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EU 탈퇴, EU “갈 테면 가라” 영국의 앞날은?

영국이 EU를 탈퇴하기로 한 날짜가 다가오고 있다. 빈손으로 떠나게 될지, 극적인 타협이 이뤄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시험이 코앞인데 도저히 시험일 안에 시험 범위를 다 공부하지 못할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감이 코앞인데 도저히 마감일까지 원고를 다 쓰지 못할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험이라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으로 최악의 성적을 각오해야 할 것이고, 마감이라면 편집자에게 사정해 마감일을 연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데드라인에 쫓겨본 적이 있겠지만 그것이 국가 단위의 데드라인이라면 어떨까? 다름 아닌 브렉시트 얘기다.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 이후 브렉시트는 시사 상식 같은 얘기가 됐다. 2년 반이 넘는 기간 동안 브렉시트에 대한 다양한 기사가 나왔고, 영국과는 거리가 먼 한국에서도 브렉시트는 다소 지겹다 할 만한 국제 뉴스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 끝이 멀지 않았다. 올해 3월 29일이면 좋든 싫든 영국은 EU를 떠나야 한다. 아마 이 글이 지면에 실릴 때쯤이면 한 달도 안 남았을 것이다. 영국은 3월 29일까지 브렉시트 협상안을 가결시켜야 하고, 그때까지 협상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노딜 브렉시트, 즉 협상안 없이,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EU에서 나오게 된다.

원래 남의 집 불구경이 제일 재밌다고 했던가. 노딜 브렉시트가 되면 도대체 무슨 문제가 생기길래 모두가 노딜 브렉시트만은 피하고자 하는 걸까. 먼저 노딜 브렉시트가 무엇인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노딜 브렉시트는 영국이 2019년 3월 29일 이후 EU와 어떻게 관계를 이어갈지 아무런 협의 없이 EU에서 떠난다는 얘기다. 국경 검문이 부활할 것이고 영국과 EU 사이의 무역과 운송에 엄청난 영향이 있을 것이다. 테레사 메이 총리가 제안한 이행 기간 또한 없을 것이고, 영국인은 새로운 운전면허 허가 없이는 EU 국가에서 운전할 수 없을 것이다. 영국 일간신문 <인디펜던트>는 노딜 브렉시트가 영국의 경제를 1930년대의 대공황에 가깝게 망쳐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갑작스럽게 부활한 무역 장벽으로 식료품, 연료, 의약품이 즉각적인 공급 부족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최악의 경우 영국은 GDP의 9.3%를 잃고, 주택 가격이 30% 하락하고, 파운드 가치가 15% 정도 떨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관세가 부활하면서 생필품 가격도 대략 15% 정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영국에 있는 금융 회사들은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해 다른 EU 국가에 법인을 만들고 있다.

영국이 브렉시트라는 마감에 쫓기게 된 것은 얼마 전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의 브렉시트 협상안이 의회에서 부결됐기 때문이다. 애초 12월에 예정되어 있던 투표를 정치권 설득을 위해 연기하기까지 했고, 한때는 ‘노딜’이 ‘배드 딜’보다 낫다고 얘기했던 메이 총리는 결국 누구도 만족시키기 어려운 타협안, 바꿔 말해 어떤 면에서는 배드 딜을 들고 의회를 찾았다. 예상대로 의회는 메이 총리의 실낱같은 희망을 깨버렸다. 부결된 협상안 중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은 북아일랜드의 백스톱 조항이었다. 그동안 영국과 아일랜드는 둘 다 EU 가입국으로 큰 문제가 없었으나 영국이 EU에서 빠져나가면 영국에 속한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국경이 현재의 자유로운 상황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브렉시트 이후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는 서로 무역 관세를 부과하고 교역에 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 예상된 상황이었다. 국경 검문 또한 강화될 것이다. 이걸 하드 보더(hard border)라고 한다. 영국과 EU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가 맞닿아 있는 국경에서 이와 같은 혼란을 막기 위해 안전장치로 백스톱을 제안한 것이다. 백스톱은 안전장치라는 뜻이고, 실제로 이 조항은 혼란에 대한 보험인 셈이다. 이 협상안에 따르면 북아일랜드는 EU의 관세 동맹에 잔류하게 된다. 북아일랜드가 EU의 관세 동맹에 잔류한다는 얘기는 일정 부분 영국도 EU의 관세 동맹에 잔류하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된다는 얘기와 같다. 당연하게도 하드 브렉시터들이 좋아할 리 없다.

