 군 생활, 가족 및 부부 관계, 연애 관계, 가족 외 대인 관계, 가족력, 성격 및 스트레스 관리 등)과 유가족 영역(유가족의 반응과 대처, 유가족의 심리 정서 상태 등)으로 나뉜다. K 씨 사건 역시 죽음 전 행동이나 습관 변화가 있었는지, 사망 1년 전 정신적 충격이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건이 있었는지, 정신 의료적 조치를 받은 적이 있었는지 등 세밀하게 심리 부검을 진행했다. 이러한 심리 부검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유가족 그리고 지인들의 도움이다. 그러나 유가족이 고인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주저하거나 숨기기 급급한 경우가 적지 않다. 자살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부정적 인식 때문이다. 대중은 악질적인 범죄자에 의한, 소위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피해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분노한다. 반면 자살 사건에 대해서는 그 죽음의 종류가 ‘떳떳하지 못한 것’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자살자는 기본적으로 나약한 사람이라고, 힘든 상황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부족했으며 자신만 힘든 것도 아닌데 유달리 과잉적으로 대처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자살의 실질적인 주 위험 요인이자 많은 사람들이 자살자에 대해 그럴 것이라 치부하는 문제가 있다. 바로 정신장애다.

정신장애는 심리학적으로 사람들이 자살자를 ‘그들’이라 치부하고 나머지를 ‘우리’라고 선 긋는 데 적절한 근거가 된다. 사회심리학자 헨리 타즈펠은 일찍이 사회 정체성 이론을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하는지, 그리고 내집단과 외집단에 대해 어떤 태도를 형성하는지 설명했다. 사회 정체성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내집단을 선호하고 외집단을 배척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자살자를 정신장애자로 규정하는 순간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마음속 경계가 만들어지고 자살자는 곧 외집단이 되어 자연스레 배척하게 되는 것이다. 자살자는 정신장애자일 것이라는 편견이 우리와 그들로 나누는 근거가 되고, 이는 곧 자살자와 유가족의 설 자리를 없애는 주요 원인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왜 수많은 자살자가 정신장애 병력이 있는지, 그들은 왜 정신적으로 아플 수밖에 없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것이 심리 부검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K 씨의 심리 부검 결과는 실로 처참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K 씨는 사망 전 반복적으로 심각한 수준의 스트레스를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남성인 K 씨의 평소 습관인 얌전한 말투와 행동에 대한 비아냥은 집요하고 지속적이었다. 심지어 몇몇 직원들은 K 씨를 ‘계집애’라 호칭했다. 더구나 믿었던 사람에게 비밀 보장을 약속하고 성 정체성에 대한 상담을 나눴는데 상대가 이를 타인에게 알린 사건은 K 씨에게 치명적이었다. 그는 크나큰 배신과 실망을 호소했다. 후에 K 씨가 누구도 아닌 자신을 죽인 이유, 자살의 직접적 근거 자료가 된 메모에는 심각한 수준의 고통과 심리적 위기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다들 미친놈이라고 하길래 정말 미친 게 어떤 건지 보여주고 싶다.” “진짜 죽일 거라고 말해도 그 모양이다.” “내가 없다면 더 이상 문제는 일어나지 않겠지.” 과연 자살의 큰 요인이라고 치부하는 정신장애는 누구의 탓일까?

또 하나, 사람들은 자살 사건을 ‘그들’의 문제로 인식하면서도 그들 ‘개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즉 은연중에 자살은 당사자 개인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는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근본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의 전형적 사례다. 근본 귀인 오류란 개인적, 사회적 사건의 원인을 추론하는 과정에서 상황의 힘은 무시하고 사건 당사자 개인의 성격적, 기질적 요인의 힘을 과대평가하려는 경향을 말한다(여기서 오류라는 표현은 어떤 사건이든 개인적 요인과 상황적 요인을 모두 고려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임에도 실제로는 두 요인이 동등하게 다뤄지지 못하기 때문에 사용된 것이다). 고인을 결국 자살에까지 이르게 한 여러 상황적 요인이 있을 텐데 사람들은 단지 개인의 문제로 취급하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몇 가지 가능성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첫째, 행위자-관찰자 편향(actor-observer bias)의 문제다. 만약 내가 자살 당사자라면 현재 스스로 어떤 상황과 한계에 노출되어 있는지 비교적 잘 알 것이다. 그러나 관찰자라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자살 행위자의 모습일 뿐 그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떤 상황에 노출되었는지 알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행위자와 관찰자는 사건에 대해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과 속성이 다르다(이를 ‘(정보) 비대칭 상황’이라고 한다). 불확실한 것, 애매한 것을 혐오하기에 어떻게든 원인을 가려내기는 해야겠고, 그러나 가진 것은 상황 정보 대신 개인의 내적 정보뿐이므로 결국 근본 귀인 오류를 저질러 자살을 단지 개인의 탓으로 귀결 짓는 것이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자살을 일종의 사회현상으로 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자살은 자살자가 속한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환경의 영향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오죽하면 자살을 가리켜 사회적 타살이라 하겠는가.

