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센 벵거의 시대

현대 축구를 바꾼 남자의 흥망성쇠.

아르센 벵거

아르센 벵거는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감독 중 가장 많은 영광과 치욕을 맛봤다. 영국 프로축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무패 우승을 이룬 건 아르센 벵거 신화의 일부에 불과하다. 아르센 벵거는 21세기 축구 그 자체였다. 더 나아가 현대식 스포츠 경영 그 자체였다. 하향 곡선을 그리다가 실망스럽게 끝난 마무리와는 달리 언젠가의 그는 분명히 어느 산업의 최전선에 있었다.

아르센 벵거는 최전선과 멀리 떨어진 접경지대에서 왔다. 그는 1949년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 지대인 알자스 지방의 두틀렌하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축구를 좋아해 축구 선수가 되었지만 성적은 별로 신통치 않았다. 축구는 큰 산업이다. 축구를 못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벵거는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고 프랑스의 AS 모나코와 일본 나고야 그램퍼스 감독을 거쳐 1996년 아스날 감독이 됐다. 아르센 벵거가 누구인지도 모르던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2년 만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아르센 벵거는 아스날 축구를 뿌리부터 바꿨다. 그 뿌리에는 과학에 입각한 훈련이 있었다. 벵거 이전의 아스날 선수들은 트림을 하며 경기에 나가고(소화가 안 됐다는 뜻이다) 화요일마다 술을 마셨다. 벵거는 식단과 훈련법을 엄격히 조절했다. 산소 순환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탄산음료도 먹지 못하게 했다. 지금의 1급 스포츠 팀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건 벵거가 22년 전에 한 일이다.

벵거의 아스날은 선수를 꾸리는 방식도 달랐다. 그는 잠재력 있는 선수를 저렴한 이적료로 데려와서 엄청난 선수로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예가 패트리크 비에이라, 니콜라 아넬카, 그리고 티에리 앙리다. 이들은 아스날이 영국에서 가장 강한 축구 팀일 때 주축 멤버이기도 했다. 하나 더, 아르센 벵거는 영국 축구에 국제적인 시야를 도입했다. 아스날은 영국 축구 팀이지만 그에게 중요한 건 승리이지 영국 선수의 비중이 아니었다. 급기야 아스날은 2005년 2월 크리스털 팰리스전에서 베스트 11과 교체 선수 명단에까지 영국인을 한 명도 넣지 않고 경기를 치렀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는 2017년에야 처음으로 스페인 사람이 없는 베스트 11으로 경기를 치렀다. 흥미롭게도 이때 그라나다의 감독은 아스날에서 아르센 벵거와 함께 했던 토니 애덤스였다.

혁명가로 역사에 남으려면 성공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초기 아르센 벵거의 아스날은 완전한 성과를 냈다. 벵거는 부임 2년 만에 1997-1998년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했다. 2001-2002년에도 우승했다. 2003-2004년에도 우승했다. 특히 2003-2004 시즌의 아스날은 한 번도 지지 않고 우승했다.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무패 우승, 메시가 있는 FC바르셀로나도 올 시즌에 실패한 무패 우승이었다.

이론적으로 38라운드짜리 리그에서 1:0으로 38연승을 한다면 무실점 전승 우승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팀이 우승하기 전에 재미가 없어서 관중이 다 떠나버릴 것이다. 강팀이라면 매력적으로 이겨야 한다. 승리라는 결과뿐 아니라 승리하는 과정에서 압도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반 할과 조세 모리뉴가 비난을 피하지 못하는 이유 역시 이기기만 하고 멋진 축구를 못 하기 때문이다. 벵거는 승리라는 결과와 함께 아름다운 축구를 만들었다. 그 결과 아스날은 급이 다른 팀이 되었다. 세계적인 팀이 된 것이다.

벵거가 아스날 축구를 아름답게 만든 재료는 스피드와 템포였다. “벵거 전술의 메인은 공격적인 스피드다. 발끝 패스를 신속하게 연결하여 상대 문전을 두드린다. 이 하이 템포 공격을 구현해내기 위해 훈련에서는 자동화된 콤비네이션의 침투를 중시한다.” 일본 축구 전문가 시미즈 히데토는 <유럽 축구 명장의 전술>에서 벵거의 전술을 요약했다. 빠른 측면 공격수와 지능적인 측면 수비수가 상대방의 측면을 무너뜨린다. 측면으로 수비가 쏠리면 한층 자유로워지는 창의적인 중앙 미드필더가 사방으로 결정적인 패스를 뿌린다. 최전방 공격수는 골 감각뿐 아니라 패스와 시야도 좋다. 이게 잘 구현되었을 때 아스날 특유의 ‘아름다운 축구’가 나왔다. 아스날 팬이라면 20년 후에도 잊지 못할 순간들.

