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의 신화는 없었다

이명박 신화의 시작과 끝.

“눈이 쬐그만 게 간이 커 보이더니, 정말 대단한 친구야.” 시대를 풍미한 이명박 회고록 <신화는 없다>의 에피소드다. 1966년 당시 현대건설 경리 사원 이명박은 태국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폭도와 대치한다. 이명박은 칼을 든 폭도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금고를 지킨다. “무용담은 이내 신화로 증폭되었고, 나는 영웅이 되어갔다”고 이명박은 썼다. ‘신화는 없다’는 제목과 달리 자기 자랑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권좌에 오른 자 중에는 타고난 스토리텔러가 많다. 이명박도 그랬다. 그는 늘 어린 시절의 가난이나 위기 속의 한국 경제를 말했다. 한국은 최빈국에서 출발한 세계경제의 후발 주자였으므로 국제 정세의 흐름에 따라 늘 크고 작은 위기에 빠진다. 이명박은 이 상황을 스스로의 인생과 버무렸다. ‘(가난이나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성공한다’는 신화적 이야기를 만들었다. 사람은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이명박은 스스로가 만든 이야기의 주인이자 전도사였다. 신화는 없다고 말하는 신화의 작가이자 주인공이었다. 그 신화를 이용해 민주주의 최고의 승부인 대통령 선거에서까지 승리했다.

신화를 기업 활동 용어로 바꾸면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된다. 홍보나 마케팅은 물건이 더 잘 팔리게 하고 물건의 약점을 가리지만 근본적인 흠을 없앨 순 없다. 이명박은 도덕성을 비롯한 흠이 많았다. 화려한 스토리텔링도 이명박의 부정을 모두 가리지는 못했다. 홍보와 마케팅만 화려한 기업은 카페베네나 스베누처럼 쪼그라들거나 추락한다. 스토리텔러 이명박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명박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4월 9일 구속됐다.

이명박은 구속된 다음까지도 스토리텔러다운 메시지를 남겼다. 2670자 분량의 페이스북 게시물에서 사건을 ‘짜 맞추기’라는 쉬운 말로 규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와해’ 등의 시류를 반영하며 스스로를 ‘초법적인 신상털이’의 피해자로 묘사했다. 그런데 이제 이 말을 믿는 사람이 줄었다. 권력자의 가장 큰 특권은 금권도 인사권도 군사 통제권도 아니다. 자기 관점의 역사를 쓸 수 있는 힘, 자기가 주인공인 그 이야기를 퍼뜨리는 힘이다. 이명박은 결국 그 힘을 잃었다. ‘신화는 없다’던 스스로의 책 제목이 떠오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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