그렇다면 ‘상황 정보가 충분히 주어지면 자살 사건에 대한 근본 귀인 오류가 줄어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상황 정보에 대한 접근 가능성이 생겨도 그것을 잘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인간의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 속성 때문이다. 하나 이상의 그럴듯한 이유를 추론하려고 하는 행위는 지극히 합리적이다. 그러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 행위에는 그에 걸맞게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가 소모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은 고정관념, 편견, 어림셈 등 여러 가지 편법을 동원해 가능하면 정신적 에너지를 아끼는 방향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다(진화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정신적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전략이 결국 자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자살 사건을 둘러싼 여러 원인을 생각해내고 각각의 사안을 고려하기보다는 단순히 개인의 탓으로 간결하게 정리해버리는 편이 정신적 에너지를 절약하는 ‘합리적’ 방법이기에 사람들은 자살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만다.

그러나 K 씨의 심리 부검을 통해 보았듯이 자살은 비단 개인의 일이라 하기 어렵다. 1897년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자살을 일종의 사회현상으로 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자살은 자살자가 속한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환경의 영향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오죽하면 자살을 가리켜 사회적 타살이라 하겠는가. 심리 부검이 갖는 사회심리학적 함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적인 문제로만 치부될 수 있는 온갖 사회적 타살을 발굴하여 공론화하는 것, 그리하여 그러한 형태의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가해자를 엄벌하는 한편 자살 예방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될 수 있도록 기여하는 것. 사회 구성원인 우리가 심리 부검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실제로 심리 부검은 사회적 타살 여부에 대한 과학적 판별 도구가 될 수 있다. 자살 사건 관련 민사 및 형사 소송에서 상대 측의 법적 과실을 입증할 때 반영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심리 부검 전문가들의 소견이다. 가령 어느 직장인의 자살 원인을 추적해보니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가 주원인으로 판명 나고 사측의 근로기준법 미준수 사실이 드러난다면, 이는 사측에 법적 책임을 묻거나 유가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K 씨 자살 사건은 직장 내 집단 괴롭힘을 이유로 근로자가 자살한 것으로 판명되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게 됐다.

세상에는 아직 한을 풀지 못한 자살자가 많다. 자살자에 대한 속죄의 시간은 장례식장에서만 이뤄질 일이 아니다.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애도만으로는 부족하다. 학교와 직장 내 괴롭힘이나 따돌림, 상사의 폭언, 성범죄, 학대, 폭력, 착취 등의 문제가 심리 부검을 통해 드러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자살자 개인의 문제로 치부될 수 없다. 좁게는 피해자가 탈출구로 죽음을 택하게 만든 가해자들의 책임 문제가, 넓게는 그런 가해 행위가 버젓이 자행되도록 느슨하게 짜여 있는 사회구조를 바로잡아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할 일이다. 자살이 단지 정신이 나약한 개인의 일탈적 행위로 치부되고, 그리하여 자살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행위를 멈춘다면 우리는 사회적 타살의 가해자들을 단죄할 기회를 잃고 말 것이다. 과연 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인가? 심리 부검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다. 동시에 심리 부검을 향한 관심은 부당한 사회적 타살로부터 결국은 스스로를 지켜내는 소중한 방패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K 씨 자살 사건은 심리 부검 사례(2014 자살예방종합학술대회 발표 자료, 박지영)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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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허 용회(심리콘텐츠랩 마인드플레이팅 대표, 심리학 강사)
사진정 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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