그동안 프리미어리그를 둘러싼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 석유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들어온 첼시를 시작으로 세계의 온갖 부자들이 프리미어리그에 돈을 싸 들고 왔다. 전통의 강호 리버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각각 다른 미국 자본에 소유권을 넘겨주었다. 맨체스터 시티 역시 태국 자본을 거쳐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의 품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에도 벵거는 새로운 걸 해나갔다. 그의 목표는 그냥 승리도, 아름다운 승리의 연속도 아니었다. 승리가 지속되는 시스템이었다.

외국 자본을 받는 대신 벵거는 조금 다른 선택을 내렸다. 벵거는 구단과 함께 옛 경기장을 허물고 새 경기장을 세운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썼던 아스날 경기장 하이버리는 1913년에 지은 것으로 관객석이 3만8416석에 불과했다. FC 바르셀로나의 홈경기장 누 캄프의 좌석 수는 9만9354석이다. 아무래도 작았다. 벵거는 하이버리 근처에 땅을 매입해 새로운 경기장을 짓는 일까지 관여했다. 하이버리의 부지는 주택 단지로 활용해 수익을 올리고 5만9867석의 새로운 경기장을 만들었다. 아스날은 이름 사용권까지 스폰서에 팔았다. 그래서 이 스타디움의 이름은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이다.

아스날은 새 스타디움 자금 때문에 재정을 긴축해야 했다. 기존의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압도적인 신흥 강자 첼시가 돈을 쓰는 동안 아스날은 돈을 쓸 수가 없었다. 벵거는 특유의 합리적 기질과 날카로운 눈으로 맞섰다. 콜로 투레, 세스크 파브레가스, 로빈 판 페르시 등이 이때 벵거가 저렴하게 영입한 선수들이다. 이들은 모두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

벵거가 아스날 감독을 한 22년 동안 스포츠는 국제 단위의 콘텐츠 비즈니스가 되었다. 스포츠는 언어가 필요하지 않으며 규칙이 간단하다는 점에서 콘텐츠 접근성이 굉장히 높다. 위성방송과 인터넷이 발달해 잠재 시청자의 수 자체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기존의 주 매출원이었던 관람권 구매에 더해 중계권과 상표권까지 판매할 수 있는 고수익 비즈니스가 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축구가 가장 눈에 띄었다. 대영제국이 세계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축구의 룰이다. 그렇게 월드컵이 세계의 축제가 됐다. 월드컵 다음의 국제 축구 콘텐츠는 프리미어리그였다. 그리고 프리미어리그가 이렇게 되기 전부터 벵거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스포츠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다.

아르센 벵거의 위상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빌리 빈이다. 빈은 <머니 볼>로 유명해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이다. 그는 야구에 통계와 경제 논리를 도입해 투자 대비 최고의 효과를 이끌어냈다. 빌리 빈 이후 미국 메이저리그는 아이비리그 출신이 단장을 맡아 성과를 내고 있다. 2018년 5월 2일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13개 구단 단장이 아이비리그 출신이다. 작년 포스트시즌 진출 팀 10개 중 6개 팀 단장이 아이비리그 출신이었다. 고학력 단장 시대를 이끈 빌리 빈이 가장 존경하는 스포츠인이 아르센 벵거다.

영원한 건 없다. 스포츠가 선진화되면서 다른 경쟁자들도 아스날의 방법을 따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모든 클럽이 체계적인 식단과 훈련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전 세계로 스카우터를 보내는 팀도 많아졌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많은 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오일 머니까지 들어왔다. 그래도 아스날은 챔피언스리그 진출의 마지노선인 4위의 성적을 유지했다.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엄청난 중계권료라는 추가 수익을 의미한다. 2016년까지 아스날은 챔피언스리그 진출까지는 계속 성공했다. 만족스러운 성과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성과는 성과였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성과가 아니었다.