하드 브렉시터만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EU와 완전히 분리되길 원하는 하드 브렉시터만큼이나 EU에 잔류하고 싶어 하는 이들 또한 타협안을 좋아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영국 의정 역사상 최대 표 차인 230표 차로 메이 총리의 합의안이 부결됐다. 이후에 바로 메이 총리의 불신임 투표가 이어졌다. 노동당 당수인 제러미 코빈은 메이 총리의 행정부를 ‘좀비’ 행정부라 일컬으며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불신임 투표에서 패배하면 메이 총리는 총리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런데 메이 총리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영국의 보수당과 민주연합당(DUP)은 325 대 306으로 테레사 메이가 총리직을 계속 이어가길 원했고 그 결과 메이 총리는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다. 이제 메이 총리는 의회를 통과할 수 있는 플랜 B를 찾아야 한다.

플랜 B에 대한 논의는 빨랐다. 1월 29일 영국 하원은 보수당 의원 그레이엄 브래디가 제출한 수정안을 찬성 317표, 반대 301표로 통과시켰다. 이 수정안은 부결된 기존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협상안에서 아일랜드 백스톱 조항을 ‘하드 보더를 피하기 위한 대안적 방식’으로 대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안적 방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는 없지만 어쨌든 기존 조항을 바꾼다는 것이기 때문에 메이 총리는 이제 EU와 재협상을 해야 한다. 기존의 플랜 A가 EU와 합의를 본 내용이었으니 조항이 바뀐다면 재협상은 당연한 얘기다. 메이 총리가 EU 본부가 위치한 브뤼셀을 찾기도 전에 EU에서는 재협상은 없다고 못 박았다. EU의 집행위원장 장클로드 융커는 “이른바 대안적 방식이라고 하는 것들은 결코 백스톱을 대신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백스톱은 안전망이기 때문에 보증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안전망은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없기 때문에 안전망입니다”라는 것이 융커의 말이자 EU의 입장이다. 메이 총리와 융커 위원장은 회담 이후 공동 발표문에서 2월 내에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지만 EU가 얼마나 양보할지는 다소 의문이다.

메이 총리는 앞으로도 새로운 협상안을 가지고 영국 내 의원들과 EU를 설득하고자 하겠지만 모두를 만족시키는 협상안을 제안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EU와의 재협상이 물거품이 될 경우 메이 행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제한적이다. BBC는 불신임 투표가 다시 한번 진행될 수도 있고, 조기 총선, 제2차 국민투표,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국의 노딜 브렉시트가 메이 행정부의 옵션이라고 말한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 조기 총선의 경우 자신의 브렉시트 협상안에 찬성해줄 정치적 신임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메이 총리가 하원에 조기 총선에 대해 투표해달라고 요청해야 하고, 2/3 이상의 의원들이 찬성한다고 하더라도 법안 통과일로부터 25영업일 이후에나 총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제 겨우 50여 일 남은 시점이기 때문에 총선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브렉시트 날짜에 대한 연장을 EU에 요구해야 한다. 제2차 국민투표 또한 마찬가지다. 국민투표는 준비 기간에 총선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최소 22주 이상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가까운 예로 브렉시트를 결정한 1차 국민투표는 56주가 소요됐다. 과연 EU가 그때까지 브렉시트를 연기해줄까? 국민투표에서 무엇을 투표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도 필요하다. 협상안이 나온 지금은 단순히 EU 잔류냐 아니냐 외에 노딜이냐 협상안이냐도 물어야 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노딜 브렉시트를 피하고자 한다. 메이 총리도 그렇고, 메이 총리와 정치적 대척점에 있는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도 그렇다. 아일랜드도 노딜은 피하고자 할 것이다. EU는 어떨까? EU의 도날트 투스크 상임의장은 “나는 (브렉시트를) 어떻게 안전하게 이행할지에 대한 계획의 밑그림조차 없이 브렉시트를 조장한 이들을 위한 지옥의 특별한 자리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고 노딜 브렉시트의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영국 하원은 노딜 브렉시트를 거부하는 수정안을 8표 차로 통과시켰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선언문에 가깝지만 노딜 브렉시트라는 파국은 막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어떤 옵션을 택하든 이제 메이 총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EU 탈퇴 절차를 규정한 리스본 50조에는 탈퇴 연기를 하려면 EU에 속한 27개 국가 모두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항목이 있다. 이들이 단순히 영국이 원하는 협상안을 위해서 날짜를 연기해줄 가능성은 몹시 낮다. 기술적으로 노딜 브렉시트는 디폴트 옵션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 3월 29일은 노딜 브렉시트로 기억될 것이다. 물론 마감이 글을 쓰게 만드는 것처럼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노딜 브렉시트를 원치 않는 이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메이 총리의 협상안에 동의하게 만들 수도 있다. 과연 극적인 타결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시간은 영국의 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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