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래를 넘어서

한국 여성 래퍼들이 윤미래의 길로 가지 않아도 생존하거나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가끔 내가 쓴 책에 관한 피드백을 찾아본다. 누워서 네이버 검색창에 책 제목을 입력한다. 얼마 전에는 <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에 관한 피드백을 찾아봤다. 한국 래퍼 12명과 나의 대담을 모아놓은 책이다. 고마운 후기, 좋은 반응, 아쉬웠다는 리뷰 등을 차례로 읽다가 문득 어떤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한 블로거의 포스팅을 보다가 발견한 구절이었다.

이 책에 선정된 12명의 래퍼 중에 여성 래퍼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저자가 힙합에 정통할지는 몰라도 문화의 흐름에 무지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실이다. 이 책에는 여성 래퍼가 없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세운 명확한 기준에 의한 명확한 결과였다. 그리고 그 기준을 나는 이미 책 머리말에 밝혀놓았다. “12명의 래퍼를 선별하는 일은 차라리 고통이었지만 기준은 명확했다. 베테랑일 것. 부지런히 이 길을 걸어왔을 것. 자기만의 입장과 철학이 있을 것. 훗날 한국 힙합 역사에 기록될 성취를 가지고 있을 것. 무엇보다, 힙합을 ‘살아왔을’ 것.”

다시 봐도 명확하다. 이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한국 여성 래퍼가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여성 래퍼를 이 책에 담을 수 없었다. 저 블로거가 한국 힙합에 대해 더 잘 알았다거나 책 머리말을 꼼꼼히 읽었으면 아마 저 구절은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해는 말자. 그러니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아쉽지 않다는 뜻도 아니다. 책은 현실에 의거해 쓸 수밖에 없었지만 그 현실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또 그 현실이 올바르거나 정당한지에 관한 질문을 동시에 던져야 한다. 그래야 지성인이다. 그래야 상식인이다.

답은 간단하다. 힙합이 그동안 남자들의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재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여성이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없었던 환경 때문이다. 물론 환경이 개선된다고 해서 모든 여성 래퍼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많은 여성 래퍼가 더 훌륭한 성취를 거두며 더 견고한 계보를 형성할 것임은 틀림없다. 현실에 의거해 책을 쓰면서도 동시에 그 현실을 야기한 원인을 헤아려보던 순간은 아직도 오묘하고 찝찝하게 남아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윤미래는 꽤 오랫동안 홀로 반짝이는 별이었다. 윤미래는 한국 여성 래퍼의 대표였고 한국 여성 래퍼는 곧 윤미래와 동의어였다. 실력 역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아직도 다이나믹듀오의 멤버 개코의 말이 떠오른다. “여성 래퍼 중에서 최고가 아니라 남녀 통틀어서 그냥 최고인 것 같아요.” 결과물의 양이나 커리어의 지속성이 아쉽지만 않았다면 아마 나는 <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 집필을 위해 그에게 정중히 섭외 메일을 보냈을 것이다. 그는 내가 섭외를 고려한 유일한 여성 래퍼였다.

한국 여성 래퍼와 관련해 윤미래는 일종의 신화로 작용해왔다. 그의 실력은 어떤 여성 래퍼도 넘지 못한 것으로 인식됐다. 말하자면 윤미래는 후대 여성 래퍼들의 모델이자 벽이었다. 여성이 래퍼가 되고 싶다면 일단 윤미래의 랩을 카피해 연습해야 했고, 래퍼가 된 여성은 끊임없이 윤미래와 비교당했다. 게시판에 종종 올라오는 글이 그 좋은 예다. “에이, 윤미래한테는 못 미치잖아.” “윤미래를 뛰어넘는 여성 래퍼는 언제 나올까?” 물론 누군가는 윤미래의 음악을 직접 듣고 자기 주관으로 판단하는 대신 이미 형성된 명성과 소문에 의지해 윤미래의 신화를 퍼뜨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현상을 만들어낸 것도 어쩌면 윤미래의 힘이다. 어쨌든 윤미래는 한국 여성 래퍼를 통틀어 거의 유일하게 거대한 존재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윤미래 이후 등장한 여성 래퍼들은 어떠한 과정을 거치며 살아남거나 사라져갔을까. 카카오의 콘텐츠 마케터 안승배 씨는 한국 여성 래퍼들의 테크트리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 프리티 랩스타가 될 것인가, 언더그라운드 래퍼가 될 것인가. 먼저 프리티 랩스타의 길이다. 프리티 랩스타가 되기 위해선 걸 그룹 오디션을 준비해야 한다. 혹은 가수이면서 랩도 하는 포지션을 추구해야 한다. 이 길을 위해 필요한 것은 랩 트레이닝이다. 실용음악 학원에 가서 1세대 래퍼에게 수업을 받는다. 윤미래의 ‘검은 행복’으로 랩을 연습한다. 그 후 걸 그룹으로 데뷔해 활동하다가 솔로 기회를 얻는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랩 음원을 낸다. 랩 디스전을 체험하며 래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음은 언더그라운드 래퍼가 되는 길이다. 이 길을 택한 여성 래퍼는 걸 그룹 오디션 대신 언더그라운드 힙합 크루나 레이블의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입단 후에는 자신을 제외하면 모두 남성 래퍼인 환경에서 실력을 증명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때 이 여성 래퍼는 자신의 랩이 남성 래퍼들에게 뒤떨어지지 않음을 증명해야 하는 동시에 프리티 랩스타의 길을 선택한 여성 래퍼들과도 태도 면에서 차별화됨 역시 증명해야 한다. 고로 실력과 태도 양면에서 거칠고 센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어떨 땐 과도할 정도로.