벵거는 특유의 합리적 기질과 날카로운 눈으로 맞섰다. 콜로 투레, 세스크 파브레가스, 로빈 판 페르시 등이 이때 벵거가 저렴하게 영입한 선수들이다. 이들은 모두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

아스날의 축구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았다. 아스날 특유의 스피드와 템포가 작동하지 않은 지는 오래됐다. 리그의 상대편은 아스날의 스피드와 템포에 강한 압박과 거친 수비로 대응했다. 더 강해진 압박을 뚫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더 정밀하고 빠른 템포의 축구. 그를 위해 필요한 것도 명확했다. 지능적인 톱클래스 선수. 그런데 이미 그런 선수들은 아스날이 사 오지 못할 만큼 비싸졌다. 그래서 아스날의 핵심 선수들이 아스날보다 강한 팀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선수가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로빈 판 페르시다. 이들이 떠나고 각각 FC 바르셀로나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벵거가 하려던 걸 구현한 사람이 주제프 과르디올라였다. 그는 FC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시티에서 각각 압도적으로 강하면서도 아름다운 축구를 선보였다. 그 비결은 최상급 선수들이었다. 과르디올라 같은 축구를 하려면 리오넬 메시나 필리프 람이나 케빈 더브라위너 같은 키 플레이어가 필요했다. 동시에 그들과 발을 맞출 수 있는 10명의 포지션별 최상위 선수들이 더 필요했다. 아스날에는 그게 없었다.

동시에 돈이 없으면서도 매력적인 축구를 하는 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BVB 도르트문트 시절의 위르겐 클로프 감독이었다. 클로프는 독특하면서도 창의적인 전술로 유럽 최고의 턱밑까지 따라붙었다. 클로프의 전술은 극도의 전방 압박이었다. 볼을 뺏기자마자 따라붙어 다시 뺏은 후 골 결정력이 좋은 공격수에게 바로 공을 보낸다. 수비 라인을 바짝 끌어 올려 공 주변을 일종의 카오스 상태로 만들어버린 후 역습으로 바로 결과를 낸다. 그를 위해 도르트문트 선수들은 경기당 120km씩 뛰며 세계 최고 수준의 주파 거리를 자랑했다. 비싸고 똑똑한 선수를 쓸 수 없자 (상대적으로) 싸고 튼튼한 선수의 가동률을 엄청나게 높인 것이다. 발상의 전환이었다.

아스날은 그 사이에서 뒤처졌다. 아스날은 여러 차례 이적 시장의 인플레이션에 맞춰서 값비싼 선수를 사지 않겠다고 했다. 의미 없는 저항이었다. 선수들의 몸값은 이미 너무 높아져버렸다. 그러니 훌륭한 축구를 구현할 남다른 선수가 들어오지 않았다. 일반 도로용 타이어로 레이스에 나갈 수 없듯 평범한 선수로 특별한 축구를 할 수는 없다. 평범한 선수로 특별한 결과를 내기 위해 전술을 바꾸지도 못했다. 그 결과 아스날 역사에 남을 대패들이 생겼다. 2011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8:2로 졌다. 2017년 챔피언스리그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만났을 때 두 번 다 5:1로 졌다.

영국은 축구 감독에게 매니저(manager)급 권한을 주는 전통이 있었다. 매니저형 감독은 경기 지휘뿐 아니라 선수 영입과 유소년 선수 육성 등 팀 운영에 관여했다. 아스날 초기의 벵거가 선수들 식단에서부터 영입 정책과 신규 구장 사업까지 관여한 근거였다. 하지만 현대 거대 조직의 리더십 시스템은 점차 전문화되고 부문별 리더의 개별 권한이 축소된다. 영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축구 감독의 권한은 선수 조합과 훈련, 전술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호칭 역시 코치(coach)다. 아스날은 매니저 감독 시스템을 마지막까지 고수한 구단이었다. 벵거는 매니저 시대의 마지막 감독이었다. 한때 혁신적이었던 구식 시스템에서 성과가 나오지 않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아스날은 2016-2017 시즌을 5위로 마쳤다. 벵거가 부임한 이후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2017-2018 시즌은 6위로 마쳤다. 그리고 시즌 도중 벵거의 경질이 확정됐다.

혁명이 성공하려면 혁명의 주인공이 언젠가는 뒤로 물러나야 한다. 아스날과 아르센 벵거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에서 가장 우아한 축구와 가장 선진적인 경영을 보여주었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 맞춰서 변하지 않은 벵거를, 결국 시간이 밀어냈다.

마지막까지 이기지는 못했지만 벵거의 마지막만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벵거의 오랜 적수인 조제 모리뉴는 벵거와의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벵거에게 두 손으로 악수를 청했다. 벵거의 마지막 홈경기가 끝났을 때도 프레드리크 융베리, 솔 캠벨, 로베르 피레 등 아스날의 전설들이 경기장을 찾아와 거장의 마무리를 축하했다. 스포츠에는 가끔 기록 이상의 이정표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토털 사커를 만든 요한 크루이프나 선수 수명의 상식을 뛰어넘은 로저 페더러처럼. 아르센 벵거도 그 반열에 들어갈 것이다. 축구계 최초의 코즈모폴리턴적 경영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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