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암투, 누가 조작하는가

현재 국제 유가 시장은 유가를 상승시키려는 이와 하락시키려는 이의 수 싸움이 치열하다.

그리 큰 관심은 받지 못했지만 2018년 한 해 동안 국제 유가의 흐름은 매우 드라마틱했다. 유가의 본격 상승은 2017년 여름부터 시작됐다. 당시 배럴당 40달러(WTI 기준)였던 국제 유가가 추세적 상승을 이어갔는데 2018년 10월 초 무려 76달러까지 치솟았다. 약 1년여 만에 40% 넘게 급등한 것이다.

기름값이 이렇게 상승을 지속한 건 사우디아라비아를 리더로 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의 힘이었다. 원유 공급량을 대폭 줄이고 앞으로도 계속 줄일 것이란 입장을 내비치면서 유가는 오르고 또 올랐다.

그런데 승승장구하던 국제 유가가 이번에는 느닷없이 대폭락했다. 지난 10월 첫째 주 배럴당 76달러(WTI 기준)였던 것이 이후 방향을 바꿔 11월 28일 배럴당 50달러까지 떨어졌다. 채 두 달도 안 돼 이번에는 30% 넘게 급락한 것이다.

이 정도 하락 폭은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지만 짧은 기간을 감안하면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지구 어디쯤에서 초대형 유전이라도 발굴돼야 가능한 단기 급락이었다. 도대체 이 짧은 기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번 유가 폭락은 앞으로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까. 그리고 2019년 한 해 동안 기름값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까.

시작은 카슈끄지의 죽음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난 10~11월에 나타난 국제 유가 폭락은 워낙 단기간에 진행돼 그 자체로만 보면 무슨 대이변이 일어나야만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이 기간 동안 겉으로는 무엇 하나 잘못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운 것도 같다. 이야기는 꽤 복잡한데, 미국에 거주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죽음에서 출발한다.

2018년 10월 2일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는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 들어간 뒤 행방불명됐다(이혼 증명서를 받으러 영사관에 갔다는 후문이다). 분명 영사관으로 들어간 영상은 있는데 나오는 모습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어 며칠 후 터키 정부는 ‘카슈끄지가 살해됐다’는 뉘앙스의 보도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카더라’ 통신인 것처럼 보였지만 점점 정론지들이 카슈끄지 살해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그렇다면 누가 그를 죽였는가.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라는 의혹이었다. 이후 속속 쏟아져 나온 수많은 기사와 증거는 살해 사건의 배후에 빈 살만 왕세자가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카슈끄지 가문은 중동의 대부호 집안이다. 터키에서 터전을 닦은 후 사우디아라비아로 옮겨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세계적 명문가로 성장했다. 우리에게는 무기 중개상 아드난 카슈끄지(자말 카슈끄지의 삼촌)가 익숙한데 로비스트 린다 김이 그 밑에서 무기 중개 일을 배운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번에 사망한 자말 카슈끄지는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는데 유독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관련 비판 기사를 자주 썼다. 특히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면서 집권한 빈 살만 왕세자에 대한 노골적인 기사로 유명했다. 결국 앞뒤 맥락을 살펴보면 빈 살만이 살해를 지시할 충분한 개연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터키 정부의 태도다. 터키 정부는 이번 보도에 너무나 필사적이었다. 이런 ‘열의’를 보이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터키는 그간 러시아-이란-터키 연합이라는 이유로 미국으로부터 혹독한 경제 제재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터키 경제는 무너졌고 통화인 리라화는 1년 만에 가치가 반 토막이 났다. 이런 가운데 터키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쾌’를 잡은 거다. 터키는 이 사건을 전 세계에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우회적으로 미국에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이여!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언론인을 잔인하게 살해했는데,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트럼프는 유가가 더 떨어지길 원한다

러시아-이란-터키가 한편이라면 반대편에는 미국-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연대가 포진해 있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기독교 국가인 미국과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친구 이상의 관계다. 실제로 미국 입장에서는 중동 화약고 속에도 사우디아라비아라는 확실한 우군이 있기에 수십 년간 편하게 중동 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민간 언론인 살해 배후에 사우디아라비아 최고 지도자가 있다는 게 확인됐다. 인권을 그 어떤 것보다 중요시하는 미국으로서는 굉장히 당황스러운 사건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어떻게 해서든 이번 사건을 흐지부지하게 만들어 덮을 것이다. 지금까지 사례를 봐도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최대한 혜택을 베풀어왔다.

자, 그런데 트럼프가 누군가. 트럼프는 역시 이번에도 본성을 버리지 못했다. 그에게 무조건적인 양보는 없다. 뭔가 베풀었다면 그만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는 트럼프 입장에서 반드시 챙겨야 할 보상이 있었다. 바로 국제 유가 하락이다.

트럼프는 우선 다양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자말 카슈끄지 암살에 대해)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에 대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가혹한 형벌을 줄 겁니다”라고. 그러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트위터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에 이렇게 운을 뗐다. “사우디아라비아와 OPEC는 감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건 내가 원하는 일이죠. 국제 유가는 앞으로 훨씬 더 떨어져야 합니다.”

그렇다. 트럼프는 지금 국제 유가가 오르는 것이 아주아주 불만이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경기 부양이 필사적이고 경제 활황이 자신의 유일한 업적인데 유가가 계속 오르면 경기에 찬물을 끼얹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유가가 오르는 것을 막으려 한다. 가령 최근 이란 경제 제재를 통해서도 이런 트럼프의 의중을 읽을 수 있다.

