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국산 위스키

반세기 동안 치열한 경쟁을 통해 고도성장한 국산 위스키 시장이 낭떠러지 앞에 섰다.

19세기 후반 조선에 물밀듯이 들어온 서양 문물 틈에 위스키가 있었다. 알코올 도수가 40도를 넘는 이 독주를 조선인들은 스스럼없이 대했다. 조선인들 또한 평소 40도에 육박하는 증류주를 즐겨 마셨기 때문이다. 조선인에게 위스키는 독특한 향내를 지닌 흥미로운 이국의 술로 다가왔다. 1893년 조선을 찾은 영국인 지리학자 이저벨라 버드 비숍이 펴낸 기행문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에는 당시의 시대상이 잘 드러나 있다. 고종황제, 명성황후를 알현하고 조선 각지를 훑은 그녀는 조선인들의 남다른 술 사랑과 관대한 음주 문화를 소개하며 “양주 사랑이 젊은 양반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비슷한 시기에 찍힌 사진 한 장이 그녀의 문장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한 양반이 흙바닥에 멍석을 깔고 앉아 개다리소반에 양주병을 올려놓고 술을 마시는 사진이다. 하지만 양반들의 못 말리는 양주 사랑은 주권을 잃는 등 국세가 한없이 기울며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또 광복 후에는 정부가 아예 수입 주류의 반입을 금지하며 톡 쏘는 위스키 맛은 혀끝에서 점점 더 희미해졌다.

한동안 잊혔던 위스키는 뜻밖의 경로로 다시 흘러들었다. 6·25전쟁 후 미군 부대에 납품된 위스키를 구하기 위해 사람들은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미군 부대에 납품된 위스키 목록에는 산토리의 창업주 도리이 신지로의 이름을 딴 일본 위스키 도리스(Torys)도 있었다. 사람들이 미군이 밀수한 위스키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광경을 본 한 사업가는 부산에 양조장을 짓고 유사한 이름의 위스키 도리스(Doris)를 제조하기에 이르렀다. 국내에서 생산한 도리스 위스키는 1959년 상표 도용 문제가 수면에 오르고 이듬해 대표가 구속되며 급하게 도라지(Torage)로 개명했다. 그렇다. 낭만가객 최백호의 대표곡 <낭만에 대하여> 가사에 등장하는 도라지 위스키가 바로 이것이다. 1960년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위티’가 유행했다. 식품위생법상 술을 팔지 못하던 다방이 개발한 이 메뉴는 ‘위스키 티’를 줄인 말로 홍차에 위스키 두어 방울을 떨어뜨려 마시는 음료를 뜻했다. 당시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이들은 도라지 위스키를 떨어뜨린 홍차를 마시며 취기를 즐겼다. 급조하여 지은 티가 역력한 도라지 위스키에는 도라지만 들어 있지 않은 게 아니었다. 위스키는 한 방울도 들어 있지 않았다. 이는 소주에 위스키 향과 색을 첨가한 유사 위스키였다.

진짜 위스키를 갈구하는 아우성이 점차 커지자 1970년대 정부는 위스키 원액을 수입하도록 허가했다. 비로소 진짜 위스키 원액이 섞인 술이 국내에 등장했다. 1976년 백화양조와 진로가 나란히 출시한 죠지 드레이크와 JR 위스키는 공교롭게도 원액의 함유율이 19.9%로 동일했다. 이는 당시 주세법상 원액의 함유율이 20% 이상이어야 위스키로 인정했는데, 위스키로 분류되는 순간 세율이 훌쩍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세금 폭탄을 피하기 위해 주세법상 기타 주류에 속하는 쪽을 선택한 이들 회사가 그 술을 대놓고 위스키라고 홍보하자 정부는 거금의 벌금을 매기고 원액 함유율을 20%에서 25%, 25%에서 30%로 순차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정부의 정책 변화에 따라 국산 위스키는 원액 함유율을 높이며 계속 새로운 제품을 내놨다. 백화양조의 베리나인, 진로의 길벗, 해태의 드슈가 원액 함유율 25% 시대를 열었고, 그후 함유율을 높이면서 이름에 ‘로얄’, ‘골드’ 등의 수식어를 붙이며 진화했다. 원액 함유율에 숙성 기간을 뜻하는 ‘연산’의 개념이 결합하며 국내 위스키 시장은 단군 이래 유례없는 성장 가도를 달렸다.