두 길 다 한계가 있다. 그리고 어느 쪽으로 가나 윤미래가 구축해놓은 여성 래퍼의 조건과 기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쪽이든 여성 래퍼가 래퍼로서 자신을 증명하려면 윤미래의 영역으로 돌진해야 했다. 붐뱁 비트 위에서 누구보다 또렷한 발음으로 1990년대의 힙합스러운 빡빡한 랩 테크닉을 구사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길의 끝에는 윤미래가 있고 그를 뛰어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길에 들어선 순간 아무리 실력을 발휘해도 사람들은 그 여성 래퍼를 윤미래의 아류 정도로 여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윤미래는 여성 래퍼가 남성 래퍼보다 기술적으로 대등하거나 우위일 수 있음을 증명한 최초의 한국 여성 래퍼다. 그 때문에 윤미래의 길로 들어선 순간 윤미래는 물론이고 모든 한국 남성 래퍼와 비교당하는 운명에 놓이게 된다. ‘잘하긴 하는데 윤미래보다는 못하네.’ ‘잘하긴 하는데 그냥 그보다 더 잘하는 남성 래퍼의 랩을 듣겠어.’ 그리고 이를 극복한 여성 래퍼는 지금까지 없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양상이 바뀌고 있다. 윤미래를 뛰어넘은 여성 래퍼가 등장했다는 말이 아니다. 윤미래의 길로 가지 않으면서도 두각을 드러내거나 성공을 거두는 여성 래퍼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노파심에 말하자면 이는 선대 여성 래퍼들에 대한 폄하가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이야기에 가깝다. 이제 여성 래퍼가 굳이 윤미래의 길로 가지 않아도 생존하거나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뜻이다.

시대의 변화는 몇 가지가 맞물리며 진행됐다. 일단 랩을 평가하는 기준이 유연해졌다. 누구보다 또렷한 발음으로 남들보다 빡빡한 플로를 구사해야 진정한 랩이라는 인식이 옅어지는 대신 다양한 방법론이 랩 카테고리에 추가됐다. 싱잉 랩이나 멈블 랩의 안착이 대표적이다. 오토튠의 활용도 빼놓을 수 없다. 그 때문에 여성 래퍼들은 굳이 남성 래퍼들의 센 랩을 따라 할 필요가 없게 됐다. 릴 체리의 ‘Motorola’를 들어보자. 과거에 이 노래가 나왔다면 랩으로 분류되지도 않았다. 아니, 이런 스타일을 시도할 발상 자체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이니까 가능한 결과물이다.

랩을 평가하는 기준뿐 아니라 모든 것이 유연해졌다. 대표적인 것이 패션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정해져 있는 힙합 룩이 있었다. 물론 시대별로 배기진이 유행할 때도 있었고 스키니진이 유행할 때도 있었지만 한 시기를 특정하는 패션 스타일이 존재했다. 그리고 여성 래퍼 역시 그 룰을 따라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룰과 상관없이 저마다 입고 싶은 대로 입는다. 여성 래퍼 역시 입고 싶은 대로 입는다. 재키와이는 재키와이대로 입고 스월비는 스월비대로 입는다. 둘 다 예전에는 래퍼로서 용인될 수 없었던 패션임은 마찬가지다.

페미니즘의 부상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물론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와 해석은 각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의 흐름이 여성 래퍼들을 더 편안하게 만들어준 것은 분명하다. 재키와이의 성공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이돌이 아닌 여성 래퍼가 이 정도로 반응을 이끌어냈다는 데에 의미가 있는 걸까. 그보다는 여성이 자기가 가진 것을 자연스럽게 무기로 활용하면서 성공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여성 래퍼’가 아니라 ‘래퍼’로 자리매김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Anarchy’에서 재키와이가 말한다. “뭘 나눠 이분법에. 난 인간. 창녀도 성녀도 아니네.”

일본의 여성 래퍼 엘르 테레사 역시 비슷하게 조명해볼 수 있다. 일본 여성 래퍼에 관한 관점을 바꾸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바이스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의 여성 래퍼들이 ‘헤이 요!’를 외치거나 ‘널 망치겠어!’라고 할 때마다 의문이 든다. 우리에게 정말 그런 구절이 필요할까? 나는 그냥 여성이면 안 될까? 내가 가진 여성성을 무기로 활용하면서.” 그의 또 다른 말도 인상적이다. “나는 귀엽지도 않고 섹시하지도 않다. 난 그냥 멋질(cool) 뿐이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계속 이렇게 말하고 다닌다면 사람들도 날 단지 멋진 래퍼로 봐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재능이나 취향 문제가 아니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새로운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이제 여성 래퍼들은 억지로 센 척하다가 역풍을 맞지 않아도 되고 윤미래를 기술적으로 뛰어넘을 필요도 없다. 대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문화를 음악에 투영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패션을 입으면 된다. 이제 여성 래퍼들은 자기를 유지하며 힙합을 할 수 있다. 자기를 유지하며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윤미래가 아이콘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윤미래는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새 시대가 왔다. 윤미래도 내심 기쁘지 않으려나. 한국 여성 래퍼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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