미국 스스로 핵 협상을 탈퇴하면서까지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다시 시작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이란 원유 수입국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예외를 두었다(한국도 ‘예외 국가’에 속해 이란산 원유를 계속 수입할 수 있다). 왜일까. 이란을 혼내주고 싶지만 그렇다고 유가가 오르는 건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트럼프는 정말 좋은 ‘딜’을 잡은 것이다. 국제 유가를 쥐락펴락하는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뒷덜미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OPEC를 이끌며 2017년부터 파격적인 감산을 통해 유가를 끌어올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빈 살만 왕세자의 살해 사주 의혹을 덮어주는 대가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석유를 감산하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압박을 시작한 것이다.

실제 효과는 엄청났다. 트럼프가 트윗을 통해 국제 유가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유가는 3%, 5%, 7%씩 급락했다. 지난 11월 21일에는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유가 하락이 계속되고 있다. 훌륭하다. 땡큐 사우디아라비아! (유가를) 더 낮추자!”

국제 유가는 결국 금리와 만난다 

그런데 우린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트럼프의 또 다른 포석을 읽어야 한다. 바로 금리 인상을 저지하려는 의도다. 그간 트럼프는 금리를 올리려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에 대해 “연준이 미쳤다”라는 노골적인 멘트를 사용했다.

현시점에서 금리 인상은 경기를 억누를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트럼프는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그간 온갖 추문과 기행에도 불구하고 이루어낸 40%대 지지율 확보는 주가 상승과 부동산 활황에 기인한다. 그런데 금리가 계속 오르면 주가도 집값도 경기도 모두 하락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를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커질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현재 연준의 금리 인상 정책을 막을 방법은 무엇인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제 유가 폭락을 통해 물가를 떨어뜨리는 방법이다. 이렇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사라지고 연준 입장에서는 금리 인상 명분을 잃게 된다. 2015~2016년 연준이 금리 인상을 못했던 것도 인플레가 나오지 않아서였다. 트럼프는 여기까지 내다본 것이고 사우디아라비아를 압박해 감산을 막아내고 단기간 국제 유가를 폭락시킨 것이다. 그리고 향후 수년간 저유가 시대를 이어갈 계획도 갖고 있을 것 같다. 

그럼 이제 모든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된 것인가. 세계경제는 당분간 다시 저유가 세상을 만날 수 있는가. 이런 저유가 속에 물가는 떨어지고 결국 금리 인상 시기도 늦춰지면서 또 한 번 주식과 부동산에서 머니 게임을 할 수 있게 될까. 하지만 마지막 퍼즐이 남아 있다.

이 대목에서 새롭게 등장한 선수는 바로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국가 예산의 70~80% 정도를 원유를 팔아 조달한다. 그래서 2016년 국제 유가가 배럴당 20~30달러대로 폭락했을 때 나라가 망하기 직전까지 간 것이다. 현재 러시아는 원유 감산에 필사적이다. 유가가 더 떨어지면 철권통치 푸틴 대통령도 러시아 국민의 반발을 감당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 상황이 참 묘하게 돌아간 게 국가적으로는 러시아-이란-터키가 한편이지만 개인적으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빈 살만 왕세자와 돈독한 관계라는 사실이다(마초끼리는 서로 통한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서는 트럼프의 압박이 신경 쓰이지만 다른 한편에서 ‘무조건 감산해야 한다’는 푸틴의 요구도 거부할 수 없는 거다. 이뿐만이 아니다. 빈 살만 왕세자 입장에서도 정권 유지를 위해 막대한 정치 비용을 조달하려면 유가 상승이 꼭 필요하다. 그렇게 공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과연 사우디아라비아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무함마드 빈 살만은 결국 트럼프가 아니라 푸틴을 선택했다. 지난 12월 6일 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10개 비회원 산유국으로 구성된 일명 OPEC+는 일일 120만 배럴의 감산을 전격 결정한다. 당연히 트럼프는 광분했다. 아직 사우디아라비아에 어떤 카드를 꺼내 들지는 않았지만 미국 셰일업계를 독려하면서 다시 한번 셰일 오일의 대규모 공급을 통해 국제 유가를 떨어뜨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2019년 1월의 주제로 그간 숨 가쁘게 이어온 ‘국제 유가 폭락의 이면’을 선택한 건 단순히 기름값이 아닌 그 이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령 미중 무역 전쟁을 통해 안 그래도 조금씩 힘들어하는 미국이 점점 고립무원이 되어간다는 것도 읽을 수 있다. 물론 이스라엘과 국제 유대 자본이라는 든든한 우군이 있지만 만약 중국과 러시아, 여기에 이란이 합류하고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적극적으로 미국 편을 들지 않는다면 국제 정세는 순간 거센 격랑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무엇보다 지금 유럽은 우리가 알던 유럽이 아니다. 영국은 브렉시트로 정신이 없고 프랑스는 ‘노란 조끼’ 시위에 얼이 빠져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유로존을 탈퇴한다는 이야기가 계속 들리고 독일과 스페인에서는 본격적으로 극우 세력이 득세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지금 다 ‘내 코가 석 자’라는 이야기다. 이런 시점에서 유가 상승은 트럼프의 입지 약화와 연준의 금리 인상을 이끌어내면서 미국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

필자 역시 불과 한 달여 만에 억지로 만든 저유가 시대가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2019년 상반기는 어떻게 해서든 유가를 누를 것이다. 하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유가 상승은 점점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어쩌면 이번 유가 상승이 석유 시대의 마지막을 고할 것이라고 본다. 늘 말하지만 전기차는 기름값이 쌀 때가 아니라 비쌀 때 대중화가 되는 법이다. 그 시작이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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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진(경제 칼럼니스트)
일러스트최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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