1980년대 들어 위스키 시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위스키 원액을 100% 함유한 순수한 위스키 제품을 출시하는가 하면 토종 위스키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원액 함유율이 껑충 높아진 데다 갑작스레 위스키 원액을 자체 개발하고 나선 이유는 88서울올림픽을 목전에 뒀기 때문이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개최하며 일본의 위스키 시장이 급성장하고 팽창하는 과정을 목도한 전문가들은 고급 위스키를 개발하는 한편 토종 위스키 개발에 착수했다. 1982년에 시작된 토종 위스키 개발 사업은 숙성 과정이 필요한 위스키의 숙명에 따라 1987년에야 결실을 맺었다. 진로의 다크호스와 백화양조를 인수한 오비씨그램의 디프로매트가 바로 그것이었다. 수백억원을 쏟아부은 이 사업의 결실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기대와 달리 싸늘했다. 원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고 숙성 과정에서 위스키가 대량 증발하며 토종 위스키의 가격이 높게 책정된 까닭이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가 숙성 과정을 거치며 증발하는 비율이 연간 2%라면 국내에서는 5%로 배 이상 높았다. 진로와 오비씨그램은 1990년까지 위스키 원액을 1만 배럴가량 증류한 후 사업을 접어야 했다.

1991년 주류 수입이 완전히 허용되며 국산 위스키는 위기를 맞았다. 시바스 리갈, 올드파, 조니 워커, 발렌타인 등 세계적 명성의 위스키가 쏟아져 들어오며 국내 위스키 시장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띠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원액이 100% 함유된 위스키의 등장에 열광하던 사람들이 순수 위스키의 연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6년 숙성한 위스키가 대세였던 시장에 12년산 위스키 임페리얼 클래식이 등장했다. 임페리얼 클래식을 제조한 진로는 위스키 용량을 720ml에서 500ml로 조정하여 타사의 6년산 위스키와 가격을 얼추 맞추며 가격 저항 없이 시장에 안착했다. 사람들은 기존 가격으로 12년산 위스키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에 열광했고 임페리얼 클래식은 곧 시장을 평정했다. 뒤늦게 오비씨그램이 윈저 12를 내놨으나, 임페리얼 클래식은 부동의 1위를 이어갔다. 한편 진로가 임페리얼 15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접한 오비씨그램은 윈저 17을 출시하며 반격에 나선 끝에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임페리얼과 윈저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연산을 쌓아가며 국산 위스키의 고급화를 이끌었다.

반세기 동안 꾸준히 성장해온 국내 위스키 시장은 2008년 정점을 찍은 후 내리막을 걸었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가 가장 주된 원인이었다. 사람들은 밖에서 거나하게 먹고 마시기보다 집에서 조촐하게 마시는 쪽을 선호했다. 음주 문화가 간소해진 것은 세계적 현상이기도 했다. 건강을 생각하는 웰빙 바람을 타고 맥주가 전 세계 주류 시장을 평정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국산 위스키 시장이 급속도로 위축된 데는 꼭 경기 침체나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을 추구하는 경향 등 외부적 요인만 영향을 미친 건 아니었다. 국산 위스키 시장을 이끈 오비씨그램과 진로는 각각 2001년 디아지오, 2006년 페르노리카 코리아에 합병됐다. 그 결과 국산 위스키의 운명은 한순간 외국계 기업에 의해 좌우되기에 이르렀다. 다국적 기업 입장에서 국산 위스키 시장의 규모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들에게는 한국 실정에 맞는 위스키를 개발하는 일보다 자신들이 보유한 여러 선택지 중 우리 기호에 맞는 것을 골라 판매하는 일이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터. 원액의 함유율을 높이고 연산을 쌓으며 그 어느 분야보다 치열하게 성장해온 국산 위스키 시장이 비로소 주춤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국내 위스키 시장을 장악한 외국계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하기보다 당장의 판매에 더 주력한 게 사실입니다. 소비 트렌드가 변화하는 속도에 맞춰 빠르게 제품을 개발하거나 마케팅 활동에 변화를 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보니 국산 위스키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골든블루 마케팅팀 박희준 본부장의 말이다. 2009년 국내 최초로 저도수의 위스키를 출시하며 등장한 골든블루는 윈저와 임페리얼의 양강 구도를 깨며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국내 주류업계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이종기 세계술문화박물관 관장은 이맘때쯤 “주류는 그 술이 소비되는 사회의 문화를 반영한다”며 “문화적 뿌리를 가꾸지 않고 이익만 탐하는 태도로는 시장의 성장을 지속시킬 수 없다”고 자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한편 골든블루가 36.5도의 저도수 위스키를 내놓자 국내 위스키 주조사들의 관심은 높은 연산에서 낮은 도수로 옮겨갔다. 임페리얼과 윈저는 각각 저도수 위스키 35 바이 임페리얼과 더 스무스 바이 임페리얼, W 아이스와 W 시그니처를 출시하며 시장의 흐름에 편승했다. 또 지난해에는 하이트진로가 국내 최저 도수의 위스키 더클래스 1933과 더클래스 33을 선보이기도 했다. “소비 트렌드가 전반적으로 소프트한 제품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소주조차 25도에서 20도, 19도, 17도로 알코올 도수가 점차 낮아지는 현상을 보며 위스키 또한 웰빙 붐 등의 영향으로 저도주가 새로운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스트레이트로 즐기더라도 부드럽게 넘어가는, 독하지 않은 위스키를 원한다는 사실은 저희가 소비자 조사를 통해 도출해낸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박 본부장이 골든블루가 저도 위스키를 출시한 배경을 설명했다.

일본 위스키 시장도 불황을 비켜 가지 못했다. 20년 가까이 침체기를 겪은 일본 위스키 시장은 위스키에 소다수를 섞어 알코올 도수와 향을 사케 정도로 낮추는 하이볼을 새로운 음용법으로 선보이며 위기를 기회로 돌려세웠다. 일본은 하이볼을 개발하기에 앞서 미즈와리, 오유와리 등 위스키를 차게 혹은 따뜻하게 희석해 마시는 문화를 일궈내기도 했다. 또한 위스키가 일식과도 잘 어울린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해외 시장과 함께 국내 일반 소비자들을 공략하기에 이르렀다. 그 덕에 우리의 국산 위스키 대부분이 업소에서 소비되는 것과 달리 일본은 바와 레스토랑은 물론 일반 가정집에서도 널리 소비된다. ‘국산 위스키의 9할이 업소에서 소비된다’고 운을 뗀 박 본부장은 1인 가구의 증가, 홈술·혼술 문화의 성장,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으로 술자리가 줄어든 대신 술 마시는 장소가 다양해졌다며, 유통 채널의 다각화에 힘써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업소에 납품하는 데 치중해온 국산 위스키는 경기 침체, 웰빙 바람에 김영란법까지 가세하며 유흥업이 위축되자 소비자와의 접점을 확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통감했다. 하지만 빗장 풀린 위스키 수입 시장에 싱글몰트 위스키의 열풍이 거세게 일며 국산 위스키가 가정집 찬장을 꿰차는 일은 더 요원해졌다.

국내 자본으로 운영한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는 골든블루는 국산 위스키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국내에서 증류, 숙성, 병입한 진정한 의미의 국산 위스키를 생산하는 길을 꼽는다. 5년 전에 전담 팀을 꾸린 골든블루는 타이완의 유명 싱글몰트 위스키 카발란과 독점 계약을 하기도 했다.

처음 카발란을 접하고 아열대기후인 타이완에서도 훌륭한 위스키를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카발란을 국내에 소개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는 위스키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선입견을 깨고 싶었습니다. 브랜드만 국산이 아닌, 원액까지 국산인 진정한 의미의 국산 위스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골든블루는 현재 증류소를 건립할 부지를 물색하는 중이다. 위스키 국산화 정책하에 호기롭게 위스키 원액 양조에 도전했던 1980년대에 한계점으로 도출된 문제들은 여전히 걸림돌로 남아 있다.

위스키 양조에 적합한 재료를 국내에서 구하기 힘들며 품질도 떨어진다. 또 숙성 과정에서 위스키가 자연적으로 증발하는 현상도 여름이 점차 길어지는 국내의 기후 변화를 고려했을 때 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그럼에도 골든블루는 아열대기후에서 세계적 품질의 위스키를 완성해낸 카발란을 통해 자체 증류 위스키의 가능성을 엿본 눈치다. 일본이 하이볼을 개발한 사례를 보며 우리는 그동안 부러워하며 질책하거나 자책하기 바빴다. 만약 우리만의 색깔과 개성을 살린 진정한 로컬 위스키가 등장한다면 국산 위스키 시장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터. 국내 위스키 시장의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해서라도 우리만의 위스키 혹은 위스키 문화를 갖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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